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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의 '정병러', 이제는 모두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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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만큼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은신하듯 살아가야 하는 국가가 있을까. 정신질환자들은 국가, 인종, 성별을 너머 모두에게 사회적으로 기피되는 존재이다. 그들은 바이러스의 숙주로서 일상의 그럭저럭함을 유지할 수 있는 ‘우리’의 세계에 흠집을 내고, 그 틈으로 그들의 존재감을 감염시킨다. 그들은 정상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신줄을 놓고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넘어갈 수 있는 농담에 대해 과장된 혹은 아무런 말이 없는 반응으로 일관함으로써 찬물을 끼얹는다. 정상인들은 그들의 예측할 수 없는 행적들을 두고 그들의 무례함과 무능을 비난한다. 사회화된 말과 행동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하는 일부 정신질환자들은 예의없고 이기적인 성품을 가진 자로 취급된다. 또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그들은 ‘남들도 다 힘들어’ 라는 엄중한 선언 아래에서 게으르고 나약한 인간이 된다.

 

‘남들도 다 힘들어. (그러니까) 너도 좀 참아보면 안돼?’, ‘너는 왜 그렇게 오버를 떨면서 징징거리냐?’, ‘니가 배가 불러서 그래’. ‘정신병 그런거는 먹고 살만해지면 생기는 병이야’, ‘괜히 힘든 척하면서 게으름 피우는거 아니야?’ 이는 모두 정신질환자들이 그들의 주변,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듣는 말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말은 ‘남들도 다 힘들어’ 이다. 모두가 고통을 느끼고 있는것이고, 너만 힘든 것이 아닌데 왜 너만 유독 그렇게 ‘징징’대면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느냐는 말. 이 말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들의 고통은 그저 인내심의 부족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남들처럼 고통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노력’ 해서 자신의 정신을 다잡을 수 있다. ‘게으름’은 그렇게 ‘치료’된다. 민간요법으로서의 개인적 노력이 유효해진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개인이 먹고 살만 해서 발현되는 ‘부자병’이 아니며, 개인의 게으름과 나약함만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신병은 당사자가 병원, 약물, 상담, 혹은 주변의 도움 없이 순전히 개인적인 의지로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신과 육체의 쓰라림에 더해 주위의 편견들과 싸워나가야하는 정신질환자들은 이중고를 겪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병마를 다루어야함과 동시에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병증을 ‘해명’ 하고 ‘설득’ 시켜야 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5월 12일 발표한 “COVID-19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 증상을 보이거나 우울증을 겪고 있는 비율이 36.8%로,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정신적 타격이 여타 국가들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적인 시선을 배제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감추어야 하는 금기로서가 아니라, 여타의 신체 질병과 마찬가지로 정신 ‘질병’을 다루는 관점이 시급하다. 그런 측면에서 리단 작가의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는 정신병 당사자로서 질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이다.

 

작가, 만화가, 그리고 질환자로서의 리단

 

작가 리단은 2009년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의 일러스트로 데뷔했으며, 10년 넘게 자신과 동거해온 질병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대표작으로는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조색기>, 그리고 <자해장려안하는만화> 가 있다. 2016년에는 활발하게 활동했던 트위터를 중심으로 ‘여성 정병러 자조 모임’을 주최하기도 했다. 2019년 1월부터 6월까지 병마와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주간지 <주간 리단> 을 연재했다.

 

‘리단’이란 필명으로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를 쓴 이한솔 씨.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출처: 동아일보

 

 출간 직후부터 많은 관심을 끌어모으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리단 작가의 신작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는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이다. 이 책의 목차는 총 23개로 구성되었으며, 병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 당사자의 세밀한 조언이 담겨있다. 더불어 작가는 정신질환자 당사자에게 이들 곁의 가족, 연인, 지인들이 견지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기술한다. 여타의 SNS들에 비해 ‘정병러(정신질환자를 호명하는 명칭으로, 2015년경부터 트위터를 중심으로 발화됨)’ 들이 군집해있는 트위터 유저라면 이 책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이 지면에서는 ‘정병러’ 들을 위한 ‘관광 안내서’인 리단 작가의 신작을 소개해보도록 한다.

