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기사는 '외대알리 지면 40호: 비틀어 보자'에 실린 기사로, 2025년 8월에 작성되었습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실시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표심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24%,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36.9%,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37.2%로 나타났다.
다른 세대에 비해 20대 남성 유권자층에서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김문수·이준석 두 보수 성향 후보에게 74% 이상의 지지가 몰리면서, 20대 남성의 정치 성향이 다른 세대보다 보수화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가에서도 중요한 논의거리로 떠올랐다. 외대알리는 교내 학생 사회에서 젠더 갈등, 정치 불신, 경제적 불안 등 다양한 요인이 뒤섞인 정치 성향 변화에 주목했다. 특히 20대 남성 보수화 현상이 구체적인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다.
이에 외대알리는 보수 성향을 지닌 한국외대 남학우 네 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보수를 지지하게 된 개인적 서사와 이유를 들어봤다.
1. 군대가 남긴 회의감
박상우 학우(러시아·20, 26세)는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을 ‘강자를 향해 맞서는 정치인과 집단’으로 여기며 열렬히 지지했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군 복무 중 북한을 주적이라 말하지 못했던 대통령을 경험한 후, 그의 정치적 좌표는 크게 바뀌었다.
그는 병사 대표 제도인 ‘으뜸병사’로 활동하면서, 군 정책의 실행과 의사 결정 과정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박 학우는 “군의 교범은 총구를 북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는데, 정작 군 통수권자는 북한에 무언가를 퍼주려 했다”며 “거기서 회의감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익명 기재를 요구한 A 학우 역시 군 복무 경험이 정치적 전환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을 주적이라 말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보며 “나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GOP에 있는가”를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군대를 가볍게 여기고, ‘군캉스’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모두 국가 안보와 병역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박 학우는 “군 복무 경험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나 미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며, A 학우는 “우리나라가 굳건히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가 안보에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청년들의 인식 변화에 대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성민 교수(이하 한 교수)는 "그런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에 기반해 보면, 군인을 가장 많이 배려한 정부는 오히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였다”고 설명했다. 복무 기간 단축과 병사 월급 인상 등 실질적인 개선 조치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특히 “청년들이 군 복무 중 느끼는 고립감과 사회로부터의 단절, 억울함이 복무 이후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나는 군에서 희생했는데, 사회가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정부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라는 국가 전체와 김정은 정권을 구분하지 못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북한 정권을 포용한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과의 교류와 평화 정착을 목적으로 한 접근을 시도한 것”이라 설명했다.
2. 젠더·소수자 이슈에서 비롯된 반감
이들에게 보수 성향을 형성하게 한 또 다른 요인은 젠더·소수자 이슈였다.
박 학우는 “문재인 정권의 복지 정책들은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전제했고, 남성의 목소리는 배제됐다”며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말은 오히려 그것이 여성에 대한 무례라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A 학우 역시 “여성 가점이나 할당제에 불공정함을 느꼈다”며 “이는 평등을 넘어선 역차별이고, 오히려 ‘여성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닌가’란 의문을 가졌다”고 보수화의 이유를 설명했다.
최병찬 학우(중국외교통상·25, 20세)는 “페미니즘, 성소수자 인권 등의 이슈는 진지한 사유와 토론이 필요한 주제지만, 이에 찬성하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차별주의자’로 낙인찍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또한 “생각하는 것보다 올바른 태도를 증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정치는 위선”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익명의 B 학우는 진보가 강조하는 젠더, 소수자 담론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고 답했다. 그는 “성평등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성평등 정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기성세대의 성차별 문제는 침묵하면서, 성차별 정도가 덜한 청년 세대에만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성차별의 근본적인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소수자 정책에 있어서도 소수자를 위한 적극적 우대 정책보다는, 이들을 차별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 강화나 인식 개선 위주의 방어적 정책 위주로 실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우들의 발언은 진보 진영의 성평등 및 소수자 정책에 대한 청년 세대의 반감을 보여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기동 교수(이하 김 교수)는 “과거에는 남성 중심 사회였기에 여성 우대 정책이 필요했지만, 청년 세대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해 기성세대의 몫을 대신 책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년들의 반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젠더 정체성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대화와 타협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감정의 증폭을 경계했다.
3. 민주당에 느낀 실망감
이들이 스스로를 보수로 규정하는 이유는 ‘이념 지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 진보 진영에 대한 실망과 회의가 보수화의 원인이라는 주장이었다.
