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국회 세미나인 예술대학 살리기 2차 토론회 <예술대학 커리큘럼 및 교육 환경, 어떻게 개선 할 것인가>가 열렸다. 8월 9일에 열린 1차 토론회에서는 <예술대학이 처한 위기 현실 진단>을 통해 예술대학생이 겪는 고충과 예술대학의 문제 등을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마무리되었다.
2차 토론회는 저번 행사와 마찬가지로 예술대학생네트워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권인숙, 김철민, 도종환, 박정, 유정주), 의원연구단체 청년다방 2040 등 여러 기관이 공동주최했으며,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비대면(Zoom)으로 진행되었다.
사회를 맡은 홍기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 자리는 문화예술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교수와 학생 주체 및 행정 부처와 공공 기관, 대의 및 입법 기관이 모여서 예술대학의 열악한 현실을 진단하고 교육환경 개선 및 현장 연계에 대한 실효적인 지원정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하며 토론회를 시작했다. 토론회 패널로는 정수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장과 예술대학 교수진이 참여했다.
예술과 교육 사이 중심 잃은 예술대학
첫 번째 발제자인 정수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장(이하 정수인 총학생회장)은 ‘교육과 예술 양측의 사각지대로서의 예술대학' 에 대해 발언하며 토론회의 서문을 열었다. 그는 발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현재 예술대학은 이론 및 기능만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커리큘럼을 고수하고 있으며, ‘예술’과 ‘교육’ 양측에서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이슈는 학생들 사이에서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어왔지만, 대학이나 교육부 측에서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아 여전히 예술대학 내 커리큘럼과 교육환경 및 제도 문제는 제자리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정수인 총학생회장은 19년도 진행된 설문조사(예술대학 진로교육 및 커리큘럼 만족도 조사)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예술대학 커리큘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로 ‘동시대 예술에 뒤쳐지는 커리큘럼, 도제식 예술교육의 폐쇄적 문화, 일원화된 진로 방향성' 등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음을 밝히며, 이를 교과과정과 교육방식 두가지 갈래로 분석했다.
급변하는 사회, 교과과정은 몇 년째 제자리
먼저 교과과정의 주요 문제로는 장르중심적인 수업과 커리큘럼의 통섭능력 부재, 현장 연계성 수업의 부재, 실효성 없는 취창업센터 등을 짚었다.
예술대학생네트워크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의 예술대학 학생이 졸업 후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길 희망하며, 정규화된 과정 내에서 진로 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나, 학교는 엘리트주의적인 예술현장만을 강조하며 학생들의 진로를 고려하지 않은 커리큘럼대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실정이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활용 범위가 넓어진만큼 다양한 예술계 관련 직업이 생기고, 응용예술 학문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전공 필수 수업은 오로지 순수회화에 집중되어 있으며, 컴퓨터와 예술을 융합시키는 ‘복합 매체' 등의 과목이 개설되더라도 미흡한 커리큘럼으로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한다. 정수인 총학생회장은 “학교는 학생과 사회를 연결짓기 위해, 기존에 고집하던 교육 프로세스를 벗어나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는 실용적인 커리큘럼을 편성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장성 결여된 예술교육
또한, 현장형 수업 비율이 현저히 적다는 점도 지적했다. 위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학별 현장 수업 비율 평균이 5~10%를 웃돌고 있다. 학생들은 졸업 이후 예술계 현장으로 나아갈 준비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커리큘럼을 구성한다. 이에 학생들이 협업을 통해 창의적 결과물을 만드는, 창작 제작 중심 교육과정 ‘프로덕션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위 시스템은 장르간 공동 워크숍과 현장 프로젝트 수업 등을 통해, 예술대학에서 현장성을 수립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수인 총학생회장은 창의적 중심 교육과정 혁신의 필요성과 함께 예술대학과 예술현장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경로와 장치들이 교과과정 속에서 설계되어야 함도 강조했다.
