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가 마르크스경제학 수업 개설을 거부하자,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비공식 0학점 강의 ‘정치경제학입문’을 개설했다. 현재 수강 신청을 받고 있는 해당 수업에는 재학생과 시민 등 2,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 의사를 표했다.
35년 역사의 마르크스경제학… 학생 요구 묵살한 채 폐쇄
서울대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는 1989년 1학기 부임한 고(故) 김수행 교수를 시작으로 35년간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서울대는 작년 2학기부터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을 비롯한 관련 수업을 모두 폐강했다. 경제학부 교수들로 구성된 교과위원회는 ‘교과과정 운영과 강의 수요 및 공급 상황’을 근거로 들었다. 학생들이 해당 교과목 수강을 신청하지 않아 교과과정 유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재학생들의 여론은 ‘강의 수요가 부족’하다는 교과위원회의 설명과 상반됐다. 2024년 9월 서울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교과목 개설 수요 조사에 따르면, 겨울학기 ‘정치경제학입문’ 수강을 희망하는 학생은 16명이었다. 2025년 3월 시행된 동일한 수요 조사에서 여름학기 ‘정치경제학입문’ 수강을 희망하는 학생은 21명, ‘마르크스경제학’과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은 각각 16명으로 나타났다. 2021년 서울대 경제학부가 공고한 폐강 전공 기준인원은 ‘4명 이하’였다.

이에 ‘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이하 서마학)’은 5월 9일 서울대 행정관 터널에서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강사 임용 ▲마르크스경제학 강좌 개설 ▲학문 다양성 보장 ▲비정규 강사의 노동 존중을 골자로 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하지만 서마학의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5월 10일 공지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강사 임용 공고’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은 배제됐다. 분야를 특정하지 않고 경제학 전반의 전공자를 선발했던 2022년 채용과 달리, 올해에는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경제사를 비롯한 주류경제학 전공자만 지원할 수 있도록 공지된 것이다. 이는 고(故) 김수행 교수 퇴임 이후 서울대 내 마르크스경제학 분야를 담당했던 강성윤 강사의 재임용은 물론, 관련 전공자의 채용 역시 봉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서울대 사회과학대는 신규 강사 채용 마감일인 5월 19일까지 임용 공고를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여름 계절학기에 마르크스경제학 수업은 열릴 수 없게 됐다.
“제도권이 허락하지 않았으니, 제도 밖에서 공부하겠습니다.”

서마학은 이에 대응해 여름학기 비공식 강의 ‘정치경제학입문’을 개설하고 수강자를 모집하고 있다. 5월 22일 서마학 페이스북에 따르면, 이번 강의는 6월 24일부터 8월 5일까지 총 13회에 걸쳐 열린다.
강의 장소는 ‘서울대 내 강의실’로 정확한 위치는 별도로 공지된다. 온라인으로도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며, 수업 녹화본이 강의 게시판이나 유튜브 등에 게시될 예정이기도 하다.
신청 대상은 ‘서울대 구성원과 시민들 누구나’다. 이러한 개방성에 힘입어 강의 신청자가 엿새 만에 2,000명을 돌파했다.
서마학의 ‘정치경제학입문’은 2008년부터 서울대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담당하던 강성윤 강사가 진행을 맡는다. 대학알리와의 인터뷰에서 서마학은 “1998년 서울대 디자인과에서 부당 해직을 당한 교수가 학생 사회의 ‘0학점 수업’을 통해 복직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강사 선정의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서마학은 “채용 공고에서 강성윤 선생님이 배제된 현재, 저희 투쟁의 목표는 단순히 과목을 되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강 선생님께서 합당한 자리를 되찾으시는 것이기도 하다”라며 투쟁의 성격상 ‘당연히’ 강성윤 강사가 진행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강의는 강성윤 강사의 뜻에 따라 전면 무료로 진행된다. 강성윤 강사는 입장문을 통해 “대학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접하고, 그것을 판단하고 평가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원지현 기자(krchloe123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