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8 (일)

대학알리

이화여자대학교

미안합니다. rat xin loi.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소녀상과 피에타

피해자가 받지 않은 ‘사과’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를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국민은 이러한 국가의 행동에 분노를 금치 못했고, 이 합의 의 내용을 일본의 사죄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들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합의’를 발표하기 전에 어떠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어떠한 참여도 하지 못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수요시위가 1,220차(3 월 2일)까지 이어지는 동안 일본 정부에 요구해온 7가지 사항 중 제대로 지켜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피해자가 사과를 받지도 않았는데 합의가 되고 해결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가해자들의 어떤 ‘사과’

일본 정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한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책임을 통감’한다고는 하면서 ‘법적 책임’은 아니라고 한다. 10억 엔을 출연한다고 했지만, 배상금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진상규명이나 역사교과서 기록 교육, 추모사업 등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조치 약속도 없다. 그런데도 양국 정부는 이것을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확인하고,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 및 비판을 자제’한다고 선언했다. 일본 보수 언론도 이를 지속해서 강조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세운 평화비(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가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사과할 때 다시는 사과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사과하는 것이 진정한 사과인가? 일본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배우 이기홍 씨는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Sorry, not sorry.’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아픔을 얻은 사람에게’ 그가 ‘받아들여 줄 때까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꾸준히 전쟁 범죄자들을 구국 용사로 세우며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또한 자민당 사쿠라다 국회의원은 일본군 ‘위안부’가 “직업 매춘부였는데 피해자인 것처럼 하고 있다.”며 망언을 했다. 이는 다른 보수 정치인들도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자 신들의 잘못에 대한 인정도, 후회도 없었다. 피해당사자가 아닌 한국이라는 ‘국가’와 ‘합의’를 체결하는 것으로 피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불가역적인 해결’을 한 것이다.

 

이 ‘합의’는 그나마도 실패다.

이 ‘합의’는 그나마도 실패다.

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대국민담화 발표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가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관련 한일 간 합의와 관련해 "어떤 정부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심지어 포기 까지 했던 어려운 문제"라며 "그런 문제를 최대한의 성의를 갖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상의 합의가 되도록 노력했다, 그런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올바른 용단을 역사가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합의를 지지했다.

이 문제는 애초에 ‘외교적 게임의 사안’도 아니지만, 그 게임에 서마저도 한국은 완벽히 패배했다. 일본은 10억 엔을 제외하고는 잃은 것이 없다. 한국은 자존심, 국민의 신뢰를 잃었음은 물론이고, 피해자들의 존엄성과 인생을 또 한 번 짓밟았다.

이것은 해결이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피해자들은 사과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억 엔으로도, 100억 엔으로도 그들의 인생을 보상할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평생을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 할머님들의 송두리째 망가진 인생을 보상할 수 없다. 열 댓 살의 어리고 빛났던 소녀가 일본과 심지어는 한국이 주는 수모와 고통에 평생을 시름 했고, 몇 배는 더 팬 주름의 할머니가 되었 다. 일본이,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할머님들이 겪었던 공포와 핍박에 대한 마음을 다한 공감과 사과만이 유일하다. 이따위의 ‘합의’가 아니다.

 

일본과 한국, 너무나도 닮았다.

작년, 필자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나갔을 때 해외에서 온 프리랜서 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 기자는 필자와 친구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물으며 한국이 베트남에 저지른 만행에 관해서는 알고 있냐고 물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모인 자리였지만 베트남에서의 사건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 우리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에서 이 문제의 해결에 관해서도 힘쓰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고는 돌아섰다. 그때부터 해외에서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고민하게 됐다. 또 무엇보다 우리가 단순히 ‘우리 국민’이기에 그들의 존엄 회복을 함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 들의 존엄을 주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의 문제 만이 아니다. 한국에 소녀상이 있다면 베트남에는 피에타가 있다. 피에타의 가해자는 대한민국이다. 피해자들은 안중에 없는 이번 한 ·일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는 소위 ‘보수’의 모습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도 일본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 아베가 총리가 되는 일본과 베트남 파병을 한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 한국, 너무나도 닮았다.

