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3 (목)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제목을 뭐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개강특집 학교 욕

이정구 총장이 7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8월 12일. 방학의 한복판이다. 학생들은 총장님의 두 번째 취임식을 알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지. 나는 웃었다.

2012년 이정구 총장이 처음 취임할 때는 취임식이 성미가엘성당이 아니라 피츠버그홀에서 열렸다. 시기도 훨씬 늦었다. 9월 23일이었다. 임기는 8월부터 시작했지만, 취임식은 학생들이 학교에 오가는 개강 이후에 열렸다. 당시 제27대 총학생회 '우리'는 이사회에 총장 선출과 관련한 공문을 세 차례 보냈고 아무 답도 돌아오지 않자 항의의 뜻으로 취임식 당일 피츠버그홀 앞, 그러니까 우리가 '느티'라고 부르는 거기서 앰프를 가져다 놓고 노래를 부르고 총장 선출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메모를 써 붙이는 문화제를 진행했다. 취임식장 안으로 들어와 피켓팅을 하며 침묵시위를 한 학생들도 있었다.

느티 이야기가 나왔으니 얘기 좀 해보자. 성공회대에 입학한 그 순간부터 성공회대 재학생 전원은 신영복 선생님이 '그래서 느티나무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한마디 하신 덕에 살아남은 그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산다. 고학번들은 느티가 담배 먹는 나무였던 시절 그 아래서 담배깨나 태웠을 것이고 저학번들은 느티에 좌판 깔고 열린 플리마켓에서 주섬주섬 사 먹었을 것이다.

교수협의회 박경태(사회과학부) 의장은 취임식에서 "이정구 총장이 취임식 전에 신영복 선생님을 모신 밀양에 다녀왔다"며 이정구 총장이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 정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덕담했다. 그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때 알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 자원봉사했던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오늘 왜, 무슨 뜻으로 왔는지, 내가 기억하는 신영복 선생님은 어떤 모습인지를 물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보도한 이 연속 인터뷰 기사에 한 독자가 리플을 달아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이런 기획 참 좋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고 지난번 김수행 교수님 장례식 때도 그렇고 자원봉사하는 학생들도 함께 추모하는 마음으로 장례 과정에 참여하는 것임에도 항상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습니다. 참으로 웃기는 일입니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원봉사하는 학생들이 추모의 마음을 안고 역할을 자처했다는 생각을 잘 안하는 것 같습니다. 으레 그렇듯이 "학교에서 불러낸 뭣도 모르는 학생들" 정도로 바라볼 때가 종종 있는 것 같고요. 다행히도 이번에는 회대알리의 이런 취재를 덕분에 일명 '장례식 시다바리' 정도로 겉돌고 있는 자원봉사 학생들이 신영복 교수님의 부고를 애도하고 그 빈자리를 통감하는 한 사람으로 나타나고 자원봉사의 과정이 이들의 자발적인 추모의 행위로서 조명된 것이 기쁩니다.

이번 장례식의 자원봉사자는 아니었지만, 그간 학교의 장례과정에서 소외되는 학생의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한 사람으로서 회대알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에 대해서 '우리 학교'라는 배경 안에서 '우리 선생님'이었던 그 짧은 마주침밖에 알지 못한다. 대체로 기억하는 순간과 모습이 비슷비슷하고 특별히 인상적인 기억을 가진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한 시절인 이 성공회대, 그 한 시절의 배경을 만든 사람은 신영복 선생님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애도의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이 자원봉사자 학생들은 "상조업체 직원도 거의 없어서" "다들 날아다녔"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버텼고 첫날 늦게까지 식사하는 조문객들을 끝까지 대접하기 위해 12시 30분이 넘도록 집에도 가지 않고 일했다. 영정이 놓인 성미가엘성당의 교수님들만 상주였던 것이 아니다. 장례에서 상주의 큰일 중 하나는 손님을 맞는 것이고, 이 자원봉사자들이야말로 진짜 상주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이 상주들에게 학교는 뭘 했나.

