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대학알리

청년

대학생 표류기

“저도 모르게 가격부터 보고 있더라고요, 씁쓸했죠.”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미성년자도,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회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어른들은 말한다. 젊은 게 좋은 거라고, 아무 걱정 없을 때라고.

그 속 좋은 말에 대한 내 대답은 그저 허탈한 웃음뿐이었다.

아무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었던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학 중인 K 양(22)은 개강 이후 인천 본가를 떠나 교내 기숙사에 거주 중이다. 요즘 그녀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돈.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의 생활은 뭔가 다를 줄 알았다.

배우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배우고, 하고 싶은 건 전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방학을 맞아 떠나는 배낭여행을 꿈꿨으며, 학창 시절 공부를 핑계로 가지 못했던

기타 학원에 가려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상 앞에 앉아 핸드폰을 켜고 아르바이트생 구인 광고 목록을 뒤지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K 양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을 직접 만나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속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난한 대학생?

 

 

 

 

“어쩌겠어, 나에게 허락된 천국은 알바 천국 하나뿐인데.”

“나한테 시급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다 사치야.”

 

 

수년 전 인기몰이를 했던 드라마 속 대사 몇 마디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앵무새 마냥 대학만 가면 아무 걱정 없을 거라고 말하던 어른들은,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될 거라는 것을 귀띔해 주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시련은 셀프였다.

 

 

“등록금은 당연히 부담이고요. 뭐, 밥 먹는 건 기숙사식으로 해결한다고 쳐도 매일 기숙사식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웬만한 건 다 해결할 수 있는데 그거 말고도 이리 저리 나갈 건 많으니까 돈 걱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 (K)

 

 

전국의 대학생 5명 중 1명이 경제적 문제로 인해 휴학을 고려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존재할 정도로, 그들의 부담감은 적지 않았다.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는 미성년자도,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회인도 아닌 대학생들에게

이 같은 현실은 가혹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한 학기 수 백 단위에 육박하는 등록금과 무시할 수 없는 교재비, 생활비는

모든 대학생들의 걱정거리로 떠올랐고,

많은 학생들을 아르바이트의 장으로 내몰고 있었다.

 

 

“학기 중이라서 많이는 못 하고, 독서실 주 1회 풀로 하고 있어요.”(L)

 

“방학 때는 주 5회 8시간씩도 뛰어요, 최저 시급 받으면서. 안 그래도 요즘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는데,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놔야죠.”(K)

 

 

 

 

 

실제로 2019년 8월, 알바몬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대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5%의 대학생이 ‘방학과 학기를 가리지 않고 항상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인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대학생 10명 중 9명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중간고사 기간에도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학생들에게 방학의 진정한 의미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돈 걱정부터 하게 된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학 중인 또 다른 대학생 L 양(22)은 곧 돌아오는 방학을 맞이하여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여행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자금을 마련하는 것.

원래 계획대로라면 해외여행을 가려 했지만, 금전적인 부담으로 가까운 국내로 행선지를 바꿨다..

L 양에게 만약 여행 계획이 없었다면 방학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자, 그녀는 다음 학기에 쓸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을 거라고 답했다.

이는 돈 없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요동치는 생활비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오를 건 올랐다. 2019년 9월 28일부로 실시된 경기도 버스 요금 인상 제도는 통학생, 자취생 할 것 없이 모든 대학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최소 100원, 최대 400원 정도의 금액이 인상된 이후, 교통비에 대한 대학생들의 부담감은 배로 증가했다. 특히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 캠퍼스의 지리 상 광역 버스를 이용하여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이 많은 만큼,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지도가 상당히 높았다. 이에 대하여 통학생인 L 양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Q 요즘 가장 지출이 많은 부분이 있다면?