글에 들어감에 앞서, 일본과 같이 우리도 이러한 만행을 저질렀으니 우리는 사과를 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보다 베트남 양민 학살에서의 한국군의 만행에 ‘더’ 방점을 두려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이 문제는 한국 / 일본, 베트남 / 한국 의 분리 문제도 아니고, ‘국가’ 문제도 아니다. 피해 당사자들과 가해자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저 우리가 이들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서 함께 기억하고 동감하고, 분노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한국군의 만행 in 베트남

“…우리나라처럼 베트남 사람들도 산으로 나물을 캐거나 나무 열매를 따러 옵니다. 그러면 분대끼리 무전기를 때립니다. 여자 한 명이면 '식사 추진, 식사 추진, 1인분'이라고 하죠. 하하하!"

"남자 한 명이면 뭐라 그러죠?"

"남잔 보고 후 바로 쏩니다. 작전구역에 무단으로 침입했으니까요. 베트콩인 거죠. 하지만 여자는 안 쏘고 기다립니다. 매복지점 바로 앞까지. 그리곤 …."

"덮치죠. 강간합니다. 집단으로 윤간합니다. 그럼 다른 매복조에서 무전을 막 때립니다. '너네만 먹냐. 이쪽으로 배달하지 않으면 우리가 먹으러 간다'고요. 소대장이 있지만, 제지를 안 합니다. 못합니다. 사병들이 더 고참이고 에무식스틴(M-16,총기의 일종)을 가졌잖아요."

"… …"

"식사가 끝나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그냥 쏴 죽입니다. 증거를 없애야 하니까. 중대엔 베트콩을 사살했다 보고하죠.

맨날 있던 일은 아니지만 잊을 수 없어요. 그래서 그 현장에 가서 기도를 하고 싶었어요. 용서해 달라고.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가족에게 할 수 있겠어요. 전우들을 만나도 할 수 없죠. 배척당합니다. 저도 고엽제 회원이지만 거기선 이런 이야긴 안 해요."

"여자는 '한 끼' 식사, 남자는 바로 쏴 죽였다" 2015.04.17, 프레시안,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박근혜 대통령이 호찌민 묘를 찾아간 이유

베트남 전쟁 기간 중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은 80여 건, 약 9,000여 명의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당한 것으로 집계된다. 그들 은 대부분 노인과 여성과 아이였고, 무자비하게 폭행, 살상, 윤간 당했다. 가장 격렬했던 학살이 일어났던 고자이 증오비에는 다음 과 같이 기록한다.

“1966년 2월 26일 고자이 마을에서 남조선(한국군) 병사 들이 모두 380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는데 그 야만 적인 형식은 다음과 같았다. 여성들을 강간하고 윤간한 후 쏴 죽이고 어린아이들을 산채로 불에 던져 죽이고 방공호 안에 수류탄을 던져 넣어서 죽이고 그런 뒤에 짚을 덮어서 불태우는 것 같은 야만적인 방식의 양민 학살이 일어났다.”

우리는 약자에게 그 누구보다 강했다. 힘없는 아이들을 죽였고, 여성을 ‘식사’로 불렀고, 자신의 욕정을 채웠고, 죽였다. 당시 피해자들은 ‘한국군보다는 차라리 미군에게 잡히는 게 낫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러한 만행의 베트남 파병을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국위 선양의 장'으로 기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우리 나라 역사상 처음 행해진 전국 규모의 대규모 해외 연수"라는 표현까지 썼다. 해외 연수에 가서 무고한 어린아이와 여성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온 것이다. 퍽 자랑스럽다.

