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4 (일)

대학알리

인권·동물권

[알리WEEK 3일차] ‘당신이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성평등센터 상담연구원 김순영 씨 인터뷰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국제학사 3층 끝방에는 성평등센터가 있다. 테이블 두 개와 작은 화분, 은은한 티백의 향기가 있는 곳이다. 상담연구원 김순영 씨는 상담내용은 누구에게도 말해 줄 수 없지만,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괜찮다며 기자들의 방문을 환영했다. 상담연구원이 가진 고충, 성평등센터의 현실, 센터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등 다양한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조곤조곤한 분위기 속에서 김순영 씨는 기자들에게 차를 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Q1.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외대 성평등센터 상담연구원 김순영입니다. 저는 폭력 피해 회복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상담과 사건 관련자 조사, 폭력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2. 연구원님들은 이 일을 하시면서 어떨 때 보람 있으시고, 힘드신지?

  피해자도 성폭력 통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요. 자신을 비난하며 자책하던 피해자가 그 분노와 책임을 행위자에게 돌리고 자신을 위하는 행동을 더 많이 할 때 기쁜 것 같아요. 인식과 행동의 변화가 얼마나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이에요. 또한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작은 실천을 일상에서 해보는 것 등, 누군가의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기쁨이고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Q3. 업무 특성상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클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저의 경우, 다양한 역할(교육, 상담, 조사 등)을 잘 해내는 것에 대한 고민과 전문성을 갖기 위해 꾸준히 시간과 에너지, 경제적인 투자를 하고 있어요. 관련 서적을 읽고, 슈퍼비전* 등의 교육 참여와 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해요. 소진 예방을 위해 글쓰기 치유 상담을 받고 있으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고 있어요.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로는 내담자들에게도 많이 권하는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기, 마음을 안정시키는 음악 듣기와 따뜻한 물로 목욕하기, 좋아하는 프로그램 몰아 보기, 감정 글쓰기, 낙서하기 등이 있어요. 이러한 과정은 제가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일을 계속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 슈퍼비전: 상담을 하면서 개인적, 전문적 어려움이 있을 때 다른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전문가는 상담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상담에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해 함께 논의한다. 이때 상담사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도 동료 슈퍼바이저에게는 내담자가 되어 도움을 받는다. 또, 상담 전문가들의 학회가 있어 함께 공부하고, 책을 나눠 읽으면서 발제하고,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하기도 한다.

 

Q4. 경제적 투자를 한다고 하셨던 말이, 사비를 쓰신다는 말인가요?

  사비를 쓰기도 하고, 일부는 학교에서 보조를 받기도 해요.

 

Q5. 학교에서 지원을 받는다고도 하시지만, 사비를 쓰는 데에서 경제적 부담은 없으신가요?

  상담자로 전문성을 갖기 위해 끊임없는 공부와 경제적인 투자를 합니다. 한 인간을 이해하고 그 심리를 다루는 일은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며,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러한 노력이 누군가의 어려움을 잘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학회 가는 것도 좋아해요. 힘든 만큼 의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 같아요.

 

Q6. 현재 상담원이 서울캠퍼스에 한 분뿐이신데, 혼자 하시면 많이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업무량도 그렇고, 속도를 내서 제가 처리를 해야 되는 것들도 있고, 제한된 시간이 있다는 게 좀 힘든 것 같고. 게다가 역할이 여러 가지가 주어지잖아요? 상담하면서 조사도 하고, 교육도 해야 돼요. 사실 상담을 하다 보면 개인에게 공감하고 이해해야 하는데 조사의 역할은 또 달라요. 객관적인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역할의 혼란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Q7. 원래 상담과 조사를 한명이 하는 건가요? 분리돼야 하는 게 아닌가요?

  분리된다면 좋죠. 분리됐으면 좋겠어요. 상담할 때 어디까지 공감을 해야 하는지. 그 힘듦에 대해 너무 공감해 버리면 내담자가 너무 축 처져 있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Q8. 성폭행이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를 위해서는 어떤 걸 해야 하나요?

  잘 들어주는 거?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은지, 피해자에게 물어보는 거. 자기결정권이 침해된 사건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상담과 의료 지원 법률 지원이 있는데 네가 원하면 내가 같이 가 줄게, 하는 것처럼 지원체계를 안내하고 피해자가 원하면 동행해 주는 게 필요해요.

 

Q9. 종종 피해자의 피해소식을 알고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잖아요? 이게 종종 역효과를 낼 때도 있지 않나요?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 신고하자는 식으로 할 수도 있구요.

  피해자가 ‘이건 나를 도와주는 건데 내가 이걸 계속 거절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하고 고민을 하기도 해요. 사건 처리에 있어서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사건이 흐지부지되기도 하고요. 주변인이 주도성을 갖기 보다는 피해자가 자신의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고, 시간을 갖고 피해자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찾도록 기다리고 그것을 해나가도록 지지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Q10. 관련 사건에 있어서 구성원들간의 연대와 함께하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배경에는 피해자를 향한 낙인이 있잖아요. ‘쟤가 옷을 짧게 입고 가서 그렇지’, 피해를 입었다고 얘기했을 때 ‘참아, 그 정도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거야’라든지. 학내에서 본인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거죠.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고, 가해자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고 그 행위를 고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변화는 개인의 노력과 구성원이 같이 연대해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Q11. 피해자가 자신의 어떤 고민이나 어려움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게 연대하자, 이런 말씀인가요?

  네, 그런데 교육을 해서 한 명이라도 새롭게 알게 된 거를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고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자그마한 실천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작은 기대를 가지고 계속 교육을 해나가는 중입니다.

 

Q12. 이곳을 찾아오는 피해학생들도 제일 어려워했거나 힘들어했던 게 주변의 시선이었나요?

  여기 학생뿐만 아니라 피해를 경험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을 부정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불쾌함을 경험했지만 주변에서 ‘별거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농담인데’라고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이 경험한 게 성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내 경험과 타인의 판단이 불일치할 때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거죠. 그래서 혼란스럽고, 그런 이유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상담을 찾아오는 게 망설여지고 치유와 회복이 늦어지기도 하죠.

 

Q13. 늦게 찾아올수록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게 더 어려워지나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어요.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고, 나아지기로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그런 부담을 아주 오랫동안 짊어졌지만 빨리 회복하는 경우도 있고요.

 

Q14. 상담을 받으러 오기를 망설이는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자신이 경험한 일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할 수 있는 보통의 경험이에요. 그 경험으로 인한 힘듦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첫 걸음은 ‘말하기’예요. 털어 놓을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사는 건 자신을 외롭게 하고 많은 에너지를 쏟게 하죠. 일상을 회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사는데 저희 성평등센터가 함께할게요. 당신이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허예진 기자(adastravvb@gmail.com)

인보근 기자(coriendo9@gmail.com)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