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보면 텍스트도, 텍스트 저널리즘을 표방한 레거시 미디어도 낭떠러지에 이르는 현실이 아닐까. |
서울 유명 대학에 재학중인 김씨(26·여)는 언론인을 꿈꾸고 있다. 평소 종이 신문을 읽으며 꿈을 키워나가던 김씨는 최근에 시사 스터디에 가입하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터디원 6명 가운데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스터디원들에게 구독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들은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을 통해 똑같은 기사를 접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래도 언론인을 희망한다면 종이 신문은 구독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이 신문이라는 매체 특성 △구독 해지의 어려움 등 저마다 다른 이유를 내세웠지만 결론은 하나로 수렴되었다고 그는 전했다. 김씨는 의구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예비) 언론인도 읽지 않는 종이 신문을 이제 누가 읽을 것인가”라며 하소연했다.
수요의 법칙은 명백하다. 세이의 법칙(Say's Law) ― 공급이 수요를 창출해낸다 ―이 세계대공황(1929) 이후 실패로 판명된 이래 수요자의 신호는 전체 시장의 공급을 좌우해 왔다. 수요가 없는, 다시 말해 선택받지 못한 상품은 시장에서 축출된다. 사람들의 의식에서 옅어질 무렵에 상품은 결국 사멸된다. 필름이 디지털로 바뀌었듯, 모토롤라와 야후, 싸이월드가 사라졌듯, 시장에 영원한 독재는 없다. 여기, 종이 신문도 서서히 말로를 걸어가고 있다.
종이 신문은 오랜 시간 동안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유일한 통로로 자리해왔다. 다른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지난 수세기 동안 활자 매체인 종이 신문은 사실상 유일무이한 언로의 창구였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활자는 라디오에, 티브이에, 휴대폰에 점차 자리를 내어주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의 도화선이 된 지점은 2009년 한나라당(現 국민의힘)이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을 통과하면서다. 이후 2011년 조·중·동의 채널 등을 비롯해 MBN까지 총 4개의 종편이 개국되었고, YTN 등 통신·보도전문채널이 차례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여론집중도조사위가 지난 1월에 발표한 ‘2019~2021 여론집중도 조사’ 결과를 인용하면 신문(종이·인터넷) 점유율은 전체 12%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지상파와 종편, 보도전문채널군의 점유율은 약 80%에 육박하는 수치를 기록했다. 유튜브 및 SNS를 활용하여 뉴스를 접하는 비중 역시 증가하는 추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이용률에 관한 지표 역시 활자 절멸에 관한 현실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작년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표한 ‘2021 언론수용자 조사 매체별 뉴스이용률 추이 결과(2011~2021)’에서 종이 신문 이용률은 과거 2010년대 초반 40%를 상회한 반면 2021년에 들어서 한 자릿수대로 급락했다. 반면 동일 기간 동안 티브이와 인터넷(모바일·PC) 이용률은 꾸준히 7~80%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은 지난 5년만에 26%를 기록하는 등 빠르게 언론 시장의 다크호스로 등극했다.
이밖에도 종이 신문의 구독·열독률과 관련된 지표는 참혹함을 배가시킨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21 신문·잡지 이용률 조사 보고서’에서 종이 신문 열독률은 13.2%, 구독률은 6%대의 성적표를 보였다. 구독형태와 무관하게 집계되는 열독률은 단순히 신문을 ‘읽었느냐’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산정 기준에 헤드라인만을 일별(一瞥)하거나 주변 사람이 읽는 기사를 잠시 보는 행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요컨대 100명 중 약 13명에 불과한 이들만이 주로 종이 신문을 통해 세상과 교류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가운데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제외한다면 실질적인 수치는 더욱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한 언론사 기자는 “종이 신문은 사양 산업”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더 이상 뉴스를 지면으로 확인하지 않는다. 모바일이 대세이기 때문”이라고 귀뜸하며 “기자들에게 가급적이면 문단 내 1-2문장으로 구성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는 현실을 전했다. 실제로 본지가 확인한 결과, 지면에 게재되는 문단 내 문장의 수는 대략 4-5문장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 인터넷 뉴스의 경우에는 리드문이 1-2문장으로 압축된 경우도 빈번했다.