 

한국의 행보를 향한 해외의 시선

지난해 5월 26일 Chris Grasso는 이그재미너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생략) The above report is only one of many accounts of South Korea’s atrocities towards the Vietnamese peo­ple during the war. Elderly survivors have recounted their own horror stories of the sex slavery and massacres they went through at that time. In 2001, recognizing the ve­racity of the reports, then South Korean President Kim Dae-jung met with Vietnam President Tran Duc Luong and offered a direct apology for South Korea’s acts on the Vietnamese people during the war.

(생략) 위에 언급한 기사는 전시에 베트남인들을 상대로 한국이 저지른 수많은 잔학행위 중 하나를 말해줄 뿐이다. 나이든 생존자들은 당시에 자신들이 겪었던 성노예와 학살에 대한 두려운 경험담을 말해왔다. 2001년 이러한 보고가 사실임을 인식하고 한국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베트남의 트란 둑 루옹 국가주석을 만나 전시 베트남인에 대한 한국의 행위에 대해 직접적인 사과를 했다.

But the day after Kim’s message of apology, Park Ge­in-hye, then deputy leader of the Grand National Party, the opposition party at the time, criticized Kim’s state­ment, saying it “drove a stake through the honor of South Korea.” Looking back, it was an omen of things to come if she should lead the country someday.

하지만 김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던 다음날 당시 야당 한나라당의 박근혜 부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의 성명을 비판하면서 “한국의 명예에 말뚝을 박았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이것은 그녀가 언젠가 한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일이 있을지를 보여준 조짐이었다.

2013년 9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은 호찌민 묘소에 헌화했고, 국내 언론은 아버지의 악연을 딸이 풀었다며 긍정적인 보도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베트남 파병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고, 한 국군의 민간인 학살 지역엔 방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 과를 할 때 필요한 것은 호찌민 전 주석의 묘소 헌화가 아니다. 베트남 파병에서의 문제에 대한 언급과 인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리고 피해자들을 만나 진심으로 지속해서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 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4번째 헌화이지만 아직 대한민국은 우리들의 잘못을 인 정하고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언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잘못을 모르고 있고, 그래서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몰랐다는 것은 더는 변명이 될 수 없다. 반성하고, 사과하고, 가르치고, 지속해서 반성하여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평화의 상징, 소녀상과 피에타

일본의 침략전쟁에서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를 상징하는 것이 소녀상이라면 베트남 피에타는 한국군의 양민 학살의 피해자인 베트남 엄마와 아기를 상징한다. 소녀상의 작가 김서경, 김운성 씨는 베트남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사과하기 위해 ‘베트남 피에타’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일·베 삼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 양민 학살 문제의 진정한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심지어는 방해한다. 일본은 2011년 소녀상 설치 때부터 중단요청을 했었고, 이제 한국 정부 멋대로 소녀상을 ‘적절히 해결한다’고 합의했다. 한국과 베트남에 설치될 예정인 피에타에 대해서도 양국 정부는 부정적이다. 경제적, 외교적 부분에 대한 불편함이라고 한다. 국가 전 체, 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피해자 개인들의 아픔은 무시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 폭력을 좌시할 것인가?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베트남 양민 학살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베트남 파병만을 무용담으로 말하고, 이를 통해 외화벌이 했다고 ‘국가’를 위한 국민의 희생정신을 말한다.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그들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의 역사의식이 일본 정부와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베트남 학살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러한 행동을 한 개인과 전범, 그리고 이들의 행동을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미화하고, 영웅화 하는 일본과 한국에 있다. 이를 직시할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 아갈 수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자신들만의 영웅을 만 드는 것이 아닌 세계의 평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의식을 가진 국가가 될 수 있고, 이것만이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전쟁 후에 베트남이 세운 60여 개의 한국군 증오비는 도시개발로 철거되면서 이제 약 3곳만 남았다. 이제는 우리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으로 남은 증오비를 철거할 차례다. 잊지 말자.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고 문제의식을 느끼고 함께 문제시할 때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베트남 양민 학살 피해자들을 위로할 수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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