 

 

A 아무래도 교통비와 핸드폰 요금이 아닌가 싶어요. 그 두 가지가 주된 고정비인데, 매달 15만 원 이상씩은 나왔거든요. 지금은 훨씬 더 많이 나와요. 추가 금액까지 고려하면 하루 6000원 정도?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제가 통학생이라 더 부담이 되는 것 같아요. (L)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대외 활동, 아르바이트, 실습 등으로 인해 이동 동선의 범위가 매우 넓고 그 횟수 또한 잦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였을 때, 그들에게 버스 요금 인상 제도는 분명 달갑지 않은 사안이었다.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통학생뿐만 아니라, 기숙사생과 자취생 역시 같은 이유를 들어 불필요한 이동을 최대한 삼가고 있다고 답했다. 더불어, 현재 진행 중인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논의 역시 대학생들의 새로운 걱정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캠퍼스 인근에서 자취를 하거나 셰어 룸에서 거주하는 학생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소리였다. 이 사안에 대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인근 자취생 I 양(20)과 기숙사에 거주 중인 K 양의 입장을 들어 보았다.

 

 

 

Q 현재 가정 및 산업 보급용 전기 요금 인상 논의가 진행 중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좋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실 뭐, 돈 더 나간다는 소리밖에 더 되나요? 버스 요금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또 무슨 전기 요금을 인상하는지,,, (I)

 

A 어차피 기숙사 전기 요금은 기숙사비에 다 포함되어 있는 거라 지금 당장은 괜찮은데,,, 혹시라도 통과되고 나면 그때부터가 문제죠. 만약에 전기 요금 인상되면 내년 기숙사비도 오르려나? (웃음) 설마 그렇지는 않겠죠? (K)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에 있어서 해당 비용의 증가는 학생들에게 확실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정 수입원이 부재한 자신의 위치에서 그 많은 지출을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부모님의 지원에도 일정 범위와 한계는 존재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스스로였다. 이와 같은 경제 정책의 변동은 대학생의 정서적 부담을 넘어 현실의 학교생활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Q 학교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나요?

 

 

 

A 당연하죠, 돈 때문에 과 회식이나 행사 같은 거 있어도 몇 번은 핑계 대고 빠진다거나, 그럴 때도 종종 있어요. (K)

 

A 그럼요. 학교 안에서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도 다 돈인데요. 아예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죠. (I)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학번이 높아질수록 체감하는 부담감의 크기는 더 컸다. 취업 준비로 바쁜 와중, 생활과 사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 학생들의 심정은 어떨까? L 양은 3학년 2학기에 접어들며 고민이 많아졌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부모님께 지원받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더해져 아르바이트는 물론 학교에서 진행하는 여러 활동에 참여하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힘든 그 와중에도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눈앞에 다가왔다. 현재 그녀는 그저 막막한 심정뿐이라고 답했다.

 

 

“공부를 할 시간이 있어야 성적도 잘 받고 취업 준비도 집중해서 할 텐데 사실 좀 어렵죠.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시간이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포기한 적이 많아요. 교환 학생이나 학교에서 진행하는 해외 프로그램 참여하는 것도 고민해봤는데 돈 때문에 많이 망설여지더라고요. 그놈의 돈이 뭐라고.” (L)

 

 

다음 학기 휴학을 결심한 K 양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며칠 전에 만난 선배와의 대화 도중 실감한 경제적인 압박이 본인의 현실을 상기시키는 데 너무나도 충분했다고 이야기했다.

 

“제가 지금까지 부모님 등골 브레이커 노릇을 많이 해서 (웃음) 나중에 꼭 갚아야 하거든요. 최근 취업 준비하는 학과 선배랑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현실이 딱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거죠. 이제 저도 정말 시작인 셈이에요. 솔직히 지금 당장 생활하기도 빠듯해 죽겠는데 취업 준비 시작하면 나갈 돈이 훨씬 더 많아지니까,,, 일단 좀 벌어 놓고 뭐라도 시작하려고요.” (K)

 

 

 

 

○ “The situation makes a man.”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 역시 상황 속에서 변화했다. 통장에 찍힌 숫자 몇 개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젊은 스크루지를 탄생시켰다. 슬픈 일이었다.

