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알리의 취재팀 회의에서는 취재 아이템을 찾기 위한 전쟁이 일어난다. 온갖 커뮤니티와 SNS는 다 섭렵하고 다니는 본 기자들은 ‘가위썰’ 어떠냐며 취재팀 회의에 미끼를 던져 부렀고, 그것을 취재팀은 물어버린- 그렇게 쉽게 물줄은 몰랐다. 휴. 뭣이 중한지 같이 알아봅시다! 자, 12월의는 그래서 가위썰, ‘가위썰’이다.
Cut the 썰풀. 그래서 가위썰이 뭔데?
앞에서 가위썰, 가위썰 하는데 그게 뭔지 감도 안와서, 우리 독자들은 본 기자들이나 이 잡지를 핑킹가위로 잘라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위썰을 접한 것은 약 두 달 전, 학교 커뮤니티를 훑다 우연히 접한 이대 시위 관련 칼럼의 한 줄에서였다. 「유신 개헌 반대 데모가 일어나던 70년대, 웬일인지 쥐 죽은 듯 고요한 부산대에 이대 총학생회 에서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라는 조롱의 의미로)가위를 그려 보냈다’는 웃지 못할 일화. 이에 각성한 부산대 학생들마저 유신 반대 운동에 동참하면서 마침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시위가 번졌다 는 이야기다.」1 사실 취재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 과거 신문, 논문, 구 술집 등을 참고하니 ‘나만 몰랐던 이야기’에 가까운, 굉장히 유명한 일 화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소문을 접하고 몇 가지 관점에서 크게 의문 스러웠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온갖 곳을 모두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fact checking’에 힘썼다고 볼 수 있겠다.
Pop the fact
fact 1. 위와 같은 ‘가위썰’은 과연 사실인가? “아니다!”
우리는 소문 자체의 진위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가위, 이대, 부산대, 부마항쟁, 시위’ 등을 주요 키워드로 잡고 논문, 기사 등 각종 자료에 나타나는 가위썰의 진위 여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모든 자료를 망라하고, ‘가위썰’은 단지 소문의 양상에서만 머무를 뿐, 실증적 증거가 전무하였다. 이에 본 기자들은 ‘가위썰’을 사실이 아닌 소문의 영역에서 조사해나갔다.
지금껏 전해 내려올 정도로 강력한 소문이라면, 당대에는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확신에 기반하여 그 당사자들을 조사함이 마땅하다. 먼저 해당 소문에서의 발신자인 이화여대 총학은 취재기간 당시 선거기간으로, 총학의 주체가 바뀌는 과정이라, 취재가 용이하지 못했다. 따라서 수신자인 부산대 총학에 ‘가위설’에 관해 문의했으나, 애석하게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소문의 주체와의 접선이 마땅찮은 상황 속에서, 본 기자들은 학내 유서 깊은 언론기관 중 하나인 <이화교지>를 참고하러 교지편집부에 문의를 했다. 당대 학생사회의 주요한 이슈였던 학생운동과 관련한 '가위썰', 혹은 '가위썰'과 관련한 당시 학우들의 의견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이화교지>의 편집위원 남지우 씨로부터 '가위설'의 배경이 되는 부마항쟁 전후시기, 즉 79-80년도에 발행된 교지가 보관되어 있지 않다는 응답을 받았다.
fact 2. 가위썰.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퍼뜨렸나?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시위 주동자들이 부마항쟁 직전에 부산에서, 구전으로, ‘가위썰’을, 대학생들의 시위 참여 분위기를 고무시키기 위해서.
이때쯤 되자 본 기자들은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기사 아이템을 뽑았나.’, ‘내가 이러려고 이대알리 기자가 되었나, 자괴감 드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던 와중, 본 기자들은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대학가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위썰’이 퍼뜨려졌음을 증언하는 논문2 을 찾을 수 있었다.
보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해당 논문의 저자에게 서면으로 질의응답을 시행했다. 그 결과 본 기자들은 저자로부터 「필자가 (본 기자가) 적시한 관련자분들에게 소문의 '의도성'에 대한 사실관계를 증언 등을 통해 확인한 바는 없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을수 있었다.
