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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언론 그리고 대학알리] 언론과 대학알리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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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식 경희대 문과대 학생회장 인터뷰 2편

"낭만화된 시선은 시혜적 관점에 불과”

"대학생 아닌 청년, 대학 밖의 이야기도 해줬으면"

(1편에 이어서)

 

대학사회가 공정, 등록금 반환 문제로 뜨겁다. 그러나 오고 가는 주장은 때로 공허하게 느껴진다. 철저하게 가시화된 존재의 목소리만이 남아있는 토론의 장은 기존의 문법만을 답습하기 때문이다. 서울, 수도권 대학생의 공정만이 공정으로 인정받고 대학은 사회와는 분리된 고귀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쏟아지는 수많은 논의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전제는 무엇인가? 대학과 사회는 동떨어져 있는가? 대학과 사회와의 불가분함을 지적해야 하는 언론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기성언론의 목소리를 넘어 대학알리는 사회의 어떤 측면을 담아야 하는가? 대학과  대학언론, 그리고 기성 언론의 시각을 넘어 대학알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학생회장 최재식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3. 언론과 대학알리

“고귀한 노동자? 낭만화된 시선은 시혜적 관점에 불과”

 

Q. 언론이 대학생에게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A. 우선 대학생이라는 타겟을 설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론은 특수 이전에 보편을 말해야 하고 특수를 보편이 인정하게 해야하지 특수가 보편을 과대대표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너무나 자기들의 정파적 입장에 맞는 쪽에 스피커를 키워줬다. 현실적으로 나쁘고 좋고를 떠나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조선일보가 보수고 경향이 진보인건 상관 없는데, 예를 들어 그 논조를 위해 특수가 보편을 과대대표하게 만든다는게 문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서 상위 명문대 청년만 청년인 것처럼 공정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성화고 나와서 바로 취직한 내 또래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 의미 없다. 그 사람들은 여기에 관심가질 틈조차 없다. 관심 가져도 효용도 없고. 

 

근데 언론이 말하는 공정, 그 공정에 부합하는 청년이 몇이나 되는가? 100 있으면 10도 안되는 사람들이 100을 대표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 안되는거다. 옳지 않고. 근데 이런 상황은 있다.. 100이 1을 억압할 때 1을 보호하기 위해 1의 목소리를 키워주는 역할을 언론이 할 수 있다. 성소수자, 노동자, 빈민,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고 그들의 말을 대신해야 한다. 근데 그건 그들이 과소대표되기 때문이고 그들이 대표되지 않으면 그 존재가 말살되기 때문인데, 명문대 다니는 사람들이 그런가? 

 

언론은 대학생에게 어떤 역할을 담당하면 안된다. 대학알리도 어느 정도 이런 문제의식이 있는 것 같긴하다. 아쉬운건 대학생 언론이다보니 대학생 객관화가 안된다는거. 대학생 언론에서 대학생 목소리를 대변하는게 맞긴 한데 차치하고, 일반론으로 가면 언론은 대학생에 대해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서는 안된다. 언론은 일부 대학생을 과대대표된 특수의 지위에서 끌어내려서 보편 속의 특수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보편이 대학생이라는 특수를 억압하는 경우 그 억압에 맞서서만 목소리를 대변할 것이지, 지금처럼, 명문대 대학생만 대학생으로 취급하면서 과대대표 시킬거면 언론은 대학생에게 어떤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없다. 

 

Q. 알리/언론이 정치적 의견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가져야하지만 그 논조에 보편과 특수의 조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에 떳떳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견을 숨기려 하지말고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풍부한 사례로 확인시켜줘야 한다. 대학알리가 정치적 의견을 가지려면, 사회 전반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해보셔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폭이 넓은 것부터 한다기보다는 한 두 근거지에서 부터라도 시작을 해보는 것이 어떨지. 산발적인 이슈에 집중하다보면 언론과 독자 모두 지치기 마련이니 일관된 논조 하에서 여러 문제들을 그 논조에서 비판하고 옹호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읽을만한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대학알리 기사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면?

A. 대학 언론으로서 대학생 당사자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학”언론이라는 그런 느낌에 얽매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학 알리도 언론이다. 근데 너무 대학 문제만 이야기해야한다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 대학, 학보사 등 자기 관점에서 시작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고 지금 당장 그게 최선인 것도 알지만 나중에 갔을 때 이게 발목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Q. 대학알리에서 전문성이 드러나는 분야

A.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대학 언론 기자로서의 소회를 밝힐 때 가장 전문성이 있다고 본다. 사실 다른 문제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룰 때, 내가 본 한에서는 매끄럽게 풀리진 못한 것 같다. 외대알리 잡지도 그렇고 사이트 봤을 때도 그렇고 본인들의 이야기를 할 때는 굉장히 읽을만한 글이다. 예시를 들면 지방 학보사에 대한 기사가 있었는데 이런 건 굉장히 괜찮았다. 

 

근데 노동은 비싸야 한다는 프로젝트를 읽었다. 이걸 보면 그래서 노동이 뭔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 기자분도 노동을 해봤겠지만, 그 노동의 무게감이 과연 이 사람들의 노동의 무게에 부합하는가?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못하지 않는가?. 사람은 소중하고 노동은 고귀하다. 그걸 누가 모르나. 너무 공허하지 않나? 나는 이런 기사를 이미 너무 많이 봤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학생은 사회, 비대학생, 예를 들어 구의역에서 사망한 김군이나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과 다르다, 이 인식에서 출발한다.  대학생들이 실제 투쟁 현장을 경험했을 때 투쟁 당사자들을 동지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시혜적 대상으로 바라보느냐라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여기서 본 기사들을 보면 숫자를 나열하고 당연히 해야될 말을 한다. 틀린게 없다. 근데 아까 본 지방 학보사 기사와 다른 느낌이다. 호흡이 없다는 느낌, 살아있지 않고 죽어있는 느낌? 

