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학교 밖에서 만난 교실에서 이어집니다.
한국 교육현장은 청소년 성소수자를 어떻게 고려하고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공식적인 지침이 부재하다. 하여, 문제 상황에 놓인 개인은 국가인권위원회법과 지역별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차별 금지 조항에 기대 홀로 싸워야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최근 국회는 그나마 있던 학생인권조례마저 폐지를 추진 중이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처음 제정해 2011년 시행했으며 현재 경기도와 서울을 비롯한 7개 교육청에서 실시 중이다. 그 취지는 학생 인권을 보장해 학생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게 하자는 것으로, 성별·종교·가족 형태·성별 정체성·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학생이 폭력과 위험에서 벗어날 권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경기도는 학생인권조례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폐지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를 추진했던 국민의힘 소속 서성란 경기도의원은 구체적으로 “남성과 여성 외의 사회적 젠더와 동성애를 옹호하는 내용을 포괄하는 조례가 문제”라고 말했다. 충남도의회 역시, 같은 달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원안 가결했다. 이후 열린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폐지 조례안이 부결되긴 했지만, 충남도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당론으로 삼고 지난달 20일, 또다시 폐지안을 발의했다. 이들이 폐지를 주장하는 주요 논리 역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잘못된 인권개념 중 하나이고, 성소수자 학생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학교와 청소년 성소수자의 관계를 고민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하는 대안적 공동체가 있다. 정치단체인 ‘노동·정치·사람’과 트랜스젠더 청소년 인권모임 ‘튤립연대’가 함께 주최하고 대학생들이 주체로 운영 중인 학교 밖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학교, ‘무지개 교실’이다. 무지개 교실의 구성원은 △탱이 △뺑이 △쟁이로, 교사와 학생 그리고 행정 관계자 등의 위계로 이뤄진 기존 학교의 호명이 아닌 평등에 기반한 명명을 사용한다.
담임 교사를 속되게 부르는 ‘담탱이’에서 착안한 ‘탱이’라는 표현은 교과목 정보를 전달하는 이들을 가리키며 팀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뺑이치다’는 은어에서 따와 ‘뺑이’라 한다. 그리고 무지개 교실을 통해 교과목 수업을 수강하고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는 이들은 ‘쟁이’라 한다. 학업 활동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접미사 ‘쟁이’를 쓴 것이다. 이들이 상상하는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이 제안하는 방향성은 무엇일까. 건대알리가 지난달 16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이들의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네 명의 탱이와 한 명의 쟁이에게 그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염된 기억을 다시 구성하는 공동체
Q. 무지개 교실과 기존 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익명(쟁이) :
제일 큰 건 자유로움인 것 같다. 사실 자유로움이 전부기도 한데,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한 번도 말해보지 못했던, 속에만 담아뒀던 것들을 처음으로 털어놨고, ‘나’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또 듣고 싶지 않은 과목이 있으면 와서 개인 활동을 하거나, 지각해도 괜찮다. 그리고 난 채식을 하고 있어서 항상 학교 급식 메뉴가 버거웠는데, 무지개 교실은 급식 메뉴도 자신의 식생활에 필요한 조건이 있으면 요구하고 선택할 수 있다. 기존 학교보다 ‘내 의견에 경청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도 큰 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걸 느낀다.
꽁치(도덕과 탱이) :
어떤 학교에서든, 학생들이 지각하거나 과제를 하지 않거나 그런 일들은 종종 있다. 그런데 보통 학교가 ‘해야 하는 걸 왜 하지 않는지’ (학생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쟁이가 탱이의 과제나 제시에 응하지 않을 때, “우리가 잘못 설계했다”고 받아들인다. 우리가 더 그들이 빨리 오고 싶고,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교육과 교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고 반성한다. 쟁이들이 지각했다면, 그건 우리의 잘못인 셈이다. 그런 생각들을 탱이들 간에 많이 공유하고 있다.
보통의 학교라면, 그런 학생들을 내버려 둘 거다. ‘문제아’가 보이면 조금 배려해주고, 소위 ‘문제 행동’을 반복한다면, “이렇게까지 배려해줘도”라면서 더 이상의 교육을 포기해버리는 식이다. 그런데 사실, 그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관점에서 시스템을 검증하고 고치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그런 점들이 기존 학교와 무지개 교실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Q. 그 차이들이 구성원들에게 무지개 교실을 어떤 대안적 공동체로 의미화할까.
준(사회과 탱이) :
사실 성소수자를 포함해서 기존 공동체에서 소외된 경험을 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주최하는) 피크닉 같은 행사를 매우 싫어한다. 나 역시 학교에서 뭔가를 한다고 하면 공부하겠다는 핑계로 독서실에 가거나 도망쳤고, (그 기억은)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번 설에 무지개 교실에서 떡국 모임을 하면서 “이런게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서사를 가지게 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새롭게 전유하고,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기존에 오염됐던 것들을 다시 만들어 나가는 일들을 무지개 교실에서 하고 있다.
