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8 (월)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이건 명백한 입학사기예요”...‘폐과’ 통번역대의 속마음

누굴 위한 학제개편인가
폐과 학생대표자와 단과대 학생회장...“통보만 있을 뿐 소통은 없다”

지난 4월 10일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새로운 학칙 개정안이 공고됐다.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은 오랜 역사와 많은 인원을 가진 통번역대학이 폐지된다는 사실에 반발했다. 통번역대 재학생들은 학교 측이 학생들과 충분한 의사소통을 진행하지 않았고, 폐과 당사자들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안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기존 학과 폐지 및 AI융합대학 신설’만 밀고 나가는 독단적인 태도를 꼬집었다. 

 

이에 폐과 대상인 스페인어통번역학과, 독일어통번역학과, 이탈리아어통번역학과, 말레이·인도네시아어통번역학과(이상 통번역대 4개 학과) 대표자들과, 통번역대학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장을 들어봤다.

 

 

Q. 학칙 개정안에 대한 단과대학 대표, 각 학과 대표자들의 공식적인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A. (독일어통번역학과 학생회장 박세현) 학교가 움직이려면 학생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반대 서명운동에서 학칙 개정안에 대해 독일어통번역학과(이하 독통) 85%의 학우들이 반대했습니다. 우리 학과는 신입생 정원이 많은 대형 학과 중 하나입니다. 학과의 많은 학생들이 반대해도 이를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을 위한 대학교가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통번역학과 비상대책위원장 박수민) 학칙 개정 관련 사안은 작년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입생들은 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채 입학했습니다. 학교는 학생에게 아무런 정보를 제시하지 않은 채 급진적으로 학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어통번역학과 학생회장 최민지) 스페인어통번역학과 역시 독통처럼 약 60-70명 정도의 신입생들이 있는 대형 학과입니다. 반대 서명 운동에서도 재학생은 물론 선배님들을 포함해 총 800명 가까이 반대한 상황입니다. 학교의 중심은 학생인데, 학생들이 지속적인 반대 의사를 보이는 상황에서 개정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 옳은 일인가요?

 

(이탈리아어통번역학과 학생회장 박준범) (저희는) 학칙 개정안에 강경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학과의 학생들과 교수진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학교는 독단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통의 부재가 심각해 보입니다. 올해 신입생들은 소속된 학과가 당장 폐지되는 사실을 모르고 입학했으며 이는 명백한 ‘입학사기’입니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학칙 개정을 진행하는 학교 때문에 근거 없는 유언비어도 생성되고 있습니다. 투어리즘(학칙개정안에 포함된 신설학과)과 이공 계열의 활성화는 어문 계열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버리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급급한 모습입니다.

 

(통번역대학 비상대책위원장 오승기) 일련의 학칙 개정 과정에서 총장은 타협의 여지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교수와 학생 모두 폐과 대신 정원을 줄이는 등 총장에게 학칙 개정의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무시됐습니다. 학생회와 총장 간의 자리가 수차례 있었지만, 이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만났던 것일 뿐입니다. 대화에 통보만 있고 소통은 불가능한 점에 대해 분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Q. 학칙 개정안과 학교의 행보에 대해 학생들이 알아야 하지만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들이 있나요? 

 

A. (통번역대학 비상대책위원장 오승기) 학칙 개정안 통과를 위해서는 3단계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1단계에서는 학사 운영에 관한 중요 사항들에 대해 단과대학 교수회의 승인이 있어야 하죠. 단과대학 교수회의 승인 후, 전체 교수회를 통해 해당 사안을 2단계인 교무위원회에 올립니다. 교무위원회에서도 통과가 되면 최종적으로 재단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학칙 개정이 통과됩니다. 위 과정에서 대학평의원회(이하 대평의)의 심의 역시 함께 진행됩니다.

 

이번 학칙 개정에서 1단계인 단과대학 교수회와 전체 교수회 자체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또 대평의에서 이번 개정안은 부결됐습니다. 대평의는 의결 기구가 아니라 심의 기구로 학교 측에서 이를 따를 강제력은 없습니다만, 대평의는 학사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곳입니다. 법정기구인 평의원회에서 부결된 사안을 이사회에서 강행한 점도 알려져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학교나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A. (통번역대학 비상대책위원장 오승기) 현재 학교는 대평의의 의결을 무시하고 학제개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독단적 행동에 학생들과 교수진 측은 반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본 사안을 급박하고 무리하게 통과시켰습니다. 총장님께서 강조한 ‘학생들이 꿈꿀 수 있는 학교’는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폐과 당사자인 학생들은 오히려 좌절감을 느낄 것입니다. 학교의 일방적인 추진으로 학우들의 꿈을 망칠 수는 없습니다. 

 

학칙 개정이 외대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본인의 임기에 맞추어 학제개편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것은 외대 발전을 저해하며 비판받아야 할 사안입니다. 이에 강력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며 언론을 통해 부당한 현재 사안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 오승기 통번역대 비상대책위원장은 “아직 끝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의 개정안 강행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결과와 상관 없이 학교의 미래를 위해 학생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학우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강조했다.

 

김서진 기자 (seojin1122@naver.com)

장유민 기자 (kell17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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