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8 (토)

대학알리

소수자

퀴어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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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장한다. 유아, 청소년, 성인, 노인. 주변이 변화하고 스스로의 몸집이 커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인 중 하나인 퀴어를 둘러싼 생각들도 변모한다.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기도 하고, 전과는 다른 고민거리를 껴안게 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어떤 종류의 기대감을 갖기도 한다

 

'대학생 퀴어'

 

불안정한 사춘기와 중고등학교라는 집단생활을 거쳐 온, 길목에 직장과 같은 또 다른 사회를 앞에 둔 시기 속 퀴어들. 그 사이의 퀴어들은  어떻게 변해왔고 살아갔으며 살아가려고 할까.

 

여기에 초점을 맞춰 퀴어 두 명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그들과 함께 성장해온 생각들에 대해 뜯어보고자 한다. 그들은 자신의 앞에 놓인 미래에 대해선 어떤 상상과 계획을 하며 내일을 그리고 있을까.

 

낯선 세상에 놓인 우리는 어떤 식으로 변하고 생각하는지. , 깨닫는지 살펴본다.

 

Q. 자기소개 부탁해.

 

닭강정 : 닭강정을 좋아하니까 닭강정이라고 불러줘. 무성애자(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적 지향)고 여자, 광고디자인과 다니고 있어.

 

오백 번 차인 여자 : 오늘 차인 전 썸녀 생일이거든. 그러니까 난 가명 이걸로 할게. 난 패션디자인학과 여성, 팬 섹슈얼(젠더적 이분법을 따르지 않고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성적 지향).

 

Q. 모두 언제 어떻게 정체화를 했어?

닭강정 : 난 정확히 언제인진 모르겠는데 그냥 스며들듯 알았어. 처음 확신했던 계기는 중학교 때 남자 아이돌 덕질하는데 친구들이 다 유사연애를 하는 거야. 난 그게 이해가 안 됐고. 그때였던 것 같아.

 

오 백 번 차인 여자 : 난 그냥 어렸을 때부터 난..성별 모르겠고 그냥 다 좋은데? 라는 생각이 늘 있었어. 애초에 그게 어색하다고 느낀 적도 없고. 난 첫 뽀뽀도 여자애였어.

 

일부는 마치 계시처럼 본인이 퀴어임을 인지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스며들듯 깨닫는다. 어느 날 무심코 알아차리는 거다. 아. 나 퀴어구나.

 

나도 그랬다.

 

'동성? 좋아할 수도 있지! 근데 난 아니야', '? 여자? 좋아할지도?', '나 여자 좋아하나?', '나 여자 좋아하네'

 

돌이켜보면 늘 여자를 좋아했는데 잘못된 사회화를 통해 늦게 깨달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지나가버린 내 청춘 로맨스 기회가 아깝기도...

 

Q. 고등학교 이야기로 넘어가서 닭강정은 남녀공학이었고 오백 번 차인 너는 여고였는데, 그땐 퀴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겪는 감정들이나 생각들이 있었어? 고민 같은 것도 괜찮아. 학교 자체는 퀴어에 대해 어떤 분위기였어?

 

닭강정 : 고등학교 때는 성소수자이기에 겪었던 고민은 없었어. 사실 다른 게 더 급하잖아. 대학이다 뭐다. 정체성에 대한 건 예전에 비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어. 무성애자라는 정의도 알게 되었고. 학교 자체는 퀴어에 대해 원초적인 혐오는 거의 없었어. 그냥 남자애들끼리 '게이같이 왜 그래' 뭐 이런 류의 말들은 가끔 들리긴 했지만. 연애도 우리 학교는 연애 금지 교칙이 있어서 친구들끼리도 연애 얘기 별로 안 하고. 그래서 딱히 퀴어 혐오를 대놓고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근데 눈에 보이는 커플들은 죄다 여자 남자이긴 했어. 퀴어를 접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어.

 

오백 번 차인 여자 : 나도 마찬가지로 예전엔 '여자 남자 다 좋아~' 였다면 이젠 아이런 사람을 팬 섹슈얼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알게 된 거? 근데 그런 걸 알게 되고 나서도 어떤 종류로 나를 규정하진 않았어. 난 꼭 팬 섹슈얼이야! 이런 것보다는 여전히 난 다 좋아라고 날 이해하고 있어. 학교 인식은 퀴어 동아리도 있었는데 뭐... 여고라 그런지 교내 연애하는 애들도 많았고. 혐오하는 애들이 보이긴 했는데 걔넨 비주류여서 대놓고 퀴어 혐오는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어. 혐오 발언하면 뭐야 저런 얘길 해하는 느낌.

