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일)

대학알리

인권·동물권

N번방 너머 에브리타임

*N번방이 담고 있는 한국사회의 단면

 N번방, 박사방 사건을 접한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변의 반응도 별다르지 않았다. 기사를 접한 뒤 밤잠을 설쳤다는 친구, 그냥 눈물이 났다는 친구들은 어느 때보다 우울한 반응을 내보였다. 미성년자에게 가해진 가혹한 성폭력, oo녀로 호명되며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성 착취 불법 촬영물… 이것을 몇몇 삐뚤어진 성 관념을 가진 이들의 일탈 행위로만 바라볼 수 있는가. 현재 주요 운영자들에 대한 구속, 신상 공개가 연이어 이어지고 있고 ‘N번방 사건 재발 방지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N번방 관련한 법안들, 시민들의 큰 관심은 사회의 변화가 드디어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디어가 사건을 조명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를 다룸에 있어 아직 미숙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박사방의 ‘박사’로 알려진 조주빈의 신상 공개를 시작으로, 그의 평소 성품과 정치적 성향 등을 조명하며 '조주빈 자서전’ 대리작성을 시작했다. 가해자 개인의 서사에 주목하게 됨으로써 피해자의 언어는 소멸했다. 언론은 가해자가 20대 남성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으며, 그의 이면에는 끔찍한 범죄자의 영혼이 있는 것처럼 프레이밍을 시도했다. 언론은 이중적 면모를 보인 가해자를 엄벌하라는 여론을 형성하여 디지털 성범죄 카르텔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논의의 뒷순위로 밀려나게 했다.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SNS 플랫폼을 이용해 여성들의 성 착취 영상을 금전으로 거래, 유포한 성범죄 사건이다. 고수익 아르바이트, 사이버 성범죄 수사대 등을 가칭하여 피해자의 신상을 알아낸 후, 이를 빌미로 협박을 통해 성 착취 영상을 찍게 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피해자 중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N번방은 구조적・젠더 문제이다. 대학생들의 의견은? 에브리타임을 들여다 봤다.

 N번방은 명백하게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이므로 썩은 몇 개의 줄기만을 자른다고 해결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여성 혐오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각은 여성을 거래 가능한 ‘성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죄책감 없이 유통하는 행위는 전통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된 문화이다. 다만 이것이 가상화폐, 채팅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기술과의 결합으로 신종범죄처럼 보일 뿐이다. 이러한 젠더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보도와 여론을 살펴보던 중, 대학생들은 이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는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의 접속으로 이어졌는데, 에브리타임의 공론을 조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에타는 400여 개에 달하는 대학 캠퍼스에 개설되어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작성되는 게시글의 수, 주제가 전환되는 속도가 커뮤니티의 활동성을 보여준다. 규모를 고려했을 때, 에타가 대학생들의 의견을 교환하는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는 외대의 경우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특히 외대는 스누 라이프(서울대), 고파스(고려대), 마이피누(부산대) 등 교내 커뮤니티가 부재한 조건을 가지고 있어 에브리타임의 활용성이 더 높아진다. 따라서 외대 에브리타임을 통해 N번방 관련 외대생들의 일부 여론을 살펴보고자 했다.

 

에브리타임에서 본 N번방

 ‘N번방’, ‘일탈계’ 등의 키워드로 외대 에타의 게시글과 댓글을 살펴본 결과,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유형으로 게시글을 분류할 수 있었다. 본인의 논지 전개를 통한 토론의 장 개설, 청원링크 공유, 2차 가해, 사건에 대한 단순 반응 등이다. (아래 글들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에브리타임의 게시글, 댓글을 재구성했다.)

 

제목: N번방 가해자 처벌 및 신상공개

“http;//~”

제목: 갓갓은 아직 안잡혔어…

“N번방 이렇게 묻히면 버닝썬처럼, 다크웹처럼, 못잡는다고 경찰에게 묵살된 몰카처럼 된다구…”

 

 가장 많은 유형은 N번방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국회 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글과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말하는 단순한 반응 글이었다.

