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 신공항 검증위원회가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해 부적격하다는 취지의 검증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국토부가 지난 3월 30일 김해신공항 사업을 5년 만에 공식 백지화했다. 지난 2016년, 세계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프랑스 외부 용역의 자문을 통해 정부가 결정한 정책을 기어코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해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애초에 부산 지역 가덕도 신공항은 문재인 정권의 선거용 내지르기, 10조원짜리 정권 발 매표행위 성격이 다분하다. 지난 5년간 김해신공항 사업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없다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으로 치뤄지는 재보선을 앞두고 손바닥 뒤집듯, 통나무 굴리듯 백년대계 정부 정책을 바꾼 뒤 일방 추진하고 있다. 가덕 신공항을 정권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자신들의 귀책으로 치르는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어떻게든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정부 여당이 밀리게 된다면 문재인 정부 임기 말 가혹한 레임덕의 신호탄이 될 것이고, 정권 연장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또 민심의 쓰나미가 자기 자신들에게 들이닥치는 것은 뻔하다. 이미 부산 민심
애도할만한 존재, 친밀한 존재를 만들어내는 미디어의 화법 일전에 친구와 한 종편 예능프로그램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예능 프로그램이 너무나도 재미있기 때문에 더 무섭다고 고백했다. 남성연대와 서열문화가 눈에 뻔히 보인다. 훼손과 무모함, 그 안에 숨겨진 폭력을 남성성으로 애써 감춰 포장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술자리 모습을 재밌게 풀어내고 동의에 근거하지 않은 일상의 폭력들을 평범하고 때로는 재밌기까지 한 상황으로 풀어내는 그 화법에 익숙해진다. 그들이 따르고 있는 질서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소해 보이는 것은 사소하기에 더 위험하다. 비판과 경계가 아니라 습관과 익숙함의 옷을 입고 있기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런 영향이 있기는 했는지 따질 틈을 주지 않는다. 지난달 1일 한겨레 신문에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 선생의 칼럼이 올라왔다. ‘내 슬픔은 누구에게 등을 보이고 누구의 얼굴을 바라보나’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모 기업가의 죽음은 온종일 포털과 지면을 달굴 정도로, 해석될만한 죽음으로 애도 되었다. 그의 서사는 많은 사람의 관심과 눈물 속에서 영광된 모습으로
지난 6월 26일, 혼란스러웠던 1학기가 우여곡절 끝에 종강했다. 지속되는 코로나 사태로 대면 강의를 할 수 없게 된 대학생과 학교는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야했다. 학생들은 작은 화면을 통해 가르침을 받아야 했고, 교수들은 작은 화면 속에서 가르침을 주어야 했다. 그러나 스마트캠퍼스 서버 과부하, 일부 교수들의 그릇된 행태 등으로 인해 수업의 질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됐다. 더군다나 수업 평가 방식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한 학생들의 분노는 지속됐다. 학교 시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등록금의 일부 반환조차 불가하다는 현실은 좌절감까지 느끼게 했다. 총학생회와 학생들 간 신뢰까지 무너지면서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커져갔다. 돈을 지불하고 배움의 시간을 갖는 학생들의 분노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림알리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에게 관용의 자세를 바라는 입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림대학교 학생들의 분노는 어떻게 자라났는가. 그간의 상황들을 살펴봤다. 학기 초 스마트캠퍼스 접속 오류로 인해 학생들은 노트북을 계속 들여다봐야했다. 강의 재생은 물론 과제 제출까지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불편함을 감
학생들이 원하는 총학생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매년 이루어지는 선거마다 갑론을박이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복지’에, 누군가는 ‘교육’에 신경 써주기를 바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학교 일에 관심이 없다’며 그저 취업 관련 공약에 집중해주기를 바란다. 대학 사회란 변화무쌍한 사회에 나가기 전 대학생으로서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연습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들이닥치는 과제와 팀플 전쟁, 취업 준비에 허덕이며 바쁜 탓에 막상 ‘한림대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심 갖기 어렵다. 이런 불가피한 한계 속에서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할까. 定義 ;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 또는 그 뜻. ‘사학비리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상지대의 학생들은 학교에 대항해 투쟁했던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아 얼마 전 영화 ‘졸업’을 개봉했다.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박주환 씨는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과의 인터뷰에서 “총학생회의 역할은 매년 바뀌어왔다고 생각한다. (총학생회가)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화를 위해서 되게 많이 활동했다. 근데 그런 사회적인 민주화가 실현됐다”며 “이제는 내가 속한 곳의 민주주의, 삶의 민주
법학관에서 사회과학관으로 가는 길목에 걸린 '박철해임 규탄' 현수막. 얼마 전 외대에 촬영을 온와썹맨도 이 현수막을 보고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사진 - 외대알리) 3월 11일 서울캠퍼스 제52대 총학생회 ‘푸름’ (이하 총학생회)은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임용 철회’ 성명문을 게시하고, 임용을 철회하지 않은 김인철 총장과 학교 본부를 비판하는현수막을캠퍼스 내에 걸었습니다. 총학생회는 성명서에서 “박철 전 총장을 명예교수직에서 해임하라”는 요구와 함께 2016년 7월 박철 명예교수 임명을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를 진행했던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자들에게 내린 징계에 대해 사과하라”는 촉구안을 작성했습니다. 지난 11일 총학생회가 게시한 '박철 명예교수 해임 촉구 성명문(좌)/ 성명문에 대한 김인철 총장의 서신(우) (출처 - '푸름'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이틀 뒤인 3월 13일, 김인철 총장은 성명서에 대한 답변 형식의 서신을 총학생회에 전달했습니다. 김인철 총장은 서신에서 ‘2016년 총장실 점거 당시 징계를 받은 학생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사과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해임에 대해…
