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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살, 나의 길을 가기로 했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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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저는 어릴 때부터 얼른 스무 살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스무 살은 '대학생'이었고,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아니 대학생이 되면 모두 부자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멋지게 자신을 꾸미면서, 방학 땐 취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날 제 착각의 밑바탕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야 한다’라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누구나 대학에 가는 줄 알았고,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0%에 육박합니다.(e나라지표, “취학률 및 진학률(2015~2019)”)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20대 초반의 나이면 ‘대학생’일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깔려있습니다. “어느 대학 다니니?”, “전공이 뭐니?”라는 질문은 실례이기보다 의례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몇 년 사이 페이스북에서는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의 자기소개가 유행과 의무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 역시도 그들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은 증명해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곤한 질문에 시달립니다. “왜 학교를 그만뒀어?” “무슨 일이야?”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반면 대학생들은 “왜 대학을 다니니?”라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정상’이라는 틀 안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사회에서 다름은 별남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르다’라는 표현엔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기운이 남아있는 듯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별나다’라고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을 대표하는 단어가 ‘대학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흔히들 서로의 생활이 달라지면 할 말이 없어지고 어색한 사이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생활이 서로 달라서 즐거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로 즐거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 S의 이야기

  20살 S는 혼란스러웠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다를 줄 알았다. 새로운 생활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S에게 대학은 고등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달랐던 건 공부 내용이었다. S에겐 처음으로 무엇을 공부할지에 대한 자유가 주어졌지만, S가 선택한 전공은 그의 예상과 기대에 어긋났다. S의 전공은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 20살의 봄과 여름을 보내면서 S는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S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즐거움과 행복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 “여기를 계속해서 다녀야 할까?”라는 가볍고도 중요한 질문이 S에게 던져졌다.

 

 

 S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일단 쉬어가기’를 내놓았다. 1학년 여름방학, 그렇게 휴학계를 냈다. 휴학을 하고 무엇을 할지 고민이었다. 마침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와 함께 영어를 배워보기로 했다. 학원 근처에 있는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가볍고도 중요한 시작이었다. S는 눈에 보이는 대로 학원 근처에 있는 여러 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언젠가 카페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다는 약간의 로망도 섞여 있었다. 뽑힌 곳은 단 한 곳이었다. 차(茶)를 전문으로 하는 어느 카페였다.

 

 S는 원래 씹는 것보다는 마시는 걸 더 좋아했다. 그게 물이든, 음료든, 술이든. S에게 ‘飮’은 즐거움이었다. 그런 S에게 첫 아르바이트는 즐거웠다. 휴학은 계속됐고,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번 돈으로 한 달 여행을 떠났다.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배울 수 있었다. 엄청난 걸 했던 건 아니다. 여행한 지 딱 보름이 지난 어느 날, 독일행 기차에서 캐리어를 잃어버리는 엄청난 일을 겪긴 했다고 말하며 그는 웃었다. 한 달 동안의 모든 순간이 S에게 조금 더 넓은 시야를, 넓은 생각을 갖게 했다. 그는 아직도 그 기간을 최고로 소중한 순간으로 꼽는다.

 

 잠깐의 여행 후 S는 고민했다. 학교로 돌아갈 것인가? 긴 휴학 기간은 그에게 ‘자퇴’라는 선택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보다 더 망설이는 건 학교였다. 학교는 계속해서 S에게 ‘자퇴보단 휴학’을 권했다. 그렇게 S는 학교에서 허락한 휴학 기간을 꽉 채운 후 결국 자퇴했다.

 

 

 자퇴 결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S를 망설이게 하는 건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 하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이를 묻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대답한다. 2n살이라고. 그럼 “아, 무슨 과 다니세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가 대학을 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는 아예 고려되지 않는다. S는 이런 질문들이 당황스러웠고, 두려웠다. 그래서 그냥 ‘휴학생이에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휴학생이라는 그에게 주어진 질문은 “그럼 요즘 뭐해?”였다. 학교에 다니지 않게 된 S에게 주어진 질문 역시 “아, 그럼 뭐 하고 지내?”였다. 그들의 질문이 진정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라 생각했다. 그 질문이 누군가에겐 버거운 질문일 거라는 생각은 다들 하지 않았다. 이런 질문이 당연한 사회 속에서 S가 ‘자퇴하고 나서 무엇을 하지?’라고 고민했던 건 당연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S의 결정을 가장 망설이게 했다.

