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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서도 서울이 ‘디폴트’다.

서울 공화국 1부 - 오늘 서울 간다고? 여권 챙겼어?

https://www.univalli.com/news/article.html?no=23013

 

# 부산 출신 대학생 데이비드 용만의 일기

 

- 2019년 2월 18일 날씨 눈 옴.

 

새내기 배움터에 왔다. 내가 대학생이라니... 뭔가 어른이 된 거 같으면서도, 좋은 동기들, 선배들은 만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설렜다. 예전 초중고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같은 조와 옆 조 동기들과 하나둘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난 인사만 했을 뿐인데, 다들 신기한 듯 웃는다. “너 혹시 부산에서 왔어?”라고 물어본다. 엥 어떻게 알았지. 나름 사투리 숨긴다고 숨겼는데… 맞다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부산에 대해서 물어보기 시작한다. “너 매일 바다 보면서 회 먹어? 진짜 부럽다.”, “부산에 살면 좋겠다. 공기도 맑고 한적하지 않아? 나도 공기 좋은 데서 살아보고 싶어.”, “해운대 어디 살아?” 나 원 참. 어이가 없었다. 난 회 먹지도 못하는데, 웬 회… 그리고 아무리 회 좋아해도 매일 먹으면 몸에 구충 생긴다. 그리고 부산이 공기가 맑고 한적하다고? 이 친구는 부산이 어디 시골의 어촌 마을 정도로 생각하나 보다. 이 정도 이야기까지 들으니 날 싫어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악의는 없는 것 같고.. 그냥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 같았다. 그래도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뭐라 말할 방법이 없어서 좀 황당했다. 첫날부터 이게 뭐람.

 

# 지방에서 올라온게 죄는 아니잖아!: 비수도권 출신 대학생 6인의 대화 

 

새터를 갔다 오고 난 이후 1년이 지나고, 데이비드 용만이는 우연히 독서 모임에서 비수도권 출신 5명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용만이는 새터때 일을 다른 친구들도 겪었는지 궁금해져서 5명의 친구들에게 질문했다.

(*본 대화는 비수도권 출신 인터뷰이들의 답변을 모아 하나의 대화로 재구성했습니다. 모든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일상생활의 대화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지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 아 목포 시골 아니라고~~

 

 

데이비드 용만(이하 ‘용만) : 야, 내가 작년에 새터갔는데 무슨 일 있었는 줄 아냐? 나 회 못 먹는데 부산에서 왔다고 바다보면서 맨날 회 먹냐고 물어보더라.

 

레이몬드 연옥(이하 ‘연옥’) : 맞아, 나한테는 ‘니가 가라 하와이’를 시키더라니까?

 

윌리엄 광규(이하 ‘광규’) : 아니 나 강원도에서 왔잖아. 내 주변에 “~드래요”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나한테 막 시켜. 웰컴투 동막골이 다 망쳤어 그냥

 

브리트니 준표(이하 ‘준표’) : 난 내가 살던 데는 충청도 사투리를 강하게 쓰지도 않고 나도 잘 쓰지도 않는데, 충청도 사람들은 다 말 느리게 하는 줄 알고, 다 ‘~유’로 말끝이 끝나는 줄 알더라니까? 어쩌다가 한 번 ‘~할래?’를 ‘~할려?’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신기하다고 다시 해보라고 시키더라고...

 

안젤리나 경실(이하 ‘경실’) : 난 전라도 사투리 잘 쓰지도 않는데, 듣고 싶다고 한 번씩 시키고 좋아하더라?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아.

 

스칼렛 광렬(이하 ‘광렬’) : 제주도 사투리 시켜서 하면 더 써보라고 해. 솔직히 나만 사투리 쓰니까 이상해 보일까 봐 부끄러운데… 신기하다고 더 시키니까 부담스러웠어.

 

연옥 : 그치?. 사투리 흉내 내면서 놀릴 거 다 놀리고 끝에 “왜~ 사투리 좋은 거지!”라 하면 그만이더라고 다들.