이 사람들이 밥을 먹는지 어쩌는지, 10시간 넘게 교대 없이 자리를 지키느라 발이 퉁퉁 붓는지 어쩌는지 학교는 전혀 관심 없었다. 심지어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 종일 학교에 있었는데 밤 9시가 다 되도록 아직 분향조차 못 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학교가 일손이 모자라 사람을 동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재학생들은 그래도 따지면 상주 목록의 저어 끄트머리쯤은 되는 사람들인데 분향할 시간도 없게, 알바생 부려먹듯 그래선 안 되는 거다. 오히려 본인이 아무 생각 없이 자리 지키고 서 있다고 해도 충분히 생각하고 애도할 시간과 계기를 줬어야 했다. 여긴 OO대병원 장례식장이 아니라 학교니까. 이 장례는 가족장이 아니라 성공회대 구성원 모두가 함께 치르는 '성공회대학교 학교장'이니까.

물론 모두가 황망했고 정신없었고 바빴다는 거 안다. 그렇지만 그건 모든 장례가 다 그렇다. 이건 '더불어 숲'을 말씀하신 분을 보내드리는 학교의 자세로 마땅하지 않았고 바쁘고 황망했다는 이유는 이런 자세를 합리화할 수 없다. 잘못된 건 잘못된 거다. 그리고 이런 상태로는 '더불어 숲'을 말씀하신 그분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구태여 지난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그냥 '이정구 총장 맘에 안 든다'거나, '맘에 안 드니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책잡겠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난 4월 회대알리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이정구 총장은 지난 임기를 시작할 때 '카톡 대자보 논란'으로 망가진(?) 이미지와 다르게 생각보다 합리적인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과정에서 느낀 바를 털어놓자면, 학생들의 문화와 소통하는 법을 정말 하나도 몰라서 그렇지 생각보다 학생들을 좋아하기도 한다. 지금 진짜 중요한 건 '이정구 총장이 과연 유일한 대안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럴 생각도 없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알리를 시작한 이후 학교가 교육부의 정책을 이유로 뭔가를 할 때마다 나는 교육부가 뿌린 보도자료와 정책 자료를 열심히 뒤졌다. 사실 어떤 제도와 정책을 도입했느냐를 중심에 두고 따진다면 학교는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대에게 끌려다닌 것 말고는 잘못이 없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정상적인 고등교육 정책을 펴고 있다면 학교가 교육부에 끌려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에 정상적인 고등교육 정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자는 '역량'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찾아 학교가 배포한 안내책자와 가이드북과 각 학교 교수학습지원센터와 교육부 공시 자료들 사이를 떠돌았다. (중략)

그 어디에도 교육부가 고등교육과정에서 강화하고자 하는 '역량'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자료는 없었다. 2013년 진행된 '역량강화지원사업'을 살펴보자. 사업 내용이 두루뭉술하다. '역량강화 지원 사업'의 추진 방안이 "교육여건 개선 및 성과창출 유도"와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역량 강화"가 추진 방안이라고 한다. '교육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의 추진 방안이 '교육역량 강화'라는 이상한 순환논리에 빠져든다. 이쯤 되면 교육부가 주화입마에 빠진 게 틀림없다. 이 두루뭉술한 사업의 비전이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이란다. 결론적으로, '역량'이 뭔지는 교육부도 모른다."

인용한 문단은 내가 지난해 10월 역량강화처 신설 당시 썼던 기사 중 일부다. <시사iN> 천관율 기자는 최근 기사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등교육 정책이 나오는 이유가 '교육부의 관료들은 현재 시행되는 고등교육 정책이 결과를 드러낼 즈음 모두 은퇴하고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각 대학은 이런 무책임한 정책에 힘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각 대학의 정원과 등록금 수입은 한정적이고, 등록금은 교육부의 등록금 인상 통제 때문에 인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추가 재원을 마련할 방법은 교육부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금을 얻어내는 방법 말고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버티려면 교육부 지원금 외에도 학교 재정을 받쳐줄 소위 '총알'이 필수지만 성공회대에 '총알'이 넉넉하던 시절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했는지 의문이다. 안정적인 재정 능력을 갖춘 재단은 성공회대 한정으로 용이나 봉황 같은 것이라, 나중에 구천에 호곡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상황을 버티며 4년간 학교를 책임져야 할 이정구 총장은 까놓고 말해 '독이 든 성배'를 받은 것이고, 앞으로 4년간 욕먹을 일밖에 안 남았다. 학생들에게 앞으로 계속 욕먹을 것을 생각하면 그에게 건네야 하는 인사는 축하가 아니라 위로다.