그러나 다만, 위의 논문에서 인용한 부분이 시위 주체였던 정광민의 구술이었다는 점에서, 소문의 의도성은 보다 확실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썰 풀고 입 닦기
요컨대, 썰을 썰고 사실을 터뜨려가면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대 총학이 타대 총학에 가위를 보냈다’라는 가위썰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그 가위썰을 유포한 사람은 이대외부 의 사람이고, 유포자들은 해당 썰이 당대 독재에의 항거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일종의 트리거(trigger)로 기능할 것이라 짐작했으며, 실제로 그러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본 기자들은 민주사회의 시민이자, 대학생이자, 이화여대생으로서 유감스러운 부분을 지적하면서 썰을 푼 입을 닦아내려 한다.
‘가위썰’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여성들을 민주사회의 시민에서, 대학생에서 배제한다. ‘가위썰’의 본질이 무엇인가? 곧 여성들의 남성성 박탈 위협에 대해 남성들이 분노하고 행동함이다. 남성성의 박탈위협을 타개하고 본인들의 남성성을 고수할 수 있는 방법이 유신에의 항거라면, 유신 독재는 당시의 가위였나? 혹은 자신들의 남성성을 박탈한 결과로 형성된, 더 큰 남성성의 응집체였나? 역설적인 것은 유신독재에의 항거를 통해 이룩한, 당대 남성들의 남성성의 회복이 민주주의의 회복과 일치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여성은 민주주의에서 아예 배제가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마치 고대 로마의 시민사회로 회귀한 기분마저 들었다.
또한 ‘가위썰’을 인용한 수많은 기사들 혹은 논문들에선, ‘이화여대생’ 이 ‘부산대생’에게 가위를 보내 항거하지 못함을 조롱했고 이에 부산대생들이 분노했다는 정도로 서술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의문이 문득 들지 않을 수 없다. 부산대생에는 여자가 없나? 부산대생의 항쟁참여를 설명하는 방식에 ‘가위썰’과 같은 성별적 설명이 들어가 버리는 순간, 우리는 부산대생이자 여성이며, 당시 독재에 항거했던 사람들을 설명할 논리를 잃어버린다. 요컨대 ‘가위썰’ 하에서 부산대학교의 대학생의 기본값은 남성이여야만 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역사에서, 심지어 대학사 회사에서조차 삭제된다. 오로지 역사에서 남성만이 남는, 요컨대 일원론적 역사 서술을 배태하기에 이는 부당하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두 문제점들과 같은 고질적인 사회의 프레임에서 벗 어나기 위해 분투하는 ‘이화여대생’인 우리를 또다시 항쟁의 꽃’정도로 묶어놓으려 한다는 점, 다시 말해 달아나는 발목을 분질러 주저앉혔다는 점에서 ‘가위썰’은 가장 추악하다. 왜 김춘수 시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그렇게 낭만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문이 특정 대학생들을 발신자(이화여대생)로 명명하는 그 의도가 타대생들의 항쟁의지를 고무하는 위치에 묶어놓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가위썰’의 유포와 그 고의성에는, ‘이화여대생’을 정말 ‘꽃’으로 묶어놓아 단지 자극 기제의 역할에 한정짓게 하려는 강한 갈망이 내재되어있다고 보았다. 물론 ‘이화여대생’ 내에도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은 벗들이 있을 것이지만, 사회적 통념 하에 이미 이화여대생은 곧바로 여성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결국 가위썰은 여성이자, 민주시민이자, 대학생이고자 하는 우리에게 가장 추악한 추문이다.
그래. 그래서 결국 뭣이 중하냐고? ‘가위썰’이 우리의 주체성을 박탈한다는 점이다. 재밌자고 시작한 취재가 죽자고 끝날 줄은 본 기자들도 몰랐다. 하지만 뭐, 언제나 그랬듯, 우리를 둘러싼 썰은 계속될 것이다.
기사 = 김한누리 (h0tnuri@naver.com), 이주희 (leejoohee1205@gmail.com) 기자
온라인 편집 = 김계리 기자 (ey3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