 

광렬 : 아 그리고 안주로 귤 먹냐고도 물어본다? ㅋㅋ 안주로 귤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건데… 그리고 등교할 때 말타고 등교하냐고 그래. 장난인 거 알지만… 사실 이런 건 악의가 없다 해도 지역 편견에 갇힌 발언인 것 같아.

 

광규 : 아 나 이거 진짜 할 말 많아. 강원도니까 감자 얘기는 기본이고. 강릉이 인구가 20만인데 나보고 “내 친구 00이도 거기 사는데 걔 알아?”라고 물어봐. 거기는 도시냐는 말부터 읍면 단위 마을에서 사냐는 말까지 다 들어봤어. 또 버스는 잘 다니냐고 물어보더라 ktx로 한 시간 반이면 가는데 태백산맥 넘어가서 4~5시간 가는 줄 아는 애들도 있어.

 

경실 : 너한테도 그래? 서울 말고는 다 시골인 줄 아나 봐. 나는 우리 지역에 있는 자사고 나와서 그런지 서울에 대학가는 애들이 되게 많았거든? 근데 애들이 다 나보고 공부 엄청 잘해서 학교에서 혼자 서울 올라온 거 아니냐고 물어보더라. 플래카드라도 붙인 줄 알던데? 그리고 부모님 회사 다니시는데 농사짓냐고 물어보는 건 기본이고. 공기도 좋냐고도 물어보는데, 살던 곳 근처에 공단이 있어서 공기도 별로였어. 오히려 서울 와서 비염땜에 덜 고생했지.

 

준표 : 대전은 노잼도시냐고 그러던데… 솔직히 조금 인정하는데, 너무 스테레오 타입 아니야? 한 두 번 정도는 농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만날 때마다 그러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용만 : 와, 부산이 나름 제2의 도시라고 하잖아. 근데 부산조차도 촌구석으로 보는 경우도 많더라?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놀리려고 그러는 건지… 악의가 없더라도 듣는 사람은 기분 나빠.

 

연옥 : 예전에 인터넷에서 누가 살고 싶은 시골 있냐고 물어보는 글을 봤었는데 댓글에 누가 해운대라고 하는 거 보고 좀 충격받았어.

 

광규 : 와 부산인데도 그렇게 물어봐? 나도 그런 질문 많이 받았어. 강릉엔 스타벅스 있냐, 맥도날드 있냐, 이마트 있냐, 영화관 있냐고. 아까 버스 얘기도 했는데, 모든 지역에 지하철이 다닌다고 생각했는지 지하철 없다니까 놀라더라고.

 

연옥 : 타지역 사람들을 대학만큼 한꺼번에 접할 기회가 없으니까 묻고 싶은 게 많은 건 이해하는데... 좀 슬프다. 이런 거로 신기하다고 관심을 받아야 하고, 또 뭐 스타벅스 없고 영화관 없으면 어때. ㅠㅠ

 

경실 :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 동네에 맥도날드 없다고 하니까 놀림도 많이 받았어. ㅜㅜ 코엑스 가봤어? 거기 식당도, 쇼핑할 곳도 엄청 많고 길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더라고. 저번에 갔다가 길 잃어서 서울 살았던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결국엔 제대로 이해 못 했어.

 

- 면적이 여의도의 ⅔? 저희는 여의도의 크기를 잘 모르겠는데요?

 

 

용만 : 하, 다들 스트레스받았겠다. 그럼 너네 그런 경우도 있었어? 서울 안 살면 뭔지 모르는데 그걸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경우? 나는 친한 동기 친구들끼리 있는 단톡방이 있는데, 나 빼고 다 수도권 사는 애들이야. 근데 한 친구가 오늘 비 때문에 길이 너무 막혀서 합정에서 군자까지 한 시간 반째 가고 있다고 하더라고. 다들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나는 군자가 어디쯤인지도 잘 몰라서 애들 반응을 살피고 나서 비슷하게 답장을 해줬던 적이 있어.