 

안녕하세요,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출처: 알라딘: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aladin.co.kr)

 

 리단 작가는 웹진 ‘SEMINAR’에 기고한 글 <나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했다.> 에서, “왜냐면, 나는 병의 결과이기 때문에. 병의 경험이 내가 되기 때문에.” 라 말하며 작가 자신의 ‘병체성’을 드러낸다. ‘병체성’ 이란 ‘병’과 ‘정체성’을 합성한 단어로 퀴어 집단에서 자주 발화되는 ‘(성)정체성’에서 차용한 조어이다. 리단은 퀴어-정신질환자로서 자신과 기묘한 공생을 하는 병에 대해 마냥 긍정하며 방치하지도, 그렇다고 그것을 없애야 할 악으로도 간주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자기 책에서, “우리는 이제 너무 섞이고 얽히고 휘말려버렸다”라고 담담하게 기술한다.

 

 리단 작가의 신간은 ‘정병러’ 와 이들의 주변인들에게 탁월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리단은 정신질환자들에게 개입되는 ‘일반인’들의 편향적 시선들에 대항하며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생을 잇기 위해 뛰어드는’ 자로 재소환한다. 그는 병과 병자의 관계는 마치 “아주 일찍 선을 보고 혼인한 부부처럼 아니면 50~60년을 함께 해온 노부부처럼 병과 서로 깊은 결속을 맺기도 하고, 잦은 싸움을 벌이기도 하며, 냉랭히 등한시” 하는 여러 상황이 경합하는 장이다. 분명 정신병은 환자에게 무력감, 공포, 두려움, 회의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안겨준다. 안정적인 연속성이 박탈된 환자의 삶은 환자 자신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은 더욱 미래에 대한 불안을 품을 수밖에 없다. 더욱 절망을 부추기는 것은, 환자에게 병이 불어닥친 뒤에는 그가 결코 병증 이전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단은 말한다. 정신병 이전의 총명하고 생산성 있는 시기로 완벽하게 복귀하려는 시도는 애초에 실패할 수 없음을. 병과 환자는 긴밀하게 접촉되어 있어 병과 조우한 환자는 좋든 싫든 그것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병을 겪는 ‘나’ 에서부터 병으로부터 깨끗한 ‘나’를 분리하려는 시도를 거부함과 동시에 병에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우선적인 일이다.

 

한편으로, 리단이 책의 서두에 제시한 선언인 “모든 병자의 삶은 고유하다”는 사람들의 편견에 대척되는 발화이다. 우리는 때때로 ‘심각한’ 병을 가진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내가 겪는 고통은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혹은 사람들이 호소하는 아픔을 엄살로 여기기도 한다. 이 두 가지 행동은 공통적으로 고통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고통을 수적으로 측량해 비교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의 근원에는 병과 자아의 철저한 분리와 노력으로 병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편견이 서려 있는 것이다.

 

빈곤 문제와 정신병

 

