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1 (월)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두 엄마와 함께 떠나는 이베리아반도 여행

두 엄마와 함께 떠나는 이베리아반도 여행
 

 

 이번 겨울방학 때, 엄마와 큰 엄마 그리고 사촌 언니, 친동생과 함께, 5명이 14일간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여행했다. 이 글은 여러 명이 여행하는 법보다는 ‘엄마’와의 여행에 초점을 뒀다. 미리 말하자면 부모님 혹은 웃어른과의 여행은 매우 힘들지만, 꼭 가봤으면 한다. 단순히 효도라는 의미를 떠나서, 나를 사랑해주는 방식이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여행한다는 게 그리 흔치 않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조금 윗세대, 그러니까 전반기 밀레니얼 세대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대학생일 때 2학년 여름방학 한 달 동안, 배낭을 메고 유럽을 다녀오는 것이 관례였다. 내가 속한 세대, 후반기 밀레니얼 세대가 생각하는 유럽 배낭여행은 그 정도로 큰 위치에 있지는 않다. 가야겠다는 의무도 없고, 반드시 가고 싶다는 욕망도 없고, 그냥 ‘가면은 좋을 것 같네’ 정도. 오히려 유럽보다는 짧게 일본이나 대만, 아니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밀레니얼 세대의 공통점은 이전 세대보다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더 많이 다녀온다는 점이다. 태원준 작가가 써낸 어머니와 함께한 여행기 덕분일까. 아니면 해외여행이 과거보다 좀 더 쉬워져서 그럴까. 아니면 한국 자체가 외국에 대한 심리적인 혹은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서 그럴 수도 있다. 어찌 됐든 혼자서 혹은 친구와 함께 해외여행을 갔던 젊은 층이 점점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나 역시, 친구와 함께 내일로 여행, 오사카, 남미 등 다양한 지역을 다녀왔다.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난다고 하듯이, 오사카에서 맛있는 소바를 먹고, 칠레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볼 때 가족과 함께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 엄마와 큰엄마가 여행 비용을 대줄 테니 이번 여행에 가이드처럼 동행해달라고 부탁하셨고, 비로소 두 분의 엄마와 해외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물론, 이 엄마와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법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고 스스로 감히 생각하는 성인이 되고서는 처음이다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른’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고학번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여러 번 하고, 대외활동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연애도 하고, 못 해봤던 경험들도 해보고, 안 해도 됐을 일도 겪어보고 그러면서, 희로애락을 풍부하게 느끼며 아주 조금 성숙해졌다. 이제 비로소 사회가 뭔지 알 것 같고,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을 때, ‘이런 게 책임인 건가? 그럼 난 어른 안 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마냥 즐거웠던 해외여행을 이제는 ‘엄마와 큰 엄마를 어떻게 만족시키지, 모두가 행복한 여행은 어떻게 하면 되지, 일정을 어떻게 짜야 하지, 일정 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하기 바빠졌다. 그리고 여행하면서도 아침에 엄마에게 일정을 확인받을 때 불안했고, 오늘 좀 많이 걸은 것 같다 싶으면 엄마의 안색을 살폈고, 식당에서 엄마가 수저를 빨리 놓지 않는지 확인했다. 또 집에 돌아와서 담소를 나눌 때도 속으로 몰래 피드백하고, 내가 피곤하면 피곤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여행 전에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여행하면서도 스트레스는 분명히 받는다. 나 역시 여행자이고, 초행길이기 때문에 체력이 더 쉽게 떨어져 정신적으로도 훨씬 약해지기 때문이다.

 

 