 

경실 : 나는 신천역이 잠실새내역으로 바뀐 줄 몰랐어. 내가 서울 올라왔을 때는 잠실새내역이였거든. 근데 원래부터 서울 사는 동기가 신천역에서 보자고 했는데, 내가 몰라서 신천이 어디냐고 물은 적이 있었어. 생각해보니 서울에서는 당연히 다들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지방에서 올라온 나한텐 익숙하지 않을 뿐인데, 장난으로 “서울 사람 되려면 아직 멀었네~” 이런 말도 들어봤던 것 같아.

 

연옥 : 나는 아는 언니가 자기 DDP 갔다 왔다고 얘기하는데 못 알아 들었었어. DDR 알아? 펌프 게임 있잖아. 뭐 그런 비슷한 게임하고 왔다는 줄 알았어.

 

광규 : 나는 새터에서 술 게임 하는데 갑자기 서울 지하철 호선별로 역 이름을 대는 게임을 하더라고. 서울 사람도 서울 지하철역 다 모를 텐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게임을 할 때마다 걸려서 술 마셨어...

 

준표 : 어, 너도 그랬어? 나도 ㅋㅋㅋㅋㅋㅋ 난 그런 적도 있었어. 우리 지역에는 팔공티 체인점이 없거든? 근데 서울에 사는 한 친구가 팔공티 가서 타로 밀크티 마시고 싶다는 거야! 근데 잘 몰라서 다른 애들 반응하는 거 보고 나도 먹고 싶다고 그냥 맞장구치고 넘어갔던 적이 있었어.

 

광규 : 다들 자기가 살았던 데가 익숙하니까 무의식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아마 우리도 그럴 거야. 그런데 모든 사람이 서울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유독 많이 겪는 거 같아.

 

용만 : 응응, 맞아. 반대로 서울에 사는 사람이 우리처럼 서울이랑 본가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모든 고충을 알지는 못하잖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으니까. 본가에 내려가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 사는 동기가 “그럼 가면 되잖아”라고 쉽게 말하더라고. 근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가 59,800원인데 왕복이면 거의 12만 원이야. 금액을 말해주니까 엄청 놀라던데? 돈도 돈이지만 왔다 갔다 하는데 시간이 엄청나게 드는데 말이야.

 

경실 : 어휴, 그러게. 모든 일에 있어서 서울이 디폴트값으로 되어버리는 거 같아. 우리 교수님께서 기말은 대면 시험으로 보시겠다고 하셨어. 근데 지금 자취방도 기숙사도 없는 지방 애들은 어떻게 해? 일주일 동안 서울에서 머물 곳을 구해야 하는데, 집 나와라 뚝딱!한다고 자취방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교수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수강생들한테 먼저 물어보고 결정하셨으면 좋았을 거 같아.


연옥 : 아 그 대면 강의 얘기 나와서 말인데, 나 얼마 전에 페북에서 무슨 글을 봤거든? 서울로 대학을 온다는 건 그로 인한 추가 비용까지 감수할 생각으로 올라온 것 아니냐고 하더라. 우리가 그런 것까지 감안하고 상경했다 하더라도, 배려에서 배제 당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지방 출신 학생이 말한 것도 아니고 이런 고민을 안 해본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기득권층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해서 서러웠어.

 

- 그래도 난 0rスㄣ 서울에 목마르 ㄷr..™

 

준표 : 휴… 그러니까 근데 더 씁쓸한 건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만 서울을 동경하고, 서울에 있으려고 하는 거 같아. 나도 서울 중심적 사고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거 아닐까? (웃음) 나만 해도 어릴 때부터 서울 가고 싶다고 노래 불렀어. 서울에 좋은 문화, 교통, 교육 인프라는 다 있으니까. 계속 서울에 있을 수 있다면 있고 싶어.