 

 

 

“Do it myself”,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Q 지출을 줄이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거창한 건 아니지만 이리저리 핑계 대면서 약속 잘 안 잡고, 물건 살 거 있으면 중고로 구입하는 정도? 요새 화장품도 너무 비싸서 나름 아껴 쓰는 중이에요. 마음처럼 잘 안되긴 하지만,,,(웃음) (K)

 

A 제가 옷 사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고등학생 때도 용돈 받으면 옷부터 사 입었는데 이제는 잘 안 사요. 학교 밖으로 나갈 일 있으면 그냥 모사까지 가서 60번 버스 타고,,, 어쩔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뭐, 별 수 있나요. 그리고 온라인으로 뭐 살 때 배송비 줄이려고 공동 구매 참여하는 거? 그 정도 노력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요. (I)

 

A 저 같은 경우는 식비가 좀 많이 나가서 요새 좀 줄이려고 노력 중이에요. 작년까지만 해도 집 가기 전에 뭐라도 먹고 출발했는데, 요새는 대충 편의점에서 때우거나 참았다가 집 가서 먹어요. 아, 그리고 학교에 십시일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더라고요. 봉사하고 식권 받아서 그걸로 학식 먹기도 해요. 다음 달에는 핸드폰 요금제도 낮출 거예요. (L)

 

 

그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 살 것을 줄여가면서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코 묻은 과자를 뺏기는 것만큼 원망스러운 일도 없지만, 언제까지 울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새로운 과자를 받아 오던지, 과자 만드는 법을 스스로가 익혀야만 다시 새 과자를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이 눈앞의 현실이었다. 물론, 당장 먹을 과자를 잃은 어린아이를 달래주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울다 지쳐 기력이라도 잃으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Q 여가 시간에는 주로 뭘 하세요? 정기적으로 휴식하는 시간을 가지는 편인지?

 

 

 

A 쉬기야 쉬죠, 친구들이랑 아예 안 놀지도 않아요. 저 같은 경우는 걷는 걸 좋아해서 남자친구랑 이 근방 산책 많이 해요. (I)

 

A 음,,,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그거 보러 가끔 나가요. 특별한 취미도 없고, 시간이나 돈 낭비하기 싫어서 잘 안 움직이죠…(웃음) 근데 모현 밖으로 나가기 힘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K)

 

A 전 무조건 여행! 물론 멀거나 돈 많이 필요한 데는 못 가지만, 국내 가까운 곳은 1박 2일이라도 꼭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L)

 

 

우리는 생각보다 강했다. “Do it myself” 시련은 셀프였지만, 위로도 셀프였다.

 

 

 

 

○ “당장은 어렵더라도,,, 조금씩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돈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하루라도 돈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름도 생소한 미국의 저널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을 하든 금전 문제에 적절히 신경 쓰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불행해질 것이다.”

-(William Cobbett)

 

그러나 대한민국 대부분의 학생과 청년들은 적절함을 넘어, 과도할 정도의 금전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전에 언급한 Do it myself(DIM) 등을 비롯한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이 현실을 극복해 나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아쉬운 점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상황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바램을 직접 들어보았다.

 

 

 

Q 대학생들의 금전적인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결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A 뭐, 근본적으로 봤을 때는 많은 일자리가 생기는 게 가장 시급하지 않을까요? 취업에 있어서도 학교와 연계된 프로그램 같은 게 많아지면 학생들에게도 그만큼의 기회를 더 줄 수 있는 거니까,,, 사회적인 변화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생활하는 데 필요한 지출 항목들이 전반적으로 많고, 물가도 낮지는 않으니까요,,, 그에 비해 최저 임금이 잘 못 받쳐주는 탓도 있긴 하지만요. (L)

 

A 아무래도 관련 정책이 좀 바뀌어야겠죠. 예산 분배를 잘 해서 복지도 늘려야 할 것 같고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시나 도에서 자체적으로라도 좀 먼저 시행해줬으면 해요. (K)

 

A 음,,, 조심스럽긴 하지만 우선 정책 측면에서 좀 변화를 줘야 할 것 같아요. 하루라도 빨리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났으면 좋겠네요. (I)

 

 

 

지금 당장, 무조건 나 좋은 쪽으로 해결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 그저 조금의 여유를 찾고 싶다는 작은 염원일 뿐. 아니,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하겠다. 앞으로 얼마나 더 고민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대학생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함께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 우리가 바라는 건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일이 아닐까? 오늘도 수없이 고민하는 우리 대학생들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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