한편 매일경제의 명순영 기자는 “몇 해 전부터 내부에서는 (종이 신문의) 구독을 제로(0)로 가정하여 전략을 짜야한다는 의견이 나왔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그는 “지면에 담지 않더라도 온라인만을 위한 기사를 상당히 게재하는 게 현실”이라고 답하며 “조심스레 종이 신문이 가질 비중은 10% 이하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종이 신문 시장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텍스트’ 매체 역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2013년 70%에서 2019년 52%로 급감했다. 동시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9년 출판산업 실태조사’를 통해 실제 매출액과 연관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0년대 꾸준히 물가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매출액은 약 3%가량 감소했다는 수치가 기록되었다. 매출액 기준 약 1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여 높은 감소폭을 기록했다. 또한 지난해 대한출판협회가 발표한 ‘2020년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78개의 주요 출판사들의 2020년 매출액은 약 4조 8080억 원으로 전년 대비 약 4.1%(2062억원) 떨어졌다. 이러한 통계들은 종이·활자 기반의 인쇄 매체의 영향력이 하락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설가 서이제(32)씨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종이책을 둘러싼 복층적인 문제를 두고 탁견을 내놓았다. 2021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서이제 소설가는 단편소설집 「0%를 위하여」, 「그늘 속의 아니마들.zip」 등의 작품에서 텍스트와 함께 QR코드를 넣거나 스도쿠를 삽입하는 등 전위적인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배경에 대해 “정신적 여유가 없는 시대”라고 해석했다. 그는 “바쁜 일상 속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을 환기하며 “이런 상황 속에서 나만의 독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고 부연했다. 덧붙여 “사람들이 대부분 쉴 때에도 특별한 일을 해야된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운을 떼며 휴식을 취할 때 독서 대신 역동적인 여가를 향유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라고 뜯어 살폈다.
아울러 저조한 독서율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잘못된 독서 습관을 지적했다. 그는 △필독서 지정 △자기계발 위주의 도서 △수능 입시에 편향된 텍스트 등을 언급하며 “현 교육 환경·제도에서 독서 교육은 책을 읽는 즐거움 대신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변질되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이내 자신의 저서 「장미의 이름」과 킨들(전자책 기기)을 고층에서 떨어뜨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킨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히 흩어져버렸다. 반면 종이로 인쇄된 책은 구겨질지언정 훼손되지 않았다.
더욱 특이한 점은 그는 PC(퍼스널 컴퓨터)가 발명된 초기부터 사용해온 얼리 어답터이자, 여행을 갈 때도 아이패드를 항상 챙길 정도로 소위 ‘문명을 거스르지 않는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묻는다. 종이책은 사라질까. 그는 답한다. 종이가 품고 있는 담대한 양의 지식과 헤아릴 수 없는 지혜의 요람이 사라질 리는 만무하다고. |
서이제 작가는 한편으로 종이 책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배경으로 다각화된 “감각”에 주목했다. 그는 “사람마다 추위를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추위를 잘 느끼는 사람과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미묘하게 다른 지점이 있는 것처럼, (신체적) 감각이 중요하다”고 부연하며 이어 “언어를 이해하는 데 종이 책은 골성의 감각”을 일깨우는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전공인 영화를 감상하여 온몸으로 받아들인 일화를 소개했다. “디지털화가 되지 않은 필름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별안간 생각에 잠긴 그는 “뒤에서 영사기 소리가 나고 스크래치와 함께 먼지로 뒤덮인 필름을 보고 온몸으로 전율이 돋은 적이 있다”고 당시를 반추했다. 그는 종이책도 이러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유추하며 “소설을 쓰는 형태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압축시키는 작업이다. 이런 겹쳐진 감각과 종이의 질감 등을 느낄 수 있는 재미 요소를 소비”할 수 있는 유행을 바라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향후 종이책의 향방에 대한 질문에 애호가들의 “굿즈”로 소유될 수 있으리라 상상했다. 그는 “(지역) 책방에서 전시·낭독을 하며 인연을 만들고 다른 작가들의 후일담을 듣거나 티켓팅을 하는 순간들이 즐거웠다”고 설레설레 웃음을 지었다.
