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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살, 나의 길을 가기로 했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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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0%에 육박합니다. (e나라지표, “취학률 및 진학률(2015~2019)”)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20대 초반의 나이면 ‘대학생’일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깔려있습니다. “어느 대학 다니니?”, “전공이 뭐니?”라는 질문은 실례이기보다 의례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몇 년 사이 페이스북에서는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의 자기소개가 유행과 의무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 역시도 그들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은 증명해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곤한 질문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왜 학교를 그만뒀어?” “무슨 일이야?”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반면 대학생들은 “왜 대학을 다니니?”라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정상’이라는 틀 안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사회에서 다름은 별남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르다’라는 표현엔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기운이 남아있는 듯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별나다’라고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을 대표하는 단어가 ‘대학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흔히들 서로의 생활이 달라지면 할 말이 없어지고 어색한 사이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생활이 서로 달라서 즐거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로 즐거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 J의 이야기

 체대 준비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시작해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예체능 계열의 입시 준비는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너희는 공부 안 하잖아’라고 말하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일주일에 3일은 교과서를 공부하고, 3일은 체대 실기를 준비했다. 둘을 병행한다는 게 참 힘들고 고단했다. 수능이 끝나도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20살의 기쁨을 만끽할 때에도 끊임없이 몸을 단련하고 훈련해야 했다. 남들은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시기라던데. 그때를 생각하면 힘들었던 경험이 먼저 떠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다들 체대 입시를 준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부추겼다. 한번 속아볼까 하며 시작한 운동은 재밌었다. 재능도 있었다. 힘들기로 유명한 예체능 입시 준비를 1년이라는 시간 넘게 버틴 이유다.

 

 하지만 대학에 가지 않았다. 체대 입시 준비를 그만둔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다. 애초에 대학을 졸업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싶었다. 대학 생활은 1년 정도 즐기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평소 내가 그리던 길에 ‘대학’은 없었다.

 

 

 우리는 ‘으레’ 대학을 간다. 그 ‘으레’보단 내가 나를 결정하고 싶었다. 내 미래엔 ‘대학 졸업장’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잘 ‘놀고’ 잘 ‘배우는’ 게 의미 있는 대학 생활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재밌게 ‘놀’ 자신만 있었다. 그렇다면 ‘대학’이라는 게, 4년 동안 엄청난 액수의 돈을 내가면서 다녀야할 곳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으레’ 생각한 것이 있다면, 그건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환상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벚꽃이 흩날리는 그 캠퍼스 말이다. 내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20대 초반의 문화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향유된다. 각종 영화, 연극, 전시에 대한 할인들은 ‘대학교 학생증’을 요구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대학에서 배울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대학에 가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약간의 오기도 섞여 있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 주변에서는 ‘대학을 가야 성공한다’라는 소리들을 했다. 그 소리를 꺾어보고 싶었고, 그건 아직 유효하다.

 

 

 대학을 가지 않은 스무 살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례한 질문들이었다. 여전히, 아직도 가끔 찾아오는 질문들이다. ‘학교 안 다녀? 그럼 뭐해? 뭐 먹고 살래?’ 이제 그 질문들이 익숙할 지경이 되었다. 허허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 남들은 나보다도 더 내 미래를 걱정했다.

 

“내가 알아서 잘 먹고 잘 클 텐데.” 물론 이 말을 직접 내뱉진 않는다.

 

 

 쇼핑몰을 운영하고 싶다. 직접 모델이 되고, 옷을 만들고, 그 옷을 파는 일을 하고 싶다. 어려서부터 옷 입는 걸 좋아했다. 백화점 사장이 꿈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옷을 많이 입어보고 싶어서였다. 백화점을 가득히 채운 그 옷들을 마음껏 입어보고 싶었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래서 내게 대학은 크게 고려될 사항이 아니었다. 지금은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해,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 이것저것 배우고 있다. 꿈과 관련된 알바도 되는 대로 하고 있다. 20살 때부터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았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의 일상은 아르바이트, 그리고 친구와의 약속뿐이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실컷 놀아두자’라는 생각이었다. 대학을 가지 않았다고 놀 자격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21살부터 23.5살까지는 의경 생활을 했다. 제대한 이후에는 쇼핑몰에서 옷을 분류하고 택배 발송을 준비하는 알바를 하는 중이다. “경험이 경력이 되길 바라며”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한 이들의 노력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대학을 나온 이들이 공부 쪽으로 머리가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그것으로’만’ 평가하려 하는 ‘학벌주의, 학력주의’ 세상엔 입장이 다르다. 우리나라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학력주의가 한심하고 애석하다.

 

 만약 누가 내게 왜 대학을 가지 않았냐고 물을 때면, “의대 다닌다고 백 살 넘게 살고, 고졸이라고 일찍 죽고 이런 게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내게 학벌은 살아가는 데 있어 크게 신경 쓰이는 존재는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오래 사는 삶이 꼭 좋은 삶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마다 다 자기만의 때가 있다. 20대 초반에 성공한 사업가가 될 수도 있고, 50~60대가 되어서야 성공한 사람도 있는 것처럼. 너무 성급하게 굴지 않으려 한다. 나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최대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게 좋은 삶이라 생각한다. 살아온 걸 뒤돌아봤을 때 후회가 많지 않은 인생. 그거라면 충분히 훌륭하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선택’에 신중을 가하는 편이다. 최대한 감정에 휘둘리려 하지 않는다. 주위에는 여전히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걱정을 빙자한 핀잔이 들려올 때가 있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같은 말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가면을 쓴다. 소위 말해, “리액션 기계”가 된다. 그들에게 딴지를 걸어봤자 먹힐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날 걱정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상대방을 그렇게 만들었을 테다. 어차피 서로 다른 존재다. 굳이 상대방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서도 타인에게 유연한 사람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조차도 나이를 먹고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처럼 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을 할 수 없다. 각자의 인생과 시간을 존중한다. 그게 맞는 일이다.

 

 타인과 무던한 삶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 무던함을 거부할 때가 있다.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태도를 만날 때다. 이 세상이 어떤 이의 노동은 가치 있는 것으로 또 어떤 이의 노동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때, 그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 세상은 누군가의 노동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그가 없다면 사회가 제 기능을 할 리가 없다.

 

 

 내가 그려가고 있는 이 삶에 당당하다. 동시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환경 역시 존중한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정답이 되지 않길 바란다. 이 인생은 나에게만 정답일 뿐이다.

 

 

 

# 에필로그

 우리는 '으레' 대학 졸업장이 필요해서 대학에 갑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입학은 어렵지만, 졸업은 쉽습니다.  세상은 '좋은' 대학에 나와 '좋은' 직장을 갖고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게 평범한 삶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좋음'의 우연이 4번이나 겹치는 건 행운이 아닐까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누군가가 ‘좋음’을 누린다면 누군가의 '나쁨'도 있을 터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우리의 선택에 '정답과 오답'이라는 이름을 부여합니다.  J의 선택을 별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그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J는 자신의 선택이 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당신이 당신의 선택을 했듯이, 그 역시 그의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요.  그는 누군가의 선택이 오답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J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내내 겸손하고 정중했습니다.

 

 다만 J가 가고 있는 그 길 역시 정답임은 분명합니다.

 

 

 

1편: https://www.univalli.com/news/article.html?no=2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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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진 기자

모순된 제 마음을 결국 당신의 삶과 숨을 보듬어가는 동력으로 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