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한자 암기 교육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시킬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 지성사의 근간을 이루는 고전들이 쓰인 '한문이라는 외국어'를 어떻게 현대 한국어의 일부로 온전히 재창출할 것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동서양 고전 번역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강화해야만 인문학의 토대를 다지고 한국어가 AI 시대의 언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글 전용이 공문서, 신문, 출판, 인터넷 등 전 사회에 자리잡은 후 한자 교육은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한자 교육을 늘려야 한다는 측에서는 문해력에 한자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월요일(10월 20일) 이재명 정부 신임 국민통합위원회 이석연 위원장이 성균관을 예방해 "우리말 명사의 80%가 한자인 만큼, 정신문화를 계승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초등학교 단계부터 인성 및 한자교육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만 보아도 이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교육상 한자 교육을 줄이거나 늘려야 한다는 주장 모두 우리가 쓰는 현대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중요한 이유를 간과한다. 우리 조상들이 쓴 것은 개별 글자인 '한자'가 아니라, 고유의 문법 체계를 지닌 서면어인 '한문'이었다. 이 한문에서 비롯된 개념들과 근대 시기 서양 문물을 번역하기 위해 동양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단어들이 바로 한자어이고, 이 한자어가 현대 한국어에 녹아들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광자(光子)’는 물리학의 'photon'을 근대에 번역한 용어이지 빛(光)의 알(子)이라는 의미 조합으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다. 한자의 뜻을 아무리 파고들어도 현대 물리학의 개념인 광자를 이해할 수는 없다. 어휘력 향상을 위해 개별 한자의 뜻풀이 교육을 중점으로 두는 것은 어원과 실제 의미의 차이를 간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가 독일어 Religion(종교)의 어원이 라틴어 religare(결속)이므로 모든 사람 사이의 결속은 종교라고 주장하자 단어의 실제로 사용되는 의미와 무관한 어원학적 곡예라고 조롱하였던 것이다.
사실 상대적으로 한자를 많이 안다는 기성세대도 그 실상을 들여다 보면 한시 한 수도 짓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작문과 연설을 할 때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 역사와 논어, 맹자 등 옛 경전, 중국 이십사사(二十四史)에서 상황에 맞는 적절한 고사를 인용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는 이들이 한문을 익힌 것이 아니라, 단지 수백에서 수천 개의 한자를 ‘아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옛날 양반 봉건지주계급이 위와 같은 소양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봉건지주적 수탈을 통해 노동에 종사하지 않을 수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 옛 시대의 한학(漢學)을 모든 학생들에게 배우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자라는 '글자'가 아니라 한문이라는 '별개의 언어'와 '그 언어를 통한 문예 전통'이 현대 한국어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한문은 외국어이다. 17세기 말 일본의 유학자 오규 소라이는 이미 '우리가 읽고 있는 『논어』와 『맹자』라는 것은 외국어로 쓰여 있다. 우리는 옛날부터 이를 번역해서 읽고 있을 뿐이다.'라며 한문이 외국어이며 논어를 읽을 때 일본어 토를 달아 읽는다고 해서 그 뜻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찰하였다. 즉 중국 고전은 일본어의 방식으로 바꿔 번역했을 때만 그 의미를 제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근대를 연 '번역문화'의 근원을 오규 소라이의 이 통찰에서 찾았다.
반면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도올 김용옥은 2007년에 이렇게 개탄했다.
'우리나라에 다산 정약용에 관한 학위논문은 수백 편이 넘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다산전집인 '여유당전서'는 완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논문 쓰기는 쉽고 번역은 어렵기 때문이다. 논문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지만 번역은 한 줄 한 줄 모조리 그 뜻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논문은 대접을 해주는데 번역은 얕잡아 본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인문학은 기초 없는 사상누각이요, 정직함이 결여된 위선의 허구다.'
2025년 현재에도 다산의 <여유당전서>는 완역된 것이 없다. <승정원일기>는 전부 번역하려면 수십년이 더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특별법에 의해 설립되어 동양 고전을 번역 출판하는 한국고전번역원의 출판 예산은 2021년 17억 3000만 원에서 2025년 8억 3500만 원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그 결과 최근 5년간(2021-2025)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을 완료했지만 출간되지 못한 고전 문헌이 60% 이상 증가했다. 번역된 원고가 출판되지도 못하고 창고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번역은 단순히 외국어를 옮기는 기술이 아니다. 번역은 외국어 전문가가 아닌 모국어 전문가의 영역이며 당대의 언어와 사유를 풍성하게 만드는 창조적인 저술 활동이다. 튀르키예어가 아닌 페르시아어로 시를 썼던 잘랄라딘 루미가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인 이유는 수백 년에 걸쳐 그의 작품이 당대의 튀르크어로 꾸준히 번역되어 오늘날 튀르키예 문화의 자양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충실한 번역 문화는 학문과 산업의 토대이다.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노벨상 수상 당시 영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했으며 일본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었다. 노벨상 수상식 연설에서 그는 영어를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일본어로 연설을 하였다. 일본에서 일본어로 물리학을 하더라도 충분히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이든 공학이든 인문학이든 한국어로만 학문을 해서 그와 같은 성과를 거두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가?
AI 시대의 경쟁력도 고전 번역으로 현대 한국어를 풍성하게 하는 데에서 나온다. LLM(거대언어모델) AI는 축적된 언어간 데이터, 즉 기존의 번역 자료를 기반으로 번역 결과물을 내놓는다. 질 좋은 번역 데이터가 없다면 한국어 AI의 수준 역시 높아질 수 없다.
문화 콘텐츠 역시 고전 번역의 토양 위에서 꽃필 수 있다. 최근 세계적 성공을 거둔 'KPop데몬헌터스'의 세계관도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현대적 접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류 드라마의 원조 격인 '대장금' 역시 <중종실록>의 기록 몇 줄에서 시작되었다. 방대한 분량의 <승정원일기>가 완역되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놀라운 문화 콘텐츠가 탄생할지 누가 알겠는가?
과거를 뛰어넘는 성취는 오직 과거의 지적 유산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소화하여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설 때 가능하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고전을 현대 한국어로 보급하지도 못하면서 다음 세대가 한자를 몰라 문해력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읽을거리가 없는데 문해력이 무슨 소용인가?
이준해 진보당 인천청년진보당 준비위원장(junhae.lee11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