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화)

대학알리

이화여자대학교

N대알리 공동기획 알리크로스 : 우리학교, 성폭력, 지금 여기

학내 성폭력, 정말 남의 학교 이야기일까?

 

이화여자대학교는 ‘여자’대학교이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사람만 입학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이성애자 학생들은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남성이 없어 학교생활하며 성차별도, 성폭력 걱정도 없는 학교’라는 사실에 ‘이부심’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여자’ 대학교이기 때문에, 정말 성폭력-free한 학교일까?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 명제는 틀렸다.

첫째, 학교에 남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여자’학교라고 해서 여성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학내에는 남학생만 없다뿐이지 교직원, 경비노동자, 교통정리 노동자,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 학내에는 상당수의 남성이 상주하고 있다. (물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둘째, 성폭력에 성별은 절대적 요소가 아니다. 성폭력은 ‘성별’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남성에 의한 성폭력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현 사회가 남성이 더 권력을 많이 쥐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지 남성이 태생적으로 성욕이 많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성폭력은 권력관계의 불평등 여부에 따라 남성-비남성뿐 아니라, 비남성-남성이나 비남성-비남성 간에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지점들을 쉽게 간과한다. 그리고는 다른 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 기사 따위를 접하며 ‘우리 이화는 성폭력 청정구역이구나’하고 으레 생각하게 된다. 여학교이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는 성폭력이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미흡한 성폭력 대응 프로세스

이런 무관심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우리 학교 성폭력 대응 프로세스는 ‘동아시아 여성학의 산실’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걸맞지 않게 굉장히 미흡하다.

일단 우리 학교는 성폭력 대응 프로세스로 『성희롱 등의 방지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이하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1997년부터 대학가에 불었던 반성폭력 학칙제정운동의 결과인데, 많은 대학에 관련 학칙이 만들어지던 2001년에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당시에도 미흡함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쳤지만,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

우리 학교의 ‘규정’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결함들이 몇 가지 존재하는데, 그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결함은 폐지된 법률을 근거로 하는 조항이 존재한다는 점이다.’규정’ 제3조 3항은 성폭력을 “‘성폭력’이라 함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성폭력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고 규정하는데, 막상 3조 3항이 근거로 드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2010년 4월 15일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각각 제정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성희롱심의위원회에 학생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위원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 것도 치명적 결함이다. ‘규정’은 성희롱 및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정책을 심의하고, 성희롱 및 성폭력 사안에 대해 조사, 심의 및 시정 권고를 내릴 수 있는 성폭력심의위원회를 둘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규정’의 제5조 2항에서는 ‘위원회는 교무처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학생처장과 총무처장 그리고 총장이 위촉하는 3인 이상의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중에 학생 대표자 등의 학생 위원이 위촉될 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구성되는 위원회 에서 피해 학생 중심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 학교의 ‘규정’은 피해호소인에 대한 지원 방안 같은 것은 없이, 철저히 사건 처리 절차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규정’에는 성폭력 사건의 처리 절차만 명시되어 있고, 피해자의 정서 지원이나 사건 이후의 공동체 회복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본부가 과연 피해자와 학생사회의 정서적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설지 의문이다. 그 외에도 위원회 내 여성 위원의 비율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점이나 ‘성희롱 및 성폭력에 의한 피해의 원인이 되는 사안이 발생한 날부터 1년이 경과한 사항에 대해서는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고 예외규정을 둔 점, 구체적인 시행 세칙 등이 제정되어 있지 않아 (학교 본부 측의) 자의적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

 

양성평등센터는 믿을 수 있는 거야?

