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일)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캠퍼스 내 젠더폭력…당신은 안녕하십니까?

잇따른 여성 살인사건, 대학사회 페미니즘의 위기?

지난 9월 21일, 성공회대학교에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추모소가 설치됐다.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회 ‘열음’의 주도로 구성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추모소에는 수많은 쪽지가 붙었다. “다시는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성에게 안전을 보장해주세요” 등 추모의 글이 적혀 있었다. 쪽지를 남긴 학우 대부분이 해당 사건을 개인적인 피해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몇몇 쪽지에는 ‘인하대학교 살인사건(인하대 사건)’이 간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처럼 잇따른 여성 대상 범죄는 한국 사회 젠더폭력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하대 사건은, 공개된 캠퍼스에서 벌어진 성폭력, 살인이라는 점에서 대학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고등교육기관에서 발생한 성폭력은 2015년 73건에서 2018년 115건으로 58% 증가했다. 작년 겨울 성공회대학교에서도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사과문이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게시되어 파장이 일었다.

 

지난 10월 진행된 학내 젠더폭력 현황과 인식에 관한 회대알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 학우는 54.8%로 절반 이상이었다. 젠더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답한 학우는 61.3%였으며, 그중에서도 ▲외모 평가 ▲몸매 평가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또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여기는 학우는 61.3%로 과반이 넘는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토로한 학우는 71%에 달했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성공회대학교도 여전히 성평등하지 못한 공간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증가하는 캠퍼스 내 젠더폭력에 맞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단위와 학우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사회 전반의 젠더폭력 사건에 연대하고 저항하며 학내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수많은 비난, 백래시가 쏟아지고 있다.

 

젠더폭력, 비난과 백래시 속에서 페미니즘을 논하는 학우들은 어떤 대학 생활을 하고 있을까. 문제가 고조되는 가운데, 회대알리는 대학사회 내 젠더폭력과 페미니즘은 어떠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지, 페미니즘을 말하는 학우들은 어떤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지 취재했다.

 

▲인하대 사건에 맞서 대자보를 붙인 인하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여집합’ ▲총학생회장의 성폭력을 공론화한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추모소를 마련한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회 ‘열음’을 인터뷰했다.

 

인하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여집합’의 이야기

“인하대 사건을 정치화하지 말라는 말이 더 정치적이다”

 

 

Q. ‘여집합’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인하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여집합’입니다. ‘여집합’은 2017년 시작된 동아리로, 사회 주류 집합에서 벗어난 여집합의 시선에서 바라본 페미니즘 운동을 해보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주요 의제인 페미니즘 외에도 학내 노동자 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Q. 인하대 사건 직후 대자보를 게시하셨습니다.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이번 사건 이후 저희들은 무력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다들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너무나도 참담한 사건이라서…. 너무 처참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숭실대 페미니즘 모임에서 대응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때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부에서 대응하려 해도 인하대 안에서 어떠한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면 의견을 내기 어려울 테고, 저희가 학교 안에 있는 유일한 여성주의 단위니까 먼저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간단한 성명만 내더라도 정말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을 거니까 제대로 하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대자보를 준비했죠. 저희는 대자보를 준비할 때부터 릴레이 대자보 형식을 고려했어요. 자발적으로 다른 학우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당신의 목소리를 키워 응답해주세요”로 정했던 거고요. 릴레이 대자보를 준비하면서도 인하대처럼 보수적인 학풍의 대학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붙인 지 2시간만에 뉴스에 보도되어서 정말 놀랐습니다. 예상외로 대자보가 호응을 끌다 보니 다른 학교에서도 대자보를 붙여주셔서 굉장히 감사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학교 측은 저희 대자보를 2~3시간 만에 철거해버렸어요. 그래서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예상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학교 안에서는 너무 빨리 철거당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감사한데, 주로 학외에서의 관심이고, 학교에서는 철거해버리니까 인하대 학우분들께서 행동하기 더 두려우셨을 것 같아요. 저희가 릴레이 대자보를 염두에 두고 한 건데, 이후에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분들께서는 더 고민하게 됐겠죠. 학교 측이 너무 빨리 철거해버려서인지 학내 호응이 많이 없었던 게 아쉽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저희의 대자보 이후에 곧장 대자보 부착 관련 규정을 만들었어요. 원래는 관련 규정이 없었는데, 부랴부랴 대자보 허가제를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익명을 보장해주되, 대자보를 붙이기 전에 직접 와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더라고요. 전화번호도 다 적고. 그러면 사실상 익명이 보장되지 않는 거 아닌가요? (웃음)

