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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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외-피니언] 저출생은 과연 재앙이기만 한가?

* [외-피니언]은 '외대'와 '오피니언'의 합성어로, 외대알리 기자들의 오피니언 코너입니다. 학생 사회를 넘어 우리 사회의 사안을 바라보며, 솔직하고 당돌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저출생은 사회 발전과 불평등 해소의 산물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저출생에 직면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34개국 중 압도적인 꼴찌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입을 모아 심각성을 설파하며 ‘재앙’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그러나 저출생을 꼭 재앙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저출생은 ‘교육과 경제 개발’ 그리고 ‘양성평등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산물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비혼과 만혼이 증가했다. 또한 의료 기술의 발달로 영아 사망률이 눈에 띄게 줄었고 피임 기술이 발전해 세밀한 출생 계획이 가능해졌다. 높은 질의 양육에 대한 갈망도 높다. 예전처럼 ‘부족하더라도 오순도순 왁자지껄 살자’가 아닌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자녀를 적게 낳거나 자신이 없으면 아예 가지지 않는다.

 

저출생은 사회 발전과 불평등 해소 과정에서 개인이 행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이런 내심의 작용에 온갖 외부 수단들을 갖다 대도 해결이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 16년간 역대 정부가 300조에 가까운 돈을 쏟았지만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애꿎은 곳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애꿎은 데서 원인을 찾는 위정자들의 헛발질


저출생의 원인을 ‘양극화’로 꼽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국가 내 불평등이 해소되고 있지만 출산율은 더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반대로 불평등이 극심한 나이지리아, 차드, 소말리아 등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매년 상위권의 출산율을 달린다. 이들 국가는 대가족을 거느리는 것을 번영의 상징으로 여기는 전통적 사회이다. 또 사회 안전망과 치안이 불안해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지켜줄 여러 명의 자녀가 필요하다. 빈부 격차 같은 경제적 요인보다 문화적·심리적 요인이 높은 출산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선진국 중 출산율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자산 불평등도는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 경제적 양극화가 출산율을 낮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낮아 보인다.

 

‘남녀 임금 격차’ 같은 직장 내 불평등도 저출생의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임금 격차가 줄더라도 임신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은 필연적이다. 복직을 보장하고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해도 여전히 여성들은 임신과 출생 과정에서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육아는 남녀 공동의 몫이지만 이런 변화는 오로지 여성에게만 나타나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일에 열중하기 힘들어진다.

 

여기에 다양한 직업군과 고위직에서 여성들의 성과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제는 여성이 적정 연령이 됐다고 해서 결혼과 출생을 위해 경력 단절을 택할 이유가 더욱 없어진 셈이다. 저출생은 여성들이 행복을 찾아 나선 결과이기도 하다.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면 앞서 말한 원인들을 제거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커리어가 없었던 ‘불평등의 시대’로 회귀할 수 없다. 영아사망률이 높은 의료 후진국이 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몇 푼 더 주기보다 진짜 ‘재앙’이 되지 않게 대비해야


한국보다 앞서 저출생을 직면한 국가들은 현금성 지원으로 저출생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개인의 심리적 영역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정책들은 실패를 거듭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최저임금 인상이 그랬으며 경쟁 심리를 간과한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오히려 물가 폭등을 초래했다. 이제는 이런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과신에 빠진 채 저출생에 쓰인 300조 중 직접 지원의 비중이 낮았다며 현금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최근 유승민 전 의원은 SNS를 통해 현금성 지원 확대를 주장하며 “아이 키우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면 국가부채비율 90%가 되어도 좋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수억이 드는데 국가가 수백만 원을 준다면 애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다. 무엇보다 효과도 미비한 정책에 투입될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는가? 그 부채는 0.78의 출산율 속에서도 세상의 빛을 본 우리 아이들이 감당할 몫이다.

 

저출생의 가장 큰 문제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인한 내수 위축과 국가 경쟁력 약화이다. 단순히 현금 지원 확대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보다 저출생이 진짜 ‘재앙’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한 명이 3인분을 해내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절실하다. 내수에 치중하지 않고 해외에서 부를 창출하기 위해 경제적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열쇠는 ‘서비스산업’에 있다. 세계적 수준인 제조업에 비해 경쟁력이 약한 서비스업은 한국 경제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70%의 일자리가 서비스업에서 나오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도 채 안 될 정도로 생산성이 열악하다. 경제정책의 축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좁은 내수를 극복하기 위한 글로벌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서 서비스업의 혁신이 가능하도록 규제 리스크를 해소하고 적극적인 R&D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서비스업 성장이 가능하다면 인구 절벽 위기의 돌파구가 생길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저출생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당장 출산율이 회복돼도 변화된 인구 구조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작정 ‘아이가 많이 태어나야 국가가 발전한다’고 말하며 미래세대에 짐을 지우지 말고 현시점에서 필요한 개혁들을 단행해야 한다. 정부는 인구 절벽이 가져올 문제에 착실히 대비해 저출생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산업 전반의 체질까지 개선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승진 기자(lsg102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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