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오후 1시, 성공회대학교에서 모두의 화장실 준공식이 열렸다. 2021년 한 해 동안 성공회대학교를 뜨겁게 달군 ‘모두의 화장실 설치 논쟁’이 끝내 일단락된 것이라 볼 수 있다. 1년간 많은 이들의 외침을 불러일으킨 모두의 화장실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새로 태어났다. 또한, 모두의 화장실 건너편에는 학내 인권센터가 설립되어 3월 1일부터 운영되고 있다. 이는 고등교육기관 내 인권센터 의무 설치를 명시한 법에 따라 신설한 것인데, 모두의 화장실 바로 앞에 설치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가치를 시사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모두의 화장실, 어떻게 설치하게 되었을까.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화장실의 미래를 뿌옇게 바라보는 학우들이 다수였다. 지난 12월 ‘모두의 화장실: 물내림제’에서 학생복지처장 박경태 교수가 화장실 설치에 대한 긍정적 미래를 넌지시 예고하긴 했지만, 몇 개월 후 바로 설치에 돌입하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만큼 학교와 학생회, 일반 학우들의 목소리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는데, 성공회대학교는 어떤 과정을 거치며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게 되었을까.
합의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모두의 화장실 논쟁이 끝내 ‘설치’로 귀결된 배경에는 총학생회 비대위와 학교 본부의 치열한 논의가 있었다. 회대알리는 학생복지처장 박경태 교수, (전/현)총학생회 비대위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학교는 모두의 화장실 설치에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었나?
박경태: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이제껏 없었으니 미안하다. 이제 우리가 만들게 됐으니 정말 잘되었다. 돈이 충분히 있었으면 더 크게 더 빨리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부분은 미안하다.
Q. 학교는 어떤 방식으로 학생사회의 여론을 파악했나?
박경태: 학생복지처장으로서 비대위 학생들을 자주 긴밀히 만났다. 반대쪽에 있는 학생 중에서 이름을 내걸고 움직이는 몇몇 사람들의 경우에는 직접 연락해서 만나기도 했다. 지난번 전체 토론회에서 반대쪽 발제를 한 학생도 제가 직접 연락해서 발제를 요청했다. 만나서 소통도 하고, SNS로 학생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봤다. 에브리타임은 학생이 아니면 직접 들어갈 수 없어서 친분이 있는 학교 근로장학생들을 통해 소식을 공유받는다. 그런 식으로 여론을 파악했다.
Q. 화장실 설치를 반대하는 학우들도 많아 보였는데, 어떻게 여론을 해석해 설치를 결정했나?
박경태: 중요한 것은, 공론장에서 이야기했을 때 설치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전체 토론회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반대하는 사람 중에서는 그냥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민주적 절차와 관련해서 문제 제기한 학생들의 이야기는 잘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날(2021년 10월 21일 모두의 화장실 대토론회), 한 학생이 민주적 절차 관련된 부분들을 이야기하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래서 학교는 앞으로 민주적 절차를 밟아가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모두의 화장실을 학교 사업이라고 공론했다. 이미 충분한 이야기를 공론장에서까지 만들어냈고, 공론장 속 의견에 따르면 건설 자체에는 반대하는 의견이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지 학교 본부 단위에서 다루면 되는 것이다. 결국, 학교 본부는 모두의 화장실을 건설하기로 결정했고 학교 본부의 학생 사업으로 들어갔다. 학생사회의 대립 문제는 이제 지나간 것이다. 학교가 추진하는 사업으로 만들어냈다. 민주와 비민주의 이야기는 이제는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성계진: 복지처에서 주관했던 대토론회 당시, 모두의 화장실에 대해 ‘화장실 설치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추진 과정에서 36대 비대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 반대의 이유’라는 의견이 나왔다. 저희에 대한 반감이 모두의 화장실을 사용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이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그것을 기점으로 ‘설치’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설치 기원 문화제 같은 연대의 장을 마련했고, 학생복지처장인 박경태 교수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2차 문화제에 참석해 모두의 화장실을 짓겠다고 발언했다.
공간 구성
Q. 학생회 사업에서 학교 사업으로 넘어가면서, 공간 구성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박경태: 지금도 계속 매주 한 번 정도 긴밀하게 학생회와 소통하고 있다. 공간 관련해서도 비대위와 함께 여러 번 도면을 보고 회의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모두의 화장실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비대위에서 제시하는 시설들을 거의 그대로 배치해서 만들었다. 덧붙여, 예산 관계로 이번에는 모두의 화장실을 하나만 만들게 됐다. 학생들도 학교에 예산이 부족한 부분은 이해해서, 다음에는 좀 더 빨리 만드는 걸로 이야기했다.
성계진: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인권국은 자료수집, 검토, 견학 등을 많이 했다. 수집했던 자료와 경험을 잘 정리해 복지처장, 교수회 의장을 모시고 전달 및 발표하는 형태로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다영성연구소 김지학 소장님의 도움을 받았고, 학교에서 설계도를 보여주시면 피드백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모두의 화장실 외부 바닥 면에는 점자 블록, 출입구에는 자동문 스위치가 있다. 접이식 의자와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고, 기저귀 교환대와 유아용 변기 커버도 마련되어 있다.
