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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프리랜서인거 알고 들어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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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 사각지대, 불안정 고용 노동자를 아시나요 (2)

방송계에서 일하는 불안정 고용 노동자와 노동자성

노동자를 둘러싼 불안정한 고용방식, 노동환경의 문제제기는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불안정하고 한시적인 노동형태와 방대한 노동량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등의 문제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에 또 다른 상황이 있다.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 이전에 노동자성 조차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방송을 통하여 송출되는 문화, 콘텐츠 등의 제작에 종사하는 사람,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이다.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현장의 안전문제, 살인적인 노동시간, 임금 체불과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 여러 위험 요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한눈에 봐도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방송계 사각지대에서 만연한 부당노동 행위 및 당연한 노동조건에 대한 요구 이전에 ‘노동자성 인정’의 문제가 따라붙는다. 이들은 많은 경우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따르며 방송국의 실질적 지시를 따른다. 노동자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도 왜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의 투쟁에서 ‘노동자성 인정'이 쟁점이 되는가? 이는 방송 현장의 현실, 계약 방식 등의 문제와 복잡하게 연결된다.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제1항에 따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정의하고 있다. 그동안의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에 따르면, 아래 사용종속성 판단요소는 노동자성 인정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업무내용이 사용자에 의하여 정해져 있는지 ▲사용자에 의하여 근무시간·장소가 지정되고 구속받는지 ▲취업규칙 등이 적용되는지 ▲노동을 제공함에 있어 사용자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지 여부 ▲보수가 노동의 대가인지 

 

이는 당사자가 사용종속관계 아래에서 노동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방송계 사각지대에 위치한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은 프리랜서라는 명칭으로 고용되고 일하며 자신의 노동이 사용종속성 판단요소를 따른다는 점을 직접 증명해야만 하고, 이 과정은 순탄치 않다. 

 

 

무늬만 프리랜서 어떻게 등장했는가

‘무늬만 프리랜서’는 방송계의 고용방식으로부터 시작된다. ‘프리랜서’는 엄밀히 따지자면 법적 용어가 아니며 방송 현장에서 쓰이는 단어이다. 게다가 프리랜서라는 단어는 노동형태에 대한 추상적인 이미지만을 남길뿐 그들이 실제 하고 있는 노동, 법적 위치, 조건에 대한 명료한 법적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의제화하고 있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슬로건이 등장한 맥락이다. 

 

방송국과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는 흔히 알려진 근로계약이 아닌 하도급 계약 또는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한다. 근로계약서에 따른 근로계약에 해당되는 형태는 정규직, 비정규직, 일용직, 계약직이다. 따라서 “프리랜서 계약”이라 불리는 관행은 근로계약에 속하지 않는, 도급계약이다. 근로계약이 노동 제공과 임금 지급인 반면 도급계약은 하나의 사업 목표 완성을 목적으로 맺는 계약이다. 

 

 

최근의 판례가 생겨남에 따라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등의 변화가 생기고 있지만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근로계약서였기에 이들의 존재는 법적 사각지대에 있었다. 2020년만 해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직결될 수 없는 주된 근거가 ‘용역계약서’였다. 이들은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하는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만 남아야 했다.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는 있지만 여전히 근로계약을 맺는 제작사는 거의 없다. 방송 현장에 200명이 넘는 스태프가 있지만 그중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사람, 즉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1명만 있을 수 있는 기이한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다. 

 

 

 

방송계 노동자는 계약서를 쓰게 될 경우 대개 용역 계약을 하지만 실제 업무 내용을 들여다보면 용역계약으로도 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무늬만 프리랜서다. 프리랜서의 이름으로 호명될 뿐이다. 용역계약의 외피를 쓰고 있음에도 방송국 및 제작사는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에게 사실상 근로계약에 해당하는 노동을 착취하고 강요한다.

 

용역계약서, 소위 “프리랜서 계약서”라 불리는 계약 자체만 두고 보면 근로계약이 아니다. 계약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용역 계약(이른바 프리랜서 계약)의 성격대로라면 출퇴근이 의무가 아니어야 한다. 사업 목표 완성을 맺어진 관계이기에 핵심은 정해진 과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용역 계약의 성격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노동자성을 결정짓는 여러 요소로는 출퇴근 시간, 출퇴근 공간, 관리자 지시 수행 여부 등이 있다. 이 조항 모두에서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가 해당된다.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내용을 따라야 하지만 근로기준법 위반을 다툴 수 있는 노동자는 아닌, “무늬만 프리랜서”다. 

