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4 (일)

대학알리

이화여자대학교

책 따라 길 따라: 독립서점 탐방기

‘독립서점? 서점이면 그냥 서점이지 웬 독립?’이라며 생소함을 느끼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홍대, 그중에서도 경의・중앙선 홍대입구역 주변에 자리한 독립 서점 몇 군데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에 앞서 독립서점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독립서점은 우리가 아는 교*문고, 영*문고 같은 보통의 서점이 아니라, 개인이 직접 책을 골라 채워 넣고 차린 그야말로 개성이 듬뿍 담긴 책방이다. 그래서 독립서점에 가면 기성 출판물부터 보통 서점에서 보기 힘든 독립 출판물들까지 모두 발견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다양한 출판물들이 모여 취향을 이루는 곳, 독립서점을 지금부터 구경해 보자.

*잠깐! 이 기사는 독립 서점에 대한 바이블이 아닙니다. 온전히 기자의 감상과 취향에 기반을 둔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

 

 

경의선 책거리

최근 1년 사이에 연남동 ‘경의선 숲길’이 소위 데이트 명소로 떠올랐다. 홍대입구역에서 연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는 구간이 가장 유명한데, 미국 센트럴 파크를 닮은 산책로(그래서 일명 ‘연트럴파크’라고도 불린다)와 주변의 맛집들로 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자칭 맛집탐방러인 나 또한 예전에 그곳을 방문한 적 있는데, 몇 주 전에 우연하게도 아는 언니를 통해 경의선 숲길에 ‘책거리’가 조성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경의선 숲길의 구간은 용산구에 위치한 용산문화체육센터부터 은평구의 가좌역 까지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경의・중앙선/공항철도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쪽으로 나오다 보면, 숲길을 따라 ‘경의선 책거리’가 등장한다. 경의선 숲길이 길게 이어져 있는 줄 몰랐던 나는 책거리가 뜬금없이 뿅! 하고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길이 드문 경의・중앙선 홍대입구역 부근에 이런 한적한 공간이 있다니, 아지트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경의선 책거리는 중앙의 산책로를 따라 열차 모양과 닮은 여러 개의 컨테이너 박스1들이 양옆에 늘어져 있는 모양새이다. 아마도 경의선이라는 점에서 기차역 컨셉을 따온 듯하다. 각 컨테이너 박스들은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테마산책, 문화산책, 인문산책, 문학산책, 창작산책, 아동산책, 예술산책, 미래산책, 여행산책으로 총 9개의 산책 서점이 있다. 그 중 창작산책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로봇코딩교실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문화산책에서는 작품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독서뿐만 아닌 전시 관람도 즐길 수 있었다. 여행산책에서는 여행사진집이나, 여행 정보에 관련된 도서들이 즐비해 있는데, 우연히 집어 든 사진집 하나가 정말 마음에 들어 한동안 넋 놓고 뜯어봤다. 넓은 지면에 색감 청량한 사진들이 공간을 마구 차지하고 있는 쾌감이란! 한 면 전체가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걸 보았을 땐 내 마음이 다 뻥 뚫렸다.

*위치: 홍대입구(경의・중앙선/공항철도)역 6번 출구에서 신촌 방향으로 직진

*취향 저격 point: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걷는 산책길. 산책과 독서의 만남은 옳았다! 때가 봄이니만큼, 산책하고 싶다면 구경삼아 와보는 것도 좋을 듯.

 

 

사적인 서점

사적인 서점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경로는 페이스북이었다. 홍대 명소인지, 데이트 장소인지 모를 어느 게시물에서 독특한 컨셉의 독립서점으로 소개된 적이 있어 기억해 두었다. 위치도 학교와 그리 멀지 않아 바로 독립 서점 탐방 목록에 넣었다.

아, 그전에 사적인 서점에 방문하려면 시스템을 먼저 알고 가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허탕을 치는 대참사가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적인 서점은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제?! 무슨 서점이 예약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사실, 사적인 서점은 손님에게 책을 처방해주는 약국의 개념으로 운영된다. 1시간에 걸쳐 손님의 독서 취향부터 최근의 감정, 고민까지 나눈 후 그에 맞는 책을 처방해 주는 방식이다. 일요일부터 금요일의 각 시간대에 예약을 받고, 토요일은 ‘오픈데이’로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누구나 방문해 구경할 수 있도록 열어놓는다. 예약된 시간에는 오롯이 한 손님에게만 집중해야 하기에 예약된 손님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고 한다. 예약을 할 수 있을까 알아보니, 이미 3월 예약은 모두 꽉 차 있었다. 아쉬운 대로, 토요일 오픈데이에 맞춰 서점을 방문하러 갔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한 아로마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마치 우리를 힐링하는 듯, 맑고 쾌적한 향기가 기분을 좋게 했다. 서점의 주인 분은 약사처럼 흰 가운을 입고 계셨다. 후각, 시각 모두 ‘큐레이팅 서점’이라는 컨셉을 충실히 만족시켜주었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노래와, 향긋한 냄새, 분위기에 빠져 한참을 구경하다가 책의 배열에도 신경 썼다는 걸 깨달았다. 주로 크게 파악한 주제별 분류는 다시 시작함에 관한 책/여행/페미니즘/철학/마음에 대한 책들/ 등등이다. 주인 분께 여쭤보니 서점에 있는 책들은 모두 직접 살펴보고 골라 들여놓은 책들이라고 하셨다. 더불어 자주 방문하시는 손님들은 책 목록에 변화가 없으면 지루해할 수도 있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에디팅을 하신다고 한다. (에디팅은 아마도 새로운 책을 고르고 서점에 배치하는 리뉴얼을 지칭하는 듯하다) 사적인 서점에서 발견한 또 다른 특징은 샘플 책에 주인이 직접 읽고 남긴 라벨과 연필로 그은 줄들이 그대로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떤 책을 처음 볼 때 대개 앞장만 대충 훑어보기 때문에 전체를 읽기 전에는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데, 이 흔적을 남겨둠으로써 손님들이 책을 파악하기 쉽게 했다는 점에서 배려가 돋보였다.