나는 2016년, 11월의 감동을 기억한다. 넘실대던 촛불의 물결 속에서 함께 휘날리던 우리 대학 깃발들을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 학생회란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학생 개개인을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빛’이 되도록 만드는 곳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학생들에게 학생회는 친숙하지 않은 단체가 되어버렸다. 학생회 임원 사이에서는 학우들이 학내 이슈나 연대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비판하는 소위 ‘학우 개새끼론’이 만연해있다. 반면에 일반학우들도 학생회를 믿지 못한다. ‘에브리타임’이나 ‘대나무숲’에서는 “학생회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성토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학생회비 납부율이 줄어드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학우들이 학생자치에 실망하고 관심을 거두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현실의 벽 앞에 학생 자치는 사치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학생회란 무엇인가를 자문하는 까닭은 아직 나에게 학생회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회란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는 그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 학생회의 사전적 정의는 ‘학생이 주체가 되어 어떤 일을 의논하여 결정하고 실행하는 조직이나 모임’이다. 이 말에 학생
누군가에겐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소들은 때론 여성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과연 이러한 현실이 정상적인 상황일까? 가해자들의 잘못된 범죄에 여성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조심해야하는 이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술집에서 일어난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를 만났다. 그녀는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막상 범죄의 피해자가 되자,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며 무조건 그런 범죄를 당하기 전에 스스로 조심해야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된 이후의 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는 말과 함께 스스로 조심해야한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참혹하고 씁쓸해졌다. 그녀의 입에서 씁쓸한 말이 나오도록 만든 것은 사회이다. 범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임에도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고 범죄의 책임과 무게는 오롯이 피해자에게 전가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책임의 무게 때문에 피해자는 점점 외부와 단절하며 동굴 속으로 숨는다. 무엇이 피해자가 고통 받는 아이러니를 만들었을까? 첫 번째는 ‘낮은 형량’이다. 2012년 9월 21일 조선일보의 ‘우리나라와 각국의 성범죄 처벌법’ 인포그래픽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전한 논의의 장 성공회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 캡처. 9월 8일 토요일, 에브리타임과 페이스북 페이지 성공회대학교 대나무숲은 사회융합자율학부 단체 채팅방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몇몇 학우가 ‘사회융합자율학부 18 수다방’에서 인천퀴어문화축제를 언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이었다. 찬성, 반대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더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논의는 원점에서 멀어졌다. 단톡방에서 어떤 얘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어느 순간 의견이 다른 이들 사이의 조롱과 인신공격으로 끝났다. 현재 진행 중인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인문학부 비상대책위원회 사건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진영과 상관없이, 문제가 생겼을 때 타인에게 조롱과 혐오를 일삼는 여론은 항상 있었다. 이유는 다양하다. 발언 자체가 문제여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려 하지 않아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오프라인에서 이야기하면 곤란해질까봐, 화풀이의 대상이 필요해서 등. 어떤 이유든 힐난은 문제의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로의 이해를 흐리게 하고, 학생사회의 결속력을 깨뜨리는 암적인 요소일 뿐이다. 이 모든 과정은 온라인과 익명을 통해 이루어
▲ 2015년 전체학생총회를 위해 범정관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 (사진 = 형재영) 수업이 끝나면 범정관 앞 분수대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버스 몇 대가 사람으로 가득 찬 정류장을 통과하면 그 빈 공간에는 오롯이 두 개의 동상만이 차가운 바람을 견디며 우두커니 서 있다. 5년 전 나의 첫 전체학생총회는 이곳에서 열렸다.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 비로소 열 것이다.” 전체학생총회가 열리지 않은 까닭을 묻자 총학생회장은 위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뭔가 중대한 이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체학생총회가 열릴 정도로 중요한 안건은 무엇인가? ‘성추행과 폭언을 일삼은 교수들이 복귀하는 것’도, ‘24시 이후 혜당관을 폐쇄하는 것’도, ‘총장직선제’도, ‘대학 구조조정’도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도대체 중요한 안건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전체학생총회는 단순히 학교본부와 협상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의결기구가 아니다. 학우들과 한 공간에서 발을 맞대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의 장’이며 학우들이 학내 문제의 주체로 설 수 있는 ‘학습의 장’이다. 총장간담회를 통해 협의한다는 이유
▲ 2016년 전체학생총회가 진행중인 모습. (사진=차종관) [오피니언] 전체학생총회는 왜 열리지 않았을까?학교가 낯설다. OT는 교내에서 점잖이 치렀다. 이제 혜당관의 밤엔 달빛만 출입할 수 있으며 축제엔 부푼 가슴을 적셔줄 약주가 없다. 심지어 폭언과 성추행을 일삼던 교수들이 복귀했다. 모두 지난학기에 일어난 문제들이다. 그리고 학생회도 낯설다. 이 문제들을 두고도 전체학생총회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학생총회(이하 총회)는 우리학교 학생회의 가장 큰 기구다. 학우들이 모여 학내의 중대한 사안을 두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거나 안건을 결정하는 자리다. 총회에서 의결된 안건은 학우들의 공식입장으로서, 학교 본부와 대화할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렇다면 총회는 열려야 하지 않았을까? 취재진은 총회가 열리지 않은 까닭을 총학생회장에게 물었다. 그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관행을 깨고자 한다. 그 동안 총회는 3월마다 열리는 연례행사였다. 올라오는 안건들은 중대한 문제를 다루기보다 행사를 장식하는데 그쳤다. 그 결과 총회의 성격은 퇴색되었다. 실제로 3~4년간 총회가 성사되지 않은 점과 학교와 타협이 불가했던 점이 결과를 방증한다. 따라서 시기는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