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9 (수)

대학알리

[기고] 현실주의자 맘다니의 승리

진보당 인천청년진보당 준비위원장 이준해

  

 

2025년 11월 4일 이민자, 무슬림, 사회주의자인 34세의 젊은 정치인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1892년 이후 최연소 뉴욕 시장에 당선되었다. 맘다니의 승리는 무엇 덕분일까. 선명한 민주사회주의 이념 덕분일까, 아니면 고물가에 지친 뉴욕 시민에게 생활 밀착형 민생 공약이 먹혀들었기 덕분일까.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공약을 통해 확보한 청년층 중심의 자원봉사자와 유권자들이었다.

 

맘다니의 주요 공약 가운데 ‘비현실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임대료 동결, 버스 요금 폐지, 소상공인 부담 완화 같은 공약은 언뜻 보면 거대한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급진적 정책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공약들의 실제 설계는 철저히 뉴욕 시장이 행사할 수 있는 법적, 행정적 권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무상 아이돌봄, 최저임금 인상처럼 뉴욕 주지사와 주 의회의 협조가 필요한 것들도 있다. (현재 뉴욕 주지사와 주 의회 다수당은 민주당이다.) 그럼에도 맘다니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초자치단체장’으로 불리는 뉴욕 시장의 권한이 정확히 어디까지 미치는지 세밀하게 짚은 뒤, 그 안에서 ‘시장이 당선 직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 임기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공약을 구성했다.

 

유권자들에게는 이것이 신뢰로 이어졌다. ‘당선되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주면서 상대 후보가 ‘비현실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일 여지를 좁힌 것이다. 실제로 맘다니 공약을 비판한 이들조차 ‘실현 불가능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실현되면 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미 대중이 열광하는 공약이라면 이런 비판은 선거 결과를 뒤집을 힘을 갖기 어렵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많은 사람들이 맘다니를 떠올릴 때 함께 떠올리는 ‘임대료 동결’ 공약이다. 뉴욕시에는 이미 전체 임대주택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100만 채의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가 존재하고, 이들의 임대료 인상률은 매년 ‘임대료 가이드라인 위원회’(RGB)가 정한다. 시장은 이 9명의 위원 전원을 임명하며, 위원회는 임대료를 동결할 수 있는 재량을 가진다.

 

맘다니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새로운 법은 하나도 필요 없고, 제도는 이미 있고, 뉴욕 시장이 권한을 쥐고 있는데도 에릭 애덤스 현 시장이 그 권한을 쓰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맘다니의 ‘임대료 동결’은  ‘뉴욕의 모든 집세를 동결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를 활용해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의 임대료를 동결하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계획이다.

 

무료 버스 공약도 같은 맥락에 있다. 맘다니의 공약 이름은 Free buses(무료 버스)가 아니라 Fast, fare free buses(빠른 무료 버스)다. 사람들이 흔히 기억하는 것은 ‘버스 무료화’이지만 맘다니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사실 ‘FAST’, 즉 더 빠르고 편리한 버스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행정 조치였다.

 

버스 요금 무료화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부자 증세를 하는 문제는 주 의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버스를 더 빠르게 만들기 위해 버스 전용차로를 확장하고, 버스 우선 신호를 늘리고, 불법 주정차를 막기 위한 전용 하역 구역을 만들고, 카메라 단속을 강화하는 일들은 굳이 주 의회의 입법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시장과 시정부가 가진 행정 권한만으로 추진 가능한 일이다.

 

이미 뉴욕시에는 일정 규모의 버스 전용차로를 확보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있다. 그동안 시장과 시정부가 이를 소극적으로 집행해 왔을 뿐이다. 맘다니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있는 법을 제대로 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맘다니의 유튜브 선거 영상 ‘We owe 34th Street a dedicated Busway. So where is it?’는 이런 접근법을 압축한 것이다. 1분 44초짜리 영상에서 그는 이미 다른 구역에서 성공한 버스 전용차로 사례를 먼저 보여주며 자신이 제안하는 정책이 ‘실험’이 아니라 검증된 모델이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이어 연방 교통부와 주민이 선출한 커뮤니티 보드가 이미 34번가 버스 전용차로를 권고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제안이 전문가와 주민 의견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 다음에는 왜 이 권고가 아직도 실행되지 않았는지를 짚는다. 에릭 애덤스 현직 시장이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주제는 자연스럽게 현직 시장의 무능을 겨냥한 정치적 쟁점으로 전환된다.