 

확실히 여고에 다니면 교내 연애 때문에 퀴어를 접하기 쉽다. 나도 여고를 나왔고 항상 복도에는 교내 연애하는 아이들이 손을 잡고 다녔다. 그럼에도 반 구석에서는 그런 아이들을 소위 험담 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꽤 보수적인 학교였는데, 선생님이 아예 수업시간을 할애해 신박하지도 않은 이유를 들먹이며 동성연애에 대해 비난하기도 했다.

 

학교는 날 품기에 너무 좁았다. 비루하게 촘촘히 짜인 네트워크는 거미줄처럼 끈적거려 발을 뗄 수 없었고 떼어진다 해도 고립되는 건 나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버텨야 하는 학교에서 그런 위험을 고려하긴 어려웠다. 때문에 내 선택지에 커밍아웃은 없었다. 내가 정한 포지션은 "퀴어라고 말은 안 하지만 퀴어 인권에 대해 주창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커밍아웃하니까 다들 그럴 줄 알았다고 하더라. 그래도 그땐 조금 무서웠다. 다만, 사방이 퀴어니 퀴어가 아주 멀리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지역 내에서도 분위기에 따라 퀴어들의 세상은 변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부정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특히, 네트워크가 강하게 짜여 있는 학창 시절에는 주변인의 영향이 크다. 선생님, 같은 반 아이들, 친구 등.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팽팽하게 당겨진 실 마냥 미세한 반응에도 크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환경의 학교는 중요하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시간은, 누군가에게 배척당하는 사건은 어떤 모양새 건 날카롭고 상처를 내기도 한다.

 

Q. 대학에 와서는 어때? 고등학교 때 비해 변화한 것들이 있어?

 

닭강정 : 난 코로나 학번이라 크게는 잘 모르겠어. 주변에서 여대니까 레즈비언 많냐고 물어보는데 학교를 잘 못 나가서 모르겠고 같이 지내는 사람들은 다 남자 얘기만 해... 좀 변한 건 고등학교 때는 바운더리가 좁잖아. 다들 학교에서 있었던 일, 급식 얘기 이런 얘기만 하고 연애 얘기는 잘 안 했었는데 대학교 오니까 다들 남자 얘기하고 연애 얘기하는 거야. 이게 좀 새롭게 불편해졌어. '과팅 하자', '소개팅 하자-' 난 하나도 관심 없는데. 그리고 대학 오면서 퀴어에 대한 생각 변화가 좀 생겼다는 거?

 

사실 난 중고등학교 때 젠더 퀴어에 대해 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이해가 되질 않았던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근데 어느 날 엄마가 불편하면 그걸 고치고 편하게 살아야지.”라고 말씀하신 걸 듣고 '아, 그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 좀 인식이 바뀌었지. , 예전에는 잘 몰랐던 무성애자의 입지에 대해 알게 되었어. 퀴어 진영에서도 무성애자는 성소수자로 잘 인식도 안 되고 다들 무성애자라고 하면 네가 사람을 많이 못 만나봐서 그래따위의 말만 하는 거야. 이런 인식 때문에도 무성애자라고 정체화 하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

 

Q-1. 퀴어로 인정받지 못하는 때엔 어떤 감정을 느껴?

닭강정 : 난 별 생각 안 해. 그런가보다. 중요하지 않아. 난 그냥 나야

 

오백 번 차인 여자 : 나는 늘 오픈 퀴어였는데 고등학교 때도 지금도 딱히 어떤 차별을 겪거나 그런 건 별로 없어. 패션디자인과라 그런지 과에도 퀴어인 사람 몇 보이고. 고등학교랑 다른 건 게이가 있다는 거? 난 여고였으니까. 근데 그건 있어. 우리는 과 특성상 교수님 입김이 좀 중요한데 교수님이 호모포비아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은 입학 전부터 했었어. 좀 벽장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고. 그래도 예체능이 비교적 개방적인 것 같아서 대부분 비(非) 퀴어인 사람들도 쟨 쟤고 난 나 이런 느낌으로 생각하고 대하는 것 같아. 근데 이건 내가 예체능이라 그렇지 다른 과인 사람들은 확실히 고등학교 때보다 숨기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더라. 아무래도 취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고. 확실히 고등학교보다 본격적인 사회잖아. 진짜 사회니까 아무래도.

 

성인이 되고 나서 느꼈다. 아이스브레이킹 주제로 연애가 지겨울 정도로 언급된다. 고등학생 때에 비해 남자 친구 유무에 대해 질문받는 경우가 많다. 바운더리가 넓어졌고 그만큼 연약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 관계에서 나눌 수 있는 주제로 많이들 연애를 꼽는다. 입시사회를 거쳐와서 창의력이 감퇴된 걸까?

