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사교육이다. 최근에는 사교육 해당 연령이 초등학생에서 그보다 어린 미취학 아동까지 낮아졌다. 아직 한글도 덜 배운 아이들이 ‘조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교육 현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 연령이 단순히 낮아지고만 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사교육 참여 연령은 아래 뿐 아니라 위로도 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의 취업 준비용 사교육은 보이는 것보다 심각하다. 2018년 8월 7일,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재학생 1374명 중 39.2%가 취업 준비를 위한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중 54.8%가 외국어 공부와 교재에 사교육비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외국어 공부라고 하면 한국외대가 빠질 수 없다. 어문계열 학생이 많은 만큼, 언어 관련 사교육에 참여하는 비중도 높다. 독일어교육과에 다니는 기자 주변 역시, 사범대라고 해서 언어 관련 사교육 투자 비율이 결코 낮지 않다. 그렇다면 왜, 무슨 이유로, 무엇을 위해서 학생들은 어문계열 사교육을 받는 걸까? 그것도 토익이나 토플 뿐 아니라, 자신의 전공 언어 사교육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도 주변에서 그러한 지인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9월호 외대알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네덜란드어과, 독일어과, 스페인어과와 독일어교육과의 학생들에게 질문한 결과, 다양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교육을 이미 받았거나, 또는 받고 싶다고 대답한 학생들의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 학과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서
- 교환이나 7+1 등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서
- 졸업 시험이나 자격증 시험을 위해서
- 다음 학기 예습을 하기 위해서
- 전공 외에 다른 언어를 배워 두면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중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예상 외로 ‘학과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서’였다. 그러나 해당 학생들은 분명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뉜 전공 언어 수업을 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답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과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서’ 라고 대답한 학생 중 한 명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입학 직후에 따로 공부를 하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첫 수업부터 따라가기 조금 버겁더라고요. 기초부터 가르쳐 주시기는 하는데, ‘1학년 수업부터 당연히 이 정도는 알아야지’ 라는 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몇몇 있었어요. 처음부터 전공 언어로 진행되는 수업도 있었고요. 그래서 그걸 따라가려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P씨, 20세, 외대 재학생)
실제로 1학년 회화 수업의 경우, 알파벳부터 배워야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원어로 진행된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 전공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학원을 따로 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업을 안 들을 수도 없다. 졸업 필수 과목인 것도 그 이유지만, 해당 수업을 듣지 않으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다른 회화 수업 내용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학과 수업에는 학생들의 수준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학과 수업도 다 가르쳐 주기는 하죠. 제가 그걸 못 따라가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학과 수업에서 A+ 받는 동기도 학원 따로 다니더라고요. 또, 저번 학기에는 저보다 못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방학 동안 학원 다녀서 실력이 늘어 오기도 하고요. 학과 수업도 좋지만, 학원 수업도 들은 사람이 실력이 느는 게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또 학과 수업을 들으려면……. 상대평가잖아요. 저도 제 학점을 챙겨야 되니까 학원을 다니게 되는 거죠. 주변에서 ‘어느 학원이 좋다’ 이런 식으로 서로 추천해 주기도 해요.” (Y씨, 22세, 외대 재학생)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들이지 않은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사교육의 이유를 물을 때 나오는 대답들이다. 다닌 사람이 안 다닌 사람보다 실력이 좋으니까. 그렇게 해서 남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니까. 이렇듯 언어를 배우는 것이 정말로 새로운 언어의 습득이 아닌, 점수 경쟁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상대평가’라는 말이다. 그동안 상대평가의 문제점은 꾸준히 언급되어 왔다. 대학생 사교육 열풍은 바로 이 상대평가가 낳은 폐해 중 하나이지 않을까.
위의 대답이 상대적으로 낮은 학년의 학생들에게 나왔다면, 고학년의 경우는 어떨까. 학년이 높은 학생들의 대답은 교환 및 유학과 자격증 시험 준비가 주를 이루었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C씨(23세, 외대 재학생)는 “학원에 가면 유학을 준비하려고 듣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요. 학원에서 후배를 만나기도 했어요. 학과 수업만으로는 불안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가서 따는 학점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학원을 다니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C씨의 학과 수업 점수는 A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과 수업에서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부족하다”라고 대답했다.
“학과 수업 때 모르는 걸 교수님께 따로 질문하기도 해요. 질문 메일도 보낸 적 있어요. 그런데 실력이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학과 수업은 언어 실력보다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한다는 생각이 큰 것 같아요. 교과서 공부하듯이 (언어 공부를) 한다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학교 외에 따로 회화 수업도 들었어요.”
C씨의 답변은 위에서 나온 Y씨의 답변과 비슷했다. 학과 공부에서는 성적의 압박을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 성적 산정 방식의 특성상 압박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면, 정말로 즐겨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이 언어 공부를 즐기고 있는 것일까?
(출처 - 주한독일문화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그렇다면 학원 수업은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걸까? 기자는 직접 독일문화원 수업을 수강해 보았다. 독일문화원은 독일어 학원을 추천할 때 꼭 거론이 되는 곳이다. 독일 대사관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기에 여러모로 검증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문화원 수업 한 달 동안 느낀 것은, 학원 수업도 학교 수업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자격증 시험반 제외). 그러나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수업이 끝난 뒤에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끼리 스터디를 따로 하기도 한다는 부분이다. 물론 학과 수업에서도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며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스터디를 주목한 이유는, 학과 수업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여서다. 다양한 학교의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준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언어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이는 앞서 말했던 학과 수업에서 느꼈던 ‘상대평가의 압박’이나 ‘교과서 공부’가 없는 모습이다.
실제로, 언어 수업 성적을 상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언어는 단순 지식이 아니라 습득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보다 잘한다는 이유로 A와 B를 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남보다 젓가락질을 잘한다고 거기에 대해 A를 받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 결과, 사교육이라고 해서 특별한 학습 비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에 참여하게 되는 이유는 ‘학과 수업에 대한 불안’이 컸다. 학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안과, 학과 수업만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불안 말이다. 기본 회화 수업을 원어로 진행하는 이유는 학생들을 언어에 빨리 적응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상대평가의 적용 목적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와 학업성취도를 올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학과 수업을 위해 사교육을 다니게 되는 현실이, 이러한 이유와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분명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학교 언어 수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언어를 가르치기 위함인가, 점수를 주기 위함인가. 이것은 아주 근본적인 문제지만, 근본일수록 그 기준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어야 한다.
허예진 기자(adastravvb@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