가람(국어과 탱이) :
솔직히 성소수자들에게 ‘명절’이란 행사는 내가 아닌 것을 가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가면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억지로 웃으면서 하루를 버티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 분명 반갑고 즐거운 마음을 느끼면서도 이 공동체에 진짜 ‘나’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멜랑콜리를 느낀다. 그런데 무지개 교실이 진행했던 떡국 모임은 같이 맛있는 걸 먹고 맘 편하게 웃고 뮤지컬을 보면서 설에 느꼈던 쓸쓸함과 같은 감정이 새롭게 구성된 경험이었다.
익명 :
나 역시 떡국 모임에 감동했다. 무지개 교실 내에서도 채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학교에서 학생 한 명을 위해 급식에 편의를 봐주진 않은데, 무지개 교실은 내가 행사에 참여한다고 하자 나 한 사람을 위해 비건 메뉴 밀키트로 식사를 준비해줬다. 집에서도 항상 육수로 떡국을 끓여서 가족 공동체에서도 소외된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날 무지개 교실에서 진짜 가족이 돼 함께 한 기분이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발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Q. 한편, 지난해 여러 지자체에선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했고, 특히 충남도의회는 또다시 폐지안 발의를 예고한 상황이다(지난달 16일 기준). 청소년 성소수자를 보호할 제도의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대안적 공동체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무지개 교실 구성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
꽁치 :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다고 해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자기만의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교과서 없이도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어 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반드시 역사를 증언할 것이다.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에 관심 없고, (학생들의 삶에) 실질적인 타격이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현재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방에선 이분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뉴스를 보고 있다. 진짜 문제는 나중에라도 이 이야기를 엮어내고, 증언하고 집합적인 목소리를 제기하려는 움직임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 청소년인 분들이 나중에 20대가 되고, 대학에 들어가거나 어떤 위치에서 나름의 증언을 하게 될 텐데, ‘그때 나에게 학생인권조례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담론적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법이 보루”라는 말은 너무 나이브(naive)하다. 진짜 사회적인 보루로서 마지막은 사회운동과 커뮤니티다. ‘학생인권조례가 무너지면,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삶이 무너진다’고 할 때 이건 국가 사회를 지적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운동과 커뮤니티가 스스로 반성해야 하는 문제기도 하다. 국가가 국가 제도를 만들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서로 어려운 조건에 있을 때 (서로의) 보루가 돼주고 연대하고 실천하면서 그나마 숨통 열어줄 공간이 돼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성소수자 운동 가운데, 성소수자 청소년들 혹은 학교 밖 청소년 성소수자들 그리고 지방 도시에 있는 성소수자들이 각개 전투할 때, 성소수자 운동은 뭘 했냐는 거다. (이제) 커뮤니티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할 때다. 정말 시작해야 하는 건, 법을 지키는 투쟁뿐만 아니라 법이 없어도 아래서부터 공부와 실천을 수행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건설하는 일이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움직임이 강해지기 전에 우리가 현장에 기반한 모델들을 제시했다면,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준 :
어떤 분들은 ‘명목화’하는 것에 주목한다. ‘혼인평등법 제정하자’, ‘가시화하자’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말하기도 하는데, 정작 공동체 내부는 썩어 터지고 분리되고 유리되는 문제들은 해결하지 못한 채 명목적인 것만 달성하자고 한다면, 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를 염두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돼선 안 되겠지만, 그 전에 폐지돼선 안 될 이유를 정립하고 그런 여론을 형성할 기반을 마련했어야 한다.
가람 :
꽁치가 말한 것처럼, 보통 ‘인권 물’ 먹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 등의 사안에 대해 “반동적이다”라는 평가를 하곤 한다. “나중엔 결국 ‘옳게’ 되겠지만, 지금 잠시 주춤할 뿐”이라고 말하는데 이때 옳은 방향이라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은 많이 달라지는데, ‘이거 정말 안 될 일이지’하고 말하는 것에 그치는 모습이 답답하다.
