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2 (월)

대학알리

대학언론

[기고] 잊히는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조수근 前 <정정헌> 편집장, 前 <대학알리> 편집국장

*본 기사는 '2026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도약'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들어가며

 

살아오며 단체다운 단체에 속한 적이 적기에, ‘활동 수기’라는 것을 처음 써 봅니다. 돌아보는 글을 쓰려니 어쩐지 묘한 기분입니다. 못다 한 일들, 그것보다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일이 생각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또 저는 짧은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기에,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어떤 것을 얻어갈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용기를 주거나 격려하는 글을 꾸며내기보다 솔직한 이야기들을 솔직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청탁받은 원고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대학언론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활동 수기로 써 달라. 사실을 말하자면 선뜻 쓰기 망설여지는 주제였습니다. 저는 여성주의 공부를 비롯한 사회학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지 한참이 되었고, 대부분의 이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니까요. 특히나 남성인 제가 부정확한 기억으로 여성주의와 관련해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다만 한 번쯤은 정리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토해내는 것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므로 간략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성주의로부터

 

저는 2019년부터 약 2년간 성균관대학교 여성주의 동아리 ‘정정헌’에서 공부하고 글을 썼고, 2020년에는 편집장을 맡았습니다. 어째서 여성주의였나, 라고 하면 2018년 불거진 문단 내 성폭력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만 해두겠습니다. 당시 22살이었던 저는 제 동료들처럼 문단의 민낯에 크게 실망했고, 몇 가지 개인적인 슬픔과 아픔, 개인적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주의를 공부했습니다. 그때부터 과방보다 동아리방을 더 자주 가게 되었군요.

해 질 녘 주황빛 석양이 동아리방에 낮게 깔리면, 시간도 소리도 나른하게 가라앉고, 낡은 소파에서 피어난 먼지가 아주 천천히 방 안을 부유했습니다. 그곳에서 동료들과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놀라운 시절이었습니다. 보수적인 동네에서 나고 자란 제가,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환경의 학교에서 만난 반다나 시바, 뤼스 이리가라이, 게일 루빈, 주디스 버틀러의 이야기는 짜릿할 정도로 진보적이고 새로웠습니다. 다만 그런 꿈같은 생활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새롭고 앞선 이론들은 밥을 먹여 주지 않으니 아무래도 ‘미스 매치’ 가 발생하죠.

2021년, 26살이 된 저는 꿈에서 깼고 먹고 살길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인문계 대학생이었던 저는 이렇다고 할 특기도 쓸모도 없었고, 남들이 취업을 준비할 때 게으르게 사회학을 끼적거린 게 전부였습니다. 굳이 반골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성 사회의 모습에 제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쓰고 먹고살아야 한다’라는 조건 하나가 따라붙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이어 나갈 경제적 여건도 패기도 없었기에 무심코 기자 일을 해보리라 생각했습니다. 기자를 하면 소수자의 이야기들, 잊혀가는 서사들을 기록하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또 다 잊힌 것들이 언제 어디서든 우연히 발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목소리가 어딘가에 남아 전달되기를 바랐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른이 되어 ‘변절한’ 선두 주자들을 적지 않게 본 탓에, 변하고 싶지 않다는 당시의 마음을 소중히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이유도 분명 있습니다.

대학알리에서

 

대학알리에 들어간 당시의 저는 기사를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고, 쓸 줄도 몰랐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당시 편집국장 홍지희 씨의 지도 아래 에세이나 칼럼, 기사의 탈을 쓴 기획 위주의 기사들을 주로 작성했습니다. 동시에 쿠키뉴스 청년기자단 1~3기를 거쳐오며, 기사 쓰기의 기본을 간신히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 저는 기사의 언어로 잊히는 것들의 이야기를 간신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자면 제가 배운 여성주의 담론을, 기사의 언어로, 대학언론에 싣기 시작했습니다. ‘시립대에는 동물원이 있다.’ ‘퀴어퍼레이드, 단 하루 허락된 해방의 날’ 등의 기사가 기억납니다.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전달받은 이야기들, 그래서 꼭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이 세상 무사히 바깥으로 나왔을 때의 안도감은 어찌나 따뜻하던지. 글을 써야만 했던 보다 핵심적인 이유가 지금 이 순간, 보다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듯합니다.

돌이키면 제게 대학알리는 꿈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꿈같은 공간, 이라고 쓴 것은 당시의 자유를 기성 언론에서 그대로 누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개인이 개인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합니다. 자본화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생존은 어렵습니다.

당연한 이치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인간은 아주 합리적인 개인이 됩니다. 안정적인 직장이 생기고, 가족이 생기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 소중히 간직해 왔던 것이 한때의 흔적으로 흐릿해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심지가 단단하지 못해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흔적이 모조리 사라지기 전에 뛰쳐나왔고, 끝내 소중히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래된 가게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써서 기록해야만 하나요. 나는 이제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의 굴레에 갇혀 있지 않지만, 그런데도 나이를 먹을수록, 또 매출과 순수익, 종합소득세 같은 것을 생각할수록 조금씩 그때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수기처럼 의식적으로 기록해야 간신히 생각의 꼬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때는 조금 더 선명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점점 흐릿해지는 것일까요. 왜 써야만 했는가, 에 대한 선명한 시선이나 관점 같은 것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대학언론의 흥망성쇠와는 별개로, 이곳에 이바지하고 있는 구성원 개개인이 왜 쓰는가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옅은 마음이라도 고개를 들면 불씨가 되어 언제든 타오를 수 있도록 소중히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좋은 글, 좋은 기사를 쓰고 싶어 합니다. 좋은 기사란 무엇인지에 대해 저는 알지 못하기에 쓸 수 없습니다. 다만 세간의 말을 빌리면 단독, 속보 같은 표현들이 붙는 듯합니다. 단독과 속보, 이 두 가지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고 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에 좋은 기사라는 것이 있다면, 단독과 속보 바깥에도 자리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과 좋은 기사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오래 쉬어 갈 곳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꼬리를 무는 질문들과 언어들이 정제와 경쟁 바깥에서 쉬어 갈 공간이 있기를, 또 그런 곳이 대학알리가 될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고민 속에서 각자의 기사가 꽃피기를, 바람에 흩뿌려진 말의 씨앗이 또 다른 바람으로 꽃피기를, 나는 희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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