 

광규 : 나도나도. 서울엔 없는 게 없잖아. 질 높은 것을 누리려면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아무래도 서울보다 젊은 층 인구도 줄어들고 폐쇄적인 성향이 커서 무언가를 판단할 때 논리적인 사고보다는 지연 같은 것이 앞서는 것 같았어. 투표라던지 사업 이런 것들에서. 솔직히 무작정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었어.

 

- 어느 날 머리에서 편견이 자랐다

 

연옥 : 준표 말처럼, 나도 지금 서울 중심적 사고가 팽배한 이 사회에 일조하는 것 같아. 반대로 사실 서울도 눈 뜨고 코 베인다느니, 다들 깍쟁이라는 얘기하니까... 이런 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울에 대한 편견이지. 서울 사람이든 서울 사람이 아니든 지역의 특징에 관해 얘기하는 건 좋지만, 악의가 없는 만큼 서로 조심했으면 좋겠어.

 

광렬 : 그리고 다들 서울을 잘 알 거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들은 미처 생각 못 해봤는데… 이것도 배려가 필요한 부분 같아.

 

용만 : 맞아. 지역 편견이든 서울 중심적 사고든 두 문제 다 결국 배려의 문제 같아. 근데 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다들 좋은 얘기 고마워!!

 

# 한국 위에 ‘서울’ 있다

 

 위의 대화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쓰는 표현 중에서 지역 차별·편견이 드러나는 말이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강원도에서는 늘 감자를 먹어야 하고, 전라도 사람들은 늘 손맛이 좋아야 한다. 충청도 사람들은 늘 천천히 말하며, 경상도 여자는 애교가 많고 남자는 무뚝뚝해야 한다. 제주도에는 모든 가정에 자가용으로 말 한 마리씩은 있어야 한다.

 

 흔히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노골적인 혐오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지역 차별·편견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특정 지역의 많은 사람이 가진 특성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그 지역 자체의 특성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들에는 마냥 부정적인 것만 존재하진 않는다. ‘흑인은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는 인식은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연역적 추론을 해보면 항상 참이 될 수 없는 치우친 명제다. 반면 ‘흑인은 범죄율이 높다.’는 말은 편견에 사로잡힌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된다. 마찬가지로 부산 사람들은 다혈질적이라고 얘기하면 반발을 사기 쉽지만, 부산 사람이니 회를 즐겨 먹겠다는 말은 많은 부산사람과의 만남에서 단골멘트가 된다.

 

 서울 중심적 사고는 인식조차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는 말처럼, 모든 언어도 서울로 통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생활 속 많은 표현이 서울을 기준으로 한다. 속초에서 출발해도, 파주에서 출발해도 타지역에서 서울에 온다면 상경(上京)한다고 말한다. 상경의 사전적 의미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옴’이다. 시골이 아닌 인구가 몇백만이 되는 대도시에서 서울로 오더라도 상경했다고 말한다. 게다가 위도와 관계없이, ‘올라온다’는 의미 속에서 서울과 타지역을 상하 관계로 여기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시골 촌(村) 자를 쓰는 ‘촌스럽다’도 마찬가지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촌스럽다를 ‘말을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로 정의하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유행에 뒤떨어지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는 도시, 특히 서울이라는 하나의 기준을 놓고, 그 외의 지역을 ‘뒤처지고 발전이 필요한’ 시골로 알게 모르게 규정지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에는 서울 중심적 사고가 내재되어 있거나, 사용하는 과정에서 서울 중심적 사고로 인해 의미가 변한 경우도 있다.