 

하지만 연약한 네트워크이기에 가능했던 변화도 존재한다. 대학생활은 고등학교와는 달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들이 많다. 일부 강압적인 요구도 있지만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특히 과 생활이 아니라 동아리나 대외활동과 같은 관계에서는 자유도가 더 높다. 때문에 안 보고자 하면 안 볼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커밍아웃을 전보다 편하게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성인이 되고 '호모 포비아면 내일부터 안 보면 되지-'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프로 커밍 아웃러가 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소문이 나도 어차피 졸업만 하면 된다 싶었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나의 퀴어 정체성이 개인을 판단하는 하나의 거름망 역할을 해주기도 하는구나-라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 바운더리가 넓어짐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퀴어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젠 사람을 만나고 나를 소개하는 행위가 전만큼 두렵지 않다. 이따금 레즈비언이라 이만큼 사회적 응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Q. 스스로 퀴어구나하고 느끼는 때가 있어?

닭강정 : 난 대학교 친구들이랑 밥 먹으러 갈 때. 애들 다 남자 친구 얘기하는데 나만 메뉴판 보고 메뉴 고르고 있어. 그리고 연애 얘기할 때마다 공감 하나도 안 될 때. , 나 무성애자구나.

 

오백 번 차인 여자 : 난 과가 그래서 그런지 별로 없긴 한데 내가 전 썸녀 얘기하면 애들이 나중에 내 연애 얘기 나올 때 내 전 썸남이라고 칭하는 거야. 그럴 때? 그리고 자꾸 내 남자 친구에 대해 물을 때? 난 남자 친구 없는데... 여자 친구도 없지만

 

교수님이 가끔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서인지 남자 친구 있냐는 질문을 하신다. 선배들이나 동기들도 남자 친구 없냐고 묻는다. ‘난 평생 없을 예정이야.’ 속으로 대답하고 겉으론 은은한 사회생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가끔 상상은 해본다. 여자 친구 사귈 생각만 있다고 대답했을 때 드러낼 반응에 대해.

 

이런 상황에서만 퀴어 정체성을 깨닫는 건 아니다. 스무 살 때 처음 퀴어퍼레이드를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온몸에 무지개를 끼얹고 다녔다. 연인을 끌어안은 사람들도 있었고 자유롭게 옷을 입고 원하는 대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낯선 소속감과 평온함을 겪었다. 퀴어 친구들과 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느끼는 감정과는 또 달랐다. 넓은 도로 한가운데, 여기 있는 전부가 나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는 감각, 또 누군가가 부정을 한다고 해도 그 순간 우스워지는 존재는 부정하는 사람이라는 앎과 분위기. 괜히 벅차올랐다. ‘아 난 퀴어구나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이기도 했다.

 

Q.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야. 인천 퀴어축제 때 많은 성소수자들이 다치기도 했고 차별금지법이나 생활 동반자법도 생길 수 있을지 의문인데 앞으로의 날들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어?

 

닭강정 : 난 인천 퀴어 축제 때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어. 그냥 사람이 사람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 사실 딱히 언어적으로 혐오하는 건 타격이 없는데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러는 건 힘들지. 미래에 대해 생각했을 때, 퀴어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적어질 것 같아. 지금도 졸업하면 어디 취직할까 가 더 걱정이야. 앞으로도 그렇겠지. 다만 나중엔 '남자 친구 없니? '가 아니라 '결혼 안 하니?'로 질문이 바뀔 생각을 하면 더 귀찮아질 것 같긴 해. 그리고 노후 걱정이 좀 되긴 하지.

 

그래서 친구들이랑 사는 실버타운 이야기하는 거잖아. 서로 생사 확인하고 건강한지 확인하고. 죽고 며칠 뒤에 발견되는 그런 사태는 피하려고. , 난 자식을 키우고 싶은데 싱글은 그게 힘들잖아. 입양도 그렇고 기증은 아예 한국에선 불법이고. 그건 좀 걱정이야. 나중엔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근데 생활 동반자법이나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안들이 '액세서리 같은 거', 그러니까 없어도 괜찮은 존재라고 많이들 생각하는 것 같아. 우리에게 이건 생존권이 달린 문제잖아. 수술동의서를 못써준다는 게 말이 돼? 없어도 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있어야 하는 건데 아직도 미적거리는 게 믿기지 않아.

 

오백 번 차인 여자 : 난 직장 가면 커리어에 부정적 일까 봐 숨길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수적인 직장이면 어떡해. 내가 직장 분위기를 바꾸기도 어렵고. 그래서 내가 퀴어 프렌들리 한 태국 가서 취직할까 고민했던 거였어. 퀴어 혐오하는 걸 보면 아직도 저런 생각을? 진짜 멍청하다 싶긴 해. 아 나 이런 인터뷰 한 거 들키면 큰일 나겠다. 그래 이런 거로 걱정해야 한다니.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니까!

