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7 (수)

대학알리

이화여자대학교

[편집장의 편지] 일생에 한 번쯤은

김한누리 기자의 [성추행 이후, 나는 세 번의 상처를 받았다] 기사를 편집하며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자로서 살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성폭력의 경험은 너무나도 보편적이다. 여성가족부에서 2013년에 실시한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생동안 하나 이상의 피해 경험을 한 비율이 각각 가벼운 성추행 9.9%, 심한 성추행 1.1%, 강간미수 0.5%, 강간 0.4%, 성희롱 5.3%, 음란전화 등 51%, 성기 노출 21.3%, 스토킹은 1.7%로 나타난다. 성폭력의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굉장히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여성에게 성폭력이란, 한 다리 건너 한 명씩은 꼭 경험하는 종류의 것이다. 대답하기 껄끄러워 대답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성폭력 경험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 정도면 여성이라면 일생에 한 번쯤은 성폭력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나에게도 성폭력의 상황이 닥쳐온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였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 안에서 혼자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을 때였다. 위 층에서 이상한 남자의 시선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간 계단 위에는 그 남자가 있었고, 내 앞에서 바지 지퍼를 내렸고, 성기를 꺼내 드는 순간.... 당황한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내고 도망쳤다. '바바리맨' 이라는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나이였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이것이 그렇게 심각한 일인지 인지하지도 못했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바로 직후 담임선생님께 가서 이 이야기를 했고, 담임선생님의 당황하는 반응을 보면서 이게 꽤나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런 일을 겪고 집에 와 어머니랑 이야기할 때 울면서 했던 이야기가 "이제 학교 어떻게 가지?"였다.

“엄마, 나 이제 학교 어떻게 가? 너무 무서워. 왜 하필 나야?"

다행히 어머니께서 나를 잘 달래주셨고,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 한바탕 울면서 그런 기분들을 다 떨쳐냈었다. 꽤나 순진했던 나는 그 다음 날 아이들 앞에서 이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간담이 서늘해지곤 한다. 자꾸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분명 김한누리 기자도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은 전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걱정, 두려움 등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건 자명하다. 피해자들이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도록 배려해주고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기엔 법도, 인식 수준도, 너무 부족하다.

참, 여자로 살기 어렵다.

김한누리 기자의 [성추행 이후, 나는 세 번의 상처를 받았다] 기사를 편집하며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자로서 살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성폭력의 경험은 너무나도 보편적이다. 여성가족부에서 2013년에 실시한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생동안 하나 이상의 피해 경험을 한 비율이 각각 가벼운 성추행 9.9%, 심한 성추행 1.1%, 강간미수 0.5%, 강간 0.4%, 성희롱 5.3%, 음란전화 등 51%, 성기 노출 21.3%, 스토킹은 1.7%로 나타난다. 성폭력의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굉장히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여성에게 성폭력이란, 한 다리 건너 한 명씩은 꼭 경험하는 종류의 것이다. 대답하기 껄끄러워 대답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성폭력 경험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 정도면 여성이라면 일생에 한 번쯤은 성폭력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나에게도 성폭력의 상황이 닥쳐온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였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 안에서 혼자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을 때였다. 위 층에서 이상한 남자의 시선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간 계단 위에는 그 남자가 있었고, 내 앞에서 바지 지퍼를 내렸고, 성기를 꺼내 드는 순간.... 당황한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내고 도망쳤다. '바바리맨' 이라는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나이였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이것이 그렇게 심각한 일인지 인지하지도 못했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바로 직후 담임선생님께 가서 이 이야기를 했고, 담임선생님의 당황하는 반응을 보면서 이게 꽤나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런 일을 겪고 집에 와 어머니랑 이야기할 때 울면서 했던 이야기가 "이제 학교 어떻게 가지?"였다.

“엄마, 나 이제 학교 어떻게 가? 너무 무서워. 왜 하필 나야?"

다행히 어머니께서 나를 잘 달래주셨고,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 한바탕 울면서 그런 기분들을 다 떨쳐냈었다. 꽤나 순진했던 나는 그 다음 날 아이들 앞에서 이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간담이 서늘해지곤 한다. 자꾸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분명 김한누리 기자도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은 전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걱정, 두려움 등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건 자명하다. 피해자들이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도록 배려해주고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기엔 법도, 인식 수준도, 너무 부족하다.

참, 여자로 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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