 

 서울 중심적 사고는 우리나라의 기울어진 발전에서부터 시작한다. 해당 기사 1부에서도 서술했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인프라는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계속해서 서울 혹은 서울 근교 발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 비수도권과의 인프라 격차는 극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스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는 것이 곧 스펙일까?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따르면, 특권이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을 말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특권은 가시적으로 드러나거나 의식적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넓게 보았을 때, 자신이 어느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만으로도 특권을 가진 것이다. 그렇기에 비수도권 출신이 서울로 왔을 때 고려하고 부담해야 할 모든 점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인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면에서, 서울에서 나고 자란 것은 스펙이자 특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서울 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서울 너머의 세상을 잘 알지 못한다.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굳이 알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서울이 그들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디폴트’(기본값)다. 그러나 이들의 언어가 특권 의식으로부터 기인한 멸시의 의미가 담겼다고 보기는 힘들다. 서울만이 발전된 ‘도시’이고 그 외는 낙후된 ‘시골’로 인식한다거나, 모든 사람이 서울에 대해 다 안다는 전제로 말하는 것에서 악의를 찾아보기는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러한 표현들은 악의라기보다는 오히려 모두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악의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감정이 상했고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깎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더라면, 확실히 문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말은 자신이 내뱉은 말의 책임을 축소할 뿐, 의도와 상관없이 차별적인 발언을 한 이상 그 말은 집단 속에서 널리 퍼진다. 차별적인 표현은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다시 차별받은 집단에 화살이 돌아간다. 결국, 잘못된 언어를 답습하게 되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일상에서 지역 차별·편견적 혹은 서울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지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쳐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 ‘서울 공화국’의 타이틀을 견고하게 만드는 미디어

 

 필자는 어느 날 밥을 먹으며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평소처럼 게스트 소개를 끝내고 제작진이 준비한 4가지 특기를 통해 팀을 나누고자 했다. 그런데 제시된 특기 중 한 가지가 ‘사투리’였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사투리가 ‘특기’가 된다니. 누군가에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하나의 특기가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주로 쓰는 표준말도 특기가 되는가? 그 이후 출연진들은 열심히 서투른 사투리를 써가며 미션을 수행했고, 방송은 그 과정에서 웃음을 유발하고자 했다.

 

 이처럼 미디어에서 지역 차별·편견적 표현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상도 출신인 유명 여자 아이돌에게 애교스럽게 ‘오빠야’라고 말해달라거나, 제주도 출신 연예인에게 집에 귤나무가 있는지 물어보곤 한다. 한 사례로 부산 출신인 모 배우가 드라마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역할을 맡았던 경우가 있었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부산 사투리가 아니라며 연기를 잘하지 못한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부산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이 사투리를 쓰는 것은 아니며, 개인에 따라 심하게 사투리를 사용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비난 역시 특정 지역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에서 “우리 엄마 또 택시 탔네, 5km까지는 걸어 다니기로 해놓고”라는 말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유발했다. 뒤이어서 하는 말은 5km가 꽤 긴 거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웃었지만, 타지역 출신이었던 필자는 여의도와 이수 교차로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면 더욱 공감하며 웃지 않을까 생각했다.

 

 위 장면 속 상황에서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5km면 여의도에서 이수교차로까지’라는 멘트를 받아들이는 구성원이 이미 그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화는 일상생활 속 흔한 대화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대화에 참여하는 구성원 중에는 타지역 사람이 분명 있을 수 있고, 그들이 서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대화하기 일쑤다. 앞선 인터뷰에서 부산 출신 용만이가 합정에서 군자까지의 거리를 몰랐던 경우가 그러하다. 예능 프로그램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여과 없이 담았다. 또한 예능의 이런 장면이 대개 전국구로 방송된다는 사실 역시 모두가 서울을 알 것이라 여기며 진행되는 대화 속 소외된 서울 외 지역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서울 중심적 사고는 언론 보도에서 더욱 더 심하게 드러난다. 1부에서 다룬 태풍 및 자연재해 보도 실태는 소도시의 소외를 보여준다. 게다가 ‘다행히’ 서울은 빗나갔다는 워딩 역시 소도시들이 얼마나 소홀히 다뤄졌는지를 알려주었고, 이는 피해 지역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쉽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언론이 사건을 보도할 때, 서울 외 지역은 지역명이 앞에 붙는 경우가 많다. 서울 신림동에서 발생한 강간미수 사건은 언론에서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으로 보도하는 한편, 광주에서 일어난 테이프 살인사건은 ‘광주 테이프 살인사건’이라 부른다. 또, 부산과 서울엔 모두 ‘강서구’가 있다. 최근 부산 강서구에서 일어난 은행 건물 지반 침하 사건은 대부분의 언론이 ‘부산’ 강서구라고 명시했지만, 서울 강서구에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 관련 보도의 헤드라인은 서울이라는 지역명 없이 ‘강서구’라는 지역 구명만 있었다. 이렇게 지역 언론이 아닌 전국을 아우르는 언론사들의 특정 사건 보도 역시 모두가 서울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으며, 서울을 중심으로 다뤄진다. 언론에서 서울과 지방을 다루는 온도 차는 서울 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미디어의 행태는 우리에게 내재된 서울 중심적인 사고를 더욱 공고히 한다.

