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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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노란물결] #2. 안산이 노란 물결로 물든 날

[4월의 노란물결] #2. 안산이 노란 물결로 물든 날

사진=김영건 기자

4월 16일,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 행진과 기억식이 진행되었다. 행사에는 희생자 유가족들과 생존자, 정치인과 시민 등 5천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강누리 기자

기억을 걷는 시간

오후 1시, 기억식에 앞서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 행진이 진행되었다. 행진은 고잔역을 시작으로 단원고4·16기억교실, 안산 단원고등학고, 4·16생명안전공원 부지를 거쳐 기억식이 진행될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까지 이어졌다. 단원고등학교에는 희생자들을 위해 편지를 쓰는 자리와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진=강누리 기자

이후 행진 참석자들은 4·16생명안전공원 부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은 희생자들을 기리고 진실이 밝혀지길 기원하며 부지에 노란 바람개비를 꽂고 모종을 심었다. 오르막길을 오르기도 했고, 흙길을 걷기도 했고, 모종삽으로 땅을 파기도 했던 긴 여정이었지만 힘든 내색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묵묵히 2014년 4월 16일을 걸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김영건 기자

올해도 똑같았습니다

행진이 끝난 후 오후 3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이 진행되었다. 이 날 추도사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장훈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문성혁 해양수산부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윤화섭 안산시장이 함께했다. 추도사의 내용은 ‘늘 듣던’ 내용이었다. 정치인들은 늘 그랬듯 죄송하다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사진=강누리 기자

누군가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같은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이기도 한 장훈 운영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우리는 살인자가 누군지 알고 있으면서도 살인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발언했다. 또한 수많은 학생들의 생명을 앗아간 무책임한 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며 ‘죽어서도 전국 곳곳에 뿔뿔이 흩여져 있는’ 아이들을 위한 추모 공원인 4·16생명안전공원의 건설을 호소했다. 아이들의 죽음을 이야깃거리의 ‘소재’로 삼은 어른들 때문에 희생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까지 목이 터져라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태가 올해 기억식에서도 반복되었다.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 장애진 씨. 사진=강누리 기자

정치적 시선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추도사가 끝난 후 ‘기억공연’ 무대가 진행되었다. 성악가 홍일, 배우 전소니, 마임 배우 조성진, 아쟁 연주가 허영민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뒤이어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 장애진 씨가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잘못과 실수, 너희를 아프게 했던 일들만 떠오르는 이유는 너희를 다시 만나 용서를 빌 수 없기 때문이겠지. 나는 매일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쓰고, 용서받을 수 없는 사과를 해.”

“내 인생은 너희가 언제 돌아올까 하는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고 있어. 매년 4월이 되면 안개가 낀 사막을 해매는 기분이야. 너희가 없는 우리들의 생활이 이렇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만, 이 말은 너희에게 닿을 수 없는 말이 되어 버렸어.”

“너희가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찾으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그 문은 아무도 열어주지 않더라.”

“우리가 탔던 배가 인양되고 이번에 바로 세워졌어. 최근에 그 배를 보러 갔는데 말도 안 되게 크더라. 나는 우리가 탔던 배 안에 들어가는 게 괜찮을 줄 알았어. 근데 아무 이유 없이 몸이 떨리고 눈물이 차오르더라. 우리가 탔던 배는 다 녹슬었고 너희는 돌아오지 못했는데, 바다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너무나 잔잔하고 고요해.”

“너희가 그리워서 그냥 울고 싶은 날이 있어. 돌아오는 4월, 인터뷰 할 때 강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 울게 되면 여론의 부정적인 반응이 생각나 울음을 참게 되더라. 그게 습관이 되어버렸나 봐. 너희가 생각날 때도 습관처럼 울음을 참게 돼. 그래도 눈물은 흐르더라.”

“그 당시 무능력했던 어른처럼 되지 않도록 노력할게, 소중한 너희들에게 가게 될 먼 훗날,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어 너희를 만나러 갈게. 우리도 너희를 잊지 않을 테니 너희도 우릴 기억해줘.”

장 씨가 눈물을 흘리며 낭독한 편지에는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마음, 희생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고통이 담겨 있었다. 많은 이들이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장 씨는 편지를 읽기 전에 “저희를 정치적 시선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부탁을 했다. 5천여 명의 이웃들이, 이 날 장 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진=강누리 기자

서로 다른 사람들이 노랗게 물들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사는 곳도, 하는 일도, 참여한 계기도 모두 달랐다. 서울에 거주 중인 김혜경 씨는 “초등교사로서 전교조 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5주기를 맞이해 기억식에 참석함으로써 희생자들에게 오늘도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안산으로 향했다”며 특히 교사이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더욱 와닿았다고 밝혔다.

시흥시에 거주 중인 이정숙 씨는 “안산 단원고와 집이 가깝다보니 사건에 쭉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희생자들과 제 아이가 동갑이라 더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추모 행사라도 참석하는 게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 추모 행진과 기억식에 참석하게 되었다.”며 주민으로서, 학부모로서 세월호 참사가 와닿았다고 밝히며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비누 나눔 행사 부스 스태프로서 행사에 도움을 주신 원세영 씨는 “뜻깊은 행사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이라 생각한다. 작은 힘이지만 보탬이 된다니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참석하고 있다”며 이번 행사에 스태프로 참석한 것에 뿌듯한 마음을 밝혔다.

 

사진=김영건 기자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세월호를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해 함께 기억하고, 함께 슬퍼한지 5년째, 긴 시간이라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시간동안 진상규명과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줄지 않았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최광훈 씨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위로를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일 만큼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라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식에 참석해 함께 진상규명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고마우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5년 동안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사진=강누리 기자

“우리가 매년 세월호 참사 ‘추모식’이 아닌 ‘기억식’을 진행하는 이유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을 여는 말 중 일부이다. 진실이 밝혀져 기억식이 추도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될 때까지 노란 물결은 잔잔해지지 않을 것이다.

 

취재=강누리 기자, 김영건 기자, 이의진 기자, 이지원 기자

글=강누리 기자, 이지원 기자

사진=강누리 기자, 김영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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