Q. 그렇다면, 무지개 교실이 그리는 청사진이 궁금하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상상해야 할 방향성은 무엇일까.
조현(수학과 탱이) :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이해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난 디나이얼(스스로 거부하고 부정함) 기간이 굉장히 길었기에 ‘난 어쩌다 이렇게 됐지’, ‘성장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지’를 많이 고민했는데 되게 지치는 일이었다. 그런 소모적인 활동에 더 이상 시간을 쓰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민하지 않아도 긍정하는 사회, 그저 존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가람 :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를 포괄해서 늘 생각하는 건데, 우리는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계속 말하고 변론해야 했다. 솔직히 “난 문제가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일은 그 해명이 없으면 이름 없이 바닥까지 추락하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문제가 있더라도 어떻게 할 건데”가 가능한, (내가 가진 ‘문제’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완충지대가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나는 (나에 대해) 설명하길 원하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지만 이게 유의미하단 걸 말하고 싶고 엮어내려 한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사회에 비해 너무 작아서 아무것도 안 되고, 만약에 ‘변명’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끼리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들이 결국 초라해 보이게 될지라도 ‘괜찮다’는 감각을 나누고 싶다. 그때 우리가 같이 웃었고, 행복하게 지냈고, 맛있는 걸 먹었고 안 죽고 살았기에 괜찮다는 걸 공유하고 싶다. 서로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두고.
그래서 “너는 여기 있으면 안돼”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이 문제고 아프고 짐짝처럼 느껴지더라도 “너는 여기 있어도 돼”라는 말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고, 그걸 모든 사회 구성원이 느끼길 바란다.
꽁치 :
학교 밖이나 안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항상 “넌 뭐가 문제니? 뭐가 필요하니?”라는 질문에 답하길 요구받는다. 한편으로 그들은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와 자신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질문들을 삶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이 던지는 질문에 한 번도 응답해주지 않고 따져 묻기만 했다. 무지개 교실은 그들이 삶으로 던지는 그런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지라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다.
지금 변화를 요구하는 담론들은 질문은 없고 ‘대답’만 있다. 그런 말만 유효하게 남아서 누구를 타도해야 한다거나,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멈춰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비롯해 어떤 정체성으로 결집한 우리는 과연 평등하게 존재하고 있는가, 누군가 과잉대표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 방향성을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우리에겐 질문을 받기만 했던 사람들이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무지개 교실은 그런 공간으로서 사회 변화를 향해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길 바란다.
쟁이가 탱이가 되는 날, 자긍심을 상상하며
Q. 무지개 교실이 오는 4월에 모든 수업을 마친다고 들었다. 2기 운영에 관해 논의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앞으로의 비전이 있는가.
가람 :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과 공동법률사무소 ‘이채’에서 2022년, ‘포용적인 학교 환경을 위한 법제도 개선연구’라는 제목의 연구 과제를 통해 학교 시설과 학교운영 그리고 교과 활동에 있어서 학생의 성별 정체성과 성별 표현 등이 존중돼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이는 해외 여러 나라가 성소수자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했는데, 언젠가 한국에서도 그런 기록물을 모으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 기록에 무지개 교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나중에 ‘증언’을 할 때, 증언도 해야겠지만 ‘자긍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지개 교실이 그런 기반이 되길 바란다.
준 :
(구체적인) 2기 운영에 관해선 현재 논의 중이긴 한데, 아무래도 교실의 형태보단 멘토-멘티의 방향으로 가게 될 것 같다. 그런 부분은 좀 더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4월에 활동을 마무리하고 ‘기록’하면서 우리의 방향을 더 탐색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결국은 무지개 교실이 열린 공간이 됐으면 한다. 기존 성소수자 운동이나 대학 내 운동에서도 ‘정상성’은 나타난다. 자기들만의 네트워크에서 굉장히 화목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이건 헤테로 사회가 말하는 ‘정상 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이태원이 게이의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못생기고 뚱뚱한 사람이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만드는 그런 공동체적 목표도 ‘성소수자’의 의미와 목표를 새긴 후 여기에 오라고 초대하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로서 아픔과 고통을 겪은 사람이라면 이 열린 공간에 와서 목표를 이루려고 같이 노력하는 현장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새로운 정상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꽁치 :
언젠가 쟁이 한 분이 “쟁이도 탱이가 될 수 있나요”라고 여쭤보신 적이 있다. 그게 뭔가 마음을 울렸다. 지금 학교 밖에 있는 분들, 그러니까 우리와 탱이-쟁이로 만난 분들이 대학에 가든 가지 않든, 이 공동체의 주체로서 다른 성소수자 학생들과 만나고 나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상상해볼 때, 그런 다짐들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공동체로서 우리가 이번에 상상한 것은 기존 학교와 관련된 실천인 ‘교실’의 형태였다.
무지개 교실은 코로나 이후 더 폐쇄적이고 분리돼 가는 학교라는 공간 자체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계속 부대껴야 하고, ‘낯선 이들’의 존재를 알고 인식할 수 있는 학교를 건설해야 한다. 기존의 학교가 소수자나 ‘문제아’를 강압적인 방식으로 통합하려고 했다면, 이젠 분리하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가운데 우리가 공존하며 이룩할 수 있는 평등과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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