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학생운동 시리즈는 재도약네트워크의 기고문입니다.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alookso)'와 동시 연재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인터뷰 주자였던 차종관 님의 ‘샤라웃(지목)’을 통해 황지수 님을 만났다. 2019년,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의장과 숙명여자대학교 제51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며 총장직선제 등의 이끌어냈고, 518 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사를 폄훼하는 발언을 한 동문 국회의원을 규탄하여 큰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지금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3년 차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총학생회, 2020년대에도 생존할 수 있을까?”
서울시 청년허브가 2019년에 개최한 ‘N개의 공론장' 행사 제목이다. ‘총학생회 위기론'이 등장한 지도 십수 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재난이 겹치며 대학 내에서 구성원들의 연결은 더욱 소원해졌다. 지역을 막론하고 대학 내 선거는 투표율 저조로 무산되거나,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아 취소됐다. 여러 해 전에는 소위 ‘운동권 총학', ‘비권 총학'을 논할 수 있었던 데에 비하면, 지금은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마저 구성되지 않아 비대위의 비대위가 꾸려지는 경우도 다수.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대에도 총학생회는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지수와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지수의 총학생회 경험은 활동가로서의 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롭게 학생 자치의 흐름을 만들어 내려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허심탄회하게 들어 보았다. 인터뷰에는 재도약네트워크의 태린이 함께했다.
* 가벼운 분위기로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분위기나 맥락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본문을 높임말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옮겼습니다.
“2019년도에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을 했던, 지금은 어찌저찌 얼레벌레 3년 차 노동조합 상근자인 황지수입니다”
공통 질문인데, 스스로를 활동가로 정의하고 있어?
“학생회 했을 때도, 지금도 스스로 활동가라고 생각하지.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했던 건, 대학 안에서 뭔가 바꾸어 보겠다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고”
스스로가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고 느낀 첫 번째 순간은 언제였어?
“나는 고등학생 때 정말 막연하게, 당연히 대학 가면 무조건 데모를 하고, 학생회 하고 뭐 무슨 써클 같은 거 들어가고 총학생회 하고, 총학생회장 돼서 집회에 깃발 들고 나가고 이런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 (태린 : 그런데 2016년의 대학에 써클이라는 건 없었지…)
어, 그러니까. 학교를 와 보니까 총학생회고 써클이고 아무것도 없고. 옛날에 삭발을 했다던데, 수배를 당했다던데… 진짜 아무것도 없네? 그럼 내가 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한 게 일단 처음이었고.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실제로 2018년에 법과대학 학생회장 하면서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할 때였지. 단순히 선거운동을 준비하는 걸 넘어서, 학생회 활동을 하기 위한 초석을 쌓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아무래도 가장 많이 알려진 일 중 하나겠지. 518 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유가족 폄하 발언을 했던 동문 국회의원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가, 학내의 비판 여론에 철회를 했던 뼈아픈 일. 총장직선제 만들어 내려고 학생총회 열었던 일. 정족수인 천 명을 채울 수 있을까 했는데 3천 명 정도의 학우들이 참여해 줘서 깜짝 놀랐던 일. 학생총회 한 번으로 총장직선제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정말 안 돼서 학교에 빨간 천막 쳐 놓고 44일 농성했던 일. 그리고 학생회 같이 했던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 일하고, 술 마시고, 놀고 했던 순간들도 기억나고”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 일들을 만들어 나가고 싶지만, 선배 혹은 동료들과 단절돼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학생들이 많잖아. 무엇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해?
“가까운 곳에 멘토나 선배가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보의 바다를 헤매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지. 전통적으로 페이스북이나, 홈페이지를 통해서 아카이빙을 해 둔 총학생회들이 제법 많거든. 참고하기 좋은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어. 나도 자료를 많이 남기려고 노력했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웃음)
(태린 : 그럼 전화해서 물어보면 알려주나요?) 아, 그럼요. 한 학번 밑이든, 열 학번 밑이든 못 알려주겠어? 나 뿐 아니라 다른 선배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 옛날 이야기라도 궁금하시다면 꼭 연락 주세요.
어쨌든 나의 원동력이 되었던 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었지. 숙명여대를, 그리고 대학 캠퍼스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했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학교를 떠난 뒤에도 연락을 많이 받았어. “제가 학생회장에 출마하고 싶은데, 러닝메이트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이런 연락들.
학생운동은 어쨌든 대중 운동이라고 생각하거든. 사람을 모으는 게 핵심인 거지. 조금 무책임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는데, 동아리에 들든, 학회에 들든, 교수님에게 연락을 하든,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든 해서 한 명, 두 명이라도 포석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면 모이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거든. 자신의 선택을 믿고 가 보는 걸 추천해. 어려움을 느끼고, 좌절하는 시기를 겪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활동하던 당시에, ‘총학생회의 정치성'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잖아. 총학생회가 사회 참여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표백하려는 시도라거나, 총학생회 활동은 ‘복지' 영역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거나. 너는 총학생회를 통해 뭘 하고 싶었어?
“나는 써클 하고, 깃발 들고 집회 나가고 싶었는데… (웃음) 사실 옛날 독재정권 시절의 학생회, 그리고 한창 2010년대 초까지 반값 등록금 운동하고 이럴 때에 비해서 지금은 학생회의 위상이라는 것과, 할 수 있는 활동 영역이라는 게 되게 많이 축소된 게 사실이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지.
노학연대를 새롭게 만든다거나,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자보를 쓰고 카드뉴스를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생리 공결제나 학사제도 협의체를 만드는 것. 총장 선출제도를 개편하는 것. 총학생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거니까, 그런 것들을 해 보자는 것에서 시작한 거지. 정리하자면 총학생회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다는 거. 여러 측면에서 학생들이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기구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사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못할 건 없다. 그리고 기왕 학생 사회가 재건되려면 총학생회가 주축이 되는 게 좋겠다. 총학생회만큼 학내에서 학생 대중들을 아우를 수 있는 조직은 없으니까. 전체 학생들한테 미칠 수 있는 파급력이 크고,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직이잖아. 물론 총학생회도 여러 제약과 어려움이 있지만, 힘을 가지고 대학 본부하고 협력을 하고, 때로는 협상을, 때로는 압박을 할 수가 있다는 그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아직 무너지지 않았잖아. 여러 대학에서 일상 사업들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고. 그걸 주축으로 다시 총학생회가 단단하게 설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
총학생회 활동의 경험이, 지금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어?
“도움이 됐지. 예를 들면, 총학생회 안에 단과대 학생회가 있고, 그 아래 과 학생회가 있고… 이런 조직의 체계와 구조를 익히는 것에도 도움이 됐어. 전업 활동가가 아니라 일반 회사 가서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회의에서 회의록 만들고, 공문 한번 써 보고, 모르는 사람들한테 섭외 전화 돌려보고, 외부 업체랑 미팅도 해보고 이런 경험들을 학생 때 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직 엄청난 선배는 아니지만, 우리 젊잖아. 아직 20대, 30대잖아. 졸업 후에 활동가로서 일을 해 보고, 나의 가치나 성향과 맞지 않다 싶으면 다른 길을 찾아도 되는 거지”
대학에서 활동하면서 남은 게 뭐라고 생각해?
“앞으로 내가 이런 활동들을 계속해도 괜찮을지에 대한 판단. 몇 명의 친구들. 잠옷으로 입을 만한 각종 단체 티. (웃음) 그것만 남아도 괜찮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