 

이처럼 프리랜서로 명명하지만 노동 내용은 실질적 노동계약이다. 노동하는 사람이지만 노동자는 아닌 역설,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다. 이러한 계약형태는 노동시간과 임금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안전과 보건 관련 조항도 명시되어 있지 않아 업무 중 발생한 사고를 노동자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상황으로 내몬다. 

 

업무위탁계약이나 도급계약을 맺은 노동자가 법적으로도 인정되는 노동자임을, 즉 노동자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근로계약에 해당됨을 보여 노동자라는 사실을 직접 증빙해야 한다. 스스로 노동자성을 증명하기 전에는, 그 외피가 용역계약의 형태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MBC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이 최초로 인정된 바 있다. 사건의 시작이었던 2011년에 지방노동위원회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해고 통보에 대해 다툴 수 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 소위 프리랜서 노동자는 부당한 대우와 노동환경 이전에 노동자라는 사실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요구가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 투쟁의 핵심이 된 이유다.

 

 

빈틈이 많은 업무위탁계약/도급 계약

이 문제에 대해서 보다 면밀히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통칭 프리랜서 계약이라 불리는 업무위탁계약/도급계약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방송계 현장에는 계약 자체에 이미 여러 계약 형식이 결합해 있거나 계약서를 쓰는 것 자체도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많은 경우 계약은 소위 '통 계약'이라고 불리는 형태와 유사하다. 방송국과 하청업체가 업무위탁계약/도급 계약을 맺는다. 여기에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가 본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불안정 고용 노동자다. 이때 임금은 팀장의 재량으로 나눠지며 정확한 액수도 불분명하다. 방송국이 지급하기로 한 대금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송사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의 팀장과 불안정 고용 노동자 사이에 계약서가 따로 작성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계약의 양상은 빈틈이 많다. 팀장 급의 노동자만 방송국과 계약을 맺기 때문에 이러한 계약 양상에서 여러 주체가 더 낄 경우 노동자 개인의 의사나 권리, 요구는 반영되기 어렵다.

 

 

표준하도급계약서에는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 보호를 위한 조항에서 여러 빈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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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외에서 대규모 인원이 고정적으로 작업하는 경우, ‘방송사 또는 제작사’는 ‘스태프’가 제작 현장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편의 (화장실, 식사 및 휴게공간 등)를 제공하여야 한다"

 

다만, 편의의 제공이 곤란한 경우 ‘방송사 또는 제작사’와 ‘회사’는 상호 협의하여 정할 수 있다”를 보면 제1문은 문언상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에 비해 제2문은 “정할 수 있다”와 같은 단서조항을 두어 제1문의 구속력을 약화시킨다. 

 

또한, 제11조 2항 “작업 현장에서의 사고에 대비한 보험 가입 등 회사에 속한 스태프가 안전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반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와 같이 ‘제반 조치’ 정도로 보험 가입 등을 규정하여 방송 현장에서는 개인이 아닌 프로젝트별로 상해보험을 드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산재처리가 잘 되지 않아 결국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기 어렵다. 

 

한빛미디어인권센터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 프로그램 내에서 계약관계가 복잡하게 이어진 팀에서는 최대 5중 하청인 경우도 있다. 이러한 하청관계로 인해 여러 계약 주체가 섞여 복잡해진 경우에는 임금체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며 노동자 개인이 발화할 수 없는 환경과도 연결된다. 복잡하고 분화된 고용관계는 임금, 노동시간 등의 노동조건의 보장과 관련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게다가 여전히 방송 현장에는 제작사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경우나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압도적임을 고려한다면 실질적 안전망은 없는 실정이다.

 

 

외주제작 중심제작 환경 + 산업 역사

노태우 정권 때 민영방송이 재허가를 받고 1991년 방송 외주 활성화 정책이 등장했다. 한국 정부가 문화예술 차원의 생산물을 ‘콘텐츠 산업'으로 점차 인식을 형성시키기 위해 실행된 외주화 정책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쉬운 방송사로 하여금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공급, 제공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며 방송사들은 제작비를 최대한 절감하기 위해 외주 제작사에게 협찬으로 벌충할 것을 요구하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외주 제작사의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 ‘공채’ 채용이 점차 사라지고 노동자들은 프리랜서라는 굴레에 묶이게 된다. 