이어 “웹으로, 앱으로 플랫폼의 형태로 겹쳐진 독서 방식은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다고 본다”고 조심스레 답하면서도 “정월제(구독제의 형태)와 같이 구독자에게만 제공하는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같은 문인의 신종원 작가는 단편소설집 「전자 시대의 아리아」에서 QR코드와 사운드클라우드 링크를 첨부하여 실험적인 문인으로 저명하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같은 분야에서도 QR코드를 통해 시 영상을 첨부하는 등 매체 간 울타리를 허무는 등의 시도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외에도 인터뷰 내용과 같이 전시회와 같은 행사나 굿즈로 상품화하여 관심을 끌기도 했다. 교보문고는 작가별 부스를 설치하여 책과 함께 다양한 굿즈를 묶어 판매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랜덤 책을 선물하는 상품을 기획하고 SNS 등을 통해 예약을 받기도 했다.
종이신문도 굿즈형 신문의 활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2018년 평양냉면에 대한 미식평을 담아내며 종이로는 벽에 붙일 수 있는 그래픽을 만드는 한편 온라인으로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발표하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브라질 일간지 폴라드상파울루는 20면 신문을 모두 펼치면 비행기에 대한 광고를 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지면 광고’를 기획했다. 폴랴드상파울루는 지면을 넘기면 하나의 동작이 완성되는 애니메이션형 광고 신문을 선보이며 참신함을 더했다. 한대신문 이재희 부편집국장은 “신문도 신선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하며 “레이아웃에 변화를 죽나 굿즈형 신문이 그 예시”라고 답했다. 이어 “한겨레는 토요일 신문을 작은 소책자로 디자인하고 (거기에) 예술·문화 기사를 다수 싣는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도 유튜브를 만들어 짧은 동영상 형식의 콘텐츠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며 “다양한 형식을 통해 가독성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
이런 국면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인 곳이 바로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이다. 뉴욕타임스는 ‘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인쇄하기 적합한 모든 뉴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종이 신문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인 언론사다. 품위를 중시하며 다소 진중하다는 인상을 풍기기까지 한 뉴욕 타임스는 2020년 구독자의 절반 이상이 대학 졸업자였고, 38%가 고소득자에 해당했었다. 이러한 뉴욕타임스도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갈 수는 없었다. 1980년대 100여개를 웃도는 하루 발행면수는 2020년 약 40~50쪽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뉴욕타임스 연간 리포트에 따르면 신문 발행부수는 2000년대 초반 100만부를 넘었지만 2020년 들어서는 간신히 40만부에 걸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덩달아 종이 신문의 구독률 자체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급기야는 NYT 전체 구독자 중 인터넷 구독률이 무려 88%프로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으며 레거시 미디어는 쓸쓸히 상왕(上王)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자 뉴욕타임스는 과감히 온라인 구독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2012년 'Snowfall' 기사를 기점으로 다양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작성하기에 이른 뉴욕타임스는 레거시 미디어를 파이프라인형 비즈니스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로 전환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와이어커터를 인수하여 상품 리뷰를 제공하는 사이트와 연계하는 등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향신문을 비롯하여 중앙일보 등의 유수의 언론들이 종이 신문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구독 모델의 도입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 △프리미엄 콘텐츠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으나,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별의 순간에, 당사자는 저마다의 까닭으로 곪아 문드러진다. 좌절하여 끝내 좌절된 절망의 허방에서 너무나도 처절하게 심연의 깊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마침내 수렁으로부터 올라올 때, 그들은 조금씩 달라진 삶의 양식으로 그렇게 삶을 이어나간다.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권위는 궐위되었으나 하나의 담대한 움직임이 선연히 관측되고 있다. 종이 신문은 오늘에도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각자도생의 몸짓을 처절히, 자약(自若)한 자세로 펼칠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