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알못 주제에] 외대에서 휠체어를 타봤다 : 글로벌캠퍼스

건물 앞에 섰지만, 스스로 열 수 없는 문
barrier-free? barrier-fully
외대에서 휠체어가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이유

[알못 주제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기사를 쓰지 말자는 마음에서 기획했습니다. 저희는 어설픈 '잘알'보다는 '알못'이 되기로 했습니다. 한 번의 경험에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한 번의 취재로도 당사자와 외부인의 어려움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알못 주제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쳤던 것들을 만나고 체험합니다. 이 기사를 통해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조금이나마 알아가며 공감할 수 있도록 저희가 느낀 현장 그대로를 전달하겠습니다.


"제가 휠체어를 이용한다면, 우리 캠퍼스 안 올 것 같아요"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이하 글캠)에 재학 중인 한 비장애인 학우가 말했다. ‘왜’ 휠체어는 글캠에서 사용하기 어려울까. 교내 휠체어 이동을 위한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외대알리가 직접 수동 휠체어를 타고 캠퍼스를 돌아봤다.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버스 '0대'


정문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을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글캠에는 교내 셔틀버스(빵차)와 광역버스가 존재한다. 그러나 정류장에서 여러 대를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리 학교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버스가 없다는 것을.

 

캠퍼스가 산에 위치하며 면적이 넓고 경사로가 많다. 교내 셔틀버스와 광역버스가 글캠 학생 및 교직원의 이동을 책임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휠체어 이용자는 글캠 내외를 다니는 모든 버스를 탑승할 수 없다. 현재 교내 셔틀버스와 광역버스 중 저상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휠체어 이용자가 캠퍼스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개인 차량 이용이 불가피하다. 비장애인도 캠퍼스 내 이동이 불편한데, 휠체어 이용자에겐 더욱 막막하다.

 

 


문(門)제, 해결책은 자동문


건물 앞에 섰다.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문이 눈앞에 있어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겨우 손잡이를 잡았을 때, 밀리지 않던 문에서 ‘무거움’을 느꼈다. 평소 쉽게 밀고 당겼던 문이 오늘만큼은 굳건했다. 경사로 바로 앞에 위치한 문에서는 당황했다. 평지에서도 밀고 당기기 힘들었던 문이 경사로에서는 손잡이조차 잡기 어려웠다. 일상에서 편하게 사용해온 문이 휠체어에 앉으니 무용지물이었다.

 

휠체어가 편하게 건물을 드나들려면 미닫이문이나 자동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동문은 백년관 후문(지하주차장 입구 쪽)과 어문학관 입구에만 있다. 휠체어 이용자는 자동문이 설치된 백년관과 어문학관에서만 타인의 도움 없이 건물 출입이 가능하다. 기숙사 식당 입구에도 자동문이 있지만, 막상 기숙사 식당 건물을 들어가기 위한 문은 자동문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없이 올라갈 수 없는 206호 강의실


휠체어로는 계단을 이용할 수 없다.

엘리베이터는 휠체어 이용자가 층을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글캠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갖춰져 있을까. 인문경상관, 어문학관, 교양관, 학생회관, 백년관, 도서관, 기숙사 순으로 엘리베이터 설치 여부를 확인했다.

 

백년관과 기숙사에서만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나머지 건물 중 휠체어 이용자는 1층을 제외하고 시설을 전혀 이용할 수 없다. 휠체어를 타고 바라본 계단은 유난히 높아 보였다.

 

백년관과 기숙사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도 문제였다. 내부 공간이 좁아 버튼을 누르기 쉽지 않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 같이 탔더라면 버튼에 손을 뻗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것만으로도, 2층을 이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비장애인은 휴(休), 휠체어는 ‘휴..’


휠체어로 기숙사 방에 들어갈 수 없다.

다수의 글캠 학우들이 이용하는 기숙사는 어떨까. 기숙사 건물 입구에도 역시 자동문이 없었다. 지나가던 비장애인 학우가 문을 잡아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숙사 방이 있는 위층으로 이동하자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다. 방 입구가 너무 비좁았다. 2인실 입구는 소형 휠체어로도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휠체어를 외부에 세우고 호실 내 바퀴가 달린 의자를 이용하는 게 나아 보였다.

 

건물을 나오면서 장애인 전용 출입문을 이용했다. 문제가 생겼다. 사감의 승인으로 잠금이 해제됐지만, 휠체어에 앉아서는 잡아당긴 문을 고정시킬 수 없었다. 누군가 문을 잡아주지 않으면 혼자 힘으로 건물을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표시만 장애인용 화장실


장애인용 표시가 있지만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다.

 

어문학관 1층의 장애인 화장실은 비장애인 화장실과 같은 크기다. 휠체어가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취재에 사용한 휠체어는 폭이 0.59m인 수동 접이식 휠체어로 작은 크기임에도 대부분의 화장실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백년관 1층을 제외하고 캠퍼스 내 여타 장애인 화장실 공간이 협소해 진입조차 불가능했고, 회전 반경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화장실 사용이 불편했다. 화장실에 들어간다 해도 문을 닫을 수 없는 것이 큰 문제였다. 휠체어 이용자가 절대 이용할 수 없는 화장실에 왜 장애인용 표시를 해놓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barrier-free? barrier-fully.

  

휠체어로 직접 경험해 본 글로벌캠퍼스는 barrier-fully 했다.

엘리베이터는 백년관과 기숙사에만 존재하며,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문경상관, 어문관, 도서관에는 없었다. 매번 총학생회 후보자나 총장 후보자들이 건물별 리모델링 공약으로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하지만, 항상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무산됐다. 그나마 교양관의 경우 올해 3월 개강에 맞춰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예정이다.

 

휠체어를 타고서는 캠퍼스 내 대부분의 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각 건물 주차장마다 장애인용 주차 구역이 마련되어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했다. 저상버스를 증차하고 전 건물 엘리베이터 의무화, 자동문 설치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캠퍼스 내 시설 확충과 관련해 글로벌캠퍼스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교내 낙후 및 훼손된 시설로 인해 몸이 불편하신 학우분들께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라며 비대위 내부에서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펼쳐진 모든 것이 난관

 

직접 휠체어를 타고 체험해 보니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난관이었다. 글캠 출신 김현민(루마니아어 16)씨는 “학교가 전반적으로 언덕진 곳이 굉장히 많은데, 편의시설이 너무 부족해요. 몸이 불편한 학우들이 있다면 큰 불편을 느낄 것 같아요”라며 편의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글캠에서는 생활할 수 없다. 강의나 자치 활동 이전에 ‘이동’부터 불가하다. 학교 진입부터 건물 간 이동, 건물 내 이동, 그 어느 것 하나 이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외대가 장애 학생이 올 수 없도록 장벽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캠은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해 지금 당장 변화해야 한다. 글캠에선 휠체어가 멈춰 설 수밖에 없다.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류효림 기자(andoctober@naver.com)

오기영 기자(oky9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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