 

Q. 사건 이후 첫 개강을 맞이했는데, 사건 이후 인하대학교 측의 실질적 대응이 있나요?

A. 경비 초소가 멋있어진 정도? CCTV가 늘어났고, 감시 중이라는 표시가 더 많아지긴 했어요. 그런데 사실 체감은 잘 안되죠. 원래 저희가 문제제기한 건 경비노동자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어요. 새벽에 경비하시는 분들 인원이 네 분밖에 없어요. 그 큰 인하대 캠퍼스에 겨우 네 분이요. 네 분 중 두 분은 CCTV 보고 계시니까 실제로 순찰할 수 있는 인원은 두 분뿐이죠. 인하대의 넓은 부지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CCTV를 아무리 늘려봤자 눈만 아프지, 실질적 대응이 될 순 없어요. 학교 측은 대학 평균을 냈을 때 인하대 경비원 수가 부족하진 않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대학 평균 안에 건물이 비교적 작은 대학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에요. 전체적으로는 당연히 저희 대학의 경비원 수가 평균 이상이겠죠. 그런데 인하대 규모를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희는 경비노동자 증원, 성평등 교육, 학내 인권센터 위상 강화, 학생자치기구 차원의 성평등 기구 설립 등을 이야기하는데, 학교 측에서는 이 문제의 프레임을 자꾸 CCTV로만 잡아가고 있어요.

 

Q. 대자보를 두고 이번 사건을 정치화하지 말라는 의견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정말 황당하죠. 그런 말이 더 정치적인 거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지 궁금해요.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하나하나가 모두 정치적 의미와 동떨어져 있지 않잖아요. 특히 성과 관련된 문제는 상당히 정치적인 문제고요. 그 자체가 정치적인 문제인데 어떻게 정치화하지 말란 건지 모르겠어요. 온라인에서건 일상 공간에서건 그런 사람들은 언제든 말할 수 있는데, 자신들이 말하는 것으로 인해 다른 이가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상황들은 정치적이지 않은가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위해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상황이에요. 자신이 말함으로써 타자가 말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어떤 이유로 가능한 건지 따져보면 이 모든 게 굉장히 정치적이죠. 애초에 인하대 안에 있던 모든 배경과 상황, 그리고 이번 사건 자체가 정치적이에요. 그래서 이 사건을 정치화하지 말라는 주장 자체가 하나의 정치라고 생각해요. 탈정치의 외관을 한 정치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기만적으로 이야기할 바에 “그래 우리는 정치한다”라고 이야기해요. 정치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어떤 정치냐가 중요하죠. 저희 ‘여집합’이건, 학내 페미니스트건, 이번 사건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건, 이 일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여성들과 성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 이 사회에서 소리 내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저희가 저희 손으로 정치를 하는 거예요.