 

노후는 나도 걱정되는데 난 남자랑 결혼할 생각이 없는데 그럼 나중에 가족이 아무도 없을 때 어떡해? 나 수술 사인 누가 해줘? 그렇게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은데. 우리 중 하나 호적에 자식으로 들어갈 수는 없나? 사실 그런 생각도 했었어. 위장결혼을 하고 자식을 입양하는 거지. 자식은 내가 키우고 나중에 사인만 해달라고.

 

인천 퀴어퍼레이드가 처음 개최된 날의 상황을 접했을 때 난 처참하고 두려웠다. 인터넷으로만 보는데도 그랬다. 높은 곳에 올라가 퀴어들의 사진을 찍고, 욕설을 하고 폭력을 사용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마치 내가 그 당사자인 것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너무 무서워서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잘하지 않는,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어떤 정체성과 지향성을 지니는지에 대한 고민은 점점 적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직접적인 고민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보단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이다. 내가 다니게 될 직장은? 새롭게 생겨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은? 은퇴하고 나서 노후에는 어떻게 하지?

 

현재 한국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 내가 만날 환경이 퀴어 프렌들리 할지 모른다. 어쩌면 퀴어를 혐오하는 사람이 나의 상사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인천 퀴어퍼레이드의 상황이 나의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퀴어이기 때문에 해고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불법이 아니니까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다.(말이 되는가?) 그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를 숨기고 살아가는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꽤 타격감을 준다. 분명 내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숨겨야 한다니. 은퇴 이후의 삶은 어떨까. 한국은 생활 동반자법 또한 제정돼 있지 않다. 때문에 스스로 가족을 꾸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산 친구나 연인과도 그저 지인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몸이 아플 노년에 각자 수술 동의서를 써줄 가족이 없다는 것, 사망 시 무연고자로 등록된다는 것. 나와 퀴어 친구들은 자주 실버타운을 만들자고 이야기한다. 함께 돌봄을 실천하고 누군가가 고독하게 죽어나가지 않도록 그물망을 쳐주는 공동체를 만드는 건 나의 소망 중 하나이다. 우린 이렇게 살아나갈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국가에서 해주지 않아도 어쨌든 살아가고자 한다. 그래도 한계는 분명하다.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만 가족이라고 판단하는 한국의 고리타분한 가족관으로 인해 퀴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족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우린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해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원한다.

 

Q. 앞으로 기대되는 건 뭐야?

 

닭강정 : 우리 빵집 차리기로 했잖아. 재밌겠다. 친구들이랑 사는 거 재밌을 것 같아. 어른들은 다 결혼하고 너 혼자 남아서 외로울 거라고 하는데 내 친구들은 그럴 것 같지 않아.

 

오백 번 차인 여자 : 나도 빵집 언제 열어? 나 닭강정이랑 붙어 살 거야. 넌 고양이 키운다며 난 새 키울 건데.

 

퀴어그 자체로 기대되는 건 없다. ‘퀴어이기 때문에 겪었던 경험들과 겪을 경험들이 기대되는 거다. 그간 지나쳐왔던 수많은 혐오들과 함께 내가 일어서게끔 만들어준 연대와 인연들 덕분에 내일이 기대되는 거다. 어제를 함께 거쳐왔던 친구들과 사는 삶, 앞으로 만날 소중한 인연들과 같이 걷는다는 감각.

 

분명 비참하고 우울한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지지 않는다. 위기는 집단을 더 단단하게 만들 뿐이다

 

마지막으로

 

학창 시절을 지나 성장해온 퀴어는 변해오는 주변 환경에 맞춰 성장하기도 하며 변해왔다. 그들은 그간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통해 내일을 살아가려 한다. 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상황이 닥칠지 오늘날 상상해보며 내일을 대비한다. 중요한 점은, 퀴어는 주변에 꽤 영향을 받는다는 점, 그렇지만 그게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퀴어 포빅 한 환경 속에서는 스스로를 전보다 감추고 살지도 모른다. 퀴어를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환경 때문에 스스로를 잊어버리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오히려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부정하지 않기 위해 더 강조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니까, 타인의 찬성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애초에 찬성할 일이 아니기도 하다).

 

난 별 생각 안 해. 난 그냥 나야

 

누군가는 자신을 부정하는 시기를 건너고 있을지도, 누군가는 스스로를 찾아가는 시기를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변해버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우적 댈지도 모르고 수월하게 집단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다만, 모든 퀴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미워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떳떳하게 주창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그런 환경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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