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은 왜 비밀이 되었나?
“생리대라는 말은 듣기 거북하다. 위생대, 그러면 대충 다 알아들을 것이다” 지난 2016년 6월, 광주 광산구 박삼용 전 의원이 저소득층 대상 월경대 지원을 논의하던 중 ‘월경’에 거부감을 드러내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월경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날’, ‘마법’, ‘대자연’ 등. 우리가 흔히 쓰는 ‘생리’라는 말도 월경을 생리현상 중 하나로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이다. 월경 터부(taboo:금기)는 세계적인 사회현상으로, 월경을 ‘더러움, ‘수치스러움’ 등으로 표현해 숨겨야 하는 일로 만들어왔다. ‘위생대’ 논란처럼 월경을 다른 이름으로 대체하는 현상 역시 월경 터부의 예시이다.
월경 터부의 또 다른 예시로는 한국의 월경용품 광고가 있다. 파란색 월경혈, ‘그날에도 상쾌하다’는 문구는 월경 광고의 주된 화법이다. 월경에 대한 현실적인 표현이 소비자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성환경연대는 이러한 우리 사회 월경 터부에 반기를 든다. 여성환경연대는 1999년 설립된
여성환경운동 단체로, ‘모두를 위한 월경권’을 제시하며 월경 말하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에는 월경 말하기의 일환으로 국내 최초 월경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월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다양한 세대,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월경 경험을 아카이빙하기 위함이다. 이들의 주요사업으로는 매년 세계 월경의 날에 개최하는 포럼, 월경용품 정책 모니터링, 월경 인식 전환 워크숍 등이 있다.
여성환경연대의 안현진 활동가는 “월경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에게 해당하는 일이며,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생애의 절반 동안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월경을 할 때는 매달 매주 피를 흘리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언제 어디서나 월경을 하게 된다. 학교를 갈 때도, 집에서 쉴 때도, 직장에서 일할 때도 월경을 하기 때문에 월경은 모든 생애의 문제이자 모든 세대의 문제이고 모든 장소의 문제”라며 우리사회 속 월경의 보편성과 중요성을 역설했다. 월경을 거부감으로 상정했던 월경용품 광고계와 달리, 여성 삶에서 월경은 중대한 현실인 것이다.
월경 터부 문화는 월경을 여성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안현진 활동가는 2016년 깔창생리대 논란으로 대표되는 월경 빈곤에 대하여 “월경 빈곤은 여성에게 선택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자체와 정부, 사회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에는 앞서 언급된 깔창생리대 논란을 비롯해 월경 빈곤 문제, 월경용품의 안전성 문제 등 해결되지 않은 다양한 월경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는 월경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 내 월경 터부 문화로 인해 그 심각성이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여성환경연대는 ‘월경 말하기 캠페인’을 통해 누구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수 있는 사회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개인의 경제적 환경과 나이, 거주지역, 나아가 성적 지향, 장애 여부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권리가 있으므로 이를 억압하는 월경 터부를 부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생리공결제, 역차별인가 권리인가?
한편, 월경 터부에 대한 반발은 성공회대학교 내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제36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복지국장 박서연 학우는 생리공결제 확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박서연 학우는 “(월경하는 학우들은) 학기동안 4번의 월경을 겪는다. 그러나 성공회대의 생리공결제도는 한 학기에 2회 연속사용이 불가하기 때문에, 매 주기마다 월경통을 겪는 사람은 고통이 가장 심한 날조차 학기의 절반을 견뎌야 한다. 공결횟수와 연속사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기존 생리공결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실제로 회대알리의 월경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5명 전원이 월경 기간 중 일상생활의 불편·불가능을 호소했으며, 89.2%(58명)가 월경통으로 인해 학습 어려움을 겪었다. 따라서 복지국은 격월 사용, 학기당 2회로 규정됐던 기존의 생리공결제도에서 나아가 학기당 4회, 연속 사용 가능으로 제도를 확대하려 한다. 또한, 결석 당일 강의자료를 제공하고, ‘생리공결제’에서 ‘월경공결제’로 명칭을 변환하겠다고 밝혔다. 학우들의 교육권과 건강권, 월경권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생리공결제 확대를 두고 역차별이라고 말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점 없는 결석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학우들이 월경통을 핑계 삼아 생리공결제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의 오용·남용 가능성을 고려해 생리공결제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현 상황에 대하여 여성환경연대 안현진 활동가와 복지국장 박서연 학우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아플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데, 왜 유독 월경하는 사람에게만 증명을 요구하는 것인가. 학교를 다니다가 너무 아파서 학교를 빠질 때 ‘너 왜 학교 빠져서 수업에 민폐를 끼치느냐’고 묻지 않는다. 하지만 월경 때문에 쉬면 단체생활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고, 혼자 개인행동을 해서 튄다고 말한다. 심지어 단체생활에서 빠지기 위해 꼼수를 쓴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시선이 존재한다. 이런 것들을 바라보면 월경하는 몸을 어떻게 취급하는지가 드러난다. 휴가횟수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월경하는 몸이 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먼저 생겨야 월경하는 사람이 적절히 잘 쉴 수 있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증명을 요구받지 않을 것이다.”
-안현진/여성환경연대
“꾀병을 부리는 학생이 있으니, 질병조퇴제도를 없애야 한다거나, 농땡이를 치러 보건실에 드나드는 학생이 있으니 보건실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들어본 적 있는가. 생리공결제 남용 우려가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생리공결제를 ‘남용’할 수 있기 위해선 우선 월경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마다 월경통의 강도와 빈도, 건강상태가 다르나 월경이 수반하는 불편과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은 더이상 설득의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남용에 집중하기보다, 학우들이 겪는 불편을 어떤 방식으로 상쇄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것이 더욱 건설적이다.”
-박서연/제36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복지국장
모두를 위한 월경권, 실현 가능한가
안현진 활동가는 “한국사회가 월경을 터부하는 과정부터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예전에는 생리대 광고에 파란 피가 등장했지만 지금은 붉은 피가 등장한다. 이런 것들이 변화의 지점”이라며 사회 내 월경 터부 문화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월경하는 여자들을 제사에서 배제했다는 천 년 전 기록을 통해 월경 터부 문화의 오래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관성적인 월경 터부 속에서 여성들의 신체기능은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란색이었던 월경혈이 본연의 색을 되찾은 것처럼, 우리 사회 내 월경의 위치는 꾸준히 변화하는 중이다. 여성환경연대에 의하면 당당한 월경 말하기가 그 발판이 될 것이며, 복지국에 의하면 생리공결제 확대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세종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는 학기 중 4회의 생리공결을 허용하고 있다. 타 대학들을 따라 성공회대 또한 4회의 생리공결을 확보할 수 있을지 사업의 귀추가 주목된다. 논의의 결과가 어떠하든, 월경 말하기는 계속되고 있다.
글=최민서 기자(zlxl78945@gmail.com)
취재=최민서, 윤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