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일)

대학알리

오피니언

[연재] 학생활동가 릴레이 인터뷰: 차종관, 대학언론인에서 언론인으로

‘나의 활동은 경력이 될 수 있을까?’ 혹은, ‘나는 활동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편집자주] 학생운동 시리즈는 재도약네트워크의 기고문입니다.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alookso)'와 동시 연재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학을 비롯한 곳곳에서 ‘비임금 활동가'로 일하는 많은 이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밤낮, 주말할 것 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사비를 써 가며 일을 하지만 이것이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는 경력이 되긴 어렵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바꿔 보고자 하는 일념으로 분투하지만, “와, (돈도 안 받고)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악의 없는 반응에 조금은 힘 빠져 본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이번에 만나볼 인터뷰이, 차종관은 대학을 벗어나 언론인으로 일하기 시작한 ‘졸업활동가'다. 오랜 시간 수많은 번아웃을 겪고, ‘돈 안 되는 일'이라는 편견과 맞서 갈등했지만, 결국은 대학언론인으로 활동한 경험이 본인을 기자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종관으로부터 활동 경험이 어떻게 ‘먹고 사는 일'이 되었는지 들어본다. 인터뷰에는 재도약네트워크의 태린, 선재가 함께했다.

 

차종관은 어떤 사람?

 

대학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집권을 가지고 언론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비영리독립언론 ‘대학알리'의 대표, 대학 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 언론인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자세한 소개는 https://alonein.notion.site/a78bbdca63a24b968857240717b6131b?pvs=4

 

 

“차종관입니다. 얼마 전까지 대학 언론인으로 활동했고, 이제 갓 대학 언론인 티를 벗고 기자 일을 시작했습니다.” (TMI : 현 게임-스포츠 기자 차종관의 최애 게임은 ‘배틀필드'.)

 

저희가 드리는 첫 번째 공통 질문입니다.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정의하시나요?

 

“과거에는 확실히 활동가라고 생각했어요. 정확히는 ‘대학 언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 그런데 누군가는 저에게 “너는 활동가가 아니라 운동가야"라고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거부감이 좀 들었어요. 흔히 말하는 ‘운동권'과는 색채가 다르다고 생각해서, 운동이라는 단어를 멀리했거든요. 하지만 활동을 은퇴하고 나니 어쩌면 내가 언론운동가였을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대학 언론 활동에 대한 조력과 자문을 하고 있기에, 넓은 의미의 언론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스스로가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고 처음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대학 새내기 때 ‘십시일밥'*이라는 단체에서 식권 운동을 하면서 처음 활동을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활동이나 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어요. 저 스스로가 배가 고파서 힘들어하는 사람이었고, 주변 사람들도 그랬고요. 기본적으로 먹고살면서 공부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에 시작한 거였어요. 활동이 끝날 때쯤, 이게 재미있는 ‘나의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처음에는 의심이었고, 시간이 지나며 확신이 됐어요. 스스로 자문자답을 이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십시일밥 : 학생들이 학생식당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그렇게 받은 식권을 다시 학생들에게 나누는 활동을 하는 단체)

 

먹고 살기 위해 시작했던 활동이, 대학언론 활동으로 이어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쨌든 대학 사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을 한 거잖아요. 십시일밥 활동을 하면서 학생처에 찾아가 식권 배부를 요구했어요. 어려운 학생들이 밥은 먹고 학교 다녀야 하지 않겠냐고요. 그랬더니 0분위, 1분위 학생들에게 학교가 식권을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관계자가 “이제 단국대에서 밥 굶는 사람 없겠는데?”라고 언급했고, 인상적이었어요. 시민적 연대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대학의 수많은 다른 문제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다양한 공익 프로젝트를 많이 했죠. 장애인 주차구역의 비장애인 차량에 귀여운 경고를 날리거나, 학생들이 쓰레기를 마구 투기하지 않도록 쓰레기통을 꾸미거나.

 

하지만 역부족이었어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거든요. 문제가 사람들에게 인식이 안 되어서 해결조차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이걸 알리려면 언론이 필요한데, 학보사는 학교의 부속 기관이라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워요. 학생회도 학교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탄압이 심하잖아요. 학우 일반에게도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걸 느꼈어요. 문제를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인식에 대학 자치언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종관의 활동을 담은 글. [대학 언론은 대학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 요소 / 교육공동체 벗]

https://communebut.com/Article/?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5157026&t=board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총장의 업무추진비 비리 관련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한 적이 있어요. 정보공개청구도 하고, 함께 활동했던 기자들이 총장의 출근길에 급습하기도 하고요. 총장 비서실이 난리가 났더라고요. (웃음) “입학한 이래 총장 얼굴 처음 봤다"는 학우들의 반응도 있었고요. 그렇게 난리가 나니, 총장실 관계자 셋과 저, 기자, 편집자 이렇게 3대 3으로 긴 시간 대담을 한 적이 있었어요. 문제를 어필했던 경험 자체가 뜻깊었어요.