Q. ‘모두의 화장실’은 설치에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 그 요소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자재들을 구하는 과정 혹은 섭외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성계진: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필요한 기자재가 학교에 없거나 고장 혹은 시스템상 대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부 인원 섭외는 대부분 학기 중에 활동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있어도 일정상 섭외가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외부 미팅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본인들의 일상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에 앞장서 주셨던 분들이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다.
예산
Q.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위한 예산은 얼마로 구성되었나. 어떤 기준과 방식을 통해 선정되었는지 궁금하다.
박경태: 이번에 만들게 되는 화장실의 예산은 아마도 2100만 원 정도다. 기존에 있는 지하 1층의 화장실 중에 남자 화장실 부분만 먼저 모두의 화장실로 만드는데, 그중에서 1500만 원 정도는 지난 21년의 학생참여예산에서 가져왔다. 거기에 교비 600만 원을 투여해서 2100만 원으로 건설하고자 한다. 전체 학교 예산이 이백몇십억 정도라고 보면 그에 비해 2100만 원이 큰돈은 아니다. 그렇지만 예산에 여유가 없는 형편이어서 노력 끝에 만들게 됐다.
Q: 학생들의 실습비 등이 모두의 화장실 설치 비용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박경태: 그런 일은 없다. 해마다 학생참여예산을 미리 설정해둔다. 우리는 1500만 원으로 설정해뒀다. 학생참여예산은 학생회 학생들이 학생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제시하면 학교와 협의해서 결정한 뒤 집행하는 시스템이다. 학생회에 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장애인 출입을 위해 자동문을 설치해달라고 학생회가 요구할 경우, 학생참여예산으로 만든다든가 하는 것이다.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어떠한 시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학교와 협의해서 결정한다. 학생참여예산은 학생 복지와 관련된 대부분의 시설을 만드는 데에 쓰는 돈으로 사용해왔다. 21년도 학생회 비대위에서는 이것을 모두의 화장실에 사용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실습이나 교육 관련된 돈이 모두의 화장실 설치 비용으로 흘러 들어간 것은 절대 아니다. 오해 말길 바란다.
오해
Q. 유독 모두의 화장실에는 오해가 많았다. 가장 답변하고 싶은 오해가 있나?
이훈: ‘모두의 화장실이 생기면 나에게 해가 될 것이다’, 혹은 ‘모두의 화장실 설치가 나에게 도움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오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람은 아이로 태어나 큰일이 없다면 노인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이와 노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수자성을 갖는다. 아이로 태어나서 노인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화장실에 분명히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모두의 화장실은 그 불편함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지금 활동은 한국 대학에서 최초로 모두의 화장실을 도입하려는 시도다. 결코, 우리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분명히 대한민국 인권을 진보시키는 일이다. 그러니까 첫 발짝을 떼는 일이다. 이 일을 시작으로 모두의 화장실이 많이 생길 것이다. 우리 대학 내 모두의 화장실 설치는 그 미래를 위한 초석이다. 그래서 ‘모두의 화장실 설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정말 큰 오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문봄: ‘트랜스젠더 vs 여성’과 같은 구도로 바라봐서 생기는 오해가 많다. 낯설고 잘 모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범죄 위험이나 여성 안전 위협은 모두의 화장실과 상관없이 ‘불안을 주는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의 화장실을 상상할 때, 일반적인 공중화장실에 여자와 남자가 함께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모두의 화장실은 한 칸에 한 명씩만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하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다. 또, 총학생회가 지속적으로 불법 카메라 탐지를 하고 있다.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관리
Q. 모두의 화장실 설치 이후 관련 사업이나 행사 및 모니터링 기구 운영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성계진: 새터에서 ‘모두의 화장실 설치공동대책위원(이하 공대위)’을 통해 모두의 화장실 부스를 운영하고자 한다. 제 임기가 종료된 이후에는 공대위 회의를 거쳐 인권센터 산하의 모두의 화장실 프로젝트팀 건설이 가능한지 검토해보고 싶다. 비대위의 특성상 3월에 임기가 종료되기 때문에, ‘모두의 화장실 설치공동대책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경태: 더 나아가서 이번 3월 1일에 학내 인권센터가 설립된다. 고등교육에서 의무적으로 모든 대학에 설치하게끔 법으로 정해진 것이고 우리도 법에 맞춰서 인권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직원을 뽑았고 공간도 새천년관 지하 1층으로 준비하고 있어서 공사에 들어가려 한다. 그 인권센터에서 모두의 화장실뿐만 아니라 모든 화장실을 점검할 수 있는 장비를 이번에 구매한다. 정기적으로 불법 카메라를 확인하고 안전성을 확보하려 한다.
성공회대학교는 국내 대학 최초로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며 차별 없는 대학의 문을 열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대학이 되겠다는 인권 선언이자 실천으로 바라볼 수 있다. (전)총학생회 비대위원장 이훈은 “모두의 화장실은 결코 우리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분명히 대한민국 인권을 진보시키는 일이다. 그러니까 첫 발짝을 떼는 일이다”라고 당부하며, 이번 설치를 시발점 삼아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는 대학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성공회대학교는 설치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상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현)인권국장 성계진은 “모두의 화장실이 학교 문화로 잘 안착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관리하겠다”며 그 포부를 밝혔다.
글=황혜영 기자(hyeng925@gmail.com)
취재=최민서, 황혜영 기자
사진=최민서, 황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