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3 (월)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피니언] 사람을 붙잡는 문학,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

문학은 단순히 재미와 오락을 위해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야... 우리가 지나쳐온 사회 문제를 새롭게 비추며 생각해 볼 기회 제공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파급력 있는 신간 도서 출간이 많지 않은 가운데서도 두 달째 전년 동월 대비 매출액이 소폭 상승했으며 문학 도서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어”
어쩌면 문학이 세상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 [외-피니언]은 ‘외대’와 ‘오피니언’의 합성어로, 외대알리 기자들의 오피니언 코너입니다. 학생 사회를 넘어 우리 사회의 사안을 바라보며, 솔직하고 당돌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커커스는 협상에 성공할 거라고 자신만만해하지 않았던가. 승리를 확신하는 자가 자신을 포기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그걸 패배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패배의 반대편에는 승리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회사는 승리라는 단어를 거머쥐기에 정당하지 못했다. 커커스가 바랐던 것은 노동의 대가였고, 회사가 쥐고 있던 것은 커커스의 목숨이었다. 정당한 전투가 아니었다. 무기가 달랐고, 걸어둔 것이 달랐다. 회사는 승리하지 않았다. 커커스는 패배한 게 아니라, 밟혔다.

 

설치해둔 전선에서 난데없이 스파크가 튀어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삶을 확장한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하겠다는 건 예측 불허의 위험이 가득한 어둠을 헤집는 일인 것이다. 하루에도 수차례 사고가 발생했다. 비록 사고는 숫자로 집계되지만, 그 숫자에도 이름과 얼굴이 있고 웃음과 내일이 있었다는 걸 사람들은 자주 잊지만 말이다.

천선란, <이끼숲> 中

 

 

가볍게 즐기자는 마음에서 꺼내든 SF 소설 <이끼숲>에서 마주한 문장이다. 천선란의 문장은 지난 며칠 동안 마주한 다양한 기사들이 떠오르게 했다. 산업재해와 노란봉투법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 어쩔 줄 몰라 했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노동과 관련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을 보고 때론 징그럽다 말하곤 한다. 우리가 ‘징그럽다’ 말한 이들이 바랐던 것은 사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였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마음을 댄 쪽은 그들의 목숨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기울어진 전장에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강한 편을 응원해 왔다. 나 역시 위태로운 자리에 간신히 서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목숨을 쥔 듯 어리석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는 했다. 인간은 같은 자리에 서보지 않으면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다. 정당하지 않은 싸움이었음을 직접 밟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연대조차 쓸데없는 참견이나 간섭, 심지어 선동이라 치부되는 시대다.

 

<이끼숲>을 읽고 나니 매일 되풀이되는 사고를 두고 ‘일하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그 숫자 하나하나에도 이름과 얼굴이, 웃음과 내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지. 그리고 모레에는 그 숫자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지. 결국 지금, 누가 누구를 향해 ‘징그럽다’라고 말하고 있는 거냐고.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문학을 읽었다. 문학은 언제나 그 나름의 깨달음을 선사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를 찾아 읽은 SF 소설에서도, 로맨스 소설에서도 어디에서나 새로운 마음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소설가 장정일은 “삶은 언제나 문학보다 넓고 깊죠. 문학을 삶의 동의어로 여기는 철없는 댄디가 아니라면 누구나 수긍할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 삶은 얇디 얇았는지 언제나 문학은 내 삶보다 깊었고, 오히려 문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길렀다.

모든 세상 사람이 <이끼숲>과 <9번의 일> 같은 작품을 읽는다면 노동을 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을 말하는 이들에게 박완서의 작품을 던져 준다면 어떨까.

