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지속 중인 가운데 지난 2월부터 시행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인해 일상회복을 기대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이러한 기대감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감정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백신 접종을 위한 여정 자체가 바이러스에 이어 또 다른 위험이었다.
88올림픽 때부터 한국 사회와 함께한 이주노동자들,
산업연수생제부터 고용허가제까지
이주노동자의 사전적 정의는 취업을 위해 거주지를 떠나 다른 국가로 일하러 가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주로 비전문취업(E-9)이나 방문취업(H-2) 비자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여 많은 이들이 기피하는 단순 노동 등에 종사한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 배경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88올림픽을 준비하고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1990년대 이후 인구 급감과 높아지는 인건비로 인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이주노동자를 연수생 신분으로 도입하는 ‘산업연수제도’가 1993년 11월부터 시행되었다. 하지만 연수생 신분의 이주노동자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에 놓이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증가, 정부 차원의 인권 보장 어려움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 결과 많은 비판 속에서 ‘고용허가제’로 변화하였다.
고용허가제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제조업이나 사업체들에 대해 해외의 노동력을 공급하고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이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는 기업은 내국인 노동자 고용이 어려움을 입증하고 필요 직종과 목적을 제시하여야 한다. 정부는 이를 검토하여 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사업주가 선정한 이주노동자들은 정부로부터 고용허가서와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근무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노동허가제와 달리, 우리나라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정해진 기간 동안 지정된 사업체에서만 일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제하고 있다. 즉 노동자의 자유로운 직장 이동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직장 이동이 인정되는 사업장 변경 사유에는 임금 체불, 폭언과 폭행, 사업장 휴·폐업 등이 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상해가 아닌 정신적 피해로 인한 사업장 변경은 언어적 어려움에 부딪혀 더욱 입증하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주노동자는 허가 없이 사업장을 나올 수밖에 없게 되고, 고용주의 신고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딥(가명) 씨는 다니던 공장에서 월급을 주지 않아 그만두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 손가락을 다쳤지만 월급을 받지 못해 친구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흔히 ’불법체류자‘라고 불리며 한국사회에서 사라지고 교정되어야 할 위법적인 존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언급하는 등 사회에서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아직까지도 이들 삶에는 여전히 차별과 배제 등 어려움이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는 한국 고용주들이 존재하고 이미 거대한 구조를 이루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유경혜 센터장은 사업장에 이주노동자 고용을 허가하는 조건의 까다로움과 극심한 인력난 탓에 사업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고 너무 답답하다고 사업주들에게 연락이 온다. 한 사람당 신고가 들어오면 벌금을 내지만 그럼에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유경혜 센터장(양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인터뷰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어려운 이유 ①- 두려움과 불안감
현재 대한민국에는 ▲90일 초과 장기 체류하는 75세 이상 외국인에 이어 ▲50세 이상의 고용허가 사업장 외국인근로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지침이 내려졌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안내가 공고되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백신 접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 안내문에는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장기체류자와 외국인등록 면제자(「출입국관리법」제31조제1항)의 경우 보건소에서 임시관리번호를 발급(여권 등 신분증 지참)받은 후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접종 신청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안산시 보건소에 문의해보았다. 안산시 단원구 보건소 측은 임시관리번호를 부여받기 위해 필요한 신분증이나 여권이 만료된 상태여도 이를 통해 임시관리번호를 부여받아 코로나19 백신 접종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또한 50세 이상이라면 보건소에서 임시 관리번호를 부여받아 코로나19 백신 접종 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딥 씨와의 통화 중 딥 씨는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신청이 가능하지만 무섭다’며 두려움을 내비쳤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미등록 노동자들한테는 보건소에 임시번호를 받아서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미등록 노동자들이 거기 가면 ‘내가 얼마나 안전하냐’라는 게 문제예요. 미등록 노동자들은 불안하잖아요. 강제추방 당할 수도 있고 신고 당할 수도 있고….”