박 학우는 “더불어민주당은 더 이상 깨끗한 정당이 아니며, 실망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작년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총학생회실 캐비닛에서 발견한 전대협 문건, 인공기 사진 등은 그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때부터 “문재인 정권 임종석 비서실장과 같은 NL 계열들이 유입된 민주당에 확신이 사라졌다”고 답했다.
최 학우는 “오늘날 진보가 평등의 개념을 확장 해석하면서,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외교 정책에 있어서 그는 “보수 진영의 반중, 친미 노선을 지지하며 중국은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져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익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여기는 것 자체가 국제 정치 감각의 부재”라고 답했다.
B 학우 역시 “보수 진영의 어젠다가 마음에 들었다기보다, 진보 진영의 어젠다가 맞지 않다고 느꼈다”며 “보수화되었다기보다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고 답했다. 그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북한과의 화해 및 협력 증진 같은 진보 진영의 외교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보았다. 또한 “균형 재정 정책을 통한 부채 비율 유지가 중요하고, 경제적 약자의 자립을 위한 생산적 복지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 학우의 말은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정책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상황을 상징한다. A 학우 또한 “보편적 복지보다 선별적 복지를 통한 빈곤층 위주의 개선이 맞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는 “한국 사회에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영향으로, 가난하거나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 근면하지 못하다는 무의식적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4. 선관위에 쌓인 의심, 비상계엄은 판단 유보
A 학우는 ‘비상계엄’을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언급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지금 국민과 반국가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노총 간부의 간첩 혐의나 군 기밀 접근 시도 같은 사건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나라에 부정선거가 없을 거라고 단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며 “선관위의 소극적 태도와 민감한 반응은 큰 실망을 안겼다”고 말했다.
A 학우가 언급한 간첩 혐의 및 군 기밀 유출 시도는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일탈에 불과하며, 비상계엄과 같은 극단적 조치를 정당화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교수는 “비상계엄을 통한 정권 유지 시도는 독재자의 방식”이라며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허용하지만,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부정선거 주장에 대해 “사전투표와 본 투표 간 차이는 표본 구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를 근거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건 사실상 ‘종교적 믿음’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부정선거론은 팩트로 입증되지 않은 miss-information이며,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이러한 주장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가 협상이 아닌 ‘전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위험도 경고했다.
5. 정치 성향,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박 학우는 “모든 20대 남성들이 극우라는 프레임은 부당하다. 진보도, 보수도 문제 있으면 문제 있다고 말할 뿐”이라 단언했다. 이에 “속 시원하게 말하되,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 학우도 “정치가 점점 종교처럼 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정치 성향을 바꾸는 사람을 배신자라 부르고, 어느 편이든 의심하는 사람을 회색분자라 매도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유 위에서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정치에 책임질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A 학우는 “이제 이념보다 중요한 건 국가 안보와 경제력, 그리고 상호 존중이다”라며 “된장남, 김치녀, 한남 등의 혐오 표현 사용을 멈추고 서로 배려하며 지내는 사회가 되면 좋을 것”이라 말했다.
B 학우는 진보 커뮤니티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신성시하고 타인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며 되려 거부감을 느낀 경험을 말했다. 동시에 그는 “보수 커뮤니티에서 등장하는 혐오 표현들도 보수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점은, 네 학우 모두 보수 성향이 고정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박 학우는 “언제든 정치 성향이 바뀔 수 있다. 지지하던 계층에서 실망하면 얼마든지 변한다”고 밝혔다. 최 학우는 “세상이 변하고, 내 삶이 변하는데, 정치적 견해는 왜 바뀌면 안 되냐”며 “내일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쪽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정치 성향 변화에 대해 김 교수는 청년들이 삶의 경험과 주변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는 것이라 설명했다. “어떤 정치 세력이든 당사자의 기대와 다를 때, 또는 개인의 상황이 변할 때 정치적 견해도 변할 수 있다”며, “그 과정 자체가 건강한 사회 변화의 일부”라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요즘 청년들이 온라인과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지만, 때로는 특정 시각에만 노출돼 균형 잡힌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점차 더 성숙한 정치적 감각을 키워갈 수 있다”며 희망적인 시선을 보였다.
특히 청년들이 자신을 ‘중도’나 ‘합리적’으로 여기며, 정해진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 대해 김 교수는 “이것은 개인의 정치적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 세대가 정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변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원 기자(leejaewon1041@gmail.com)
조현승 기자(moses325975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