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7 (일)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찢고 구기는 것은 종이일 뿐” 벽보 훼손 사태에 답하다

지난 4월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회 열음의 신규 학회원 모집 벽보가 훼손됐다. 열음 측은 이를 “명백한 백래시의 사례”라고 규정하며 대응 벽보를 게시했다. 훼손 사태 속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열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5월 성공회대학교에 특이한 벽보가 붙었다. 찢어진 종이 위 빨간 궁서체로 커다랗게 쓰인 문구는 다른 벽보들과 대비되어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벽보에는 “뗀 사람 누구? 긁? ㅋ”이라는 문구와 함께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회 열음(이하 열음)의 학회원 신청서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실려 있었다. 해당 벽보가 붙은 곳은 도서관과 일만관을 잇는 굴다리와 정문의 담벼락 두 곳으로, 모두 교내에서 유동 인구가 많기로 손꼽히는 장소다.

 

열음은 어떤 곳이고, 해당 벽보는 어떤 이유로 붙게 됐을까? 찢어져 있는 종이와 문구를 통해 이전 벽보가 훼손됐음은 추측할 수 있었다. 회대알리는 자세한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열음의 학회원인 최성주 학우와 오현주 학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열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회 열음입니다. 열음은 주로 책 세미나와 문화 모임 같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실천여성학회인 만큼 공부한 내용들을 실천에 옮기고, 학내에서 페미니즘 담론을 만들어 가자는 기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훼손 상황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처음 벽보를 게시한 날은 4월 17일이었고 훼손 상황을 알게 된 날은 4월 28일이었어요. 학회원분이 사진을 단체 대화방에 보내셔서 알게 됐는데, 마침 정기 모임이 있던 날이라 회의에서도 다루게 됐습니다. 저희가 총 일곱에서 여덟 곳에 게시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잘 보이는 장소인 정문과 굴다리 쪽이 훼손됐더라고요. 벽보의 가운데를 찢어 놓아서 테이프가 붙은 상단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Q. 벽보의 모습을 보면 의도적으로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어떤 내용을 담은 벽보였나요?

열음의 신규 학회원을 모집하는 벽보였어요. ‘정상 영업 합니다’라는 밈(meme) 사진을 콘셉트로 해서 디자인했는데요. 이 밈처럼 당시에 문을 닫아야 하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인원이 적고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올해로 딱 10주년이더라고요. 이대로 닫기에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서 어떻게든 이어 가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벽보였습니다.


Q. 훼손 사실을 알았을 때 들었던 생각이나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대응 방법에 대한 고민도 컸지만, 학회원 전반이 상처받았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벽보를 붙이면 어느 순간 사라지는 일은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훼손하겠다는 의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났잖아요. 학우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인 만큼 훼손에 노출된 사람들도 많았을 거고, 그 앞에서 찢을 수 있었다는 점이 이전과 다르게 보였어요. 명백한 백래시(backlash, 사회적 진보에 대한 반발)의 사례라고 느꼈습니다.


Q. 학교 측에 관련 내용을 전달하셨나요?

학교 측에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학교의 대응에 관해 기대가 없던 것도 있지만, 저희가 원하는 방향은 CCTV를 확인해서 범인을 찾고 처벌하는 게 아니었거든요. 앞선 답변처럼 저희는 이 사안을 단순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라고 느꼈고, 구조적 차원에서 비판하고 싶었어요.


Q. 새로운 벽보를 붙이셨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두 가지의 대응 벽보를 붙였는데요. 첫 번째 벽보는 최대한 유쾌하게 이 사안을 비판하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페미니즘은 떼지지 않습니다’처럼 정석적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런 대응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의 방식을 그대로 맞받아치는 방향으로 기획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벽보는 유쾌한 풍자로만 끝내기보다는 조금 더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획했어요. 그 사람과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Q. 이후 반응은 어땠나요?

누가 대응 벽보에도 비속어와 함께 “나다 ㅋㅋ”이라고 낙서했더라고요. 저는 그것까지가 벽보의 완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유치한 낙서가 훼손 행위의 요약본 같아서 이때는 웃음만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안이 열음에게 동력이 되어 주기도 했어요. 이전 질문에서 답변드린 것처럼 당시 열음이 많이 침체된 상태였는데, 벽보 덕분에 응원도 받고 신규 학회원분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 주셨거든요. 백래시로 완성된 성공적인 캠페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두 번째 벽보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하셨는데, 벽보에 적힌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열음은 성공회대학교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공식 페미니즘 모임이에요. 이름에는 ‘페미니즘의 문을 열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말 여름에 만들어져서 ‘여름’을 의미하기도 해요. 벽보에는 10주년을 맞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와 언젠가는 열음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는 걸 비유해서 표현했어요. 아무리 지우려 해도 우리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리를 꿋꿋이 지켜왔다는 의미도 있고요.


Q. 열음이 학생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학내에서 성폭력 관련 의제가 올라왔을 때 열음에게 물어보는 흐름이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이런 창구가 존재하는 게 학생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자보를 쓰거나 캠페인을 하는 것처럼 공식적인 대응에는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이럴 때 개인이 혼자 감당하지 않고 열음이 함께함으로써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성 관련 이슈나 기념일을 가시화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본연의 목적도 있지만, 페미니스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도 전할 수 있거든요.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옆에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연대감을 주는 것도 열음의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편한 마음으로 열음에 들어와 주시면 좋겠어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진 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똑똑하고 완벽해야 할 것 같았는데 사실 완벽함이라는 게 어디 있겠어요? 누구나 다 작은 결함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만약 들어오시지 않더라도 열음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함께함으로써 연대감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취재= 주미림 기자, 이혜성 기자
글, 사진, 디자인= 주미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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