리단은 이 책의 14장 <정신병과 가난> 에서 정신질환에 가난이 주는 영향을 다룬다. 작가의 말처럼, 가난은 ”실제로 빚이 몇백, 몇천이 있든 그 액수보다는 생활을 장악”한다. 정신병과 의식주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내가 입는 것, 먹는 것, 그리고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은 나를 표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 나를 구성하고 있는 조건들이다. 오늘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그리고 그 음식은 배달 음식인지, 아니면 내가 직접 요리를 한 것인지와 더불어, 과연 이 음식을 직접 조리할 수 있는 주거적 환경이 뒷받침되었는지, 가스와 수도가 잘 작동되고 있는 집인지, 또는 생활비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내가 아침을 굶었는지가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의-식-주는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의식주의 사이클을 지탱하는 것은 자본, 즉 돈이다. 돈이 없으면 입는 것은 고사하고 먹을 음식과 거주할 공간의 질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돈이 없으면 인스턴트로 식사를 ‘때워야’ 하며,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면 아주 저렴하지만 사람이 온전하게 살기 힘든 원룸이나 고시원으로 밀려나가게 된다. 그리고 양질의 식사와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없는 청년들의 정신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벼랑 끝으로 몰린다. 가난이 초래한 정신질환은 노동과 학업에 반드시 지장을 주며, 이는 또다시 빈곤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의식주가 마땅치 않았던 사람들에게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곧바로 예시를 들어보자. 코로나 19로 경제적 타격을 받은 회사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지받은 저임금 서비스업 노동자가 동결된 서비스직 취업 시장에서 고용 불안을 겪으며 당장 다음달의 월세마저 지불하기 힘든 상황인 경우, 그리고 폭력 가정에서 독립하지 못한 대학생이 거실과 방이 분리되지 않은 좁은 집에서 가정 폭력의 환경 속에서 불안하게 실시간 원격 수업을 수강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개별적으로 고통스러운 사례들이 있다.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자본과 폭력으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청년들의 고통스러운 호소는, 천민 자본주의와 극단적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팬데믹 이전의 사회의 응축되고 곪아있던 문제점들이 팬데믹 이후 비로소 가시화된 것으로서 말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정신질환의 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폭력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로 인해 청년들은 ‘갈려나간다’. 전 검찰 총장이자 이제는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한 유명 정치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는 청년 노동의 유토피아를 제안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이 아닌, 노력과 의지로 자신의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해 자유지상주의의 명령에 충실히 복무하기를 강요하는 작금의 현실과 정통하는 정신이다. 불가항력의 재난과 같은 가난과 폭력의 현장 속에서 능력주의의 신화를 주입하는 이데올로기는 그 순간 만큼은 개인에게 희망을 주지만, 다시금 그 개인을 언제라도 절망에 빠뜨리게해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힌다. 정신질환을 개인의 나약함과 비겁함으로 취급하는 기조의 중심에 이러한 생산성의 논리가 위치한다.

 

작은 실천부터, 그러나 함께하기

 

다음은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의 출판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장을 발췌한 것이다.

 

“병이 있을수록 우리 정신병자들은 절대 홀로여서는 안 된다.

서로 기대고, 교류하고, 공유하고 참고하여 살아남아야 한다.

정신병자인 우리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자책하거나,

인생이 손쓸 수 없이 망가졌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형용할 수 없는 허무함에 삶을 끝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병과 있는 것만으로도 품이 든다.

일상을 사수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이 언제나 도전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작은 행동,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나날이 우리를 지킨다. (390)“

 

 정신병자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고립감이다. 이들은 일과 공부는 고사하고 밥을 먹는 것, 빨래를 개는 것, 곰팡이 낀 욕실을 청소하는 것, 심지어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일상의 버거움에서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고 느낀 채 자신만의 섬으로 유폐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은 정신병을 더욱 심화시키는 촉매제이다. 그러므로 리단의 말처럼, 정신병자들은 서로의 병의 고유함을 이해하고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잊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망가져 폐허가 된 사막에서 혼자 물을 찾아다니는 것은 무척 힘들다. 일상을 영위해나가기 위해서는 한 명보다 두 명, 두 명보다 여러 명이 힘을 합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코로나 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많은 청년들이 이제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불안정한 세상, 불안정한 정신, 그리고 불안정한 신체에 둘러싸여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건네는 것은 팬데믹 사회가 제언하는 생존 강령이다. 앞서 말했듯, 정신병은 당사자가 기거하는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 환경은 삶의 제반 조건들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 자본을 중심으로 작동되는 사회는 생산성과 능력지상주의의 이름으로 불합리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렇게 미쳐있는, 미쳐가는 세상에서 ‘나’만을 생각한다면 분명 외로울 것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질병과 서사를 간직한 사람들이 모여 ‘정신병’이라는 지점을 통과하는 ‘우리’는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다. 병과 병자의 공생, 그리고 병자들 간의 연대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는 리단의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는 팬데믹 사회의 필독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