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나 왓챠, 웨이브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의 등장이 급증하고, 유튜브나 틱톡처럼 영상을 중심으로 하는 미디어가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다. 특히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이어지며 이러한 미디어 콘텐츠는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
실제로 넷플릭스 실적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의 확산이 시작된 작년 1분기의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는 기존에 예상했던 700만 명의 2배 이상인 1천 577만 명으로 나타났으며 매출액 또한 전년 대비 27.7% 증가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미디어는 누구나 쉽게 즐거움과 편리함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을까? 앞서 언급한 미디어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시·청각적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때 미디어 제공자가 이러한 능력을 ‘누구나’ 지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결국 능력을 지니지 않은 ‘누군가’는 미디어의 사각지대로 몰리게 된다.
현재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OTT 서비스는 화면 음성해설이나 폐쇄형 자막(콘텐츠 내 모든 음향효과를 자막으로 표현하는 것) 등의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국내 OTT 서비스에서는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여전히 장애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보통 장애인이 사회에서 겪는 불편함이라고 하면 이동권의 제한성 등 물리적인 어려움을 떠올리기 쉽다. 우리 사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배리어프리도 그렇다. 배리어프리한 ‘시설’을 만들거나 건물의 ‘구조’를 개선하는 등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의 장애인은 이동권뿐만 아니라 ‘미디어’ 속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 어렵고, 유튜브나 또 다른 영상 매체로 정보를 얻기도 어렵다. 심지어 다수자인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개발된 애플리케이션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생활에 필수적인 모바일 앱조차 쉽게 사용할 수 없다.
미디어 속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을 조명하다
물론 장애인의 미디어 사용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CJ CGV는 2014년부터 매월 ‘장애인 영화 관람데이’를 정하여 장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 해설과 대사나 음악과 같은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한글자막을 제공하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또한 2005년부터 CJ CGV를 포함한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의 상영관에서 ‘한국 영화 한글자막 화면 해설 상영사업’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당사자들은 여전히 자유로운 문화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012년 기준 국내에서 개봉한 631편의 영화 중 한글자막과 화면 해설이 삽입된 영화는 전체 영화의 3% 미만인 약 20편 정도에 불과했고, 서울 시내 상영관의 전체 관람석 중 장애인 전용좌석은 3% 이하에 불과했다.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여 화제가 되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기생충>의 국내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자막 상영보다 뒤늦게 이루어졌다(더 많은 모두를 위한 영화- 배리어프리 영상과 문학적 시민권, 이화진, 2019).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보면 9년 전인 2012년과 다를 것 없이 현재도 장애인의 문화생활 보장은 여전히 우선시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영화, 공연 관람과 같은 문화생활 이외에 기본적으로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사용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대표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화면 내용을 음성으로 안내해주는 ‘스크린 리더’나 텍스트 음성변환 기능 등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한다. 하지만, 음성으로 화면을 설명해주는 기능의 대부분은 텍스트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지나 영상물의 설명은 들을 수 없어 화면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는 절차가 대부분 필수적이다. 그러나 회원가입 시 정보를 입력하는 부분을 음성으로 안내하거나, 필요한 상품을 찾기 위한 검색창을 안내하는 등의 기능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많은 불편함을 겪는다. 거의 모든 이들이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대다수의 정보를 얻는 현대 사회에 이러한 기능적 한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정보격차를 심화시키게 된다.