 

마지막으로 맘다니는 자신이 시장이 되면 어떤 절차로 이 정책을 채택하고, 언제까지 실행하겠는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짧은 영상 하나에 성공 사례, 정당성, 책임 소재, 실행 계획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영상은 건조한 정책 설명이 아니라 생생한 정치 서사다. 이미 성공한 사례, 권고했지만 묵살당한 전문가와 주민, 실행하지 않은 현 시장, 그리고 당선되면 실행할 후보라는 네 요소만으로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 이야기 속에서 뉴욕 시민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누구를 시장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을 유튜브 알고리즘에 맞는 길이와 리듬으로 편집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Small Business, Big Priority’ 영상도 같은 문법을 따른다. 여기서 맘다니는 소상공인을 살리겠다는 추상적인 구호를 반복하지 않는다. 과태료와 각종 행정 수수료를 절반으로 줄이고,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1:1 법률·재정 컨설팅 같은 실질적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내건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결국 시민들이 체감하는 골목 상점 물가를 낮추는 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뉴욕의 작은 식당과 가게들을 진짜로 옥죄는 문제는 ‘경기가 안 좋아서’가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허가 서류, 알아듣기 힘든 행정 언어, 언제 끝날지 모를 인허가 지연 속에서 임대료와 인건비가 새어나가는 구조다. 맘다니는 바로 이 현실을 겨냥해, 관료주의와 허가 비용, 과태료 부담을 줄이는 것이 곧 ‘장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길이라고 말한다. 실제 골목 상인들이 느끼는 짜증과 불안을 언어로 정확히 포착해, 그것을 자신의 핵심 메시지인 생활비 문제와 일관되게 연결한 것이다.

 

이런 메시지 구조가 있었기에 맘다니 캠페인은 대규모 자원봉사자 군단을 조직할 수 있었다. 이중 특히 주목할 만한 이들은 Z세대 자원봉사자들이다. 맘다니에게 투표할 수 있는 연령도 아직 되지 않은 16세의 아키 벤야민은 맘다니의 당선을 위해 거리를 누빈 100명의 고등학생 자원봉사단의 일원이었다. 그는 “공동체의 느낌, 그리고 가깝게 느껴지는 이슈를 위해 단결하는 것”을 위해 자원봉사단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생존경쟁, 실업, COVID-19를 겪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것을 갈망하던 청년층에게 맘다니의 선거 캠페인이 공동체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을 비롯해 맘다니 선거 캠페인에 참여한 다양한 연령대, 문화, 인종, 언어의 10만 4천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은 단순히 ‘좋은 사람 한번 밀어보자’는 마음으로 모인 이들이 아니라 ‘맘다니의 캠페인이 왜 가능한지,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이룰 수 있는지’ 철저하게 이해한 사람들이었다. 민주당 뉴욕시장 경선 기간에만 가정 방문, 전화 등 직접 접촉 활동에 참여한 3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160만 번 문을 두드렸고, 24만 7천 건의 대화를 만들어 냈다. 민주당 경선 투표자 전체의 약 4분의 1과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이렇게 맘다니의 캠페인은 수많은 유권자들, 특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청년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냈다. 2025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2021년 선거에 비해 가장 많이 투표율이 늘어난 연령대는 40대 이하 유권자였고, 이들은 부모 세대까지 맘다니에게 표를 던지도록 설득했다. 그 결과 CBS 출구조사에 따르면 18세부터 44세 유권자들은 70%가, 처음으로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66%가 맘다니에게 표를 던졌다.

 

맘다니 캠페인의 중심에는 늘 같은 질문, ‘당선되면, 어떤 권한으로, 언제까지,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가 놓여 있었다. 이는 진보 정치가 자주 빠지는 함정인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출마한 자리가 가진 권한 구조를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오류를 극복한 것이다.

 

맘다니는 뉴욕 시장의 권한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추상적인 단어인 맘다니와 그가 속한 ‘미국 민주사회주의자’의 ‘민주사회주의’는 ‘맘다니에 투표하면 내 월세가 얼마나 줄고, 내 출근 시간이 얼마나 짧아지는지’와 연결되면서 뉴욕 시민들에게 비로소 설득력을 얻었다.

 

맘다니의 승리가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선거는 당선 후 주어진 권한과 현실 정치 지형을 감안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싸움이다. 비현실적인 공약은 하나도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공약은 당선된 자리가 가진 법적, 행정적 권한 안에서, 임기 안에 실제로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좋은 캠페인 콘텐츠는 건조한 정책 요약이 아니라 정치 드라마여야 한다. 성공 사례, 정당성, 책임 소재, 실행 계획, 감정적 호소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자원봉사, 조직, 대중 접촉은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라 정치의 핵심이다. 대중을 만나고, 듣고, 언어를 다듬고, 메시지를 시험하는 과정 속에서만 ‘대중에게서 나와 다시 대중에게로 돌아가는’ 진짜 민생 공약이 만들어진다.

 

결국 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나는 이 대안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그리고 “왜 다른 후보는 못하고, 나만 할 수 있는가?” 기존 정치가 ‘대안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대안은 이미 어딘가에 존재하며, 당장 실행할 수 있다.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기존 정치가 그 대안을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그 대안이 기득권의 이해에 정면으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맘다니는 이 두 지점을 모두 정면으로 겨눴다.

 

이제 진보정치가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을 넘어 대안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진보당 인천청년진보당 준비위원장 이준해(junhae.lee1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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