 

제목: N번방 가지고 남녀가 싸우는 걸 보고 든 생각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남자들의 범죄가 만연한 건 분명한 사실 …(생략)

일부 여자들의 과도한 피해망상(남자는 잠재적 성범죄자)이 싫지만 이해는 간다

올바른 방향으로 성관념 개발할 필요가 … (생략)

여러분의 의견을 말해주세요.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에타는 토론의 장을 여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논지를 통해 ‘N번방 사건’에 대한 주장을 제시했고, 에타 사용자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언급했다. 이 게시글에는 56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활발한 반응을 관찰할 수 있었다.

 

“본인이 글 좀 쓴다고 저렇게 써질러놓은 여성위주의 글은 보자마자 구역질이 난다.”

 

 N번방 문제를 젠더 문제로 치환하는 것에 대해 피로감, 거부감을 느낀다는 게시글과 댓글도 상당수였다. 여성주의적인 관점을 취하는 글에 ‘구역질’이 난다는 공격적 반응도 있었다.

 

“해킹당해서 유출됐다는 말은 하지 말자 애초에 돈받으려고 올린거잖아?”

 

 가장 눈에 띈 것은 2차가해적인 댓글이었다.  ‘본인 나체를 왜 인터넷에 올리고 타인에게 보여주냐’, ‘일탈계 운영하는 XX도 다 조졌으면 좋겠다.’ 등 논점을 빗나갔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문제시하는 표현도 다수였다.

 

 에브리타임에서 벌어지는 2차 가해적 게시물은 비단 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달 7일 대학 내 페미니즘 모임들이 에브리타임 본사 앞에 모여 시위를 진행했다. 2차 피해를 담고 있는 게시물에 대한 어떠한 제재도 없는 플랫폼을 고발하며, 윤리 규정을 마련하라는 것이 핵심 주장이었다.

 

 외대 에타에서도 2차 가해 발언이 피해자에게 가하는 폭력성, ‘순수한’ 피해자라는 잘못된 성 관념을 생산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잘못은 삭제된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최소한의 플랫폼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에타의 신고처리 시스템의 경우, ‘이용자에게 신고를 받을 수 있는 게시물을 작성해서는 안됩니다.’, ‘신고 누적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어떠한 경우에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등의 표현으로 플랫폼의 책임을 이용자에게 전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에브리타임에 대한 우려는 N번방 이후에도

 사실, 에타의 위험성에 대한 담론은 이번 N번방 사건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N번방 이전, 에타에서는 주로 여성 혐오, 캠퍼스 비하, 성 소수자 혐오, 지역 차별 등 각종 혐오의 언어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유통되고 있었다. 플랫폼의 무책임한 제재로 무한정 넓어진 공간에는 공론보다 타인을 공격하는 사견이 가득하다.

 

 물론 에타가 모든 대학생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외대와 같이, 활발한 자체 커뮤니티가 없는 환경에서,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에타’를 배제하고 여론을 말하기는 어렵다. ‘반향실 효과’는 정보를 특정 커뮤니티에서 지속적해서 접한 후, 기존의 신념이 확신을 갖고 강화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에타에서 강화된 특정 견해, 논리가 일상의 대화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커뮤니티의 글 하나가 우리 공동체의 공론을 흐리는 과정은 차츰 진행되고 있다.

 

 N번방 사건에서 드러난 언론, 에타의 성 인지 감수성은 소통의 공간을 폐허로 만들고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다. 명백한 젠더 문제임에도 에타의 일부 사용자는 여성 혐오적 시선을 통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기성 언론과 같은 반응을 내비쳤다. 특히 2차 가해적인 댓글은 피해자의 상처를 지속시키는 범죄에 가깝다. 이러한 게시글과 댓글에 대해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은 플랫폼 ‘에브리타임’의 잘못도 명백하다. 모 대학의 커뮤니티에서 공유된 하나의 게시글이지만, 이를 접함으로써 축소되는 에타와 학내의 담론은 대학사회를 더 좁게 만들 것이다. 좁아진 소통의 공간에서 폐허가 된 대학 공동체, 상처받은 소수자와 피해자가 보인다. ‘에타’와 사용자들이 위험성을 깨닫고 뒤를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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