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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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의 시간, 베이비박스가 지킨 생명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베이비박스는 지난 15년간 2,152명의 아이를 보호해왔다. 작은 상자 이면에는 부모들의 절박한 선택과 사회적 구조의 한계가 얽혀있다. 위기 속에 놓인 부모와 우리 사회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1. 베이비박스가 지킨 아이들

서울 관악구 가파른 언덕 위,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부모들이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최후의 선택지 중 하나이다. 2009년 이종락 목사가 설립한 이후 2024년 7월까지 2,152명의 아기가 이곳에서 보호받았다.

 

 

이 작은 상자에는 단순히 생명 보호가 아닌 사회적 의미가 담겨있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 가족의 지지 부족 등 다양한 이유로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힌다. 주사랑공동체 황민숙 센터장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부모들의 선택은 포기가 아니라,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결정이예요.”라며 그들의 절박함을 설명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황 센터장은 “미혼모를 향한 사회적 편견과 불충분한 지원이 부모들에게 베이비박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해요.”라며 제도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아이는 함께 만든 부모임에도 책임은 주로 엄마에게만 돌아가고, 아빠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예요. 성교육은 단순한 이론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부모 모두가 책임을 나눌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2. 작은 상자에 담긴 사회의 무게 

 

베이비박스를 찾는 사람 중 일부는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출산을 선택한다. 2018년부터 2024년 7월까지 주사랑공동체에서 보호한 아기들의 병원 외 출산 비율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특히 경제적 부담, 사회적 낙인, 비밀 출산을 강요 받는 것이 임산부가 병원에서 출산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하는 주 요인이다. 이는 안정적 의료 환경에서 출산하지 못하는 엄마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7월부터 보호출산제와 출산통보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보호출산제는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등 다양한 이유로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임산부가 가명을 사용해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다. 상담을 통해 익명으로 진료를 받고 출산기록을 남기지 않는 운영 방식은 위기 임산부와 신생아를 보호하고 아동 유기 및 살해 등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산부가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과 불안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익명 출산이 가능하다는 것은 임산부에게 신뢰를 제공해 원가정에서 아동이 양육될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위기 임산부와 ‘미혼모’에 대한 지원과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보호출산제가 시행된다면 아동 및 여성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동시에 존재한다. 이 제도를 통해 익명 출산이 확대될 경우 오히려 아동 유기가 증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보호출산제와 함께 시행된 출산통보제는 모든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아동의 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출생 미등록 아동 발생을 방지하고 모든 아동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보호출산제를 통해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도 출산통보의 대상이 되며, 이렇듯 두 제도는 긴밀히 연결되어 운영된다.

 

3. 지켜진 생명, 그리고 남겨진 상처 

 

베이비박스를 통해 지켜진 아이들은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새 가정으로 입양돼서 자라지만, 아이를 보내야 했던 엄마들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아이를 버렸다’는 비난을 받으며 고통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황 센터장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며 느낀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 “베이비박스를 통해 시설로 간 아이들이 이제 15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표현은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며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엄마가 지켜낸 생명이에요. ‘버렸다’는 표현은 이들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기에, 이 아이들은 엄마에 의해 지켜졌음을 우리가 더 잘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또한 베이비박스가 지금까지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점도 어려움으로 지적했다. 황 센터장은 “정부 지원 없이 운영되다 보니 힘든 부분들이 많아요. 아이들을 지키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며 정부와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베이비박스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부모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 역할을 해왔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부모가 아이를 안전하게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베이비박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의 배경과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베이비박스는 단순히 아이들을 보호하는 상자가 아니다. 이 상자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부모들의 절박함, 공동체의 책임과 함께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담겨있다.

 

 

 

취재, 글, 사진 = 정하엽 기자

디자인 = 정하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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