 

Q. 호흡이라는 구체성의 부재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A. 이 기자분이 하다 못해 노동절 집회같은 현장에 갔었는지, 노동자들이 무슨 요구를 하는지 봤는지 잘 모르겠다. 참고문헌도 있는데, 참고문헌 정리도 중요하다. 근데 과연 참고문헌에 있는 노동자가 진짜 노동자일까? 현장에서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는 있다. 근데 다른 깊이를 갖게 된다. 우선 경험을 말하자면 내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이것 역시 시혜적인 관점일 수 있다. 그래서 나로서는 부끄럽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면서 시작하겠다. 시위 현장이나 작업장 가보면 그 사람들이 막 고귀해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그냥 사람이다. 동네 아저씨고 아줌마고 동네 침 뱉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근데 그 사람들이 고귀하다, 소중하다고 이야기할 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 동네 아저씨, 아줌마를 보지 않는다. “노동자는 이래야 한다”, “살아 실천하는 노동자는 이래야 된다”라는 상을 그려놓고 사람을 거기에 끼워맞춘다.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안 본다.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이런 대학 언론구성원들이 실제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성을 갖고 일하는게 대부분 아니지 않는가? 보통은 일시적이고 단기성이니까. 그런 경우 기자라는 입장에서 그런 노동자들의 실제 노동 작업장, 투쟁현장에 가서 충격을 많이 받는다. “저 사람들은 내가 생각한 사람이 아닌데?” 이러고 괴리에 빠진다. 그러고 생각을 완전히 반대로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런 느낌, 낌새를 이 기사에서 버릴 수가 없다. 

 

왜 노동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왜 비싸야 하는지, 그냥 사람이 힘드니까가 아니라, 그 사람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먹고 살려면 해야하는게 노동이니까. 우리는 그 이야기를 왜 못하는가?  너무 속물 같나? 저는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은 왜 비싸야 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 일하고 편하게 살려고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배제되서는 안된다는거다.  그래서 연대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언론은  보편에 억압받는 특수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책무가 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먹고 살고 편하게 살고싶다는거다. 그걸 먼저 인정을 하고 그런 다음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다른 문제, 비정규직, 성소수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하지 않겠냐라고 이야기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좋은 노동자의 상은 이거라고 정해놓고 끼워맞추기 식으로 그 사람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랬을 거다. 내가 만약 같이 활동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실제 노동자들 작업장 안 가보고 옆집 아저씨와 다를 게 없다라는걸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몰랐다면 저는 이런 기사를 보고 “아 잘썼다” 그 말 밖에 못했을 것이다. “예쁜 말 썼네. 잘 썼네” 근데 세상은 생각보다 더럽고 아니꼽고 짜증나는 곳이다. 근데 왜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글이라는 곳으로, 기사라는 곳으로 도피하는 걸까. 그런 고민이 든다. 그게 미흡하다고 본다. 리얼리티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다. 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자기가 보고싶은 걸 대상에 투사하면 안된다. 그리고 자기가 보편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특수와 함께 손 잡고 지켜나가는 존재여야한다. 

 

Q. 대학알리가 학내 언론/기성언론과의 차이점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차이점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얘기를 할 때 발생한다. 대학알리의 특징은 네트워크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고 해주셨고 열성적인 기자분들이 있는 것 같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진 여건이 다르다, 한 학교에 국한되어 있는게 아니라 수도권, 비수도권, 서울권 여러 대학 간 네트워킹이 가능하다, 그게 일단 학내언론과의 차이다. 기성언론과의 차이라면, 기성언론은 대학생이 아니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차이점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뱁새가 황새따라가려다가 다리찢어지니, 뱁새는 뱁새만의 길을 걸으면 된다. 대학 알리는 기존 기성 언론들, 기존 학내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지점, 과대대표되지 않은 사회구성원들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 간 네트워크가 있으면 그 네트워크가 시작될 것 같다. 여러 알리가 있다면 그런 현장의 입장을 현장에서,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사람들을 바라본 기사를 써야된다. 그 사람들이 기를 쓰고 주류에 편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알리가 두고 있는 기반이 비주류인건 확실하다. 근데 비주류가 선도 아니지만 악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고 그걸 부각시켜야 할 것 같다. 괜히 기성언론이 잘하는거 따라갈 필요 없다. 그 부분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다. 

 

Q.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알리가 딱 이것만은 지켜줬으면/이뤄줬으면/써줬으면/공론화해줬으면 하는 한 가지는?

A. 맨 처음 했던 이야기다. 서연고 다니는 대학생만 대학생이 아니고 대학생 아닌 청년도 많다는 점. 특성화고 나온 사람, 전문대 나온 사람 이야기, 대학 밖의 이야기도 해줬으면 좋겠다.  인국공에 정규직으로 입사해서 들어간 사람만 자격이 있는게 아니며 사회는 이미 공정하지 않다는 걸. 왜냐, 그 사람에게만 마이크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알리가 마이크가 없는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었으면 좋겠다. 인서울 명문대 대학생만 청년이 아니라 지방대, 전문대, 대학 가지 않은 청년도 청년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해줬으면 좋겠다는 걸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