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6 (목)

대학알리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나를 마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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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날들

 

주기적으로 문서 작업을 하는 나는 어떤 당혹스러움을 느꼈는데, 작년을 비롯한 옛날의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움은 둘째 치고 너무 유아적인 사고방식에 절어있는 억센 문장의 파도 틈에서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간에 나는 내 일기들을 읽으면서 이만한 정신 자해도 없다고 생각해 문서들을 급하게 정리하고 그걸 삭제할까 고민하다가 이것들도 내 일부겠거니 하고 받아들이고 웃으며 드라이브 깊숙한 곳 안 보이는 곳에 박아두었다.

 

작년의 일기를 여기서 모두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대충 ‘~~이 싫고 ~~에 대해서 불안하고 왜 ~~은 나에게 이런 일들을 저지르는거고 왜 나는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거고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기가 싫고 그리고 이 일들이라는 것도 딱히 확실하지가 않아서 나는 세상에 내동댕이 처진 기분이고~~~’ 라는 지겨운 내용들이 몇몇 단어들만 바꾸어가며 뒤범벅 되어있었다. 

 

이제 고학번으로 진입한 마당에, 그리고 조금 있으면 졸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시기에 왜 나는 일기 정리를 했는가. 그건 내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지난 몇 년간의 나를 저주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쨌거나 그때의 나를 부정한다면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갓 20살이 된 내가 19살의 나를 영원히 파기하려했던 방식으로 또다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취급해버릴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대학교 입시 기간 내내 서울로 가겠다는 일념 하에 몸을 쥐어짜낸 결과 나는 겨우 상경하게 되었다. 19살의 나는 대학에 가면 무엇이든지 해결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때는 일기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감정은 오래된 휴대폰의 메모장 기능에 겨우 유언처럼 새겨져있었는데, 대부분 대학에 가면 지금까지의 과거를 모두 ‘청산’ 하고 ‘새로운’ 삶을 살 것이며 삭제하고 싶은 기억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리라고 생각했다. 메모장의 거의 모든 글은 ‘대학만 가면…’ 으로 시작했다. 지금보면 우스울 수밖에 없다. 무슨 대학만 가면 마법 능력이라도 생겨서 성인군자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서울로 오는 첫 기차를 기억한다. 나는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어울리지 않는 옷과 화장을 몸에 두른 채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KTX 안에서 창에 머리를 기댄 채 조용히 생각했다. 이제는 다 끝장이라고, 모두 끝이라고,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는 과거는 없을 것이라고 이를 갈았던 기억이 든다. 나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강박적으로 분리해서 어떻게든 과거를 외면하려는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겨울의 기차 안에서 젤리를 먹던, 19살과 20살의 경계에서의 여자애는 이 치기어린 버릇을 부리고 있었던 듯하다.

 

2. 서울에서 나는

 

그러나 앞서의 장담과는 다르게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지하철을 타는 방법도, 월세방의 관리비를 송금하는 방법도, 공인인증서를 만들고 아르바이트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도 모두 처음이어서 혼란스러웠던 대학교의 첫 3월을 보냈다. ‘누가 나를 등처먹을까봐’ 두려웠던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내 약점을 드러내거나 주장을 꺾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이 이상한 비약에서 모든 실패가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정말 못난 생각을 했었는데, 대부분 나는 저따위의 인간이 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무슨 자격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를 갈며 밤길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음흉한 생각은 표정에서도 행동에서도 드러나서, 결국 대학에 와 만난 소중했던 사람들과 나는 어색한 침묵 속에 갇혀 서로의 의중을 살피는 참으로 불편한 순간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이 순간들이 차례로 접속되면서 그들이 나에게,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묘하게 가시를 세우는 태도를 보이는 일이 빈번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정말 죄송하고, 예의없는 풋내기를 그저 견디어 주었음에 무한정으로 감사하다. 비꼬려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로 그러하다. 마지막 그들과 만난 순간에서 내가 희미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기억나는 몇 장면에서 나는 울분에 차 있었고 그들은 당시로서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뻔뻔한 태도로 나를 일관했다. 나는 너무 어렸고… 나만을 기준으로, 그들 각자만의 사정을 전연 무시한 채 광분하며 저 따위의 인간과는 이제 절대로 마주하지 않을 것이라 소리를 질렀었다. 애꿏은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 건 당연했다. 당시의 일기를 보면 별 시답잖은 우월감과 아집으로 뭉쳐진 내가 객관적인 ‘척’ 하며 그들을 까내리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그 어린 내가 어떻게 그런 악독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는지, 어쨌거나 나는 그들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고, (그 원인은 그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내 고집과 안하무인격인 성격 탓이었지만) , 결국 그들은 나를 떠났고 나는 그들을 탓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준 채 이별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견딘 만큼 그들 또한 나를 견뎠을 것, 그리고 새파랗게 젊은 애가 고집도 꺾지 않고 대드는 것을 인내심 있게 참아주었던 그들의 배려는 당시의 나에게는 불가능한 상상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이러한 성격을 고쳐먹지 못하고 또다시 나는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독단적으로 굴어서 빈축을 사게 되었다. 