학교가 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이나 새 총장이 누구냐는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이 격랑 속에서 성공회대라는 교육공동체가 지켜야 할 가치와 태도의 문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론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나는 학교가 보여준 태도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올해 입학식은 학교가 아닌 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에서 열렸다. 학교가 학생을 처음 공식적으로 맞는 자리가 학교 밖이라는 건 좀 이상하다. 반대로 한 번은 그럴 수도 있지, 어차피 성공회 교단이 세운 대학이니 성공회 성당에서 치르는 것이 꼭 이상하기만 한 건 아니지,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다.

프라임 사업에 지원할 때는 어땠나? '이렇게 하자'고 주장하는 쪽이 나머지 사람에게 자기주장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성공회대에서는 안 통한다. 학교가 공청회를 열어 학생들에게 의견을 달라고 하기도 했고, 학교 관계자가 '학생들이 학교 문제에 관심이 없고 참여를 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제까지 대학본부가 만든 학교의 비전을 학생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림으로 만들어 설명한 적이 없었다. 학생들의 의견이 필요하다면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든, 자리를 만들든 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가 '수용할 수 있는' 학생 의견은 총학생회 혹은 비상대책위원회와 학교본부 사이에 오가는 공문이 전부다. 프라임 사업 지원 자체도 "학생들이 안 하겠다면 그냥 안 한다." 정도의 태도를 보였다. 학생대표자들이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학교가 잘한 것도 아니다. 지난 5·6월호 합본에서 프라임 사업 기사를 썼던 이시나 기자는 이를 "신사적이지 못한 태도"라고 했지만 이건 그냥 이시나 기자가 보기 드물게 점잖은 태도를 보인 것뿐이다.

총장 선출 과정에서 항상 학생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는 바늘 끝만큼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자. 다만 사족을 붙인다면, 지난해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사립학교법령이 개방이사제도를 도입하도록 한 입법 취지가 "교직원 학생 등의 학교 운영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법원 2012두 19496, 19502 병합) 다시 말해 교직원과 학생은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법의 취지가 그러하다.

그리고 총장 취임식이 열렸다. 4년 전과 다르게 방학 중에, 학생들이 어떤 의견을 가질 시간조차 주지 않고 빠르게 열렸다. 개별적인 사건 하나하나를 따로 놓고 보자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1월부터 8월 하순인 오늘까지 일어난 사건의 누적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대학본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중요한 행사와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재학생은 따돌림당하고 있다.

이정구 총장은 올해 3월 알리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대학은 학교 소유자가 총장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성공회대학교는 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민주적인 소통 과정을 많이 거쳐야 한다. 교수들은 여전히 거버넌스 문제를 제기하고. 그래서 무언가를 진척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묻고 싶다. 성공회대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민주적 소통 과정을 학생들은 왜 알지 못하나? 그래도 되는가? 나는 내가 학기마다 수백 만 원의 등록금을 내는 이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학과장 회의와 기획위원회와 교무위원회 말고 또 무슨 절차가 있는가? 있다면 이것은 왜 학생들에게 설명되지 않았는가? 없다면 이 뻔한 제도조차 학생들한테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이런 상황이 과연 옳은가? 이것을 모르는 쪽이 모르는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가, 아니면 이것을 설명하지 않은 쪽이 책임져야 하는가?

학교의 위기는 지금 모두가 겪는 문제이고, 학교의 누군가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버틸 재정적 기반이 없는 것은 재단의 책임이 분명하지만 지금 책임을 따져 묻는다고 당장 없는 돈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가 중요한 행사와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재학생들을 따돌리는 경향성이 발견됐다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대학본부와 그 수장인 총장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이다.

지난 1월 학교가 신영복 선생님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보인 태도는 '더불어 숲'의 정신과 거리가 멀었다. 8월이 되도록 그런 태도에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재학생의 의사는 항상 가장 뒷전이거나 가장 나중에 묻거나 적당히 배제하는 학교가, 더불어 숲으로 가는 학교인가? 성공회대에 지원한 학생들이 입학원서는 성적에 맞춰 썼을지 몰라도 "학교가 불러낸 뭣도 모르는 학생들"이 되기 위해 학기마다 등록금을 내는 것은 아니다. 성공회대의 '더불어 숲'이 학교 본부와 교수님들만의 '더불어 숲'이라면 신영복 선생님 생전에 '인문학 특강' 수업이 개설되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직접 '더불어 숲'을 가르치신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심지어 아직 학교에는 선생님께 직접 그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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