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6 (화)

대학알리

세종대학교

가해자만 사라지면 돼?


대학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헌팅 그라운드>의 한 장면 ⓒNetflix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가 대자보, 페이스북, 혹은 OO대학교 대나무숲으로 이 사실을 공개했다. 가해자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놈은 나쁜 놈이다. 삼삼오오 수군거리며 욕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가 '주작질'하는 거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상한 소문이 퍼진다. 학교는 뭘 하고 있는지 몇 달 뒤에야 가해자 놈을 징계했단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 될까? 피해자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다 잘된 일일까? 가해자가 벌을 받았으니 우리 학교는 다시 성폭력에 서 안전한 곳이 됐을까? 피해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가해자를 쫓아내기만 하면 학교 안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성폭력 사건은 단순히 가해자가 '나쁜 놈'이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성폭력 사건과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동안의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교수가, 선배가, 후배가, 동기가, 남자가, 여자가, 수업 시간에, MT에서, 술자리에서… 구성원에게 허용 되는 행동과 강요되는 행동은 모두 대학 내 문화에 의해 정해지고, 대학 내 문화는 사회 전반의 젠더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

성폭력 사건의 제도적 해결 절차는 ‘피해자 보호’를 이유로 공동체에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처리될 수는 없다. 소문은 쉽게 퍼진다. 가해자나 그의 편들이 조직적으로 왜곡된 사실관계를 퍼트릴 수도 있다. 피해자는 낯선 사람의 수군거림에도 상처받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지 않거나 의심하는 경험으로 더 크게 상처받는다.

피해자는 상처받아 약해진 상태이고,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상황에 따라 주장이나 요구사항을 바꿀 수 있다. 피해자의 고통과 혼란은 충분히 존중받고 배려 받아야 한다. 또 ‘어떤 사건으로 어떤 피해를 봤다’고 알리고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담을 피해자 혼자 감당하게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 서울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피해자 중심주의의 대안을 찾는 모임 담쟁이'는 이런 부담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침묵"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피해자 편에서 입증을 위해 힘쓸 지지자"를 마련해줄 책임이 공동체에 있다고 말한다.

여러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대학이나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입 모아 말하는 것은 한 가지다.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다. 피해자를 위해 비밀을 지키는 것보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가 확인하고 앞으로의 변화에 관해 토론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성폭력은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성적 대상으로 격하되는 경험이다. 공동체 안에서 토론과 성찰이 이루어질 때 피해자는 인격을 침해당한 경험을 극복하고 '학내 문화'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으로 변화한다.

학과, 동아리, 학회는 우리 안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경험과 힘을 얻는다. 이런 토론과 변화는 피해자의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학생회, 학생회 내부 의 별도 기구, 대학 내 성폭력 상담 기구 등에서 이런 기회를 만들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의 노력도 중요하다. 교수가 학생에게 "여자가 말이야~" 따위의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예방교육을 하고 강의 내용이 여성혐오나 소수자 혐오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관리하는 것은 대학본부의 역할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대학 상담기구의 59%는 1년 예산 1천만 원을 쪼개고 쪼개 상담, 사건 접수 및 조사, 피해자 지원, 예방교육 등을 진행해야 하는 처지다. 성희롱·성폭력 상담에 전담 인원을 배정한 학교는 겨우 7%뿐이다. 대학 차원에서 상담기구에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그 전문인력의 고용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쉽게 말해, 대학은 성폭력 상담실에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인건비를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또, 성폭력 대책위원회나 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에 학생처장 등의 교수나 교직원이 반드시 들어가도록 규정한 학교가 많다. 하지만 이들이 성폭력 문제의 해결과 피해자의 회복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위원회에 참가하는 대학 관계자들의 자질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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