‘규정’의 제5조는 “본교의 성희롱 및 성폭력 관련 행정업무를 위하여 학생처에 ‘양성평등센터’를 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세상에 두 가지 성별만 존재한다는 듯 내건 ‘양성평등’이라는 한없이 구린 이름은 차치하고서라도,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양성평등센터가 과연 독립적인가 하는 것이다. 양성평등센터는 언급했듯 학생처 산하에 있는 센터이고, 학생처 부처장이 소장을 겸임 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지닌 기관에서 학교와 피해자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과연 피해자 중심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규정에 전문 인력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의무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센터에는 두 명의 인력이 배치되어 있는데 학생처 부처장이자 센터 소장인 곽은아 교수는 한국음악 전공이고, 한 명의 연구원은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즉, 여성학 관련 전공자가 단 한 명도 배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구성의 양성평등센터에서 피해호소인에게 유효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전문기관에서 이야기하는 ‘학내 성폭력’ 대처방안

알리는 각 학교들의 학칙을 참고하여 학내 성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일반적 처리과정을 알아보고, 현재 학교에서 제시하는 처리과정의 문제점과 처리과정을 밞을 때의 주의사항을 전문기관의 자문을 받아 제시해보고자 한다. 조사한 기관은 ‘여성 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 한국성폭력상담소’ 세 기관이다.

학칙에 따르면 성희롱 및 성폭력의 피해를 당했을 경우 ‘양성평등센터’ 혹은 ‘성문화 상담소’와 같은 학내 센터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동의를 얻은 대리인)가 센터를 통해 조사 위원회의 회부를 통한 처리를 요청한다면 다른 의결 과정 없이 바로 위원회 회의를 소집한다. 위원회는 조사 과정에서 미리 신청인, 피신청인 및 기타 이해관계인에게 의견제출 기회를 부여한다. 조사가 끝나면 가해자에 적절한 징계 및 조치를 징계권자에게 요구하고, 사건 당사자에게 사건처리 결과 사항이 통지됨으로써 종료된다. 피해자는 조사위원회 회부 외에도 센터를 통한 당사자 간 중재를 요청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공생의 조건 토론회 자료집’에서는 공동체내에서의 절차들이 형식화되어가는 경향이 발견되어 진정한 변화를 추동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경직된 사건 해결은 2차, 3차 가해상황으로부터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절차적 순서가 완료 된다고 피해자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원칙과 절차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절차 이후의 고민이 구체적으로 논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김주현 기자가 ‘한국여성의전화’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성폭력 대응과 관련해 원칙보다도 ‘대학 내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성희롱 및 성폭행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학생 사회(학과, 학생회 등)의 관련 자치 규율을 마련하고 학생 사회 내 분위기 전환, 인식 개선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개인이 확실히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피해에 강력하게 대항함으로써 더 큰 피해의 발생을 막을 수 있으므로 집단 내 영향력이 크다고 강조한다.

정리하자면, ‘학내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는 학내에서 피해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찾아 제도적 절차를 따르는 동시에 피해자가 학교생활을 정상적으로 재개할 수 있고, 다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학생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분위기를 개선하려는 집단적 움직임과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중심주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뿐만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가해자의 변명, 성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 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피해자의 잘못이라 비난하는 시선에도 고통 받아야 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중심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는 원칙을 ‘피해자중심주의’라고 한다.

실제 사례를 통해 피해자중심주의를 자세히 이해해보자. 2013년 3월, 성균관대학교 ROTC 합격자인 가해자는 같은 학과인 피해자를 성추행했다.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가해자는 도리어 “피해자가 나를 먼저 유혹했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피해 사실을 호도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압박하는 행동이 바로 ‘2차가해’다.

2015년 여름, 피해자는 문과대학 여학생위원회(이하 여학생위원회)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 여학생위원회는 대책위원회를 꾸려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학군단과 사건 대응을 논의했다.