 

 미디어는 ‘프레임’ 속에 갇혀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지만, 사실 미디어는 특정 프레임을 통해 현실을 비추기 때문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의 의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미디어가 특정 대상을 어떻게 조명하는가에 따라 시청자가 대상을 인식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그만큼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그러한 미디어가 지역의 왜곡된 특성을 재생산하고 시청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서울 중심적 사고를 주입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농담에 불과할지라도, 그 농담은 우리가 사회적 편견을 한층 고착화한다. 또,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상식일지라도, 그 상식은 누군가에게는 노력을 들여 알아야 하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 편견과 서울 중심적 사고는 미디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 모두가 바뀌어야 할 때

 

 과연 서울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타지역 사람들 역시 지역 편견과 서울 중심적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지역 사람들조차도 다른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대전 출신 인터뷰이는 ‘자신의 출신 지역을 밝힌 후, 지역 차별·편견적 발언을 들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경상도에서 온 친구가 자신을 볼 때마다 “돌 굴러가유”라고 했던 적이 있다고 밝혔다. 충청도 사람은 말이 느리다는 전형적인 지역 스테레오 타입이 반영된 말이다. 이렇게 지역적 편견은 대다수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어 비수도권 사람 역시도 자신이 겪었던 차별과는 별개로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낸다.

 

 전라도 출신 인터뷰이는 ‘자신에게도 서울 중심적 사고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중 큰 이유는 자신의 살던 지역과의 인프라 차이로,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응답했다. 서울 중심적 사고의 출발점인 불균등한 지역 발전이 서울 사람뿐만 아니라 여타 지역 사람들의 무의식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답변이었다.

 

 서울 지역 이외 타지역 사람들의 서울 중심적 사고가 잘 드러나는 대목은 대학 입시이다. 위 인터뷰이도, 대화 속 용만이도 비서울 지역에 사는 대입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서울로 대학 진학하기를 꿈꾼다. 우리나라에서 관습적으로 굳어진 대학 서열 중 상위권의 있는 학교는 대부분 서울에 있기에, 대다수의 수험생은 소위 ‘인서울’을 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 재수, 삼수 등 N수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서울’을 해야만 여타 교육이나 대외 활동, 그리고 취업의 기회가 높아지기에 비서울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기울어진 발전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가기를 희망하고 노력한다.

 

 모두를 서울로 향하게 만들 만큼 격차가 큰 인프라 차이에 대해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는 언어 사용에서 드러나는 서울 중심적 사고로부터 벗어나고,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 쓰인 말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상경’, ‘촌스럽다’라는 단어가 서울과 그 외 지역 간 상하 관계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흔히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방’이라고 부르는데,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의 기구나 조직을 중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이 단어 역시도 상하관계가 내재된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무심코 쓰는 언어가 비수도권 지역에 대한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의미를 강화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언어습관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이지원 기자(jione0519@naver.com)

이하은 기자(cfdol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