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건 선고가 예정된 4일 오전,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안국역 일대는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윤석열 파면’, “내란세력 완전청산”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도로로 모였다.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시민들은 안국역 인근, 용산,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등에 집결했다. 경찰은 안국역 중앙에 차벽을 설치하여 두 집회 사이의 충돌을 방지했다.
선고 예정 시간인 11시가 다가오자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이들은 저마다 돗자리나 방수포, 휴대용 접이식 방석을 깔고 도로에 앉아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노래를 부르거나 주변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집회 참가자들의 참여 동기도 다양했다. 서강대에 재학 중인 여모 씨는 “지난 12월 3일 이후로 계속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어제도 친구들과 함께 철야 집회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을 중심으로 전날부터 밤새 이어진 철야 집회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2000여 명이 참석했다.
푸드트럭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고 밝힌 동덕여대 재학생 김모 씨는 “철야로 집회에 참여하는 분들이 있다고 해서 어제 새벽부터 봉사를 이어왔다”며 참여 계기를 밝혔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김모 씨는 “(안국역과 가까운) 성균관대는 오늘 대부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다”며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으로 생각해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무대 스크린에 등장하자 소란스러웠던 안국역은 순식간에 침묵으로 물들었다. 시민들은 숨죽인 채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들거나, 다른 이들의 손을 꼭 잡으며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한다”는 문 권한대행의 선고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문 권한대행은 먼저 선고의 적법요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 “탄핵소추 의결이 부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문 권한대행의 선고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고, “탄핵심판청구는 적법하다”는 발표가 나오자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문 권한대행은 직무 집행의 위법성 여부를 소추 사유별로 읊어나갔다. 먼저 문 권한대행은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회의 탄핵소추, 입법, 예산안 심의 등 권한 행사가 중대한 위기 상황을 현실적으로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국회의 권한 행사가 위법·부당하더라도 평상시의 권력 행사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으므로, 국가긴급권의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의미다.
또한 문 권한대행은 비상계엄 당시 군경 투입과 관련해 “피청구인(윤석열 대통령)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밝혔다. 헌법 제5조 2항에 따르면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되어야 한다.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하는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든 행위 자체가 정치적 중립성의 위반이라는 해석이다.
이 외에도 문 권한대행은 포고령 발령, 선관위 압수수색, 법조인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 등도 모두 위헌적인 요소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비상계엄 당시 이루어졌던 여러 행위가 그 자체로 헌법 질서를 침해하고,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피청구인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에 근거한 자구책으로 견제와 균형을 실현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피청구인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는 선고가 이어지자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22분,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이루어졌다. 안국역 일대는 시민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로 가득 찼다. 6 대 2 인용, 5 대 3 기각 등의 구도가 예상되었던 만큼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파면 결정 이후 광장에는 <다시 만난 세계>가 재생되었고, 주최 측은 ‘시민의 승리’를 선언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집회 참여자들은 일제히 깃발을 흔들거나 얼싸안으며 기쁨을 표현했다. 눈물을 보이는 참가자도 있었다.
동덕여대에 재학 중인 김모 씨는 알바가 끝난 전날 저녁 10시부터 집회 현장을 지켰다. 김모 씨는 “탄핵 집회에 매일 참여하다 보니 몸과 마음 모두 지치기도 했다. 오늘 결과를 보니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뿌듯하다”며 “모두 함께 싸웠기에 승리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 연대가 이어져 다음 고난도 이겨낼 수 있길 바란다”고 탄핵 인용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역시 동덕여대에 재학 중인 이모 씨 또한 “탄핵 인용 결과에 기쁜 마음”이라고 밝히는 동시에 “윤 파면이라는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이 연대가 이어질지 걱정되기도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이모 씨는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현장에서 뜨거운 에너지를 받았기에 동덕여대 투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며 앞으로 이어갈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서울교대 성모 씨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순간에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지켰다”고 밝혔다. 성모 씨는 “집회에 나오면 저보다 더 자주, 오래 나오시는 분들이 계신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느꼈다”며 그간 열린 탄핵 집회에 참여하는 동안 “대학생이 학문을 넘어 배워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느낀다. 그것은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25학번 새내기라 소개한 서울여대 박모 씨는 “성인이자 대학생이 된 지금이야말로 제 주장을 가장 자유롭게 펼칠 때”라며 집회에 나오게 된 이유를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고 밝힌 박모 씨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흔드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은 선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며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는 승복 입장을 내놓았다.
김태섭 기자(taesub01@naver.com)
이지수 기자(horag1234@gmail.com)
허주원 기자(bluw0903@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