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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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알못 주제에] 이문동은 베지테리언이 살 만한 동네일까

라면, 젤리, 소고기 조미료까지...생각보다 허점 많아
가성비 없는 베지테리언 음식?..."고가를 지불할 바에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


*[알못 주제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기사를 쓰지 말자는 마음에서 기획했습니다. 저희는 어설픈 ‘잘알’보다는 ‘알못’이 되기로 했습니다. 한 번의 경험에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한 번의 취재로도 당사자와 외부인의 어려움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알못 주제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쳤던 것들을 만나고 체험합니다. 이 기사를 통해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조금이나마 알아가며 공감할 수 있도록 저희가 느낀 현장 그대로를 전달하겠습니다.


 

비건 화장품, 비건 베이커리, 비건 레더까지 이른바 ‘비건’ 열풍이 불고 있다. ‘베지테리언(Vegetarian)’하면 엄격한 채식만 추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종류는 다양하다. 베지테리언은 크게 비건(Vegan)과 세미-베지테리언(Semi-Vegetarian)으로 나뉜다.  

 

비건은 동물성 식품(고기, 우유, 달걀 등)을 전혀 먹지 않으며 채소, 과일, 해초 등 식물성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다.

 

세미-베지테리언은 유제품, 달걀, 닭고기, 생선, 육류 섭취의 유무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 학교 비건, 세미-베지테리언 학생들은 서울캠퍼스가 위치한 이문동을 베지테리언으로 살 만한 동네라고 느낄까. 이에 이문동에서 기하늘 기자는 페스코(Pesco) 베지테리언, 김다연 기자는 락토-오보(Lacto-ovo) 베지테리언을 체험해봤다. 

 


고기없는 삶은 험난할까 : 기하늘 기자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되기로 결심한 첫 날 학교 주변 한식당인 ‘오색식당’에 방문했다. 들를 때마다 제육볶음을 택했지만, 오늘은 고려할 수 있는 메뉴가 쭈꾸미 덮밥 하나 뿐이었다. 고를 수 있는 메뉴가 하나라 실망했지만 막상 눈 앞에 차려진 든든한 한 상에 ‘생각보다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이 온 친구가 주문한 만둣국에 후추가루를 뿌리는 모습을 보며, ‘혹시 내가 시킨 쭈꾸미 덮밥에 소고기 조미료가 들어갔으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맛있는 식사였지만 문을 열고 나오는 마지막까지 소고기 조미료의 찝찝함은 지울 수 없었다.

 

 

카페는 식당에 비해 걱정할 점이 적었다. ‘고기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었기에 마음 놓고 라떼 한 잔과 차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은 후 가게 내부를 보다 한 켠에 줄지어 놓여있는 술병들을 볼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는 바(Bar)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다음엔 술을 마시자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메뉴판을 살펴봤는데, 가장 상단에 있는 두 메뉴가 ‘치즈 플래터&육포’와 ‘메론 하몽’이었다. 

 

*플래터는 음식을 담는 큰 그릇으로 치즈 플래터는 치즈가 담겨있는 그릇, 하몽은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 숙성한 음식으로 메론 하몽은 메론과 하몽이 담겨져 나오는 메뉴다.

 

 

괜시리 ‘가게의 대표 메뉴를 못 먹는 건가’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친구에겐 나중에 오자며 아쉬운 한마디를 남겼다.

 

 

11월 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7시간의 연강이 끝난 후 무언가 든든한 걸 먹어야 했다. 따끈하고 뽀얀 국물의 국밥이 먹고싶은 날이었지만, 이를 대체할 메뉴가 필요했다. 사회과학관 건물을 나서자 추운 바람이 밀려왔다. 자연스레 겨울이면 팥칼국수를 찾는 어머니가 생각나 칼국수를 먹기로 했다.

 

외대 후문에 위치한 ‘예향칼국수’에 들렀다. 기본 칼국수부터 바지락, 들깨, 팥, 육개장, 칼만두, 낙지칼국수볶음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만두가 들어간 메뉴는 먹을 수 없었고 왠지 팥이 끌렸다. 처음 먹어보는 메뉴였지만 차가운 속을 달래기엔 제격이었다.

 

 

달달한 팥을 잠재워 줄 시원하고 새콤한 차가 당겼다. 학교에 지하철을 타고 올 때마다 눈여겨보던 ‘길커피’에 방문했다. 외대앞역에 다다를 때 쯤이면 어김없이 ‘COFFEE’라 쓰인 건물이 보인다. 

 

 

베지테리언 식단을 하며 카페는 항상 설레는 장소였다. 어느 곳이든 메뉴 제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차가운 크림슨펀치 차를 시켰다. 호기심에 들어온 카페가 학교 주변 ‘최애’ 카페가 됐다.