배리어프리한 미디어를 위한 노력, SOPLE(소플)
미디어 속 장애인이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SOPLE(소플)’은 장애 관련 콘텐츠 제작 전문 기업으로, 장애인 이용자 관점의 배리어프리 작업과 콘텐츠 제작, 그리고 배리어프리 접근성 자문까지 진행하고 있다. 소플의 이유정 대표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이다. 회대알리는 이유정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소플’ 창립 과정과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Q. 장애인을 위한 콘텐츠 제작과 공공 디자인, 그리고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작 등의 활동을 하고 계신데, 이러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대학생 때 장애학생회 회장을 하면서 많은 청각, 시각, 지체장애 등 여러 장애학생을 만났다. 다 같이 영화를 보려고 해도 볼 수 있는 영화가 한정적이었다. 시각장애인은 주로 한국어가 사용되는 한국영화만 볼 수 있었고, 청각장애인은 자막이 있는 외국영화만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후 배리어프리 자막, 영상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고, 당사자가 만드는 장애인 콘텐츠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Q. 현재 진행하고 계시는 장애 관련 콘텐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A. 현재 서울시 청년 프로젝트에서 장애인 감염병 대응 매뉴얼 영상을 배리어프리로 제작하고 있다. 수어 통역, 자막, 음성, 영상 화면이 나오는 형식이다. 복잡한 글보다 훨씬 접근성이 높아진다. 지금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같은 중대한 상황에서 접근성의 취약이 더 드러난다. 이럴 때일수록 장애인이 정보의 취약계층의 격차를 줄여주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이번 장애인 감염병 대응 매뉴얼 영상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Q. 현재 지자체나 정부의 배리어프리 정책과 관련하여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A. 정책적으로 바라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다. 첫 번째로 문화예술 분야의 배리어프리다. 현재 장애인이 볼 수 있는 배리어프리 공연, 영화가 매우 한정적이다. 특정한 시간, 특정한 영화만 볼 수 있다. 특정한 시간에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언제든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배리어프리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배리어프리 콘텐츠의 보편화다. 교육, 정보(재난, 지원 제도, 매뉴얼 등) 방면에서는 필수로 의무화가 되어야 한다. 특히 코로나로 비대면이 된 사회에서 교육도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정보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지금은 대중들이 배리어프리라는 단어조차 잘 모르기 때문에 개념부터 알려야 하는 단계다. 언젠가는 이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배리어프리가 일상적인 사회였으면 좋겠다.
Q. 앞으로 만들어 나갈 배리어프리 콘텐츠에 어떤 가치를 담고 싶은지, 그리고 그 콘텐츠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A. 미디어 배리어프리 접근성으로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일. 그리고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문화예술에 접근이 가능한 일. 이로써 선택권이 생기는 일, 즉 장애인에게도 ‘선택이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배리어프리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 누구나 평등하게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다 같이 사용하고 즐길 수 있는 미디어가 필요할 때, ‘미디어 배리어프리’
해외에서는 일찍이 폐쇄형 상영 시스템을 도입하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소플 이유정 대표는 이런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정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미국과 영국에서는 배리어프리 영화 재생을 의무화했으며, 장애인들은 매표소에서 자막 상영기와 헤드셋 등을 수령해 언제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구비되어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상영관들은 장애인 보조 기구를 마련할 법적 의무가 없다며 몇 년째 소송을 회피하고 있다.
최근, 미디어 배리어프리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한 국내에서도 움직임은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OTT 콘텐츠 내에 배리어프리 환경을 조성해야 할 의무를 명시한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진성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경우 장애인의 원활한 이용을 돕기 위하여 한국수어, 폐쇄 자막, 화면 해설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의 제3조 제2항의 신설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해외 OTT는 화면 해설이나 폐쇄형 자막 등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원활하게 제공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국내의 OTT를 포함한 IPTV(인터넷 티비) 등의 플랫폼에서는 배리어프리 콘텐츠가 충분히 제공되고 있지 않다. 배리어프리가 구축되지 않는 상황은 장애인의 자유로운 미디어 사용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단순히 ‘노력’을 요구하는 작은 변화일 뿐이지만 모두가 이러한 작은 움직임에 동참한다면 우리 사회는 모두를 위한 미디어 환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이야기되는 ‘이동권’에서의 배리어프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가시화되지 않는 미디어 속의, 혹은 또 다른 영역에서의 배리어프리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해본다.
글=길시은 기자(tldms1128@gmail.com)
취재=김지수, 길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