 

현재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의 법적 지위가 방송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 제외하고는 외주제작방식은 일반 법체계 내에서 규율된다. 외주정책제도는 ‘편성비율’에 집중되어 있어 제작 ‘방식'의 문제는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간의 자율적 합의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방송법과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는 제작스태프의 권리 의무에 대한 법적 관계를 규율하지 않는다. 이는 방송법의 주된 입법사항은 방송사와 방송이고,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의 입법 목적도 문화산업의 진흥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보장은 법적 목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제작스태프와 관련한 문제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져 산업안전보건문제가 발생해도 서로 회피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복잡한 구조

방송계 노동현실에 대한 문제 접근이 까다로운 이유는 우리가 흔히 아는 ‘방송산업 노동자’ 카테고리에 정규직, 비정규직, 특수고용 그리고 프리랜서라 불리는 불안정 노동자가 복잡하게 얽혀있을 뿐만 아니라 세분화된 분야로 인해 그 양상을 특정 짓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여러 단체나 전문가도 하나같이 입을 모아, 프로젝트별로 체결되거나 정형화된 형태 없이 이루어지는 방송 노동의 계약 관행은 건설산업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하나의 드라마, 프로그램, 기획 단위의 프로젝트에 따라 모인다는 특성으로 인해 공통적 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이 어려우며 현장의 직군이 분화되어 있어 각각이 주로 노출되는 노동환경 문제도 제각기 다르다. 아래의 표와 같이 하나의 프로그램 제작에는 수많은 팀이 결합한다. △연출팀 △촬영팀 △조명팀 △음향팀 △미술팀 △후반작업팀 △기타 이동차량 담당 △홍보 마케팅 △섭외팀 등이 따로 나뉘어 있다. 가령 미술팀 중 소품팀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한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각각의 프로덕션이나 개별 회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팀 내에서도 제각기 다른 프로덕션 소속 인원들이 속해있어, 그 수는 셀 수없이 많다.  

 

방송계의 부당한 노동관행은 바로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문제의 양상과 실태가 매우 다층적으로 드러나고 일원화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한 프로젝트를 제작할 때 팀 별로 외부의 여러 하청업체가 모인다. 방송국 내부에 소속된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기보다는 부문별로 필요한 외부 프로덕션이 참여하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 서로의 환경이나 이해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문제적 현상도 복잡하여 접근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럼 신고하던가?  어차피 못해

또한 인지해야 할 것은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과정에는 분명한 권력 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여러 보도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중노위의 판단기준을 보면 실질적으로 노동자였음을 밝혀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작인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검토부터 만만치 않다.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노동청부터 노동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 43조(재신고사건의 처리)의 ‘노동자의 이의제기는 담당 감독관의 변경이나 삭제로 처리할 수 있다’, 즉, 자신들이 설정한 불분명한 체계 안에서 검토한다는 뜻이다. 

 

“조사 결과 노동자로 볼 수 없다. 이런 경우 인정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 지침을 보지 않았냐?”

 

특정 근로감독관은 계약서만 보고 근로자성 불인정에 대한 법적 위반이 없으며, 합의를 종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서류상,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정하고 본인의 경험상 불인정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합의를 유도하기도 한다. 결국, 노동자가 민사소송을 걸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한다. 

 

노동청의 방관을 신고하더라도 그 결과는 “근로감독관의 변경”으로 이어지며, 잦은 근로감독관의 변경은 곧 노동자성 판단에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된다.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근로감독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며 그마저도 근로감독관이 교체되면 결과를 떠 앉는 이는 당사자 본인이다. 사법부가 노동자 주장을 타당하다고 해석하고 법적 보호망을 제공하더라도, 노동부가 집행하지 않는다면 본 게임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노동자로서의 권리 주장을 펼치는 과정 속에서도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노동청과의 권력 차는 “노동자성 인정"이 애초에 시작조차 어려운 싸움임을 더 강조하는 격이 된다. 

 

설사 시작을 했더라도, 직접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과정에서는 노동자 개인이 스스로 짊어지기에는 여러 위험이 따른다. 결국 노동자가 거대한 주체인 방송국을 상대로 소송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표준근로계약을 체결하거나 계약 당사자가 외주제작사를 중심으로 변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직종 별로 편차가 크며 앞서 말했듯이 여전히 대다수는 계약서를 쓰지도 않거나 방송국 측에서 계약서에 독소조항을 두어 노동자의 문제제기 자체를 차단하기도 한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일반적 판단으로는 근로계약서로만 노동자성을 인정한다는 점을 방송사가 인지하고 있고 계약서에 노동자성이 없음을 노동자 스스로 인정하게끔 강요하거나 소송을 진행할 경우 노동자를 상대로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존재한다. 