 

관계가 파탄난 이후 만난 사람들이 종종 나와의 관계를 종결하려 들 때, 나에게 너무나도 이기적이라고, ‘지 밖에 모르는 애’라고 격노했고 나 또한 지지 않고 ‘그러면 너는 아닌 줄 아느냐’며 반박했다. 서로 삐딱한 자세로 서로의 말은 전혀 듣지 않은 채 엄청나게 싸우고 또 싸우다가 결국에는 상대가 나에게 ‘질렸다’고 힘없이 말하며 떠나는 것으로 모래알같던 관계가 막이 내렸다. 또다시 나는 이기적인 성격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를 의식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상대의 유약한 면을 비난하며 내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랬던 여자애는 그렇게 이때의 관계에서 형성된 기억들을 묻어두려고 했었다. 그 때의 나를 마주하기에는 너무 괴로웠던 듯했다. 그러고서 나는 기억을 없애려고 감히 시도했다. 당연히 없어지지 않는 기억은 현재까지 잔류해 나를 이루고 있었음을, 나는 지금에서야 알아차린거다.

 

3. 그래서?

 

그러니까 살아가는 것은 의류 쇼핑과 같은 것이라고 느껴진다. 우리는 수많은 천조각들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따라, 혹은 남들이 입는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의 옷을 산다. 특히 대학에 갓 들어온 새내기들이 옷을 사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체형이나 톤에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어거지로 산다. 이들에게는 사람이 옷을 입는게 아니라 옷이 사람에 걸쳐진다. 나도 그랬다. 과거의 사진들을 보면 그따위의 옷을 입고도 잘도 인구 최대 도시 서울을 활보했구나, 싶다. 이박사 같은 옷차림이다. 이렇듯 새내기들을 포함해서 사람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게된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만족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몇 년 뒤, 아니 몇 달만 지나도 내가 도대체 왜 저런 옷을 사 입었는지 후회하며 다시 새로운 옷을 찾아 또다시 엄청난 옷들이 깔려있는 쇼핑 플랫폼에서 방황한다. 

 

그러나 이전에 내가 사 두었던, 얼굴색과 맞지 않아 ‘톤그로’인 옷들, 입고 나가기에 민망할 정도로 구멍 뚫리고 프릴 달린 혹은 죽죽 찢어진 옷들, 세탁기에 한 번 돌렸더니 걸레인지 뭔지 구분할 수 없게된 옷들, 멋스럽지만 의외로 손이 가지 않아 옷장 구석에 처박혀있는 옷들이 과연 정말 쓸모없는 ‘돈지랄’ 이었을까?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소비 실패의 경험은 앞으로의 스타일을 축적해나가는 데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체험이다. 그러니까 한 번 사서 망해봤으니까 나중에 옷을 살 때 만전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생 용돈, 아르바이트 월급의 반 이상을 옷에 투자했던 ‘돈지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싸고 질좋고 그런대로 괜찮은 옷을 사는 소비를 한다. (그리고 몇 달 뒤에 다시 이 옷을 산 것에 대해 조금 후회한다. 반복이다.)