 

대학알리라는 비영리 독립언론 모델을 ‘2019 비영리스타트업 쇼케이스' 현장에서 발표했을 때도 생각이 나요. 각 대학의 독립언론들을 지원하기 위한 중앙조직으로서의 대학알리가 출범하며, 19년 말에 비영리 스타트업 계열에 데뷔를 한 셈인데요. 200명 앞에서 발표를 했는데, 일련의 성취감이 들었어요. 그때의 기억으로 몇 년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활동이 늘 잘 될 수는 없지 않잖아요. 팀이 깨지기도 하고. 얼마 전 퇴임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활동만 7~8년을 했는데, 단체의 문제들을 꿰뚫고 있지만 역량이 되지 않아 해결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후원금을 많이 유치하지 못한다거나, 더 많은 대학으로 확장하지 못했다거나. 퇴임할 때도 회한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 것 같아요.”

 

오랜 기간 대학에서 활동을 하며, 코로나 전후의 대학을 모두 경험해 보셨잖아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맥락이 끊겼다는 것. 코로나 전에는 어떻게든, 옅더라도 맥락이 존재했다고 생각해요. 컴퓨터가 포맷된 것 같은 상태죠, 지금은. 예를 들면 ‘농활’이 남아 있는 곳이 별로 없잖아요. 동아리나 대외활동을 홍보하는 <캠퍼스픽>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코로나 이후로 홍보가 60% 이상 줄었다고 해요. 활동 자체가 죽은 거죠.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힌트가 될 만한 것들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해요.”

 

위드 코로나 시대가 왔는데,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돌아갈 필요가 굳이 있을까요? (웃음) 맥락도 좋은 맥락이 있고 나쁜 맥락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학생회의 악습이라거나 하는 건 끊어져도 되는 맥락이죠. 지금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학생사회의 모습이 있을 거예요. 선배들이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당사자들이 자치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학생회가 필요 없다고 느낀다면 없어질 수도 있겠죠. 새로운 무언가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고요.”

 

 

좋은 맥락을 이어가기 어려운 시대인데, 학생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통찰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도 힘들고. 예를 들면 ‘농활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선배가 지금은 없으니까요. 오랜 기간 대학을 지켜본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통찰이 부족한 거죠. 관계들이 처음부터 재건되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는 건데. 하지만 그 재건조차 당사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사람들이 논문, 기사, 전시 등으로 최대한 많은 자료를 기록하기 위해 시도해 왔으니, 그걸 참고하는 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2019년 열렸던 <간식행사를 넘어서> 전시를 추천해요. 제가 몰랐던 활동의 맥락을 알게 되어 새로웠고, 이와 같이 맥락을 전할 수 있는 기획들이 많아져야겠죠.”

 

[간식행사를 넘어서 : 2010년대 대학 총학생회 아카이브 / 대학알리]

https://www.univalli.com/news/article.html?no=23329

 

대학언론인으로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고, 언론사에 입사하셨어요. 대학언론인으로서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를 꿈꿨는데요, 고1 때 ‘희망버스'가 있었어요. 김진숙이라는 사람이 크레인에 올라갔다더라, 정도의 지식만 있었는데, 그런 사회적 움직임의 기록자이자 해설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된 순간이었죠.

 

그리고 기자로 살아야 할 이유, 맥락, 자신감을 만들어 준 것은 대학언론이에요. 내가 속한 사회에서 언론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기 때문이에요. 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글에 대한 소통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늘더라고요. 잘 쓰지 않더라도, 나의 메시지를 알린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많은 학생 활동가들은 활동하며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생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불안을 겪기도 하는데. (혹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 '전업 활동가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거나.) 이런 후배와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누가 뭐라 하든 당신이 생각한 길이 맞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도 두 가지 생각을 다 했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내가 가진 빚만큼의 연봉을 벌고 있는데, 이런 생각에서 드는 현타 같은 것. ‘청춘'으로서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사람이라면 다 현타를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하면 되고요, 힘들면 그만둘 수 있어요. 그 순간에 자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업이 되는 경우도 있고, 이전 경험은 꼭 사용될 수 있어요. 절대 헛된 경험이 아니에요. 분야가 다르다 하더라도. 예를 들면 노학연대 활동을 하다가 원자력 쪽에 취업을 하더라도, 아주 작더라도 도움 되는 부분이 있지 않겠어요? (웃음) 너무 높은 자의식과 사명감으로 스스로의 삶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나 보니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자신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 시간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졸업활동가이자 언론인으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함께 우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대학 재수할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요. 안산에 갔는데, 수없이 많은 시신이 옆으로 스쳐 지나갔어요. 유가족을 붙들고 같이 우는 기자를 봤고, 그런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비전과 지금의 비전은 여전히 같아요. “시민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기자"가 되겠다는 것이에요. 대학에서 하던 것을 사회에서도 해 나갈 거예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활동가 샤라웃" 코너인데요. 다음 인터뷰 주자를 지목해 주신다면?

 

2019년에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황지수 님이 생각나요. 2010년대 후반 학생회 중에서 그만큼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곳은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삶의 맥락을 들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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