 

 

11월 10일. 이날은 상당히 추웠다. 선선하다 싶더니 금세 바람이 차가워졌다. 날이 추우니 칼칼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생선구이가 맛있다던 친구의 한 마디가 떠올라 도서관 뒤에 있는 ‘행복한 한끼’에 들렀다. 불고기, 쭈꾸미, 고등어 구이, 된장찌개⋯. 많은 메뉴가 있었지만 칼칼한 ‘김치고등어조림’이 눈에 들어왔다. 8,000원밖에 안하는 저렴한 가격에 얼어붙은 온몸이 녹아내렸다. 

 

 

저녁에는 약속이 있어 자주 가는 ‘어빌리티커피’를 방문했다. ‘더티 쇼콜라’를 주문했는데 처음 시켜보는 메뉴였다. 맛은 평범한 핫초코였다. 메뉴의 폭이 좁아지니 먹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꾸 모험을 시도했다. 

 

학교 주변에서 식사 메뉴로 페스코 베지테리언 식단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회식 자리였다. 베지테리언 식단을 끝낸 후에 여러 차례 회식 자리를 가졌고, 늘 메뉴는 치킨이나 고기였다. 술 한잔을 곁들이는 회식 자리에 베지테리언은 참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식뿐만 아니라 간식도 큰 문제였다. 기자는 간식거리로 젤리를 한 두봉씩 가방에 넣고 다니는데, 베지테리언 식단을 유지하는 기간에는 젤리를 먹을 수 없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대부분의 젤리는 젤라틴이 식물성 젤라틴이 아닌 돼지고기에서 나온 젤라틴이다. 며칠 내내 가방에만 들어있는 젤리 봉지를 보며 베지테리언은 쉽게 젤리 한 봉지도 사먹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가성비 좋은 컵라면도 마찬가지였다. 지갑이 가벼운 대학생들에게 어디에서든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컵라면은 ‘가성비템’ 중 하나다. 컵라면에는 고기가 들어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육개장 사발면’을 하나 집자마자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컵라면의 은박 뚜껑을 보니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가 모두 들어가 있었다. 제일 안심하고 집었던 라면이 ‘고기 종합 세트’였다. 건강과 환경을 위한 베지테리언 식단은 가성비가 낮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문동 베지테리언으로서 2주간의 여정 : 김다연 기자


2주간 이문동에서 고기를 안 먹겠다고 선언했다. 간헐적 ‘플렉시테리언'의 삶을 살아온 기자를 잘 알고 있던 몇몇 선배들은 어떤 이유도 묻지 않고 묵묵히 함께 샐러드와 요거트를 먹어줬다. 오히려 그들은 덕분에 ‘클린(Clean)식’을 먹는다며 스스로를 뿌듯해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존중하고 싶지만 도대체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 ‘네가 힘이 안 나는 건 고기를 안 먹어서다. 빨리 고기 먹으러 가자…’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왜 그들에게 비거니즘을 하는지 설명해야 했다. 분명 가치 소비를 하겠다며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MZ세대가 사뭇 많아졌다고 들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보이는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은 그렇지 않았다.

 

설명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약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기왕 이문동에 비건 식당이 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 점에서 묵묵히 그들이 먹자는 음식점에 따라가 고기 없는 메뉴를 골라보기로 했다.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스스로 정한 식습관에 물음표가 붙지 않았으면 했는데 다수인 그들에게 맞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 기자가 선택했던 폴로 (Pollo) 베지테리언은 채소, 과일, 유제품, 달걀뿐만 아니라 닭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폴로 베지테리언을 선택했던 이유는 순전히 ‘고단백질 섭취’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닭고기라는 선택지가 들어가면서, 평소 이문동에서 육류 중 닭만 먹던 나의 식습관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직감했다. 

 

주변으로부터 ‘비거니즘 한다면서 왜 닭고기를 먹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 때마다 제법 멋들어진 단어인 ‘폴로 베지테리언'이라는 용어와 함께 단백질 섭취라는 이유를 언급하며 해명해야만 했다.  

 

 

은연중에 베지테리언에 대한 편견이 깔려 있었나. 왜 닭을 먹는 베지테리언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사실 베지테리언이라 함은 보통 식물 기반 식품들을 주로 섭취하되, 성향에 따라 생선 혹은 육류를 곁들일 수 있다. 

 

물론 닭을 섭취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선호도나 식문화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식습관의 다양성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동물성 단백질을 꼭 섭취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채식주의자라면서 고기를 먹는 너는 틀렸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기자 역시도 채식주의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것 자체가 주변 환경을 바꿔나가기 위한 한 발짝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을 인지하고 하루 지나 기자는 폴로 베지테리언이 아닌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으로 살아남기로 했다. 락토-오보는 식습관에서 채소, 과일, 유제품, 달걀만을 섭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문에 위치한 ‘몬스터 플레이스’는 다이어터와 클린식 선호자를 위해 최적화된 식당이다. 각종 샐러드와 요거트를 먹을 수 있다. 평소에도 즐겨 찾던 식당이긴 했지만, 이번 체험만큼은 다양한 조건들을 고려해보며 먹어보기로 했다. 