 

 


문학은 단순 유희를 찾아 읽는 도서가 아니야


문학은 단순히 재미와 오락을 위해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다. 문학은 우리가 지나쳐 온 사회 문제를 새롭게 비추며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의 갈등과 선택은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압축해 보여주기도 한다. 독자는 그런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신이 속한 사회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예컨대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노동의 고통, 불합리한 차별과 불평등이 문학을 통해 선명해진다. 기사로 접할 때는 가볍게 넘긴 주제도 문학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온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사회 문제를 단순한 ‘타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과제’로 체감하게 된다. 때론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현실보다 더 깊이 사회 문제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문학은 단순한 위로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성찰의 매개체가 된다. 독자는 작품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고,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맥락을 연결 짓게 된다. 이는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가 강조한 ‘사회학적 상상력’과도 맞닿아 있다. 이렇게 문학은 단순 오락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제 출판 시장에서 문학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이어지는 문학의 강세


지난 2월부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매달 ‘화제의 책 200선’을 발표하고 있다. 공개되는 자료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수능 특강이 출간되는 2월과 대선이 있던 5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위권에 문학 분야 도서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통계를 공개한 이래로, 특정 수험서를 제외하고는 문학 분야 도서가 꾸준히 높은 판매량을 보이며 보도 자료에서도 매달 ‘문학의 강세’를 언급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지난 5월, 출간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다시 높은 판매량을 보이는 역주행 도서로 주목받고 있는 양귀자 작가의 <모순>과 정대건 작가의 <급류>, 구병모 작가의 <파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여전히 20위 권에 자리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6월과 7월 역시 전반적인 문학서 강세 분위기를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서울국제도서전의 흥행과 텍스트힙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장기적으로 출판시장이 활력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밝혔다.

 

이어서 지난달에는 ‘파급력 있는 신간 도서 출간이 많지 않은 가운데서도 두 달째 전년 동월 대비 매출액이 소폭 상승했으며 문학 도서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언급하며 문학 강세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집계를 시작한 이래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는 도서 <모순>, <청춘의 독서>, <스토너>는 흔히 말하는 ‘역주행’ 도서다. ‘삶의 불합리와 좌절 속에서도 개인이 자기 삶의 의미를 새롭게 모색하고, 사회적 통념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려는 인간의 의지’라는 공통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양귀자의 <모순>은 ‘삶은 참 모순투성이야. 그러나 그 모순이 우리를 살게 하지’라는 구절을 통해 모순 자체가 인간 존재의 조건이자 삶을 견디게 하는 힘임을 보여준다. <청춘의 독서>에서 유시민은 자신이 인상 깊게 읽은 고전 열다섯 가지를 소개하며 청춘(독자)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함과 동시에 위대한 유산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

 

이어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에서는 일상에 있을법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우며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와 같은 대목을 통해 위로를 전한다.

 

이들 책이 독자들의 마음을 오래도록 사로잡는 이유는 분명하다. <모순>과 <스토너>는 삶의 모순 속에서도 인간이 존엄을 지키며 위로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청춘의 독서>는 고전을 통해 오늘날 사회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즉, 문학은 우리에게 위로와 성찰을 선사함과 동시에 한 개인이 사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문학은 우리를 구한다


대학생 독서 모임에 참여 중인 한 대학생은 양귀자의 <모순>을 언급하며 “'이십 대라는 나이는 무언가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내가 살아가는 시기와 맞닿아 있어 그런 거 같다”고 말했다.

 

“나는 이 시기에 맞는 방향이 무엇일지 고민하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접하고 나서는 내 스스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부피가 넓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게 되었다” 같은 깨달음을 전하기도 했다.

 

또한 “살다 보면 나만 괴로운 것 같고, 나만 다른 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소설에서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인물을 만났을 때,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다. 문학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주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준다고 생각한다” 언급했다. 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지탱하고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힘은 곧 사회를 유지하고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문학은 직접적으로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함으로써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이끼숲> 작가의 말에서 천선란은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끝내 구하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뚜렷하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 말한다.

 

결국 문학은 우리를 구한다. 삶의 늪에 빠진 나를 구하고, 세상을 바른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나를 구한다. 어쩌면 문학이 세상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허구의 세상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니.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세상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돌아 왔다. 이번 가을에는 문학을 한 권 꺼내 읽어보는 건 어떨까.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문학 한 권이 나를, 어쩌면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

 

 

채다송 기자 (shuangyun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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