대학 내 내 취,창업센터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같은 예술계 특수학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취창업 센터에서 상경계,이공계 위주의 프로그램만 진행하기 때문에 예술대학생들에게 도움되지 않으며 취,창업센터를 이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럴 거면 학교 왜 왔나 회의감 든다”
정수인 총학생회장은 다음으로 교육방식의 문제를 분석하며, 예술대학의 폐쇄적 문화 및 위계 폭력을 첫 번째 예시로 들었다. 교수와 1:1로 진행되는 도제식 교육, 교수 주관에 의한 성적 산출, 적은 수강 인원 등의 요소는 교수에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게 만들고, 결국 예술대학생들은 자유로운 창작이 아닌 교수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다. 정수인 총학생회장은 위 조사결과를 근거로, 교수 티켓 강매, 선물 종용, 장학금 수거, 인권침해(성희롱, 성폭력, 언어폭력, 성차별) 등의 위계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가 20~40%대에 자리잡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폐쇄주의적 문화는 지도교수의 폭력적 지도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게 만들며,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창조 능력을 발휘해야 마땅한 예술대학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다음으로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학생들이 ‘자기검열'에 시달리고 있음을 지적하며, 교수의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본인의 작품에 창의와 개성, 주관 등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고 밝혔다. 정확한 성적 평가 기준이 ‘교수 재량’의 이름 아래 명확하게 제공되지 않으며, “학생들은 끊임없이 ‘교수 평가 기준'에 맞추어 자신의 작품을 검열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는 고등예술교육을 받는 이유를 무색하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교수들의 무책임한 방임에 대해서도 발언했다. 대부분의 강의가 한 번에 3~4시간 진행되는데, 수업 시간의 절반 정도는 자리를 비우거나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으며 강의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 같은 문제들로 인해 배움의 의미는 퇴색되고, 학생들은 끊임없이 예술대학 진학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으며, 정수인 총학생회장은 “이는 매우 무겁게 재고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예술계열 내 교육환경도 심각
예술대학의 교육환경 및 제도의 문제로 실험실습비 규정의 불투명성 및 관리감독 부재, 전임교원 및 강사 부족, 예술대학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학사제도 운영 지침 부재 등을 짚었다. 정수인 총학생회장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기 및 실습 공간의 환경과 운영시스템에 만족하는 학생의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았으며, 주된 이유로 ▲ 시설의 부족 및 노후된 기자재 ▲ 등록금 대비 적은 실험실습비 편성 ▲ 과도한 사비 지출 등이 꼽혔다” 고 전했다.
또한 타계열 교육환경과 예술계 환경을 비교분석하며, “앞서 예술교육의 품질 문제로 제기되었던 것들은 타계열의 경우 이미 인증 평가항목으로 규정되어 관리가 지속되고 있으나, 예술교육의 품질관리 및 연구는 소홀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며, “예술대학에게 합당한 위상을 부여하고, 주요한 정책대상으로서 재정립하는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
정수인 총학생회장은 “지금 예술대학엔 ‘예술가 되기'에 대한 고민을 논하는 자리가 없어, 예술대학 내부에서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생과 교원, 본부 및 정부가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유의미한 변화가 필요한 때이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하루 빨리 시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발제를 마쳤다.
이어<예술대학의 위기 진단과 대안을 위한 정책과제> 발제를 맡은 강윤주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이하 강윤주 교수)는 각 분야별 예술대학(무용, 미술, 연극, 음악)의 국내외 실제 교육과정을 비교분석하며, 모범이 될 만한 해외 대학 사례를 차용하여 혁신방안에 대한 상을 제공했다.
문제의식 가진 교수진들 적극적 움직임 필요해
강윤주 교수는 “예술대학 교육과정이 바뀌기 위해서는 전임 교수들이 필요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의지를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예술대학 학생들의 구체적인 요구가 필수적”이라며 AK(Arts Korea, 예술한국)사업의 일부로 예술대학 교육과정 시범 운영 교수진 TF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학간 경계를 넘어,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인지한 교수진이 팀을 짜서 몇 개 과목에 대해서 시범으로 제작하고 운영까지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또한, “우리나라 예술대학 교육과정에 없는 많은 과목들은 실기나 실습 없이 충분히 온라인 강의로 제작될 수 있다. 코로나와 함께 온라인 강의제작이 보편화된 만큼, 예술대학에도 온라인 과정이 적극적으로 도입되면 좋겠다. 초기 콘텐츠 제작에는 투자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이후엔 강의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비용절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날 것”이라며 “절감된 비용으로 학생들의 졸업작품 제작이나 실기, 실습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진행된 지정토론에서도 예술대학의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바, 커리큘럼이 발전해야 하는 방향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대학 평가가 대학을 망친다? 커리큘럼 진단 시급해
오세곤 순천향대학교 명예교수는 “국내 예술대학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열악한데, 그런 와중에 행정적이고 경제적 이유에 치중된 항목으로 구성된 평가에 시달려야 한다"며, 대학 평가 기준이 강의 커리큘럼 구성의 질적 수준이나 수행률에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서동진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또한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가 대학 예술교육의 교육과정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떠올렸다. “예술교육 역시 바로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가 가정하고 전제하는 교육의 정체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고 말하며, “대학교육의 모든 문제를 대학입학정원 감소에 따른 문제로 환원하고 대학의 구조조정에 모든 힘을 투자하는 것이 현재의 대학교육을 어떻게 내적으로 붕괴시키고 있는지 엄정히 진단하고 평가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참여한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 김태경 과장은 “현재 예술교육이 처한 문제점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과정 혁신 등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며 앞으로 예술대학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자세하게 제시해 주는 등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다" 고 행사 소감을 밝혔다. 이어 “교육부에서도 학사 제도나 재정 부문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예술계열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2차 토론회는 예술대학생네트워크 유튜브를 통해 다시 시청할 수 있으며, 기사 하단에 첨부된 자료집을 통해 해당 토론회 참여자 발제문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편 3차 토론회<예술대학의 현장 연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오는 30일 오후 2시에 진행되며, 이후 9월 4일 마지막 4차 토론회<예술대학의 미래 지원 정책, 무엇이 필요한가?>로 마무리된다.
토론회 참여 관련 사전 신청은 해당 링크(http://bit.ly/3xklvOF)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