 

그리고 몇 년 전 별로라고 생각해 한 번 입고 옷장에 던진 옷에 지금의 시점에 갑자기 시선이 가서, 몇 년 만에 그 옷을 입고 심지어 그 옷을 자주 입는 경험이 모두들 있지 않은가. 이것처럼 돈지랄로 실패해보고 미친듯이 돈을 써봤어야 나중에 (비교적으로 더 나은) 혜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혹은 과거에 잘못 샀다고 방치한 옷을 오히려 지금에 와서 주구장창 입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처럼 과거를 회초리질하기 보다는, 일단 그때의 나의 눈을 응시하는 것이 시작이 아닐지. 전량 폐기 처분한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괴롭운 마주를 해야할 때는 아닌지. 추워지는 날씨, 연말의 감각 속에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소환하여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지. 그러나 이것은,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야. 나는 달라졌어.’ 따위의 결론으로 종결되는 것은 지양하자.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연속성을 절단하는 행위는 오히려 과거의 망령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경험자로서의 나는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언장담하는 일은 그만두자. 우리가 불확실한 세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부수어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부서진 조각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 곳곳에 부유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남은 것은 여남은 인생에 대한 알 수 없는 감각들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여로를 계속해서 밟아가야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두렵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내일, 다음주, 다음달, 내년, 그리고 몇 년 뒤… 서서히 변해갈 자신과 지난 날의 나를 바라볼 때 수치와 당혹으로 몸부림 칠 일은 확실히 자신을 소모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난한 자기투쟁을 경유하지 않으면 어긋난 자아를 영원히 고쳐먹을 수 없게 되리라. 

 

한편으로 그때 희구했던 가치들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허무한 슬픔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그때 내가 나에게 있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가치들이 현재의 나에게는 무척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동시에 담지하기도 하다. 한때 이 작은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냈던 냉소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물론 몇 년쯤 뒤의 나 또한 그때 이 글을 보았을 때는 내가 과거의 일기를 정리하던 때 느꼈던 감정을 똑같이, 혹은 더 심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아니 이게 뭐야? 얘 제정신인거야? 싶을거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이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원래 일관성있게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나를 혹독하게 비난하는 삶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나에게서 한 걸음 거리를 두고 조금 더 객관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전까지의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과정의 연속이며 지루한 일관성과 고루한 편견을 무화시키는 과정임을 나는 비로소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던 기억들을 저주하며 후회에 절어있는 것은 잠시뿐이라면 충분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내가 이 기억들을 안고 살아가느냐다. 누군가는 과거를 몽땅 부정하고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완전히 다르다! 고 선언하며 기억들을 암매장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러한 과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그때의 시간과 공간에 갇혀 뒤만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누군가는 과거의 나를 닮은 사람에게 반사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며 유독 조롱하며 자신은 그들같은 삶으로부터 ‘달라졌다’며 윽박지르는 ‘꼰대’가 될 수도 있다. 첫번째와 세번째의 방식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문드러진 기억 속에서 여즉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해방식 중 하나이다. 두번째 방식은, 물론 과거 속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정지된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을 방기하고 종내는 변화의 단초의 씨를 말리려는 사람들이다. 

 

기억은 괴롭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여러가지다. 지긋지긋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재구성물로서의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기억은 더 이상 그렇게 괴로운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4. 이제는

 

이야기가 너무 뻔해졌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식의 인터넷에 깔린 수많은 글들 처럼 너무나도 뻔해졌다. 그러나 사람들 누구나 겪는 이 뻔한 일들을 내가 적통으로 겪어보니 이것은 결코 뻔한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나에게 특수하게 접합되었을 때, 그리고 이 특수를 단순히 보편으로서 남겨두지 않고 나만의 또다른 미래적 특수로 가는 것이 의미있는 것이라고, 또다시 뻔한 결론으로서 이야기를 갈무리하고자 한다. 

 

날이 점점 추워진다. 뼈와 마음이 시려오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얼어버린 것을 그대로 두지 말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이라도 녹여보는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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