 

“당연히 노동자성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계약 조항은 불법이죠.

근데 일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두려운 거란 말이에요.

저희 센터에 신고를 하더라도 그 뒤에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적으로 소송을 진행해보자고 했는데 그 후에 연락이 안되는 거죠.

그리고 소송을 센터에서 대행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당사자가 필요한데,

알려진 것처럼 방송계 노동시간은 살인적이에요. 소송에 시간을 쏟기도 부담스러운 거고요.

게다가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한 지부의 사람들이 아직도 일을 못하고 있어요.

지금이야 부족하지만 조금씩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2016년, 2017년만 하더라도 방송사를 막을 수 있는 어떤 장치도 없었어요.” 

- 인터뷰 내용 중 일부

 

 

 

법적 대안과 오늘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 문제가 점차 가시화되며 여러 가지 법적 대안 및 제도 개선, 안전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사의 서두에서 다루었듯이 우선 방송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의 근원은 그들의 노동자 지위 자체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실질적으로는 근로계약임에도 용역계약으로 맺어지거나 그 계약서조차 제대로 작성되지 않는다는 현실은 여러 보도를 통해 알려져 있다. 부당한 계약관행과 절차적 허술함이 산업재해, 노동시간, 임금 등 노동 전반에 걸친 영역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에 방송노동자 문제를 공론화해온 여러 단체에서 핵심 의제로 다뤄온 것이 표준근로계약서 도입과 이를 업계 표준으로서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안전망으로서 방송 현장의 부당한 관행 타파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분석이다. 표준근로계약체결 논의는 2019년을 시작으로 지상파 3사와 한국드라마제작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4자협의체를 구성해 제작현장에서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표준 근로계약서 도입을 논의해왔다. 이외에도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표준근로계약 체결뿐만 아니라 기존의 표준하도급 계약서가 갖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계약서 내 인건비와 지급기준 등의 세부기준을 명시하고 노동자 안정을 보호할 수 있는 계약서 조항을 명시하여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분명 이전에 비해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 문제가 가시화된 것은 사실이다. 다양한 직군들의 경험과 증언이 누적되어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짚어야 할 지점도 분명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과 사용자측은 대안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시민사회단체는 드라마제작사협회의 대응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는 시민사회단체는 “드라마 제작현장의 표준 근로계약서 도입을 위해 2019년 4월 9일부터 지상파 3사(KBS·MBC·SBS)와 전국 언론 노동조합,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 4자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해왔지만 드라마제작사협회는 턴키계약, 개인도급, 프리랜서 계약형태를 고집해 결국 파행으로 치달았다”라고 밝혔다. 4자협의체의 논의에서 드라마제작협회가 기존의 부당한 계약관행을 고수하는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또한 주요 3사 중 한 곳은 초기부터 참여하지 않았고 최근 다른 한 곳이 불참을 선언하며 사실상 방송사가 협의를 거부했다. 4자협의체 회의 역시 4개월 째 정지된 상황으로 밝혀졌다.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 불가피한 요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현실이다.

 

노동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놓인 노동환경을 고발했다. 자신이 겪는 부당함뿐만 아니라 동료의 부당함에 공감하며 노조를 결성했다. 다른 직군과의 연대를 통해 구체적 문제해결과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공명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법률 전문가 역시 방송 현장 문제의 가시화 및 실질적 ∙ 제도적 개선을 위한 지침, 쟁점을 분석하고 있다. 사용자와의 소통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공론장, 소통 창구 형성에도 힘써왔다. 4자협의체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고질적인 문제 해결 앞에서 소통과 대화를 통해 풀어보자는 사용자 측의 오래된 변명임에도 노동자와 시민단체는 이를 비관하지 않고 해결하려 이해관계 주체들을 마주해왔다. 

 

이제는 사용자 측에 물을 시점이다. 방송 현장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제도적 논의를 통해 구체적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소통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믿고 테이블도 만들어졌다. 정작 마련해 준 소통의 자리에서 사용자는 스스로 발 빼기를 택했지만 말이다. 모든 대안을 다 거부하는 불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안과 공론장 형성을 위해 기해진 사회적 노력 앞에서 이제는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