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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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리부트 1편] 당신의 학생운동이 망한 이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학생운동 재도약을 위한 모임, 1주 차

 

팬데믹은 대학사회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 안에 세대교체가 되어야 하는 학생사회의 특수성 속에서, 대학의 비대면 전환은 학생운동 단체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재생산에 실패한 단체는 순서대로 사라졌다. 그렇다 해도 재도약을 꿈꾸는 목소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달 22일, 학생운동의 이야기를 이어 쓸 아홉 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한 달 여 간 매주 홍익대학교 강의실에 모였다. 집단 상담과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 학생 사회가 당면한 어려움을 나누고, 팬데믹 기간 동안 학생사회의 변화를 정리했다. 최종적으로 학생단체 일반에 배포할 수 있는 활동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상호부조적 네트워킹을 지속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통해 전국 단위 ‘느슨한 연대’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면 학생자치단체의 창발과 유지를 정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이날 모임에서는 코로나 이전의 활동 내용을 나누고, 당시 겪었던 어려움을 공유했다. 노학연대, 여성주의 교지, 성소수자 모임, 독립언론 등 여러 분야의 비영리 공익단체 활동가들이 모인 만큼 다양한 활동 경험이 나왔지만, 문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공정담론 ▲탈정치 ▲에브리타임 ▲재생산의 실패 등을 '학생운동 위기'의 키워드로 꼽았다.

 

활동가들은 우선 대학 사회에 만연한 ‘탈정치’ 기조와 ‘공정담론’의 유행을 학생운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원인으로 거론했다. 대학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동시에, 탈정치의 모습을 한 공정성의 정치가 캠퍼스를 뒤덮은 모순적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태린

숙명여대 노동자 학생 연대 만년설, 학생 소수자 인권위원회, 퀴어 모임, 인권 동아리 등에서 활동했다. 휴학 후 올해 초까지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에서 근무했고, 내년에 복학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3년간 휴학했더니 활동하던 단체들이 다 없어진 상황이다. 학교로 돌아가 어떤 활동들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서울권 대학의 경우 본인이 블루칼라 노동자가 아닌 대기업 사원이 될 것이므로 노동 이슈는 나와 관련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 알바 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도 본인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졸업 전 잠깐의 경험으로만 생각한다. 연세대의 사례처럼 파업 투쟁이 나의 학습권을 침해한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도 학교에서 노학연대가 유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학교에서는 시혜적인 얘기조차도 더 이상 먹히지 않고 ‘공정 담론’, ‘각자도생’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앞으로의 운동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지 고민이다.

 

수근

비영리 독립 언론 대학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자다. 오늘은 취재차 겸 참석자로서 왔고, 예전에는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동아리 정정현에서 2년 정도 활동하면서 편집장을 맡았었다.

공정 담론 하니까 생각이 드는데, 학교가 예전에 비해 굉장히 많이 탈정치화되었거나, 혹은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된 탈정치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학생회가 정치적 입장을 내는 것을 불편해하고, 자신들은 정치 주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들은 자연적인 존재고 정치적이지 않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주의 교지를 할 때는 외면을 많이 받았다. 정치적이고 편향적이고 이상한 얘기를 한다, 이런 식으로.

 

태린

2019년에 우리 학교 출신 국회의원이 세월호와 5·18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는 발언을 해서 총학생회가 규탄하는 성명을 냈었다. 그런데 “학생회가 왜 정치적 발언을 하느냐, 여자 국회위원 몇 명 된다고 여자들 감싸주지 못할 망정 왜 비난을 하냐” 하는 비난이 일어서 논평을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이런 요구를 탈정치화라고 이름붙일 수 어렵다고 느낀다. 동문을 감싸는 건 정치적인 목소리가 아닌가? 총학생회는 복지기구이지 정치기구가 아니라면서 동시에 자랑스러운 동문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건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민석

노동자와 학생들이 함께하는 단체인 홍익대 ‘모닥불’의 대표로 활동했었고, 이후에는 홍대 미대 권력형 성폭력 인권유린 A교수 공동행동에서 대표를 맡. 학교 바깥에서는 마포구 지역에서 진보 정당 운동을 주로 했다. 