 

요거트에 몇 가지 과일 토핑을 올리는 순간, 8800원을 결제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에그마요 샐러드에 바질파스타 토핑을 추가하면 11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며 지불하는 금액이라면 가치 소비라며 애써 위안 삼을 수 있겠지만, 단순 ‘비건' 때문에 찾은 곳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긴 힘들 수 있겠다 싶었다. 함께 이곳에서 식사했던 자칭 ‘육식주의자’ 동기들은 ‘고가를 지불할 바에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 날은 자연적인 재료로 만들어 슴슴한 음식을 팔고 있는 ‘자연 밥상'으로 향했다. 평소 라면 고민도 없이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골랐겠지만, 락토-오보를 선택한 이상 다른 선택지로 눈길을 돌려야 했다. 시도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토마토 자연카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비건 표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주문을 넣었다. 이번 체험 덕분에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기존 인스턴트 카레를 먹으며 느끼던 카레의 맛과 식감은 전혀 아니었지만, 묘하게 계속 먹게 되는 슴슴하고 건강한 맛이 좋았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정문 앞 ‘서브웨이’에서도 새로운 메뉴를 시도했다. 무조건 서브웨이에선 페퍼로니와 햄이 추가된 비엠티류의 샌드위치만 선호하던 기자가 육류를 제하려고 하다보니 생각보다 먹을 수 있는 메뉴의 폭이 좁아졌다. 

 

오랜만에 들린 서브웨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먹지 못한다는 점에 살짝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이내 나온 야채가 듬뿍 들어간 에그마요 샌드위치의 맛이 좋아 그 안타까움은 금방 사라졌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잡은 점심 약속에선 최대한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음식점을 선택했다. 정문 근처 한식 뷔페 ‘한미안'으로 향했고, 그날의 메인 메뉴가 제육볶음이었지만 그 외에 음식 선택 폭이 넓어 감자튀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콩자반, 콩나물 등을 한 그릇에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팔만 뻗으면 먹을 수 있는 제육볶음을 왜 선택하지 않았는지, 내가 왜 이런 식습관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지 상기해야 했다.

 

 

물론 모든 음식점 메뉴 선택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친구에게 정문 일식집에서 먹겠다고 다짐한 마제소바엔 간 고기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마제소바를 먹어본 경험이 적어 몰랐다고 변명하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문득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 친구가 ‘친구에게 이곳에서 음식을 먹다 잘게 갈린 이 고기가 닭인지 소인지 물어봤다’고 기자에게 한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메뉴판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식습관이 중시되는 사람들을 위해 할랄이나 비건 인증 마크가 필요하진 않을지 고민했다. 수업 끝나고 급하게 먹은 쌀국수는 소뼈로 고아낸 육수를 사용한다고 적힌 메뉴판의 글을 뒤늦게 확인했다. 야채만 담으면 ‘고추기름 샐러드’일거라며 체험 기간에 먹은 마라샹궈엔 동물성 기름이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내가 알아채지 못한 실수들이 더 있었을 것이다.

 

 2주간 주로 샐러드 카페 ‘몬스터 플레이스’나 ‘자연밥상’을 주로 찾았다. 원래 자주 가는 음식점인 데다 육류를 제한 음식만 선택하면 됐기에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일진 않았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반 식당 음식에 들어가는 조미료나 기름이 동물성임을 간과한다면 비건이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국제학사에 거주 중인 무슬림 튀르키예인 친구는 “음식을 끼니마다 따져보는 것이 힘들어 가끔 신경 쓰지 않고 먹는다”고 했다. 

 

이문동에서의 베지테리언 체험은 좋은 경험이었지만 일반 식당에서 진행한다는 점과 금액 등 고려해야할 사항이 제법 많았다.

 


이문동에서 베지테리언 할만하다? 


비거니즘을 ‘베지테리언 = 샐러드’와 같은 공식으로 접근하면 진입장벽은 터무니없이 높아진다. 김 기자는 폴로에서 락토-오보로 유연하게 바꿔가며 베지테리언의 삶을 맞춰갔다. 김 기자는 ‘2주 간 상대적으로 건강한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속이 편하고 몸이 가벼워진다는 것’을 느꼈으며, ‘비거니즘은 어쩌면 사람을 지키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육류를 피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는 2주간 이문동 베지테리언 여정이 절대 즐거울 리 없었다.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찾아오는 불완전한 비건일지라도 꾸준히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했다. 그 생각을 하며 이문동에서 베지테리언으로 지내보고자 노력했다. 

 

비건 식당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문동에서 완전한 비건으로 살아남기 어려울 진 몰라도 ‘채식을 지향하는 외대생으로 살기엔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완전한 비건 다수가 완전한 비건 1명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김다연 기자(dayeon2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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