 

Q. 오프라인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혐오, 반페미니즘 경향성을 실감한 적 있으신가요?

A. 정말 무서운 건 직접적인 몰상식한 언사가 아니에요. ‘나는 이런 갈등이 지친다. 평화롭게 잘 살면 안 되냐’라는 식으로 대중적 경향성이 흘러가는 게 위험한 거죠. 어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갈등이 필요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상식에 비해 급진적으로 사유할 필요도 있어요. 지금처럼 갈등에 싫증과 무기력을 느끼고, 싸움을 회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갈등을 피해서 평화롭게 지내자고 하면서 개인적인 생활에만 주목하는 일이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실천을

가로막는 개인주의적 파편화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서 갈등이 아예 없을 수 없어요. 갈등이 없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억압받아야 하고, 억압받는 사람은 말할 수 없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의 입을 가로막는 식으로 유지되는 평화가 진정 평화인지 의문이 들어요. 그런 평화는 필요 없어요. 갈등이 필요하다면 일으켜야죠.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의 이야기

“캠퍼스에서 성폭력 관련 사건이 일어나면 쉽게 묻으려 하는 경향…”

 

 

Q. 고려대 여학생위원회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영) 저는 여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영이라고 하고요. 여학생위원회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산하의 특별 대표로서 독립된 위상을 지금 보장받고 있는 특별 기구인데, 학내외 성평등 달성을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희주) 여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희주라고 합니다.

 

Q. 학내 유일한 여학생위원회로서 백래시의 영향을 받은 적 있나요?

가영) 최근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 뿌리가 졸속 폐지되고 나서 여학생위원회도 그런 졸속 절차로 폐지되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가 있었어요. 과거의 백래시는 백래시를 하는 사람 자체에 대한 비판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백래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받아서 공론장을 아예 없애버리려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좀 어렵죠. 그리고 에브리타임 같은 익명 커뮤니티에 저희 활동에 대한 글을 올리면 조롱이나 비난의 댓글이 달리기도 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어려움을 겪어요. 저희는 활동을 더 알리고 외부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은데 오히려 그럴수록 상대편에서 들어오는 공격이 강력해지니까. 저희는 어떻게든 그걸 인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우리가 활동해야 할지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딜레마죠.

희주) 백래시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학내 페미니즘 위원회가 저희밖에 안 남았거든요. 아예 페미니즘 단체가 다 사라졌다고 하긴 어렵지만요. 코로나를 계기로 많이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다 여기로 백래시가 모이는 게 아닌가 이런 얘기도 했어요. 다양한 공동체가 많이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그런 점도 조금 어렵죠.

 

Q. 이전과 백래시의 흐름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가영) 요새는 일반적으로 ‘남학우와 여학우가 대학 내에서 어떤 차별을 받고 있지 않은데, 여학우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는 거 아니냐’라는 여론이 있어요. 가령 저희가 진행한 사업 중에 생리대 배치 사업을 두고 ‘학생회비 예산으로 왜 여학생에게만 그런 특권을 주냐’라는 여론이 존재했죠. ‘성평등을 주장하려면 여성, 남성을 평등하게 대우해야지 왜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려고 하냐’라는 여론이 대체로 있는 것 같아요.

 

Q. 인하대 사건 이후로 대학 캠퍼스 내 안전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에 변화가 있나요?

희주) 학교를 다닐 때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걸 목격하면 내재적인 공포,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내가 지나가는 캠퍼스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방증들이 계속 사건을 통해 생기고 있잖아요. 그럴수록 늦은 시간에 집 들어갈 때 괜히 한 번 더 소름 끼쳐서 뒤돌아보게 된다든지 해요.

가영) 인하대 사건 이후 저는 사실 크게 변화가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학생위원회에 들어오는 사건 중에 사실 인하대 사건처럼 아주 잔혹하고 언론에 공개된 사건은 없지만, 그래도 대학 내에 성폭력이 존재해왔던 것은 저희의 활동으로 이미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롭다고 느껴지지도 않아요. 다만 캠퍼스에서 이런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만큼 어떤 조치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은 더 들고 있어요.

 

Q. 작년 겨울부터 불거진 고려대학교 전 총학생회장 당선자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대자보를 쓰신 적 있던데,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요?