홍대 성폭력 A교수 서명운동 때, 저희가 서명을 되게 많이 받았다. 살짝 과장해서 홍대 학생 절반이 서명했다. 이걸로 국면을 뚫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서명 명단을 학교에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까 하다가 서명인 명부를 익명 처리해 전부 인쇄한 후 현수막으로 쭉 뽑아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했다. ‘오늘 정말 잘했다’ 하고 뿌듯해하며 돌아가서 에타를 보니, “어떻게 서명을 했는데 언론 앞에 이름을 깔 수가 있냐”고 욕을 먹고 있더라.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단순히 이 사람들이 보수화되고 탈정치화된 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를테면 X축, Y축이 아니라 Z축으로 변한다는 걸 느꼈다.

 

 

 

한편, 이러한 탈정치화가 자리한 온라인 공간인 ‘에브리타임(이하 에타)’ 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활동가들은 에브리타임이 ‘공론장’ 으로 이야기되는 현실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커졌지만, 실상 소통과 교류, 토론 등의 순기능이 아닌 혐오와 분노를 쏟아내는 공간으로서의 역기능이 더욱 크다는 것이었다.

 

윤덕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없지만, 연세대학교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 에서 오랫동안 운영진 및 회장으로 일해왔다. 컴투게더가 연대단위로 가입되어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도 해왔다.

대안적 커뮤니티가 없으니까 에타가 공론장처럼 보여지는 게 문제라고 느낀다. 이걸 가장 크게 체감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한번은 트랜스젠더는 정신병이라는 글이 핫게(인기 게시물)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욕은 안 하고 대신 친절하게 설명하는 글을 썼다. 그런데 갑자기 악플이 달리더니, 급기야는 ‘게이xx는 닥쳐라’ 라는 댓글이 달리더라. 알림을 보고 글을 눌러보니 이미 신고당해 글이 삭제된 상태였다. 심지어 신고 때문에 계정 정지를 당해 게시판 이용이 불가능해지기까지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삭제하고 튄 걸로 보이는데 해명도 못하고…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 싹 다 없어져 버리는데 이게 무슨 공론장인가 싶다. 전에는 오프라인에서 가능했던 다른 기회들이 있었는데, 다 단절되었다는 점이 암울했다.

 

 

하연

대학알리와 대학 언론인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다. 활동가 간 네트워킹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학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전멸했다. 그러다보니 전부터 폐쇄성을 짙게 띄고 있던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 학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었다. 제가 신입생이었던 17년도엔 에브리타임은 ‘극우 성향을 가진 일부 학생들끼리 질 나쁜 이야기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조직적으로 학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공간이었고, 대부분이 시간표나 강의평가 등 주요 기능만 사용했다. 하지만 20학번부터는 상황이 달랐다. 학생들은 에브리타임을 통해서만 학교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익명 게시판에서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질 낮은 주장들이 학내 담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부터 많은 이들이 비슷한 지적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선재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 동아리의 건국대지부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임 중 가장 어리고, 경력도 짧다.

코로나 시국 중간에 대학을 입학했다. 지금 활동하는 단체도 에브리타임에서 보고 가입했다. 코로나가 번지기 직전 학교에 가봤을 때는 대자보나 (학생운동) 홍보 포스터를 게시하는 문화도 있었는데, 입학 후 코로나가 계속 번지면서는 그런 문화 자체가 에브리타임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전에는 에타가 아니더라도 대자보 같은 공론화의 장이 있었는데 이제 그런 통로도 완전히 없어졌다. 활동하던 학내 단체들도 홍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당시에는 생존하는 것 자체에 급급했다고 한다. 저희 동아리도 선배들을 보면 학번 공백기가 2년 정도 있다.