성폭력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할 때는 사건을 가해자나 제삼자의 입장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과 경험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피해자는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해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이러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우선 학군단은 피해자의 대리인을 맡았던 여성위원회가 징계 절차 등에 대해 물었음에도 답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학교에서 휴학 1년과 사회봉사 100시간의 징계를 받은 이후에는 학군단 관계자가 “같이 학교를 안 다니는 걸로 충분하지 않냐.”는 말로 피해자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에 여성위원회는 학군단에 2차 가해를 하지 않을 것과 반(反) 성폭력 내규 제정, 피해자를 위한 공개 사과자보 작성을 요구하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에도 사건이 알려졌다. 지난 3월 16일에는 더는 비슷한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는 피해자의 뜻에 따라 여성위원회가 경과보고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가해자만 사라지면 돼?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가 대자보, 페이스북, 혹은 OO대학교 대나무숲으로 이 사실을 공개했다. 가해자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놈은 나쁜 놈이다. 삼삼오오 수군거리며 욕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가 '주작질'하는 거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상한 소문이 퍼진다. 학교는 뭘 하고 있는지 몇 달 뒤에야 가해자 놈을 징계했단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 될까? 피해자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다 잘된 일일까? 가해자가 벌을 받았으니 우리 학교는 다시 성폭력에 서 안전한 곳이 됐을까? 피해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가해자를 쫓아내기만 하면 학교 안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성폭력 사건은 단순히 가해자가 '나쁜 놈'이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성폭력 사건과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동안의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교수가, 선배가, 후배가, 동기가, 남자가, 여자가, 수업 시간에, MT에서, 술자리에서… 구성원에게 허용 되는 행동과 강요되는 행동은 모두 대학 내 문화에 의해 정해지고, 대학 내 문화는 사회 전반의 젠더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

성폭력 사건의 제도적 해결 절차는 ‘피해자 보호’를 이유로 공동체에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처리될 수는 없다. 소문은 쉽게 퍼진다. 가해자나 그의 편들이 조직적으로 왜곡된 사실관계를 퍼트릴 수도 있다. 피해자는 낯선 사람의 수군거림에도 상처받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지 않거나 의심하는 경험으로 더 크게 상처받는다.

피해자는 상처받아 약해진 상태이고,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상황에 따라 주장이나 요구사항을 바꿀 수 있다. 피해자의 고통과 혼란은 충분히 존중받고 배려 받아야 한다. 또 ‘어떤 사건으로 어떤 피해를 봤다’고 알리고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담을 피해자 혼자 감당하게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 서울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피해자 중심주의의 대안을 찾는 모임 담쟁이'는 이런 부담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침묵"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피해자 편에서 입증을 위해 힘쓸 지지자"를 마련해줄 책임이 공동체에 있다고 말한다.

여러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대학이나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입 모아 말하는 것은 한 가지다.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다. 피해자를 위해 비밀을 지키는 것보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가 확인하고 앞으로의 변화에 관해 토론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성폭력은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성적 대상으로 격하되는 경험이다. 공동체 안에서 토론과 성찰이 이루어질 때 피해자는 인격을 침해당한 경험을 극복하고 '학내 문화'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으로 변화한다.

학과, 동아리, 학회는 우리 안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경험과 힘을 얻는다. 이런 토론과 변화는 피해자의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학생회, 학생회 내부 의 별도 기구, 대학 내 성폭력 상담 기구 등에서 이런 기회를 만들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의 노력도 중요하다. 교수가 학생에게 "여자가 말이야~" 따위의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예방교육을 하고 강의 내용이 여성혐오나 소수자 혐오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관리하는 것은 대학본부의 역할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대학 상담기구의 59%는 1년 예산 1천만 원을 쪼개고 쪼개 상담, 사건 접수 및 조사, 피해자 지원, 예방교육 등을 진행해야 하는 처지다. 성희롱·성폭력 상담에 전담 인원을 배정한 학교는 겨우 7%뿐이다. 대학 차원에서 상담기구에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그 전문인력의 고용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쉽게 말해, 대학은 성폭력 상담실에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인건비를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또, 성폭력 대책위원회나 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에 학생처장 등의 교수나 교직원이 반드시 들어가도록 규정한 학교가 많다. 하지만 이들이 성폭력 문제의 해결과 피해자의 회복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위원회에 참가하는 대학 관계자들의 자질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갑자기 겨수님이 내 손을 잡더니 모텔류 데려가려고 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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