가영) 그 사건에는 익명의 피해자와 당시 총학생회장 당선자가 있는데, 당선자가 자체적으로 입장문을 에브리타임에 게시했거든요. 에브리타임이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여론이 형성되다 보니 피해자가 명예훼손 문제로 발언을 강하게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는데, 당선자의 입장문만 익명 사이트 내에 떠돌면서 그분을 옹호하는 여론이 많아졌죠. 왜냐하면 그분의 목소리로, 그분의 입장에서 그 사건을 서술한 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항상 피해자를 공격하는 여론이 조성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에브리타임에서는 ‘그 여성이 일부러 성공한 총학생회장을 끌어내리려고 3년 전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에브리타임 여론이 굉장히 뜨거웠는데, 막상 저희를 비롯해서 학내 인권단체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연서명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난 뒤, 당선자가 실질적으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나니까 에브리타임 내에 어떤 여론도 없더라고요. 그 사건을 언급하는 글이 단 하나도 없었어요. 학내에서 관련된 논의가 싹 사라졌죠. 저희가 이 사건을 공론화하려고 노력했는데 아예 묻혀버리더라고요. 캠퍼스 내에서 성폭력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쉽게 묻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이런 사건을 계기로 캠퍼스 내 성폭력 문제, 안전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아예 담론이 묻혀버리니까.

희주) 저는 여학생위원회에 들어오기 전까지 진짜 이 문제를 전혀 몰랐거든요. 제 동기들도 몰랐어요. 아무도 총학생회장이 이런 이유로 없어졌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다들 덮으려는 분위기가 강한 것 같아요. 학교에 바라는 게 있다면, 사후 조치를 확실하게 해서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학내 성폭력 사건은 굉장히 예전부터 존재해왔잖아요.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회 ‘열음’의 이야기

“캠퍼스는 ‘항상’ 안전하지 않았다”

 

 

Q. ‘열음’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준) 열음은 학내의 페미니즘을 알리기 위해서 시작된 학회고요. 2015년부터 생겼고 지금은 저희가 같이 활동하면서 페미니즘을 같이 공부하고 실천하기도 하고 하는 학회입니다. 지금은 소모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Q. 이번에 추모소를 설치하셨는데, 이후 백래시의 영향을 받은 적 있으신가요?

인애) 추모소를 차리고 대자보를 작성할 때부터 백래시 걱정을 했어요. 누군가 추모소를 훼손할 수도 있고, 대자보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일단 해야 하니까 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했는데, 추모소를 차리고 2~3일 뒤에 에브리타임에 글이 올라왔더라고요. ‘너네가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이건 유족들이 원하는 게 아닌데 너네가 뭔데 그런 걸 하냐’라는 요지의 글이었어요. 그것에 동조하는 글이 20개 정도, 또 반박하는 글이 10개 정도 달렸어요. ‘핫게(Hot 게시물)’도 올라갔어요. 사실 그걸 보고 충격받았어요. 처음에 읽었을 때는 조금 그럴듯해 보였거든요. 유족분들께서 공식 입장을 낸 게 있었고, 그 전문을 읽어보면 ‘이걸 정치적인 의도로 쓰지 말아달라’ 이런 문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을 잘못했나 하는 걱정도 했어요. 그런데 다른 회원이 “오히려 얘네가 이런 말 하는 게 2차 가해 아니냐”라고 이야기해준 거죠. 사실 저희 학교가 작으니까 에브리타임 게시물에 좋아요가 10개만 넘어도 ‘핫게’에 올라가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주류인 것처럼 여겨지는데, 저희는 이 사람들이 소수라는 걸 알게 해주려 했어요. 그래서 대응하는 차원에서 추모소 기간을 연장했죠. 앞으로의 과정에서 또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준) 아무래도 페미니즘을 말하는 동아리가 다 없어지고 저희밖에 안 남았으니까 예상보다 더 큰 무게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대자보를 작성할 때도 ‘여성혐오 사건’이라는 워딩을 쓸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모두가 이게 여성혐오라는 것을 마음으로 동의하는데, 이 말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없나’라는 걸 느꼈죠. 어떤 백래시가 들어오기 전부터 그걸 걱정하게 되는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Q. 캠퍼스 안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준) 캠퍼스는 ‘항상’ 안전하지 않았어요. 이 사건 자체가 살인사건이고 하니까 크게 이슈가 되었지, 사실 여성이 캠퍼스에서 성폭행과 성희롱을 당한 사건들은 너무 흔하거든요. 우리 학교만 봐도 밤에는 캠퍼스 안이 엄청 어둡고 가로등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요. 기숙사까지 갈 때도 두렵거든요. 충분히 사회가 더 캠퍼스 안전 문제에 신경을 썼다면 이런 사건은 없었을 거예요. 지금까지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니 여성들의 많은 공감을 사서 폭발적인 반응이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페미니즘 말하기를 가로막는 장벽