 

 

 S는 자신을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나를 공부하는 학교’라는 곳을 찾아갔다. 휴학하고 자퇴를 고민하던 S는 사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잘 몰랐다. 그는 그 답이 너무 찾고 싶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가장 큰 소득은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거다. “난 뭘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해.”라는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었다.

 

 부담을 내려놓고 주위를 살펴보니,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시작은 ‘차(茶)’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S는 씹는 것보단 마시는 게 즐겁다. 그는 차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다도’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다르게 차와 다도는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러면 커피는 어떨까?”라는 단순한 계기로 커피에 눈길이 닿았다.

 

 S는 이제 차 전문 카페를 떠나 커피를 전문적으로 하는 카페의 일자리를 알아봤다. 아르바이트 말고도 ‘커피’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고 알아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찾아갔다. 그렇게 서서히 ‘커피’에 ‘재미’를 들였다.

 

 

 S는 지금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그는 요즘이 즐겁다. 물론 바리스타가 되는 길이 쉬웠던 건 아니다. ‘바리스타’가 되는 길이 험난하기보단 '대학 졸업→취업'이 자연스러운 순서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S는 어떻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지, 시작부터 막막했다. 직업을 갖기 위한 노하우는 다 대학에 있는 것 같았다. 안정된 직장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여러 일도 겪었다. 들어간 회사가 망하거나, 고용 과정에 있어 구두와 서면 상의 계약이 달라 정규직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꿈을 향한 시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번 엎어지니 본인의 결정에 대해 후회도 했다. 자퇴하지 않고 학교라도 다녔다면, 흔히들 말하는 ‘‘학사 졸업장’이라도 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S는 ‘후회는 오늘 하루만 하자.’라는 다짐을 계속해서 되새겼다.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결정을 할 테니까. 후회는 오늘만 하자.”

 

 

 자퇴를 고민하는 2년여의 기간 동안 그에게 위안이 된 게 있다면 주변 사람들의 지지였다. 가족과 친구들은 S의 선택을 지지했다. 그의 결정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너하고 싶은대로, 그래 해봐.’라는 분위기였다. 2년여의 고민을 끝낼 수 있었던 건 결국 그의 의지였다. 긴 휴학 기간 동안 이어지는 고민을 끊어 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그에게 추진력을 주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젠 다음으로 넘어갈 준비도, 시기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의 자퇴 선언에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들은 S가 스스로 원하는 답을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물론 그의 결정을 의심하던 눈길도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어?”, “그래도 학교는 가야 되지 않아?”라는 말들이 따라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의 꿈이 진행되어 갈수록 그런 시선들은 옅어져 갔다.

 

 

 S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대학교 자퇴’라는 흔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선택과 꿈에 의심을 던진다. 이는 그에게 압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스스로 사회의 의심 어린 시선을 지워내겠다고 다짐한다. S는 “요즘 뭐해?”라는 질문에 “나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어.”라고 대답한다. 여전히 “아, 아직도 알바하는구나.”라는 답이 돌아온다. S는 바리스타다. 세상은 여전히 그의 직업을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인정받고 싶고, 그러기 위해 열심을 내고 있다.

 

 S는 "자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삶에 있어 큰 의미"라고 말했다. 다름을 별남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그는 그만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S는 이미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의 주인공이다.

 

 

 

# 에필로그

 우리는 ‘노오오오력’해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 ‘노력’이란 것에도 위계를 부여합니다. 누군가의 노력은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있어 보이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패배자가 됩니다.

 

 그들의 삶은 실패나 포기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선택을 한 것처럼 그도 자신의 선택을 한 것뿐입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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