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대선
이번 대통령 선거는 ‘87년 개헌 이후 최악의 선거’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개 돌리지 않고 우리 20대 목소리가 세상에 소멸되지 않기 위해 크게 외칩니다. 독자 여러분 역시 ‘20대, 대선’ 필진이 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유권자를 위해,
군소후보 차별 없어야
‘정치개혁’ 어젠다 등장…
다원적 민주주의로 향해야
언론의 관습적 보도 행태도 문제
허무맹랑한 공약을 내세우는 그. ‘하늘궁’이라는 곳에서 온갖 기행을 부리며 웃음거리가 되는 그 후보 맞다. 물론 지지 표명은 아니다. 그의 말이 전부 옳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 웬일로 옳은 소리를 다 했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걸까. 지난달 22일 열린 제20대 대통령 선거 비초청 후보자 토론회에서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는 “누가 (새벽) 1시에 토론하라고 그랬어! 당신들은 취침 시간도 몰라? 여야후보는 밤 1시에 했나!”라며 “똑같이 3억 냈어! 우리도 3억 냈어! 그런데 뭐야 이게”라며 노했다. 분노하는 그의 모습은 평소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곰곰이 반추해보면 틀린 말이 없다.
우리 사회는 대의 민주주의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투표 결과는 민의(民意)를 나타내는 지표다. 한 줌의 군소후보 득표율도 민의는 민의인 것이다. 그런 만큼 민의가 잘 표출되기 위해, 선택할 권리를 위해 유권자로 하여금 선거 제도와 언론은 모든 후보를 인지하게끔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작금의 선거 제도와 언론은 군소후보에게 지극히 ‘차별적’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기호 2번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그나마 기호 3번 정의당 심상정 후보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 △노동당 이백윤 후보 △새누리당 옥은호 후보 △신자유민주연합 김경재 후보 △우리공화당 조원진 후보 △진보당 김재연 후보 △통일한국당 이경희 후보 △한류연합당 김민찬 후보도 있다.
물론 방송 토론에 모든 후보가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토론회가 아사리판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민주주의의 ‘문지기(Gatekeeper)’ 기능도 존재해야 함은 당연하다. ‘강력 범죄 제외한 모든 징역형 사면’ 등과 같은 허무맹랑한 군소후보도 있을 뿐 더러 나치즘과 같은 사회 통념을 심각하게 벗어난 극단주의(Extremism) 성향을 띤 후보도 유의해야 한다. 다만 안 그래도 유권자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군소후보인데, 달랑 1회만 시행되며 오후 11시부터 진행되는 토론회는 유권자의 알 권리 침해가 아닐 수 없다.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 있는 목소리를 내는 후보가 있을 수 있기에 군소후보라는 이유로 무시될 순 없다.
3억 원 있어야 출마…근거 있나
허경영 후보가 언급한 3억 원의 기탁금도 살펴보자. 공직선거법 제56조 제1항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는 3억 원이다. 기탁금 제도는 ‘포말(거품) 후보의 난립 방지와 후보자의 신실성(믿음직스럽고 착실한 성질) 확보’라는 목적에 의해 존재한다. 과연 그러한가.
김래영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공직선거에서의 소수자 보호’(2016) 논문에서 “기탁금이 소액 내지는 만만한 적절한 금액이라서 기탁금이 3억 원일 때 후보자가 난립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며 “기탁금 제도의 목적(의 정당성) 자체는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액수는 실비 변상 수준으로 그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기탁금 제도는 후보자의 재산권, 피선거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외려 부(富)를 과시하는 ‘있는 자’ 군소후보만 출마하게끔 한다.
다원적 민주주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대의자 역할을 하고자 하는 누구나 최소한의 선거 비용만 있다면 출마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필요한 어젠다가 다채롭게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40세 이상 국민에게만 부여한 대통령 피선거권을 개혁함과 동시에 기탁금도 완화한다면, ‘진정한’ 청년의 목소리를 낼 청년 대통령 후보도 꿈꿀 수 있다. 여야의 ‘올드보이’ 정치의 경종을 울릴 것이다. ‘바텀 업(bottom-up)’ 정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언론도 책임이 있다
언론은 정책 보도보다는 거대 양당 가운데 ‘누가 이길까’ 경마장식 보도에만 치중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황해문화』 2008년 여름호 중 ‘선거보도, 민주주의를 위해서 변해야…’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스타를 중심으로 경연대회를 하는 쇼가 아니라 출마한 후보자를 통해 다양한 견해와 정책 제안을 접하고,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결정하는 과정”이라며 “따라서 군소후보에 주목하는 것은 군소후보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유권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언론 본연의 역할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대통령 선거는 쇼가 아니다.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총 60일 동안 언론 기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보도는 84.26%에 달했다. 심상정 후보는 6.02%에 그쳤고 안철수 후보 역시 7.88%에 불과했다. 언론의 양당 중심의 관습적 보도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아무리 군소후보가 난립해도, 제3당 제4당이 지지율이 낮아도 그 가운데에서 원석 같은 의제나 정책을 발굴하는 역할은 언론에 있다. 후보들의 온갖 의제와 정책을 섞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던 와중 ‘정치교체’ 의제가 등장했다. 이재명 후보는 “제3·4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구조를 만드는 건 선거 전략이 아니고 내 평생 가진 꿈이다”라고 말했다. ‘다당제 연합’을 위한 정치적 수사(修辭)는 아닌지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 의제가 등장한 건 반갑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비례대표 위성정당 방지, 결선투표제, 대통령 4년 중임제 등을 제안했다. 이 후보가 공언했듯 낙선할지라도 더불어민주당은 약속을 지켜야 하며 정치개혁을 위해 발을 떼야 한다. 그다음이 군소후보 존중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단 앞서 말했듯 민주주의 ‘문지기’ 역할이 수반돼야 함은 당연하다.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 양당 정치에 신물 난 시민이 많다. 그럼에도 양당 중 최악이 아닌 차악을 고르기 위해 투표하는 시민도 많다. 민의가 엉뚱한 데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제 불판을 갈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더욱 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개혁이 필요한 시기다. 언론 역시 정치 변화에 몫을 다 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양당 후보 일변도의 책임을 면할 순 없다.
박주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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