사회 내 젠더폭력과 캠퍼스 안전 문제가 대두되면서 여러 학내 단위와 학우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는, 혹은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 인하대 ‘여집합’, 성공회대 ‘열음’은 공통적으로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지만 숨게 되는” 현실이라 말했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페미니스트가 낙인”이 된 점을 언급하며, 왜곡된 인식으로 인한 낙인이 페미니즘 실천을 가로막는다고 언급했다. 페미니즘을 논하면 “‘쟤 약간 그런 데 관심 있는 애네? 피해야겠다’라거나 ‘극단적인 사람이구나’라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공회대 ‘열음’은 “아무래도 페미니즘의 장벽을 좀 높게 보시는 거죠. 대단한 활동을 해야 할 것 같고”라면서 “우리의 얘기를 하고, 우리가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장벽을 높게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페미니스트들의 실천이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진입장벽이 높아져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찾기 어려워진 실정이다.

 

이에 인하대 ‘여집합’은 “우리에겐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어디든 함께하는 동료가 있고, 이야기할 방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앞서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장벽”이라며 좌절하기 전에 “누군가는 고민을 덜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라고 답했다.

 

당신이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려대 여학생위원회

가영) 그냥 잘 살아있으니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젠더폭력 이슈를 계속 접하다 보면 스스로 무너지는 게 있잖아요. 페미니스트로서의 검열도 있고. 그래서 나 자신을 돌보기 힘들어요. 페미니스트로서 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에요.

 

성공회대 ‘열음’

연수) 당신이 지금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온전한 삶을 위해 나아가는 것 자체가 사실은 페미니즘이고 여성들을 위한 길이고 자신을 위한 길이니 본인이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살면 좋겠어요. 적당히 쉬어가며 나태도 부리고, 어떨 땐 엄청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기도 하면서요.

 

인하대 ‘여집합’

지금 우리는 수세에 몰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 시간들이죠. 되게 고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인터뷰를 보실 분들께서 저희에게 어떤 희망을 가지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계속 밀릴 것임이 분명해요. 그렇지만 희망이 되고 싶어요. 이 학교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고 이런 움직임을 할 수 있었구나, 라는 조각 하나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 조각을 함께 남기고 싶다면 같이 행동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싸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든 곁에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싸우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싸우셔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인터뷰에 응한 단위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학우들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함께 잘 살아가자는 것, 젠더폭력이 범람하는 이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학우들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격려인 듯하다. 세 단위 모두 인터뷰 내내 “자신을 돌보며 실천할 것”을 강조하면서 함께할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관련된 소모임과 동아리 등 단체가 많이 만들어져야 페미니즘 실천을 가로막는 장벽이 낮아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성공회대학교에서도 편안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모든 이가 안녕한 캠퍼스가 조성되길 기대한다.

 

글=최민서 기자(zlxl78945@gmail.com)

취재=최민서, 유지은 기자(ujieun023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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