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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피해자다움이라는 궤변

 

 

 불행한 인간은 스스로의 불행을 말할 자격 없다. 불행은 자기 의도와 무관하게 어쩌다보니 발언되거나 일각부터 조심스럽게 드러날 때 가치를 획득한다. 불행한 인간은 사람들에게 동정의 대상으로 회자될 때 비로소 ‘불행한 인간’이 된다. 동시에 불행한 인간은 표정과 동작으로 스스로의 불행함을 전시해야 한다. 그것들로 불행함의 정도가 가름된다. 불행한 인간의 명랑한 표정은 자기 처지에 맞지 않다.

 

 사법부는 1심 판결을 뒤엎고 안희정 전 도지사의 유죄를 판명했다. 사법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위계가 있다고 해석했다. 가해자는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이다. 피해자는 그의 업무에 관여하는 수행비서다. 이 구도에서 누가 권력을 갖고 있는지는 자명하다. 권력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만큼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기 의지와 다른 행위를 하도록 종용할 수 있었다. 그만큼의 권위가 그에게 분명 있었다. 폭력 이후에 피해자가 가해자와 웃고 메신저를 주고받고 수행비서의 임무를 지속한 건 위계에 굴종해서다. 위계를 거부할 때 수반될 상황이 두려워서다.

 

 피해자는 피해를 신고 했다. 더 이상 권력에 굴복할 수 없어 그랬다고 말했다. 거기에 어떤 이는 왜 이제 와서 신고하냐고 묻는다. 당신 말처럼 지속적 성폭력이 있었다면 왜 가해자와 웃고 떠들 수 있었냐고 추궁한다.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했다는 논리로 상황을 재단하는 셈이다. 

 

 자기보다 높은 위계의 인간을 고발하는 행위엔 두려움이 동반된다. 공포는 이성이나 논리같은 것들을 무색케 한다. 바뀌는 게 있을지, 고발하더라도 가해자는 권력을 동원할 테고 그럼 도리어 내게 피해가 오는 건 아닌지, 만약 정말 온다면 피해의 수위는 어느 정도인지. 당신이 왜 이제냐며 추궁할 때 피해자는 그것들을 염려했다. 피해자의 심정에 이입하는 시도가 비이성적이라면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논리로 가해자를 변호하는 건 과연 얼마나 이성적인가.

 

 

 안희정은 1심 공판 최후 진술 때 “어떻게 지위가 타인의 인권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무죄를 확신한다는 듯이 말했다. 여타 준비된 진술은 없었다. (정희진, <가해자가 역사에 남는 방법>, 19.02.19, 경향신문) 그들은 위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위계나 권력은 공기다. 권력은 존재만으로 행사되는 에너지다. 구체적 언어와 행동이 동반되지 않아도 ‘을’은 알아서 ‘갑’의 눈치를 보고 ‘갑’도 그것을 안다. 당신과 내가 매일 경험하는 일상 아닌지.

 

 매일 고통에 시달리며 손목 긋는 상상을 하는 이가 진정 피해자다운 피해자인가. 우악스럽게 울고 삶의 그늘을 증명해야 피해자로서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고 피해자를 규정하는 태도다. 성범죄 피해자가 떳떳하거나 의젓하지 못할 거란 건 무지한 편견 이다. 그것엔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논리가 내포돼 있다. 가해자인 안희정도 가해자 주제에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말했다.

 

 안희정 판결 이후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 여성에게 더 단호하게 거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발언된다. 즉 여성이 성적자기결정권을 제때 사용하지 못하고 뒤늦게 침해당했다고 언급하는 건 자기 인권을 지키는 적절한 방편이 아니라는 맥락이다.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고통에 맞서 싸울 때 자기 인격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된 자격이나 권리를 통칭하는데 거기 시점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김지은 씨를 비롯한 수많은 피해자들은 이미 신고함으로써 자기 권리를 행사했다. 자기 인권을 지키려 노력했다. 왜 이제 와서 란 추궁이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염려하는 공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