 우선 엄마와 함께 여행을 갈 때, 좋은 점은 돈을 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돈 없는 학생 한정) 하지만 언제나 빛과 그림자는 함께 가는 법. 권리를 누리려면 마땅히 의무를 져야 하는 법이다. 공짜로 여행을 간다면, 나는 여행자이자 동시에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여행 가기 전에는 비행기 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일정을 짜고, 교통수단을 알아본다. 여행지에서는 교통수단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이 지역이 우리 동네인 것처럼 구글 지도를 계속 봐야 하며, 현지 음식이지만, 한국인 입맛에 잘 맞으며, 적당한 가격의 식당을 알아봐야 한다. 다행히 비행기 표와 숙소를 예약하는 것은 괜찮았다. 엄마들은 무조건 국적기를 주장하셨기에 비행기는 선택의 범위가 크게 넓지 않았고, 숙소는 사촌 언니가 맡아줬다. 나는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이라 숙소를 보는 눈이 전혀 없어서 숙소까지 예약했다면 정말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스트레스받았던 부분은 여행 일정이었다. 우선 이 구성원이 생활하는 지역이 너무 달랐다. 큰 엄마와 사촌 언니는 분당에, 나는 이문동에, 동생은 상수동에, 엄마는 포항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여행 가기 전에 얼굴을 보며 여행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각자 원하는 여행이 어떤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인천 공항에서 만났다. 이 여행에서 누군가는 무작정 쉬고 싶을 수도 있고, 누구는 쇼핑하고 싶을 수도 있고, 혹은 박물관에 많이 가고 싶을 수도 있다. 이처럼 각자의 취향이 다를 수 있는데(그리고 실제로도 달랐다.) 여행 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나눠보지 못했다. ‘일정에 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괜찮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게으름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여행 가기 전에 한국에서 모여서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눴다면 분명히 더 좋았을 거다.

 그래서 장거리, 장기간 여행에서 필수적인 것은 김치도, 라면도 아닌 바로 동행자와의 길고, 깊은 ‘대화’이다. ‘요새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음식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한식은 얼마나 자주 먹었으면 좋겠는지, 많이 걸을 수 있는지, 대중교통을 선호하는지, 돈이 들더라도 택시를 탔으면 좋겠는지, 어떤 여행이 되었으면 하는지’ 등 셀 수 없이 질문을 많이 던져야 한다. 이런 것까지 물어? 라는 것도 물어야 한다. 상대방에 관해 많이 알수록 여행 준비는 쉬워지고, 여행은 재밌어진다.

 

 

 특히 가족은 ‘가족이니까’라는 익숙함 때문에 오히려 더 싸우게 되는 것 같다. 편하니까 남보다 더 많이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즉, 짜증을 많이 낸다는 거다. 짜증을 내는 이유는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인데, 사실 내가 아닌 남이 내 맘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행동할 거야’ 혹은 ‘이렇게 행동했으면 좋겠네’라고 속으로 생각해도, 엄마는 항상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엄마는 ‘내’가 아닌 ‘남’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는 생각보다 우리는 엄마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남’인 ‘엄마’를 잘 몰랐기 때문에 짜증을 낸 거였다.

 우선 엄마는 엄마니깐 내가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잘할 것으로 생각했다. 또 낯설어도 나와 비슷한 정도로 낯을 가릴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익숙한 한국일 때의 얘기고, 낯선 환경에서는 엄마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행을 통해서 깨달은 점은 내가 낯설어했던 것보다 엄마는 훨씬 더 새로운 환경이 낯설고, 어쩌면 조금 두려워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엄마는 괜찮을 거라고 착각했다. 날 항상 보살펴주던 엄마였으니 언제나 나보다는 괜찮을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감사히도 부모님이 벌어다 주신 돈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영어를 배웠고, 그래서 정말 ‘기초’적인 영어 회화만 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의사소통에 대한 걱정이 당연히 내가 엄마보다 훨씬 적었을 거다. 여행 가기 전에는 이 부분을 인지는 했어도,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행하면서도 엄마가 모든 의사소통을 나한테 떠넘기는 것만 같아서 그에 대해 스트레스받기보다는 내심 아쉬웠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이라서 영어에 어느 정도 친숙한 나라이고, 또 우리가 가는 곳은 대부분 관광지라서 다들 기본적인 영어는 할 테니 엄마가 조금 서툰 영어로 말해도 의사소통은 될 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엄마가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서 몇 년간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해와서 아쉬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영어를  배운지도 오래됐고, 다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외국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싶다. 낯선 환경에서 사람은 항상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텐데, 엄마라는 이유로 엄마에게 너무 완벽함을 요구했던 것은 아니었느냐는 반성을 하게 됐다. 비단 여행에서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싶다. 한편, 엄마는 ‘돈을 얼마나 투자했는데, 저 정도 영어도 못 할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서운함과 아쉬움과 스트레스와 가끔의 즐거움이 가득하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행자와 가이드를 겸업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항상 진이 빠져서 저녁 식사 전까지 혹은 저녁을 뛰어넘고 잠을 잤다. 그러고 다시 일어나 늦은 밤에 마트에서 사 온 현지 과자와 와인 혹은 맥주를 마시며 주로 엄마와 큰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은 술을 안 먹고, 언니는 여행 내내 몸이 안 좋았다. 그래서 주로 세 명이 야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사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에서 유명한 장소도 가고, 유명한 그림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맛있는 술도 마셨지만 좋았지만, 모든 일정을 끝내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시간에는 여행 동안 각자가 느꼈던 서운함과 아쉬움과 스트레스를 스리슬쩍 말하거나 일상의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엄마, 큰 엄마와 밤에 나눴던 대화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 울림은 앞서 말한 나의 무지와 ‘어른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라는 막연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부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나를 괴롭히던 고민을 친구가 아닌 가족에게 처음 말할 수 있도록 했다. 낯선 환경이기에 그랬을까, 남에게, 특히 어른에게는 절대 나의 고민을 말하지 않는 나를 여행은 무장 해제했다. 평상시에는 멋쩍어 못했던 말들, 부끄러워 못했던 말들, 속에만 삭여뒀던 말들을 여행하면서는 조금 쉽게 꺼낼 수 있었다. 깊은 밤의 대화를 끝내고 침대에 누울 때마다, 어린 시절에 비하면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혹은 성공한 20대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냥 나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가족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확신하게 됐다.