 

민석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무렵에는 노동권 운동에 대한 학생들의 평균적인 여론이 아주 괜찮다고 느꼈다. 에타에서 빨갱이들이라느니 욕을 먹더라도 그건 1%도 안 되는 여론이라고 느꼈다. 좋아요를 많이 받아야 100명 정돈데, 학교 전체에 비하면 많은 숫자가 아니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활동했었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에타가 학교의 유일한 커뮤니티가 되고 나서는 여론 자체가 스멀스멀 이상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팬데믹 이후 대학사회의 극적 변화는 활동 단체의 ‘재생산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과정은 달랐지만, 모두가 비슷한 어려움을 공유했다. 실제로 당장 후임이 들어오지 않아 조직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한편, 단체 운영 당시 가졌던 태도에 대한 반성뿐 아니라 실패를 자책하며 동력을 잃지 말자는 성찰적인 발언도 나왔다.

 

윤덕

후임이 없는 게 제일 힘들었다. 대학단체 특성상 활동가들이 조금만 있으면 졸업하고 나가버리니 재생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코로나 이후로 오프라인 모임을 못했는데, 동아리 연합회가 정말 빡세게 규제를 했다. 오랜 기간동안 친목 목적의 동아리 모임을 금지했는데, 심지어는 카카오톡 단체방 안에서 사적으로 모이는 것까지 금지할 정도였다. 그래서 행사기획을 위한 회의 정도로만, 그것도 인원제한을 지키고 사전 신고를 해야만 모일 수 있었다. 결국 줌으로 모이거나 혹은 거의 못 모였는데, 줌으로 모임을 가지면 같은 현장에 임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보니 사람들이 빨리 탈주하고 싶어하는 게 눈에 보인다. 온라인 상황에서 생기는 제약들도 있다 보니 행사도 잘 안 되고 기획했던 것이 날아가기도 했다.

 

민석

(팬데믹 이전에는) 학교 앞에서 서명운동이나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서명운동 하는 과정에서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고, 그런 반응을 통해서 학생사회의 여론을 체감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는 그런 게 불가능했다. 재생산도 더뎌졌다. 한편으로는 반성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첫 활동을 시작했을 때 인권법학회를 만들었는데, 처음엔 사람들도 잘 모이고, 잘 됐다. 그런데 나에게는 활동가로서의 의지가 있었던 반면, 학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뭔가 배우고 싶어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이의 간극을 활동가로서 좁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국 사람을 잘 챙겼어야 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모닥불도 비슷했다. 처음에 여러 성과들을 내면서 모닥불은 잘 될 것이고, 이 활동으로 한국 사회를 한번 바꿔보리라 생각했다. 모닥불을 전국 조직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걸 해보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일을 못 맡겼고, 동료들의 작업이 성에 차지 않았다. 반성적인 의미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활동가로서 사람들을 잘 챙기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정말 처절하게 했다.

 

시온

활동가들이 참염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학생운동 재도약을 위한 모임’의 주최자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육권 노동권 성인권 특별 위원회 '미대의 외침'과 2021 미술대학 학생회 '함성', 성소수자 동아리 '홍반사'에서 활동했다. 

최근 오랜만에 홍반사가 결집하면서 정모를 갔다. 사실 내게는 ‘ 내가 단체를 망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죄책감이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실무자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더 잘했을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나를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단체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쟤는 왜 왔냐”고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는데, 막상 만나니 다들 너무 반겨주면서 서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거다. 개개인이 느끼는 자책감이 실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고, 만나서 서로 네 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잘못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한 번 하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진작에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모임 제목도 이거다.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여러분,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활동가들은 모임 내내 쉴 새 없이 "썰"을 풀었다. 비록 서로 다른 공익 활동을 하고 있지만, 겪어온 어려움은 비슷하기에 공감대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이 아닐 거야’ 라는 1회차 모임의 이름처럼, 활동가들은 한 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나아가 활동을 지속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은 2주차 모임에서는 각 단체가 당면한 구체적 상황을 요약해 공유하고,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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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근 기자

문명을 야만의 이야기로, 빛을 어둠으로 거두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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