긴 구경의 끝에, 전공 책 폭탄으로 인한 텅장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박완서 소설 전집을 구매했다. (내 마음의 양식이 될 거라는 합리화를 되새겼다!) 책을 샀더니 쿠폰을 찍어 주셨는데, 그 이름이 참 귀엽다. 도토리 카드. 책 구매 1만 원 당 도장 1개씩 찍어주고, 도토리 도장 10개를 모으면 특별한 굿즈 선물, 20개를 모으면 책 처방 프로그램 1회 무료이용권이 제공된다고 한다. 나의 도토리 카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위치: 신촌역에서 동교동 삼거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창천동 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직진, 쭉 걸어가다가 오른쪽 건너편에 산울림소극장이 보인다면 오르막으로 좌회전한다. (밑으로 빠지는 길로 가면 안 된다!) 좌회전 후 걷자마자 어딘가 클래식한 이발소를 지난다면 바로 입간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취향 저격 point: 뼛속까지 힐링하는 듯한 아로마 향기, 생각보다 아담하고 포근한 분위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참 좋았다. ‘사적인 공간’다운 공간.

 

 

이후북스

내가 이후북스를 찾아간 날은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로 기록될 날, 대통령 탄핵 선고일이었던 3월 10일이다. 라이브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시청하고, 상쾌한 결말(!)에 들뜬 발걸음으로 서점에 갔다. 네이X지도에 기대어 차근차근 찾아갔는데, 결국 한 번 지나치고 다시 돌아와서야 발견했다. 그만큼 골목 분위기에 어우러져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유리로 된 입구의 벽에는 ‘박근혜 탄핵!’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인터넷으로 이전부터 그 포스터가 붙어있었다는 걸 알고 갔지만, 딱 그 날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아 새삼 반가웠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딸랑-’소리와 함께 주인 분의 담담한 인사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공간과 딱 어울리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본격 책 구경을 시작했다. 이후북스에서는 여러 독립 출판물들이 취향을 저격한다. 독립 출판물은 기존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기획, 제작부터 판매까지 관리해 자유롭게 생산해낸 출판물들이다. 그래서인지 기성 출판사들의 책에선 보기 힘든 다양하고 창의적인 책들을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사고 싶었던 출판물은 ‘딴짓 매거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딴짓을 큰 주제로 삼아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냈는데, 딴짓이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우리 사회와 다르게 대놓고 딴짓을 허락하는 이 참신함이 매력적이다. 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미 카드가 ‘텅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눈물을 머금고 수업에 필요한 책 한 권만 샀다. ‘뚱장2’이 되면 바로 달려가 내 책꽂이로 데려와야지.

책을 결제하며 주인 분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서점을 차리게 된 이유를 여쭤봤는데, ‘돈 벌려고요’라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빵 터져 웃다가, 이내 다시 말씀해주신 이야기는 이렇다.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 책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아해서 열었어요.” 이 말 그대로 이후북스는 책방 주인 분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그리고 이곳뿐만 아닌 경의선 숲길, 사적인 서점도 마찬가지라고 느낀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취향을 공유하는 장을 만드는 것. 어찌 보면 이 점이 독립 서점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위치: 2호선 신촌역 7번 출구에서 서강대역 방향으로 직진한다. 쭈욱. 계속 직진한다. 경의선 숲길이 보이면 또 직진한다. 머지않아 세븐 일레븐이 보인다면, 우회전하여 직진. 있는 듯 없는 듯한 간판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바로 도착.

*취향 저격 point: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다양한 독립 출판물들, 경의선 숲길과 근접함, 그리고 문 앞에 붙어있는 ‘박근혜 탄핵’. 

 

1 필자가 경의선 책거리의 모습을 보고 임의로 칭한 것. 열차 모양을 닮긴 했지만, 필자 머릿속에는 이 구조물을 지칭할 만한 단어가 컨테이너 박스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2 기자가 새로 만든 단어로 텅장의 응용 버전. ‘뚱뚱한 통장’의 줄임말이며 재정 상황이 여유로울 때 쓰는 단어이다 

 

 

기사 = 김채현 기자(cogus1221@gmail.com)

온라인 편집 = 김건영 기자(1st.kimgun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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