 

 

 엄마와의 여행은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보다 값진 울림을 주었다. 보통 여행이 크게 기억 남는 이유는 여행지가 너무 좋았거나 아니면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이 너무 좋았거나이다. 이번 여행은 여행 속에서 만난 엄마와 큰 엄마 덕분에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물론, 여행지로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역시 정말 좋았다. 홀로 가는 여행지로도 추천하고 싶을 정도이다. 다만 ‘엄마’와의 여행이기 때문에 포르투갈과 스페인 여행이 좋았다고 말한 이유는 낯선 환경에서 엄마와 여행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엄마를 역할과 관계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라는 특수성도 한몫했겠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나눈 진솔한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심히 살아갈 힘을 준다. 혹시 부모님 혹은 친척 어른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면 한 번은 가볼 것을 꼭 권한다. 혹여나 어른과 함께한 여행이 별로였다면 다음부터는 안 가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가지 않는다면 그 여행이 좋았을지, 별로였을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꼭 가보았으면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도 엄마한테 전화도 잘 안 하면서 자꾸 추천하는 게 마음에 찔리긴 하지만, 정말 추천한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어른과의 여행을 잘 끝내고 온다면 더 풍족해지고, 안정감을 찾은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어른과 해외여행 갈 때 유의할 것

  1. 숙소는 반드시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선정한다. 그리고 와이파이가 잘 되는 곳으로 선정한다. 우리 못지않게 엄마들도 와이파이에 집착하신다.
  2. 햇반, 라면, 고추장, 멸치볶음, 김은 반드시 가져간다.
  3. 택시비가 비싸지 않다면 웬만하면 택시를 탄다.
  4.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최대한 자세히, ‘미리’ 알아본다. 어른의 다리는 우리보다 쉽게 피로해진다.
  5. 청년과 중년의 취향은 다른 게 당연하다. 그러니 여행 전에도, 여행 중에도 서로에 관해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적어도 이 여행은 어떤 여행이 되었으면 하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경험했으면 한다는 것 정도는 서로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아니면 일정 짜는 데 무척 힘들다.
  6. 생각보다 엄마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그리 재미있어하지 않는다. 박물관처럼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하는 곳은 유명한 한두 곳 정도면 충분하다. 본인의 취향에 맞는 장소를 갔을 때 정말 좋아하셨다. 개인적으로 큰엄마는 꽃을, 엄마는 산과 커피를 좋아하는데, 큰엄마는 꽃집 혹은 꽃이 핀 곳을, 엄마는 카페를 좋아했다. 두 분 다 공통으로 공원을 매우 좋아하셨다.

 


엄마와 큰엄마, 그리고 모두가 좋아했던 공원

 

장희지 기자 (boa52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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