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4 (일)

대학알리

오피니언

시네마천국은 과연 사라질까?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1988년 영화 <시네마 천국>은 영화가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 토토와 그의 스승이자 영사기사인 알프레도와의 추억이 담긴 일생을 다룬 영화이다.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영화를 사랑하던 토토는 알프레드를 통해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며 성장한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 매니아 토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영화가 한 개인에게 남긴 복합적인 감정의 흔적들을 세밀하게 조명한다.

 

1. 발길이 뜸해진 영화관

 

일주일에 영화관에 3번 정도 갔던 코로나 이전의 과거는 까마득해진 듯하다. 앞서의 어린 토토만큼은 아니여도 나름 영화광이었던 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과 함께 자연스럽게 영화관으로 가던 것을 일주일에 두 번, 한 번 이하로 줄이기 시작했고 2020년 하반기 때부터는 몇 달에 한 번만 가게 되었다. 넷플릭스와 왓챠 정기구독 서비스를 신청했고, 영화관에 가는 것이 어색해질 지경이 됐다.

 

8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해리포터를 보러 영화관을 간 것을 시작으로,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필자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던 유일무이한 공간이었다. 어떤 재미없는 영화라 하더라도, 영화관은 2시간 동안 옴짝달싹 못한 채 현실과는 동떨어져 완전히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경험이 가능했던 공간인 것이다. 영화관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음료와 팝콘을 사고 상영 전에 라운지를 떠돌며 영화 포스터를 만지작 거리는 경험 또한 특별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자리에서 일어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며 영화 내용을 곱씹는 경험까지도 모두 영화관의 추억으로 필자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억도 이제는 희미해져서, 필자는 이제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휴대폰을 가로로 두고 왓챠에서 영화를 고르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본다. 시간은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았다. 장소는 밝고 시끄러운 카페일수도, 사람에 밀려 숨쉬기도 갑갑한 지하철일수도, 그것도 아니라면 강의실 맨 뒷자리였을 수도 있었다. OTT 서비스 어플리케이션이 있고 인터넷이 연결되었다면 어떤 전자기기로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편리해진 생활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영화를 정해진 자세로 봐야하는 것은 굳이 필요가 없을 수도 있을까.

 

필자뿐만이 아니라 지인들 또한 같은 의견이다. ‘영화를 보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영화관까지 가는 준비를 하기 보다는 집에서 편하게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영화값 만 이천원을 내느니 그 돈으로 한 달 구독 서비스를 결제하는게 더 경제적이다’, ‘영화를 보는 시간이 너무 길어 지루해 오히려 30분 내외의 드라마를 더 챙겨보는 편이다’ 등의 의견들이 주류이다.

 

2. OTT 서비스의 강세, 그리고 위기의 영화관

 

바야흐로 OTT 전성시대이다. 보스턴 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여파로 2020년 세계 OTT 시장규모는 전년대비(930억 달러) 20% 성장한 1,100억 달러(약 130조 원)였으며,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OTT시장의 성장이 매우 커질 것으로 보았다. 또한 올해는 2021년 대비 30% 정도 성장한 1,410(약 167조 원)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지역 및 독립영화관은 물론 1979년부터 약 40년 동안 종로의 문화중심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울극장이 지난해 8월 31일에 영업을 종료했다.

 

 

한편 영화관 내 취식 금지로 인해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영화관은 경제적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영화업계는 영화관람료를 올리는 강수를 두었으나, OTT 서비스의 정기구독료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떨어지는 가격 경쟁력으로 인해 위기를 면치 못했다.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보느니, 그 돈보다 오히려 저렴한 비용으로 OTT 서비스를 구독하고 마음껏 몇 편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경제적인 선택지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미 영화 업계는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해 여러 차례 위기를 예고한 바 있다. 상영하는 영화의 다양성이 제한되어 있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부터, 수직통합적이고 약탈적인 한국영화산업구조까지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계의 곪아있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코로나19로 인한 상업적 타격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영화산업의 구조적 난제와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영화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크린 독과점과 배급 및 수입 구조로 인해 상영되는 영화만을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시청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무한정의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것과 경쟁해야 한다. 자신의 취향과 개성, 혹은 영리한 플랫폼이 알아서 짜맞추어준 ‘알고리즘’에 따라 수많은 콘텐츠 중 하나를 선택해 볼 수 있으며, 선택한 영상을 도중에 정지시키고 다른 흥미로운 영상을 찾아 다시 플랫폼을 떠돌아 다닐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편리한 시간에 원하는 공간에서 압도적인 선택지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보다 더 편할 수 있다. 영화가 재미없다고 해서 영화관을 박차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것이 주변 관객들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건, 1만 2천원의 영화표가 아까워서이건 간에 말이다. 그러나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는 1만원 내외를 웃도는 돈으로 ‘무한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혹은 선택하도록 유도된) 작품을 도중에 언제든지 폐기할 수 있다.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Z세대는 디지털 기기를 쉽게 이용하며 개성을 중시하는 특성을 지니며, 소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대상에 거리낌없이 지갑을 열면서도 ‘가성비’를 누구보다 따지는 세대이다. 이들에게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등의 OTT 서비스는 만원 대의 가격으로 ‘가성비’의 이점을 취하며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셀 수 없는 콘텐츠들을 제공하고 있다.

