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0 (금)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늘어난 ‘식집사’, 화분 하나만 들었을 뿐인데

기후위기 시대, 내 방에서 시작하는 작은 생태계
‘식집사’ 트렌드 속, 여전히 존재하는 돌봄의 벽
“식물도 아프면 병원에 가요” 식집사 위한 반려식물 서비스 확산

올봄 서울은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늦은 시기에 대설특보가 발효될 만큼 많은 눈이 내렸고, 3월부터 5월까지는 주말마다 비가 내리는 이례적인 날씨가 7주 연속 이어졌다.

 

 

지난 5일 기상청이 발표한 ‘2025년 봄철 기후특성’에 따르면, 이번 봄은 유례없는 기온 변동성과 이상기후가 뚜렷하게 나타난 계절이었다. 봄철 전국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높았지만, 하루 안팎으로 추위와 더위가 오가는 ‘날씨 널뛰기’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대기 파동의 영향으로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불규칙하게 유입되어 우리나라의 일상적 기후 리듬을 크게 뒤흔들었다.

 

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국립수목원 분석에 따르면, 개나리, 진달래, 개복수초 등 주요 봄꽃의 개화 시기가 해마다 빨라지고 있는데, 이는 생태계 전반의 생식·수정·결실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단순히 일시적인 이상현상이 아니라, 기후위기의 현실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지적한다. 자연의 이상 신호가 반복되는 지금,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어떤 행동으로 응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국민 3명 중 1명, 식물과 함께 산다


최근 몇 년 사이, 2030 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식집사’ 문화가 퍼지며 식물을 돌보는 활동이 새로운 취미로 떠올랐다. ‘식집사’는 식물과 집사를 합친 신조어로, 식물을 가족처럼 돌보며 애정을 쏟는 사람을 일컫는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실내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물을 가꾸는 일이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치유형 취미로 자리 잡았다. SNS를 통해 식물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거나 키우는 팁을 공유하는 콘텐츠가 늘면서, 이 같은 문화는 하나의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확산 중인 식물 돌봄 문화는 여러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3월 발표한 ‘반려식물 인구와 산업 규모 전국 단위 조사’에 따르면, 전국 성인 남녀 500명 중 34%가 반려식물을 기르고 있다고 답했다. 이를 전국 인구에 적용하면 약 1745만 명, 국민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하가 37.2%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산업 규모 역시 약 2조 4000억 원에 이르며, 이 중 실내식물 시장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식물을 돌보는 일은 자신의 공간을 가꾸는 경험인 동시에, 자연이 주는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25 반려식물 관련 인식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78.4%가 “식물 돌봄이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공기 정화나 미세먼지 제거 효과’(44.0%), ‘집 인테리어 효과’(43.7%), ‘집안 분위기 개선’(42.2%) 등이 주요 이유로 꼽혔다.

 

2년차 식집사인 대학생 A 씨는 “키우다 보니 이젠 정말 가족처럼 느껴진다”며 “식물이 잘 자라는 걸 보면 뿌듯하고, 방 안 공기가 좋아지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어느덧 식물을 돌보는 일은 공간을 가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는 생활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식물 돌봄을 손쉽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같은 조사에 따르면, 반려식물을 기르는 데 있어 “식물 관리에 신경 쓸 일이 많을 것 같다”고 응답한 비율은 73.7%에 달했으며, “힘들 것 같다”(57.0%), “귀찮게 느껴질 수 있다”(38.3%)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대학생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식물 돌봄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자취방, 시험 기간의 불규칙한 생활, 방학 중 장기 외출 등은 식물 관리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일부는 식물이 죽는 경험을 반복한 뒤 식물 돌봄을 포기하기도 한다.
 


키워봤자 또 죽을까 봐 고민된다면


부담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초보자도 실패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식물들이 있다. 서울 양재꽃시장 분화온실에서 만난 한 상인은 “스파트필름, 스킨답서스, 고무나무 같은 식물은 햇빛이 부족한 실내에서도 잘 자라고 관리가 쉬워 추천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화분 흙이 단단해지고 물이 스며들지 않으면 분갈이 시기라는 신호”라는 간단한 관리 팁도 덧붙였다.
 

 

식물 선택과 관리에 대한 기본을 배워보고 싶다면, 플랜트 숍에서 운영하는 원데이 클래스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식물 선택부터 분갈이, 물 주기 요령까지 실습 중심으로 구성된 수업은 식물 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일부 매장에선 음료와 함께 진행되는 ‘플랜트 브런치 클래스’도 인기다. 대부분 SNS나 예약 플랫폼을 통해 신청 가능하며, 지역 소규모 매장부터 대형 전문점까지 폭넓게 운영되고 있다.

 

 

필요에 따라 전문가의 손길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서울시에는 반려식물 전문 병원과 클리닉이 운영되고 있으며, 초보자도 사전 예약을 통해 상담과 처치를 받을 수 있다. 반려식물병원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단·상담·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상담은 전화 또는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누리집을 통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운영되는 ‘생활권 클리닉’은 당일 진료 중심의 소규모 시설로, 지역 주민들이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자체 주체의 반려식물 프로그램은 서울뿐 아니라 여러 지역으로 확산 중이다. 수원시는 경기도 최초로 반려식물병원을 개원했으며, 광주광역시는 영구임대아파트를 순회하는 ‘찾아가는 식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양평군은 ‘반려식물 전문가반’을 개설해 자격증을 발급하고, 수료생 일부는 지역 내 교육·상담 활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돌봄에서 공존으로


식물을 돌보는 일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생물다양성 보존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확장될 수 있다. 다양한 식물을 실내에서 기르고 번식시키는 활동은 희귀종이나 멸종 위기종의 보전에 기여하고, 도시의 단일화된 식생 구조를 다채롭게 만든다. 특히 지역 자생 식물이나 토종 식물에 대한 관심은 생태계 회복력 증진과 환경 교육의 매개체로 작용하며, 도심 속 생태 연결망을 지탱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이 된다.

 

작은 화분 하나에서 시작된 돌봄은 자연의 리듬을 체감하게 하고, 타 생명과의 관계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기후위기 시대, 식집사 활동은 누구나 일상 속에서 감각할 수 있는 생태적 삶의 방식이자,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은, 물뿌리개를 드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허부현 기자 (beee0804@naver.com)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