유경혜 센터장(양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은 회대알리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는 한국인보다 훨씬 큰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숙소 생활로 인해 자가격리할 곳이 마땅치 않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은 50세 이상 이주노동자가 접종 대상이므로 20대부터 40대가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특성상 현재 신고된 어려움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앞으로 접종 대상이 확대된다면 백신 접종 신청을 위한 보건소나 주민센터로의 이동 중에 사람들의 신고나 불심검문의 위험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백신 접종 신청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러한 어려움의 원인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신분 탓에 발생하는 두려움과 불안감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어려운 이유 ②-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이해 부족
▶미등록이면서 농업 이주노동자인 경우 어려움 배로 증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백신 신청 방식, 문제점과 예외 존재
▶등록 이주노동자 또한 겪고 있는 어려움
▶행정적 사고로 인한 차별
이주민 인권 단체 ‘이주민과 함께’ 정지숙 상임이사는 50세 이상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임시관리번호를 부여하는 백신 접종 절차 자체의 어려움과 관련 정보 접근성 부족을 지적하였다. 더하여 백신을 맞고 후유증이 있어도 고용주의 허락 없이는 쉬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백신 접종 절차에 예외가 있다고도 답변했다. 만료된 여권과 신분증 소유자라도 임시 관리번호를 부여받아 백신 접종 신청이 가능하지만, 관광비자 소유자는 접종 신청이 불가한 것이다. 정지숙 상임이사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장기 체류하게 된 이들이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 것에 정부의 관심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올해 7월 이뤄진 지자체 자율접종의 대상이었던 등록 이주노동자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신청 어려움이 드러나기도 했다. 유경혜 센터장(양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은 언어적 어려움, 도움 부재 등의 환경으로 인한 등록 이주노동자의 백신 접종 어려움을 우려했다. 언어적 어려움으로 접종 신청 대리접수가 불가피할 경우 고용주의 역량에 따라 등록 이주노동자의 백신 접근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2021년 6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국내 체류 미등록 외국인은 약 39만 2천 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 199만 명 중 19.8%를 차지한다. 한국 사회 내 외국인 10명 중 2명이 미등록 외국인인 꼴이다. 유경혜 센터장(양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은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에 비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산하의 센터는 전국 9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 실상을 언급했다.
정지숙 상임이사(이주민과 함께)는 이해 부족으로 인한 행정적 사고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일단 이주노동자들의 다양한 입장, 형편, 처지 이런 것들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많이 부족하고요. 그래서 계속 새로운 상황인 거죠. 의도적인 뭐 제도의 차별, 의도적인 차별도 있지만 이주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사고, 행정적 사고라던지 이런 것들(차별)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정지숙 상임이사(이주민과 함께) 전화 인터뷰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접근성을 고려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방식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두려움과 불안감 해소 우선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이 매개 필요
▶변화 필요하지만 충분한 논의 없는 대책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미등록 노동자들이 제일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신분이 불안하다는 것…. 신분이 불안하고 그 이후 단속과 불이익이 없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이주노조)
지난 6월, ‘이주민과 함께’를 비롯한 여러 이주인권 단체들은 ‘‘코로나19 이주민 백신접종에 대한 이주인권 단체 공동 의견서”를 통해 ▲국별 언어를 통한 백신 접종 안내와 ▲백신접종 과정에서의 이주민 담당자 지정 ▲백신 출장접종과 셔틀 운영 ▲접종 강제 휴무제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 방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정지숙 상임이사(이주민과 함께)는 이주노동자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제고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지역 보건소와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들과 신뢰 관계에 있는 이주인권 단체들이 매개 역할을 하여 백신 접종을 돕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또한 안심할 수 있는 접종 방식을 고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이주노조)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백신 접종 어려움의 해결방법으로 정부의 제도적 변화를 주장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했어도 사업장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없는 고용허가제의 한계를 언급하며, 코로나19 속에서 모든 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신분에서 비롯되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정부의 제도 개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하지만 유경혜 센터장(양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은 백신 접종 방식의 변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성급한 해결책 마련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에게 또 다른 어려움을 안겨주는 제도 도입이 아니기를 바란다며 이주노동자 관련 현장 종사자들과 관련 단체 및 기관들의 충분한 논의와 고민이 이어진 후 실행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어려움,
그저 사람으로서의 어려움
우리는 매일 사용하는 물건과 매일 먹는 음식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평화시장에서부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복직 사건까지 우리 사회는 노동자의 존재를 지우고 노동만을 취할 순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정지숙 상임이사(이주민과 함께)는 백신 접종과 같이 코로나19로 인한 이주노동자의 어려움에 대해 사회에 바라는 점으로 우리가 이민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
수치나 상황은 한국사회가 이제 다문화 사회를 넘어서 이민사회로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죠. 이주민들이 내 것을 뺏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문화를 다양하게 하고 우리 가치를 다양하게 만드는 아주 좋은 친구라는 것들을 조금 깨달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정지숙 상임이사(이주민과 함께) 인터뷰 중
우다야 라이 위원장(이주노조)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이주노동자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필요한 이유를 사람들에게 설명한다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고 싶냐는 회대알리의 질문에 아래와 같이 말했다.
“답변은 간단하다. 핵심적인 거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방역에 대한 기본적인 거는 해줘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
만약 당신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직장을 선택하고 변경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정신적 피해로 인해 직장을 옮기려 해도 누군가의 허가 없이는 직장을 옮길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내가 피해 입은 정서적 학대를 입증하기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나왔고 그 이유로 인해 사회에서 등록되지 않은 존재로 여겨진다면. 직장을 다닌다 해도 아프지만 고용주의 허락 없이는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기 쉽지 않으며 고용보험 의무 가입자가 아닌 탓에 비싼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면. 고용주는 당신에게 코로나19 전파 우려로 숙소에만 머물 것을 요구하고 당신은 백신을 접종하러 가는 길에서의 불심검문으로 인한 불안으로 동료들과 숙소에 숨어 살 수밖에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글=오은송 기자(oes106@naver.com)
취재=김동우, 오은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