 

3. 달라진 소비 방식, 달라진 소비 대상

 

이제는 영화 뿐만 아니라 <오징어게임>과 같은 OTT 자체제작 콘텐츠들이 성행하고 있다. 동시에 그 콘텐츠들을 소비하는 방식이 예전과 같이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영화를 소비하는 면에서도, 앞서의 OTT 서비스를 통해서건 혹은 ‘[결말포함]’의 태그가 붙은, 2시간 가량의 영화를 단 10분 내외로 편집해 줄거리와 대사까지 (혹은 그 영화의 메타포와 해석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유튜브 영상에 몸을 맡기고 영화를 감상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처럼 발단부터 결말까지 단 몇 분안에 압축해주는 컨텐츠는 ‘시간 내서 보기에 아까운’ 영화를 손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자 작품을 감상할 때에 뒤따라오는 심리적 압박감 혹은 2시간 동안의 긴장을 소거해준다.

 

그것도 아니라면, 플랫폼 네트워크에서 여기저기 ‘찍먹’을 하다가 결국 유튜브로 돌아와 알고리즘에 몸을 맡기고 5분 내외의 영상들을 자동으로 재생하면서 시간을 떼우는 양상이 있다. 이 5분 내외의 영상들도 슬슬 지겨워지고 집중이 되지 않을 때, 곧바로 틱톡으로 자리를 옮겨 30초 내외의 반짝거리는 영상들을 스크롤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틱톡의 성장을 의식하고 ‘숏폼 시장’에 뛰어 들어 독자적인 ‘유튜브 쇼츠’를 개발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그런가 하면 인스타그램에서는 ‘릴스’라는, 틱톡과 쇼츠와 거의 똑같은 기능이 있다. 1분에서 5분 내외의 영상들을 두 시간 동안 보는 것은, 정합성에 기반한 내러티브로 구성된 2시간짜리 영화를 감상하는 것보다 확실히 더 정신이 핑핑 돌 정도로 자극적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이 줄었을 뿐 OTT 오리지널 드라마, 영화요약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의 다양한 형식의 미디어를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다. 미디어의 성격과 소비 양상의 커다란 변화 앞의 영화는 그렇다면 과연 무력하기만 할까.

 

4. 영화관의 존재는 없어지지 않을 것

 

일본의 영화학자 가토 미키로우는 '영화는 제작된 것만으로는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고, 영화관에서의 관람을 통해서 완성되는 예술'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이 말은 2022년 지금에서도 과연 유효할까?

 

극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담론은 TV의 등장 이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e)를 공개한 이후 이듬해 3월 22일 <열차의 도착>이라는, 50초 가량의 스토리 없이 열차가 단순히 지나가는 필름을 공개한 것이 영화의 시초이다. 이후 영화는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의 시대로, TV의 보급 이후 영화는 쇠퇴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색채 영화 시대로 발전하면서, 이후에는 블록버스터 및 실험 영화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면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수용자가 극장 공간에 직접 방문해 극장의 건축적 구조를 감상하고, 익명의 여러 관객들과 함께 모여 러닝 타임 내내 같이 울고 웃으며 동시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는 입체적인 경험을 함의한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수용자 개인은 개인으로 남지 않고 익명의 군중들과 하나가 되어 영화가 웃으라면 웃고, 울라면 우는 등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일종의 연대를 느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가 끝났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고 멋쩍게 웃으며 좁은 에스컬레터에 줄을 서서 영화에 대해서 떠드는 것도 그러하다.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그 암흑의 공간에, ‘고문을 받듯이’ 영화에 압도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허접한 영화여도 스크린의 크기과 어두운 공감이 주는 공감각때문이다. 즉 영화관 체험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억으로 개인에게 각인된다.

 

동일한 맥락에서 경남 유일 예술영화관 ‘씨네아트 리좀’을 운영하고 있는 하효선 대표는 지난 10월 <매일경제>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영화는 멈추지 않는다. 적어도 극장에서는.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동안 두 시간짜리 생명은 흘러간다. 어두운 공간에서 만난 첫 번째 이미지, 그리고 사운드. 엔딩 크레디트가 이르기까지 이어질 그것들의 연쇄. 이 모든 걸 아울러 감각하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극장에서만 할 수 있다”고 술회한 바가 있다. 이 말은 앞서 언급한 영화적 체험의 중요성과 다르지 않은 말이다. 지난 해 12월 15일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존 왓츠 감독)이 코로나 시국에도 관객 수 600만을 돌파했다. 이는 영화적 체험의 씨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꼭 보고싶다’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극장은 줄어들지언정 없어지지 않을 하나의 고유한 문화공간으로 지속될 것이리라.

 

5. 바쁜 콘텐츠, 바쁜 사람들

 

그러나 매분 매초를 절단해 효율을 추구해야 하는 자기계발의 시대에서 현대의 문화수용자들에게 영화적 체험의 귀중함을 일갈하려는 의도로 이 글이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현대인들의 만성질병인 ADHD에 대해 언급하며 집중력이 부족한 채 자극적이고 짧고 알맹이 없는 영상만을 폭식하듯 탐닉하는 소비 양태에 대해서, 그리고 여러 콘텐츠들을 ‘찍먹’ 하며 끝까지 보는 경우가 드문 모습에 대해서 개인의 문제점으로 환원시켜 꾸짖는 것은 이미 소용없는 이야기이다. Z세대의 소비적 특성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여파와 그로 인한 문화 소비 양상 이전에, 영화의 추억을 만들기에 ‘너무 피곤해진’ 사람들의 문제가 있고, 더, 더, 더 짧은 영상만을 추구하고 영화를 볼 시간도 여유도 없이 10분 요약 리뷰를 출근길 지하철에서 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문제가 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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